※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322〉
■ 라일락꽃 (도종환, 1954~)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2011년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창비)
*화사한 봄날 정원을 가득 채운 아름답고 예쁜 꽃들은, 보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4월도 하순으로 접어든 울집 정원에는 연휴 첫날인 오늘도 아직 보랏빛 라일락이 시들지 않고 달콤한 향기를 은은하게 퍼뜨리고 있습니다.
라일락에서 보듯 대부분의 꽃들은 눈에 비치는 고운 모습도 좋습니다만, 가까이 가서 꽃들이 품고 있는 상큼한 향기도 맡아 보아야 그 꽃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이 詩는 라일락꽃이라는 하나의 봄꽃을 예로 들며, 꽃 자체가 지닌 내재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詩를 쓴 배경에 대해 시인은, 비오는 날 라일락꽃 향기에 끌려 가만히 다가서서 바라보다가 문득 꽃이 빛깔과 향기라는 언어로 자신을 불러 전해준 말들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꽃이 향기로 우리를 부르고 아름다운 얼굴로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하면 잠깐 멈춰서 웃으며 우리도 아는 체를 해줘야 한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작품에서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새소리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면 귀를 기울이고 밤에는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기도 하며, 슬프거나 불쌍한 걸 보면 눈물도 흘리고 가슴 아파하며 사는 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의미가 아닐까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