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예배와 카톨릭 미사의 다른 점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의 예배와 카톨릭의 미사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하고 파악한 바로는 그 둘은 정반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카톨릭의 미사가 비록 의식에 치중하고 마리아 숭배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예배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둘이 크게 상반된다는 점입니다. 이제 그 내막을 분석해보기로 합니다.
우선 제가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 예배란 성경에 충실한 기독교 교회 모임을 말하며 그것은 오늘날 다수 한국 교회들의 관행과는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수의 한국교회들, 흔히 개신교라 불리우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 등의 교회들의 예배와, 성경적 기독교회의 예배와, 카톨릭의 미사를 동시에 비교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신약성경에 충실한 교회들의 예배
여기서 신약성경에 충실한 교회들이란, 신약성경에 나타난 가르침들에 순종하여 모이는 모임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들이 실천했던 바들을 그대로 순종하여 실행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목사제도가 아닌 성경적 장로들에 의해 지도되며, 세례가 아닌 침례를 실행하고, 그 침례에 앞서서 거듭남과 그 믿음을 확인하여 실행하며, 서로를 형제 자매들로 호칭하며, 매주일 주님의 만찬을 실행하며, 성경대로 여자들은 머리 수건을 씁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스스로를 모임(에클레시아)들이라 부르는데 어원상으로 교회(Church) 란 독일어의 Kirche, ,스코틀랜드의 Kirk, 프랑스의 Cirqe, 라틴어의 Circe 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에게해의 여신 이름이었습니다. 이 여신은 막강한 힘과 매력의 여신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콘스탄틴 황제 당시 그 이전 우상숭배에 참여했으며 도나티스트 침례교인들을 핍박했던 자들이 회개했다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이라 자처하고 로마제국내의 미트라 신당들을 교회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카톨릭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미트라 신당은 원래 페르시아 종교를 들여온 사당들이었습니다. 독일어의 Kirche 는 영국으로 건너오면서 Chirche 로 바뀌고 다시 Churche 로 바뀌었다가 오늘날 Church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오직 에클레시아가 115번 나오며 예수님에 의해서도 3번사용되었습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밖으로 불러내심을 입은 자들의 뜻으로 단순히 모임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 Assembly 가 가장 정확하나 구약의 회중과 연결하여 Congregation 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틴데일은 그의 신약성경에서 Church 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Congregation 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신약성경에 충실한 교회들은 일인목회가 아닌 만인제사장직을 실행하며 그외 모든 성경 교훈들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행하는 예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을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는 인간들이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알아주고 믿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은 분이시며, 그분은 진정으로 그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실이 핵심이 됩니다.
그들은 그 성만찬 예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영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갖는 단번에 사해졌음을 믿고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만찬을 실행할 때에 떼는 떡과 마시는 포도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기시키고 기념하는 것이지 그것들이 실제로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2천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바로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분의 피흘리심이 영원한 효력을 갖고 모든 죄가 이미 사해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그 위대한 사역을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만찬에서는 목사나 어느 특정인물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얻은 성도들은 누구나 동등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초대받은 명예로운 손님들이며 그 잔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미래였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죄들은 우리가 죄들을 짓기도 전에 사해졌습니다. 우리의 죄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요일 4:16, 19). 따라서 우리의 과거나 우리의 미래 역시 예수님 당시에는 동일하게 미래였으므로 동일하게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사실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찬송시도 있고, 주님의 만찬도 있으며, 기도와 성경말씀을 살펴보는 말씀상고도 있으며 여러분들이 참여하며 하나님께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 모임들의 예배라고 믿어집니다.
이러한 모임들에서는 예배와 일반 집회를 구분합니다. 말씀집회 혹은 설교 집회나 강론 시간은 별도이며, 예배시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믿고 기억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나아가 경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말씀시간 혹은 강론 시간은 성경 말씀을 깊이있게 공부하는데 주목합니다.
(2) 로마 카톨릭의 미사
북미에서는 CTS 방송을 비롯한 여러 방송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들의 미사(Missa- 미싸) 상황을 중계해줍니다. 녹화방송일 때도 있고 생방송일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침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 매일 방영해줍니다. 그 미싸(Missa)를 시청할 기회가 많으므로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이 모든 죄를 사함받게 하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근거로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사해주셨다, 는 것을 증거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그럴까요?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그때에 전반적인 것을 이룬 것이며 역사적 사실이지 우리의 개개인이 죄지은 것을 사함 받게 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죄지었을 때는 개개인이 회개하고 속죄받기 위해 미싸에 참여하여 사함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하여 참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희생이 영원한 효력을 가지며 그분께서 “ 그것이 이루어졌다” 하실 때에 세계 구속의 대역사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에서의 모든 죄들이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졌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주 하나님께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미사에서 다시 하느님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I-H-S라고 쓰인 영성체 과자를 들어올리며 희생제사를 받아달라고 기도하고 다시 잔을 들어올리며 이것은 예수님의 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잔을 받아주시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이 미싸(Missa) 라는 말은 그 뜻이 희생, 희생제사, 도살을 뜻한다는 해석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로마 카톨릭에서 그 미사를 희생제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로마카톨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를 드리되 그것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를 다시 드리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속죄희생의 영원성과 그 영원한 효력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카톨릭 미사의 구성요소들을 생각해봅니다.
A) 카톨릭 미사에서는 자기들의 영성체와 성배를 근거로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사해졌다는 것을 안믿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합니다. 인류의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사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은 모든 죄들의 죄값을 지불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희생제사가 필요없습니다(히 10:17-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속죄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안믿으므로 또다시 하느님께 자꾸만 자기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자꾸만 자기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예수님을 다시 보내주어서 또다시 피흘리고 죽게 해달라는 뜻이 됩니다.
B) 천주교 미사에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가 이미 완벽히 사해졌다는 사실을 절대로 강론하거나 증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속죄희생을 선포하고 증거하면 자기들의 미싸와 모순되며 다음에는 더 이상 미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신념과는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를 자주 드리며 그것을 미싸라고 부르는 것이며 예배라는 말대신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천주교 미사에서는 그들의 쿠키(영성체)와 포도주 잔을 들어올리면서 그 희생을 받아달라고 그들의 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이 쿠키에는 I-H-S 라고 쓰였는데 그것은 이집트의 신들인 오시리스와 이시스와 호러스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복음진영의 사람들이 내놓습니다. 혹은 바빌론의 신 니므롯(바알)과 세미라미스(이스타)와 담무즈를 의미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쿠키 영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며 잔은 바로 예수님의 피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2천년 전에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 사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음을 가져오거나 증거하지 않습니다. 즉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실을 기억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가져오는 대신에 자기들의 희생 제사가 바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희생제사이며 그것을 자기들이 드리는데 이제 하느님이 들어주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말들은 자기들의 희생제사를 장식하고 덮어놓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D) 천주교는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변하여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화체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앞서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천주교에서는 또다시 나름대로의 희생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피흘림이 없으면 제사가 안되는 줄을 알고 그 포도주가 피로 변화된다고 하며, 쿠키가 예수님의 몸 곧 성체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어올려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 미싸입니다.
따라서 화체설은 카톨릭 미싸를 정의하는 중요한 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카톨릭 신자들에게 과연 빵이 살로 변하며, 포도주가 피로 변하는지를 실험실 실험을 통해 확인시켜 줄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하면 그들은 물질은 실질적으로 변하지만 가시적 외형은 액시던트(Accidents) 로서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화체설 또한 그들 나름의 희생제사인 미싸를 합리화시키고 그 미싸에 희생제사 요소를 충분히 갖추도록 하는데 활용된 이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화체설이 없이는 카톨릭 사제가 드리는 미싸가 희생물이 없는 제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카톨릭은 그들의 쿠키와 포도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써 하나님께 참 제사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명칭은 그들의 미사를 거룩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도 어떤 피든지 먹어서는 안되며 먹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끊어진다고 가르칩니다.(레17:10, 14)
즉 피를 마시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물 희생의 피는 하나님께 보여드리기 위함이지 그것을 인간들이 먹으라고 피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이 포도주가 변하여 피가되고 그 피를 마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저주받은 백성임을 주장하는 것이 됩니다.
(3) 개신교의 예배
개신교인들은 목사가 예배의 중심이며 매주일 예배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서는 목사의 설교가 중심입니다. 예배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이렇게 나옵니다.
신이나 부처와 같은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하는 의식. 또는 그런 의식을 행함.
요컨대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말하는 우리의 삶 전체로 드리는 예배를 말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교회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좁은 의미를 살펴보면 교회에서의 몇 가지 예배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이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쉽게 말하여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추어 경배하는 것을 예배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과 진리로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요 4:24). 이러한 대부분의 개신교 주류교회들에서는 목사가 설교하기 전에 성가대가 찬송하며 누군가가 기도하고 또 목사가 설교하고 헌금을 거둡니다. 누군가(대개 장로가) 성경봉독으로 성경 몇 줄을 읽고 나면 설교를 하는데 설교의 주제로 복음적인 설교들을 꾸준히 펼치는 교회들도 있고 그렇게까지는 안해도 성경을 깊이있게 다루어보려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나오는 설교 주제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오, 건축하여 많은 사람들 오게합시다. 건축헌금 합시다. 십일조를 내야 축복받습니다. 감사헌금, 헌금 많이 내면 복받습니다. 목사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정치 시사 이야기와 우스개 이야기 정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들 이단이라고 비판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을 보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교회들은 교회가 부흥했다는 척도로 건물이 커지고 헌금액이 많아지고 구원받았건 안받았건 사람수가 많아지는 것을 그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런 교회들에서는 주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 혹은 그들이 부르는 성찬식이라는 것을 일년에 두 세번 밖에 못 가집니다. 또 성찬식을 한다 해도 마치 목사가 그 성찬을 차려놓고 일반 신자들은 손님이 되어 참석하는 것처럼 목사의 주관하에 이루어집니다. 원래는 주 예수님이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이루어놓은 잔치이며, 그 잔치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나머지 신자들은 모두 그 잔치에 동등하게 초대받은 명예로운 손님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개신교 교회들에서는 목사가 교회의 중심이며 교회의 머리로 군림하고 예배에서도 그 중심 자리에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개신교들 안에는 주 예수님이 주인되시고 경배받으시는 예배의 요소는 풍성하지 못합니다.
(4) 요약
이제 기독교의 예배와 카톨릭의 미사의 다른 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카톨릭의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자기들의 희생제사를 드리되,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라는 명분을 붙이고 장식하여 그들의 신 하느님께 자기들의 희생제사를 받아달라고 기도하는 행사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주신 구속의 역사를 기억하고 믿으며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사입니다.
B) 카톨릭의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 하느님께 자기들의 성체 성사에 근거하여 자기들의 죄들을 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안믿기 때문입니다.
C) 카톨릭의 미사는 화체설에 의한 성체성사를 포함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십자가의 역사를 생각나게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마술적인 힘으로 (오직 그들의 성직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마력으로) 포도주가 피가 되고 영성체가 살이 된다고 주장하며 행하는 행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실과 희생을 기억하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성경적 예배와 그것을 믿지 않고 죄를 다시 사해달라는 카톨릭의 미사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13. 9. 6 하토브
|
구원은 상급이 아닙니다. '영생'이 상급일 뿐입니다.^^+
비전문가님은 구원에 관하여 소설을 쓰지 마시고 직접 구원의 체험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조용히 들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글쎄요.. 성경과 교회에 주신 주님 계시이며, 정통 신앙의 고백이 님에게 있어 소설이 된다면, 자신의 주관적
종교 체험 및 깨달음,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받은 하나님의 응답 간증은 진정한 소설이 아닐까요..? ^^+
주관적 종교 체험과 깨달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만약 정통적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자신의 그 체험과
깨달음에 대한 합리적 재검토는 필요합니다. 그 부분에서 취약하다는 것이 형제교회에 대해서 개신교조차도
이단으로 분류하는 결정적 이유가 됩니다.
비전문가/ 님은 천주교의 대표도 아니고 또 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천주교니 개신교니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책이 사실을 기록한 진리임을 믿는 "믿음"만이 님의 죽음 이후를 보증할 뿐입니다. 님이 목숨처럼 붙들고 있는 "정통적 가르침"이라는 것은 님이 스스로 주관적으로나마 체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인 천주교인 누군가의 말을 그저 녹음기나 복사기처럼 단순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것이라서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기도의 마음으로 님을 대접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전문가/ 하토브 님이 님을 위해 정리한 이 글을 진실로 편견없이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어찌 알겠습니까. 이 기회가 님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마지막 기회가 될지... 그리고 하토브 님이나 비전문가 님이나 동일하게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데 님은 그깟 천주교 교리가 무엇이라고 계속 허망한 이단 타령이나 하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이 이단이건 말건 그게 님하고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허구헌 날 고관절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헛되이 컴 앞에 앉아 거짓 천주교라는 종교 교리타령 하지 말고 님 자신, 지금 이 순간 님이 죽으면 진실로 어찌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묵상해 보는 것이 유익이 있을 겝니다.
물론 저는 천주교의 대표가 아닙니다. 다만 천주교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지요.^^+
물론 주님께 있어서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만, 주님께서 세우셨던
곳이 바로 천주교라는 점을 잊지 않으며, 주님 성령이 천주교 안에 현존하시며 당신의 나라로 이끄신다는
믿음을 가질 뿐입니다.
정통적 가르침은 일찌기 주님께서 교회에 계시하셨던 것. 여기서 벗어난 이들을 우리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주님 뜻에 합당한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올바른 구원의 길은 가톨릭
교회 안에 있습니다.
하토브 님의 글 자체가 편견을 가지고서 쓰여진 글인데, 편견없이 읽으라는 말은 좀 생뚱맞네요.^^ 그깟
'이단'이라..^^+ 형제교회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를 부정하고 비하하는 이유는 바로 형제교회가 이단이기
때문입니다. 님들이 가톨릭 교회를 공격할 뿐, 가톨릭 교회는 형제교회에 대해서 알지도 못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님들을 일깨워주시어 밝은 빛으로 나오기를 빕니다.
이단이냐 정통이냐의 판단 기준은 성경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개톨익은 우상교, 다신교, 행위구원교 일 뿐이며 빛의 종교가 아니라 흑암의 종교임은 중세 암흑시대가 증명합니다.
정통성 판단 기준은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어야 합니다.^^+ 이단들도 성경을 가지고 스스로를 변호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사사로이 성경을 해석하여 정통에서 벗어납니다. 비록 그들이 정통보다 순결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이 정통성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노바티아누스파나 도나투스파는 이를
명확히 증명합니다.
노바티안과 도나티스트가 정통들이었지요. 반면에 코르넬리우스 일당은 우상숭배에 굴복하고 황제에게 성경을 소각시키도록 내던졌던 사람들, 믿음의 패잔병들 다수가 무리지었고 그들이 바로 오늘날 개톨들의 조상들이 되었지요. 도나티스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믿음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당연히 감독직에서 배제되었어야 합니다. 엉터리 신자들이 돈좀 써서 감독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게 바로 개톨의 역사이지요.
개톨과 우상숭배는 뗄레야 뗄수 없는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님들이 정통이라 주장하는 그들이 한 업적은 꽤 재미있군요. 아우구스티누스와 옵타투스
자료를 동시에 읽어보니, 도나티스트 추종자들이 무엇을 가지고서 진실로 정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나티스트들의 역사가 과연 가톨릭을 비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군요.^^
더구나, 당시 도나티스트들은 키프리아누스의 참된 계승자로 자신들을 주장하는데, 정작 키프리아누스는
코르넬리우스에게 노바티아누스를 로마주교가 가진 권한으로 정죄-파문할 것을 요청한 사람입니다.^^+
거기에 참고로.. 재세례가 성경 어느 곳에 기술되어 있습니까? ^^?
참고로.. 도나티스트들이 당시에 가톨릭 교회에 맞서 스스로를 참교회라고 주장한 5가지 근거입니다.^^+
감독의 통일성과 권위를 나타내는 권좌(cathedra), 세례 시 물 속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계시록에 나오는
24 장로들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천사(angelus), 성령 혹은 세례를 베풀 샘을 의미하는 성수반(聖水盤;
fons), 성수반을 열 수 있는 봉인(sigillum),그리고 온전히 성별된 제단(umbilicus)......
이런 예물을 소유한 공동체만이 참 교회이며, 그들만이 성례(침례, 성찬, 서품)를 행할 수 있다.
- 도나티스트 카르타고 주교 파르미니아누스,
형제교회와는 상당히 많이 다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