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2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사도 8,1ㄴ-8; 요한 6,35-40
제1독서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부활 3주 수요일
믿고,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아가기
제1독서는 위기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여”(8,1) 공동체는 흩어집니다. 이 흩어짐(διασπείρω)은 씨를 뿌리듯 퍼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패배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8,4). 박해는 신앙을 꺼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시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말씀이 어떤 제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마음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여러 형태의 ‘흩어짐’을 경험합니다. 사회적 혼란, 의미의 상실, 세속화 속에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삶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6,3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빵”(ἄρτος)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빵이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않고, 나를 믿는 이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삶 전체를 맡기는 행위입니다.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끼는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충만으로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선택을 요구합니다. 곧, 그분께 나아가 삶의 중심을 재정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6,37)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오다”(ἔρχομαι)는 움직임과 여정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θέλημα)을 밝히십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6,39)입니다. 많은 이가 버려졌다고 느끼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말씀은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도 잃어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사목은 이 진리를 구체적인 환대와 경청, 인내로운 동행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필립보는 이 역동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8,6) “큰 기쁨”(8,8)을 누립니다. 참된 복음화는 깊은 기쁨(χαρά)을 낳습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람을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현존에서 오는 열매입니다.
여기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분열과 폭력이 가득한 시대에 가난하고 기쁨에 찬 삶으로 복음을 살아냈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참으로 마음을 채우는 생명의 빵이었습니다. 그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말의 힘이 약해진 시대에, 삶의 일치는 가장 강력한 선포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구체적인 마음가짐과 실천을 요구합니다. 마음가짐은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 삶을 채우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에서 위로와 의미를 찾고 있는가? 실천은 날마다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성체성사를 통해 그분을 받아 모시고, 그 친교를 이웃 사랑과 선교로 이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심을 아는 것에 머물지 말고, 실제로 그분을 먹고 살아가며, 나 자신도 다른 이들을 위한 ‘쪼개진 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늘의 흩어짐과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는 생명과 희망과 참된 기쁨의 표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