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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스님의 삶과 깨달음 1
1930년대, 어린 소녀 대행(속명: 노점순)의 주변은 온통 혼란과 질곡 그것이었다.
민족은 주권을 잃었고 사회는 굶주림과 질병과 무지 속에 버려져 있었다.
당시 소녀 대행 앞에 다가 온 것은 바로 그 절벽과도 같이 거대한 현실이었다.
당시 이제 일곱 살 난 어린 소녀 대행은 뼈아픈 가난으로부터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원래 대행의 집안은 아버지가 훈련대장을 지낸 바 있는 한말의 한 퇴역 무관의 집으로서 결코 남부럽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국망과 함께 집안도 기울어갔다.
역시 무관으로, 영락해가던 나라를 돕던 아버지 노백천에게는 조선군의 해산이 곧 나락의 시작일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폭력 앞에 아버지는 번번이 저항하곤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투옥과 석방이 되풀이 되면서 아버지는 점점 자포자기, 성격 파탄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한 집안을 지탱해야 할 가장의 수난은 말할 것도 없이 식구들 모두에 대한 수난이 되었다.
마침내 어느날 아침 일본인의 사주를 받아 들이닥친 집달리들에 의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은 대행의 가족은 정들었던 이태원을 떠났다.
그것은 참담한 패배였고 어린 대행에게 닥친 현실의 거대함이었다.
대행은 세 살 아래인 남동생, 갓 두 살 난 여동생과 함께 흐느끼는 엄마의 품속에 안겨있었다.
수십 간이나 되는 집이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일순 이렇게도 변해 버릴 수가 있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어린 대행은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당장이 문제였다. 부친과 모친, 그리고 두 오빠와 동생들과 대행, 이렇게 식구는 일곱이었다.
그 일곱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세 살 난 남동생을 업은 아버지는 앞서 걸었고 그 뒤를 큰 오빠가 따랐다.
엄마의 품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두 살 난 여동생이 안겨 있었고 둘째 오빠와 대행은 엄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마냥 걸었다.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한강을 건너 흑석동에 다다랐다.
우선 당장의 한 끼가 문제였다. 엄마가 이집 저집을 돌았다.
아버지와 오빠는 어디서 도끼와 톱, 망치 따위를 빌려 와서 나무를 몇 그루 쓰러뜨렸다.
엄마가 가져온 갖가지 것들로 겨우 허기를 채우자 식구들은 우선 오늘밤을 지낼 움막을 짓는데 모두 매달렸다.
움푹 패여진 지형을 이용해서 나무를 세우고 외를 엮었다. 우선 아쉬운 대로 거처할 곳이 마련되었다.
졸지에 거지로 전락한 셈이었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반 구걸 반 차용으로 그릇들을 빌렸고 동정 받은 것들을 끓였다.
식구들은 가을 걷이가 끝난 논밭 주변을 돌며 캐다 남은 고구마쪽이나 줄기 따위를 거두어 죽을 쑤었다.
그리고 산으로 올라가 먹을 수 있는 나물이나 열매 따위를 모았다.
며 칠 후 큰오빠는 기와를 굽는 곳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큰오빠는 아예 숙식을 거기서 해결함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하였다.
그러나 그도 이제 겨우 열 일곱 살 난 소년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는 도련님으로 불리며 고생 모르고 자란 터였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이었던가. 한번 대행의 집안을 유린한 가난은 결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식구들은 점점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래기나 호박넝쿨이나 풀뿌리 따위로 식량을 대용했던 그것마저 건너야 할 때가 점점 많아졌다.
혹독한 추위와 싸운 겨울이 지나고 보릿고개가 닥쳤을 때 쯤에는 이미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성난 사자처럼 좌충우돌했다. 거의 매일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는 가족한테 온갖 화풀이를 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 화풀이는 이상하게도 어린 대행에게로 떨어지곤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화풀이는 점점 심해졌다. 이제 겨우 일곱 살 난 소녀에게 아버지는 가혹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 앞에서 얼씬거리지 않아야 했다. 마음 놓고 동무들과 공기놀이도 못할 정도였다.
벽력 같은 호통소리와 함께 솥뚜껑 같은 손이 모든 걸 얼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들을 수 없는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겨우겨우 사귀어 놓은 이웃집 아이들도 점점 집에 찾아 오지 않게 되었다. 어린 대행에게는 이중의 고역이었다.
그런 속에서 어머니 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녀는 엄마가 굶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부엌에서 먼저 먹었다. 너희들이나 먹으렴!"
엄마 말을 곧이 듣고 정말로 엄만 부엌에서 먼저 잡수시는 줄만 알았던 대행이었다.
그러나 실상을 알아버린 순간 대행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어떻게라도 엄마를 도와야겠다고 소녀 대행은 생각했다. 대행은 되도록 밖에서 지내기로 했다.
우선 아버지의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또 그래야만 한 끼라도 엄마의 부담을 덜어드릴 수가 있었다.
산에서 풀뿌리를 캐어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리고 산등성이나 계곡에 쪼그리고 앉아서 넋을 놓고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해서 두 해가 지나갔다. 이제 대행은 아홉 살이 되어 있었다. 대행에게 나무와 새와 짐승들은 친구와 같았다.
차츰 그녀는 자연을 친구로 어버이로 스승으로 삼게 되었다. 대행은 점점 산과 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렇게 친근한 자연이라고는 해도 밤중에만은 예외였다.
아버지는 일에서 돌아온 다음 저녁 식사가 끝날 때쯤 대행을 불러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움막에서 담배 가게가 있는 아랫마을까지는 십리 길에 가까웠다. 그런데 아버지는 꼭 밤에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가 혼자서 십리 밤길을 다녀 온다는 것은 공포의 극을 체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건 숲길이었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온몸을 뻣뻣하게 굳도록 만들었다.
어슴푸레한 달빛어린 숲에서 금방이라도 흰옷 입은 귀신이 나타날 듯한 밤 길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며 소녀 대행은 그 심부름을 해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학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행은 이틀이 멀다하고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낮밤이 따로 없었다. 그녀는 한 달의 반 이상은 바깥잠을 자게 되었다.
차츰 그녀는 밤의 칠흑 같은 어둠으로부터 공포가 아니라 아늑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낮 동안의 하루가 그녀에게 가혹하면 할수록 그녀는 밤의 포근한 위안에 취했다.
아버지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달래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엄마도 이제는 지쳐 버렸다.
소녀 대행이 밤조차 아늑한 위안이 된 것은 바로 내면의 소리 덕분이었다.
버림 받은 고독한 아홉 살 소녀의 내면에서 참 자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소녀는 그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견딜 수 없는 고독감에 그녀는 소나무 등걸을 쓸어안고 나직이 뇌었다.
뼈져린 고독의 한 영혼에게 위로의 목소리로 다가오는 그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소녀는 그저 '아빠'라고 불렀다.
육신의 아빠로부터 버림받은 한 소녀의 혼은 이제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불생불멸하며 영원한 아빠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이제 어린 대행의 영혼은 깊이 잠들 수가 있게 되어갔다. 모두가 자기의 벗이었으며 아빠였다.
그들은 인간계로부터 가혹하게 버려진 한 소녀의 혼에 전적으로 응해 주었다.
무언의 대화가 밤새도록 이어졌고 대행은 이제 완전하게 자연이 주는 공적함이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 공포에 짓눌려서 엎드려 코를 박고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던 소녀는 강인하고도 유연하게 변해 있었다.
오히려 이제는 집보다도 숲이 좋았다. 밥보다는 풀뿌리가 입에 달았다.
친구들과의 소꿉놀이보다는 자연과의 무언의 대화가 더 깊고 은밀한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소녀의 시선은 내면으로 옮겨졌고 마음으로써 하소연했으며 오직 마음에다가 모든 문제를 맡겨가고 있었다.
당시 소녀 대행이 즐겨했던 것은 상상 보시였다.
그녀는 어느날 동네 할아버지 한 분으로부터 도깨비 감투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일이 있었다.
머리에 쓰면 온 몸이 보이지 않는 도깨비 감투는 그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 도깨비 감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된다면, 그렇다면 나는 이 세상을 자유자재로 활보하면서 온갖 좋은 일, 착한 일을 다 할 수 있을 텐데...
정작 자기의 배고픔은 잊고 상상 속에서 갖가지 보시를 하는 동안 훌쩍 날이 새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만으로라도 세상의 모든 불쌍한 이들에게 실컷 보시를 했다는 것이 그렇게 스스로 대견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훗날 이때 상상으로만 베풀던 것을 현실 속에서 실현할 수 있었다.
아빠, 즉 참나의 무한한 힘을 통해서 몸없는 몸으로써 무한한 보시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묘공대행선사(한마음선원)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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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