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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밤의 꿈
w. 기염상
‘딸랑-’
“어서오세요-”
“말보로 레드 두 갑이요”
“5000원 입니다, 손님”
“여기요-”
“안녕히 가세요”
‘딸랑-’
“하...”
손님이 문을 열고 나가자 마자 한숨을 푸욱- 하고 쉬었다.
도대체 언제 필지 모르는 나의 스물 다섯 청춘 때문에,
그리고 이 삭막한 현실에 빠듯하게 모아둔 나의 전재산인
전세 보증금을 싸그리 챙겨들고 잠적한 망할 불알 친구놈 때문에.
그 놈이 물론 그 돈을 들고 그대로 날라버릴만큼 파렴치한 놈은 아니라지만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게는 해주고 가야될 거 아니야, 우라질.
그 망할 불알 친구 놈 덕분에 나는 쫄딱 길거리로 내려 앉았고
나의 길거리 신세를 딱하게 여긴 나의 구세주, 정민이 형 덕에
편의점 알바생이라는 감질나는 밥줄을 하나 꿰어찰 수 있었다.
그리고 먹고 잘 곳도 없는 나를 거두어 편의점 안에 딸린 코딱지만한 방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어서 편의점 안에서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다.
팔자 한 번 참 기구하다. 감출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불알친구 놈에게
전재산을 다 털려 길거리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으며, 아무리 내 바지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땡전 한 푼 나오지 않아도 편의점 알바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던
나의 확고한 신념이 이토록 무참히 깨져서 땅에 짓밟힐 줄은 누가 알았던가.
그저 헛웃음만 나올 일이다. 에휴- 이렇게 옛날 일을 되살린다고 내 전재산이
다시 나한테로 펄럭 펄럭 날아 올 것도 아닌데, 됐다 됐어.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2시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손님도 없고 한가한 편의점.
추운 겨울밤, 어디 소설에나 나올 법한 배경이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출출한데 컵라면이나 하나 끓여먹을까 하는 생각으로 카운터에서 일어섰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왠 꼬맹이 하나가 숨을 고르며 허둥지둥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하... 아저...씨이... 저 쫌 살려주세여... 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고 연신 가쁜 숨을 뱉어내길래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있는 거 같아 일단 카운터 쪽으로 데려와서 의자에 앉혔다.
꼬맹이를 의자에 앉히자마자 술에 거나하게 취한 취객 하나가
소주병을 한 손에 들고 미적미적 편의점 문을 덜컥 열어젖힌다.
“아니-?! 이 년이 어디서 도망을 쳐-! 미쳤나 이 년이-!”
“아저씨이... 저 쫌 살려줘여...”
술에 푹 쩔어서는 새빨개진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카운터 쪽으로 다가온다.
이 꼬맹이는 내 옷자락을 꼭 잡고는 내 뒤에 숨어 살려달라고 하고 있고-
하, 인생 참 또 꼬이네. 난 또 무슨 죄로 이 취객을 상대하란 말이야?
일단은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취객의 팔목을 휙 잡아 꺾었다.
“넌 또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야-!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남의 가게에서 소란 피우는 건 잘하는 짓이냐?”
“아니, 이 놈이 어디서 반말이야-! 내가 너보다 20살은 더 먹었겠구만-!”
“나이는 거꾸로 먹었냐? 안되겠네, 경찰 불러서 끌어 내던가 해야지.”
“뭐...뭣? 경찰...? 아오... 씨. 너네 오늘 운 좋은 줄 알어-!”
경찰이란 말에 흠칫 하더니 씩씩 거리고는 거칠게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사라진다.
문이 딸랑딸랑거리며 열였다 닫혔다를 반복하다 조용히 닫기자 그제야 한숨 돌리며
뜬금없이 나에게 구조요청을 해온 꼬맹이한테 자초지종을 묻고자 꼬맹이를 쳐다봤다.
“너, 뭐냐?”
뭐냐는 말에 나를 쳐다보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다갈색 눈동자를 깜빡깜빡 거린다.
초코브라운색 바가지머리에 패딩 조끼, 하얀 눈꽃 니트 원피스, 까만 레깅스에 분홍색 어그부츠를
신은 모습이 앳된 티가 물씬 풍겨오는 게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얌전하지 못한 꼬맹이들하고는
뭔가 다른 오오라를 지어낸다. 아차, 품행을 보기도 전에 겉모습만 보고 방정만 떨었네-
“... 그게요... 힝...”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니 사정이 있는 것 같아 고개를 까딱이며 말하라고 했더니
“그게... 엄마 아빠랑 엄청 싸우구... 집 나왔단 말이에요... 친구들이... 나 지낼 데
알아봐준다 그래놓고... 씨이... 그래놓고... 내가 돈 쪼끔 모아놓은 거 들고 튀었어요...
애들 찾으려고 시내 다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늦어져서... 다리 아퍼서 공원에 좀
주저 앉아 있었더니 술먹은 아저씨가 와서 추근덕거리니까 여기로 도망 온거죠 뭐...”
“풉..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하... 미치겠다-”
나랑 똑같은 상황인 이 꼬맹이의 말에 웃음이 터져서 눈물이 고일 정도로 웃어댔더니
웃지 마요, 난 심각한데- 그러면서 도끼눈을 하는데 제법 눈매가 매섭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서 한참 끅끅 거리다가 겨우 멈추고 너 이름이 뭐야 했더니
“도우리요, 열 여섯살.”
“열 여섯살? 뭐야, 완전 꼬맹이네-”
아직 볼에 솜털도 안 가신게 열 여섯이랜다, 참 이걸 귀엽다고 해야될지 맹랑하다 해야 될지.
“너 임마, 그래도 가출 하면 안 되는 거지.”
제법 굵은 목소리로 9살 더 먹은 어른의 충고를 하고는 머리를 살살 콩- 쥐어 박았더니
또 도끼눈을 하고서는 길다란 속눈썹을 끔뻑끔뻑이더니 또 뭐라뭐라 종알종알 거린다.
내용인 즉슨, 성적이 안되니까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간댄다. 그래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원서를 썼는데 엄마 아빠가 그리도 잔소리를 했다는 것. 집안의 망신이니 어쩌니 저쩌니-
부모들의 마음이 다 그렇지 뭐, 그렇다고 나쁜 뜻으로 하는 말도 아니잖아 그랬더니,
직접 들어봐요! 얼마나 짜증나는데- 그러고는 입이 댓발만큼 쭉 튀어나온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렇게 까진 거 같지도 않다, 다만 공부에는 젬병이라는 것.
참 요즘 애들 무섭다, 고작 엄마 아빠 잔소리로 가출까지 할 건 뭐 있냐며-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도 못 참는데 이 험난한 현실의 파도는 어떻게 견뎌내려고.
피식 웃으며 몇 마디 더 하려고 우리야, 그랬더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쌕쌕 하고 숨소리를 내쉬면서 의자에 앉은 모습 그대로 골아 떨어지셨다.
햐, 이거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네. 의자에서 재우긴 뭐하니까 그대로 업어다가
코딱지만한 방에 딸린 메트릭스 위에 뉘였더니 세상 모르고 잘 잔다.
자는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다, 뭐 사실 종알거리는 모습도 좀 귀엽긴 하지만.
베개도 베주고 담요도 덮어주고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스륵 잠이 와서
옆에 있던 낡아서 먼지가 풀풀 나는 다 떨어져 가는 1인용 쇼파에 기대어 앉았다.
오늘따라 잠이 참 잘 온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푹 빠져들어 흠뻑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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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민세야! 한민세! 일어나 일어나!”
나를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확 뜨자 황당하다는 듯 정민이 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야, 민세야. 잘려면 문 잠그고 방에 가서 자지 그랬냐.
청승맞게 카운터에 엎드려서 뭐하는 거야, 도둑 들면 어쩔려고.”
“형, 나 꿈 꿨나봐.”
“무슨 꿈을 꿨길래 사람이 깨워도 몰라?”
“열 여섯살 짜리 꼬맹이가 날 찾아오는 꿈. 근데 꿈치고는 너무 생생한 거야.
그 꼬맹이가 취객한테서 도망왔는지 취객이 그 꼬맹이한테 자꾸 추근덕 거리니깐
나한테 도와달라면서 막 부탁하는거야. 그래서 경찰 부른다고 협박했더니 나가더라고.
긴장이 풀렸는지 나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의자에 앉아서 자버리잖아.
그래서 걔를 업어다 방 안에 재웠는데... 분명히 방 안에서 재웠는데... 너무 생생했어.
근데 그게 꿈이었다니. 아직도 안 믿겨...”
“아이고, 아주 별에 별 꿈을 다 꾸는구만. 피곤하지? 형이랑 교대해. 오늘은 특별히 봐준다.”
형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내며 웃었다. 평소라면 펄쩍펄쩍 뛰고 좋아했을 교대라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아쉽고 그런걸까. 그럼 내가 만났던 우리는 단순한 몽중인이라는 걸까.
이래저래 기분이 안 좋다. 오늘은 잠이 안 올 거 같아 음료수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서
하이트 맥주 한 캔을 꺼냈다. 그리고 안주로 먹을 오징어 뒷다리도 챙기고.
한 겨울밤의 꿈이였다, 너무나 생생한. 그래서 뭔가 여운이 남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감상적이었는지 오늘 따라 드는 생각들은 하나 같이 이따구다.
정신 차리자, 고개를 흔들며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걸음을 내딛었을 무렵-
갑자기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한 꼬맹이가 들어온다. 그것도 아주 허둥지둥 서둘러서.
초코 브라운 색 바가지머리에 패딩 조끼, 하얀 눈꽃 니트 원피스, 까만 레깅스에 분홍색 어그부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땡글땡글한 눈과 촘촘히 박힌 길다란 속눈썹, 솜털도 채 안가신 앳된 얼굴.
“하... 아저...씨이... 저 쫌 살려주세여... 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 아이가 정말 내가 꿈에서 만났던 열 여섯살 도우리라면,
내가 꿨던 꿈은 한낱 하릴없이 스쳐 지나가 버릴 한 겨울밤의 꿈은 아니었다.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내 꿈에 나타나 준 사람이 단순한 몽중인은 아니어서.
어떻게든 연결 되 있는 인연이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달려가 아이의 손을 잡고
편의점 안에 있는 코딱지만한 방 안에 데려다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혹시, 네 이름이 도우리. 아니야?”
“어, 어떻게 아셨어요...?”
“푸훗- 다 아는 수가 있어-”
눈을 땡그랗게 뜨며 물어오는 꼬맹이가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왁!!! 한민세!!! 나와봐!!! 으아아악!!!”
오, 나의 구세주 정민이 형이 취객에게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했나 보군.
잠깐만 기다려, 라고 말하며 메트릭스 위에 대충 올려뒀던 담요를 끌어다 덮어주고는
정민이 형과 한참 사투를 벌이고 있는 취객에게 다가가 팔목을 휘어잡고는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경찰 부를 때 끌려나갈래요, 아님 조용히 니 발로 나가실래요?”
그 말을 듣자마자 혼비백산 얼이 빠진 듯 허둥지둥 문을 박차고 나가는 취객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정민이 형에게 엄지 손가락을 자랑스럽게 치켜 틀었다.
“야, 진짜 니가 꾼 꿈 거짓말 아니였네? 와, 신기하다, 신기해. 아- 그그 뭐더라?
미래를 예견하는 꿈. 그거 따로 이름이 있었는데 생각이 안나네... 뭐더라.”
연신 신기하다를 연발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이다가 생각이 안 난다며 머리를 쥐뜯는 정민이 형을
뒤로 하고 코딱지만한 방문 앞에 섰더니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이 참 가관이다.
어째, 넌 그 새를 못 참고 또 자고 있냐. 그것도 내가 재워준 모습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 같이!
메트릭스에 누워 베개까지 베고 담요까지 챙겨 덮고서는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냔 말이야.
낯가림도 없고 아무데서나 이렇게 쌔근쌔근 잠 잘자고, 이러다가 무슨 일 나면 어쩔려고 그러는지.
이런 내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으음- 거리며 몸을 뒤척뒤척인다.
담요를 다시 덮어주고는 다시 방문 앞에 기대서서 자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 맞다! 예지몽! 민세야, 니가 꾼 거 예지몽이야- 예지몽!”
뒤에서는 갑자기 생각난 단어를 떠올림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찬 정민이 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한 겨울밤의 예지몽. 기분 좋은 한 겨울밤의 예지몽이다.
fin.
아아, 정회원으로 등업이 되서 처음으로 쓰는 단편 소설이군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서 꾸역꾸역 열심히 쓴 소설인데
뭔가 제가 생각한 느낌이 나오질 않아 아쉽네요.
너무 횡설수설 쓴 거 같아 어색한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해요.
다 읽어주셨으면 소감 한마디만 달아주세요~
댓글 먹고 사는 기염상이거든요! 헤헤
더 재밌는 소설로 다시 찾아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