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있는 저녁
이원숙
부뚜막은 자궁 속 같은 아궁이를 가지고 있었다
태초부터 불씨를 품고 있던 곳
어머니의 시간이 말라가고 나의 내일이 만들어지던 곳
몸을 맡기면 얽혀 있던 생각들이 태동을 시작하고
느슨해진 이야기가 젖은 감정을 말렸다
솥뚜껑 위 하양 양말, 나른한 운동화가 발을 뻗고
시래기 산나물 북어 호박꽂이가 모빌처럼 빙빙 돌아갔다
열무김치 나박김치 총각무 걸터앉아 익어가던 부뚜막
어머니의 생도 쉰내가 나도록 발효되어 갔다
부뚜막으로 내려온 저녁노을이 알맞게 구워지는 사이
끼니때마다 시름들을 밑반찬으로 달달 볶아 내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뒤집어 놓는 일상을 우려내어
인생의 참맛을 즐기는 레시피를 개발하셨다
부뚜막은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를 들려주었다
탯줄로 이어진 배꼽시계가 돌아가는 부뚜막
허기진 마음을 두드리는 문이 되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방이 방에게 저녁이 아침에게
말을 걸어 주는
지친 어둠을 한 짐 지고 돌아오는 골목길
가난한 담벼락에 기대앉은 가로등 그림자가 흔들리고
허기진 저녁이 몰려왔다
저녁의 감정을 요리하고 있는 어머니
어머니는 무엇으로 허기를 채우셨을까
어머니의 부뚜막에 들어서면, 짊어졌던 칠흑 같은
저녁이 다시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