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건 정확히 50일 전이다.
그는 잊지 않고 5일마다 한번씩 이곳을 방문한다.
그리고…
"여자."
. .
그는 나를 여자라고 부른다.
AUTHOR. 아울아
*
"여자."
이 룸싸롱 안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의 존재가 무색하게
정민의 눈은 오로지 연희만을 향해 있다.
그가 이 룸싸롱 안에서 찾는 술집 '여자'란 그저 '연희'뿐이리라.
이미 술에 취한 것으로 보아,그는 그저 '술'을 마시러 온것이 아니라 '여자'를 보러왔을뿐이다.
김제운이 연희의 등을 떠밀며 속을 알수없는 웃음을 짓는다.
그 뜻을 아는 연희는 차갑게 김제운의 손을 밀어내며 정민을 부축하고 룸으로 들어간다.
닫힌 문을 보던 김제운은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는 뒤돌아선다.
"아저씬 무슨 술에 이렇게 취해서…뭐하러 왔어요,냉큼 집에 들어가서 발이나 닦고 자지."
연희가 툴툴 거리며 정민을 의자에 앉힌다.
본인도 자리에 앉기 무섭게 웨이터가 온갖 안주와 양주를 담아서는 들어선다.
연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웨이터를 향해 소리지른다.
"뭐야?김제운 미쳤대?됐으니까 갖고 나가.혼자 온 사람한테 이걸 다 뒤집어씌우면 어쩌자는거야,제발 생각 좀 하고 살라고 해!"
어물어물 거리는 웨이터가 맘에 안드는듯 연희가 직접 그의 손에 들린 쟁반을 빼앗으려하자
정민이 가두기도 힘든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연희 곁으로 걸어왔다.
그는 연희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자조적인 웃음을 띄며 말했다.
"됐어.술값 낼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힘빼지말고 자리에 앉아.넌 빨리 술상차리고 꺼져."
"아저씨,아저씨 돈 많은 배우인건 아는데 술 취한 사람 상대로 돈놀이하는 몰상식한 짓 보고도 못본체하는거 난 못해."
"그럼 2차 뛰어,너가."
"…!!"
"니가 그 몰상식한 짓 해대는 니네 사장 대신 그만큼 나한테 봉사하면 되잖아."
웨이터가 조용히 인사를 하고 룸을 나가자 연희는 참고 있던 숨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그를 자리에 앉히고 뺨을 살짝 두어번 두들겼다.
"정신차려,아저씨.아저씨 이거 범죄다?"
"…뭘."
"나같이 젊고 어리고 이쁘고 섹시하고 거기다 귀엽기까지하고 몸매 빵빵하고 애교 많고-
이런 내가 뭐가 아쉽다고 나이많고 술주정뱅이 아저씨랑 잠을 자냐?욕심도 많으셔."
"돈 주면 되잖아."
"에휴- 이 세상은 돈이 다가 아닙니다,정민아저씨."
"말돌리지말고 오늘은 나가,2차."
"싫어."
"나 오늘은 너 데리고 방 잡을꺼야.그럴려고 왔어."
"안돼."
"내가 너때문에 굳이 바쁜 스케줄 쪼개가면서 5일마다 한번씩 여기 들렸는데.술값도 장난아냐,
나 마누라한테 듣기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니 보려고 여기 오는데.계속 그렇게 비싼척 굴래?"
"생각을 해봐,내 나이 아직 민증도 안나왔어.아저씨?35살,마누라 있고 자식만 3명이야."
"34살이고 내 새끼는 2명이야."
"아저씨 마누라 10살 연하 잘나가는 연기자잖아,민지혜.그렇게 이쁜 여자 데리고 살면서 왜 자꾸 이런곳이나 들락날락거리고
그러냐?나중에 기사라도 뜨면 어쩌려고 그래.연기파 배우 하정민,민지혜 부부 예상된 별거.조만간 법정에서 보게 될듯!"
정민은 혼자서 쫑알거리는 연희가 귀엽다는듯 바라보다가
이내 픽 웃고는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걱정마.사랑이건 아니건 나한테 시집 온 지혜랑 그리고 그 어린여자가 낳은 내 자식들은 내가 평생 책임지고 지켜줄 생각이니까."
"…그럼 난?아저씨한테 난 뭐야?"
"너?생각해본적 없는데.뭐,여자겠지."
"그냥 여자?힘들때 쉬어가는 술집여자?일종의 세컨드?민지혜한테 질린다 싶으면 찾아와서 즐길거 다 즐기고 버릴수 있는 일회용?"
"몰라.넌 그냥 나한테…그냥 단지,편해.이런말 하는거 재미없지만 왠지 넌 나한테 이유없이 편한 존재야."
정민은 술잔에 양주를 가득 따르고는 입에 탈탈 털어넣는다.
연희의 고운 살구빛 두 뺨위로 애처로이 눈물이 따라 흐른다.
"내 이름은 알아?"
"…"
"내 정확한 나이는?"
"…"
"내 전화번호는?"
"…"
"우리 가족은?"
"…"
"내가 왜 이 술집에서 일하는줄알아?"
"…"
"내가 어떤 버릇을 가졌는지,내 술버릇이 어떤지,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뭔지,취미가 뭔지,공부는 잘하는지,
고향은 어딘지,요리는 잘하는지,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귀아파,소리지르지마."
"아무것도 모르면서!"
"…"
"너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하정민!그래,넌 유명한 배우여서 인터넷에 이름만 쳐도
학력,나이,생년월일,키,몸무게! 다 알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
"최다혜씨는 저에게 아저씨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TV를 보다가 아저씨가 나오기라도 하면 추억에 잠긴 듯 고운 미소를 지으며 언제나 사춘기 소녀의 감성으로
아저씨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김치찌개에는 참치가 있어야 먹고,사과는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는걸 좋아하고,
무릎배게 좋아하고,양치질할때엔 꼭 한쪽 다리를 떨고,생각에 잠겨있을땐 혀로 입술을 축인뒤 입맛을 다시고…."
정민은 연희의 말에 집중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다혜의 이야기이다.
그가 진심 다하여 사랑했던 17살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 속 변치않은 그 어여쁜 소녀.
"중학교 2학년때부터 사귀셨다면서요,두 분이서.잘은 몰라도 다혜씨…아저씰 엄청나게 사랑하셨어요.
내가 최다혜씨를 마지막으로 본게 1년전인데,그때까지도 다혜씨는 아저씰 못 잊고 있었거든요.
사실 아저씨야 외면하면 그만이지만 tv만 틀면 아저씰 볼수있는데 다혜씨가 어떻게 잊겠어요."
"웃기는 소리.먼저 날 버린건 그 여자야."
"참 한심하다,아저씨.내가 이럴줄 알았어.다혜씨가 그렇게도 걱정하던게 이거군요.
아아,우리 맘 여린 다혜씨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 심하셨을까.그렇게도 사랑하는 님에게 나쁜년 취급이나 받고.
그때 피치못한 사정으로 아저씨네 부모님이 다혜씨를 외국으로 보내버렸다니까?
아저씨네 부모님도 그래.다혜씨 고아인거 뻔히 알면서 그냥 딸이라 생각하시고 좋게좋게 대해줘도 됐잖아, 굳이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어린 여자아이를 아는 지인한테 떠넘기는 식으로 외국에 짱박아두면 …에휴 돈많은 사람들은 원래 그러나?"
연희의 말에 그는 술잔을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도대체 저 머리에 피도 안마른 어린애가 무슨말을 지껄이는거지?지가 뭘 안다고?
뭐?최다혜가 외국으로?
"아저씨 부모님때문에 다혜씨 고생한거 생각하면,내 속이 다 그냥.아휴!
근데 아저씨 그럼 안되지,누구때문에 다혜씨가 머나먼 타국에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했는데.
아저씨 부모님 아시는 그 정체모를 분들 밑에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다혜씨 궂은일마다않고 돈 긁어보아서
한국 오면 뭐해.아저씨는 이미 배우로써 자리 굳이고 떵떵거리며 연애하고 떵떵거리며 결혼하고 !
여자의 순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르나?"
"…보고싶다."
"누가?다혜씨?"
"…꼬맹아.아저씨 마음에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하나 있는데 그걸 누가 채워줄수있을것같냐?"
"다혜씨가 그랬지.'저 남자 …저렇게 즐거운척 웃고 떠드는 연기해봤자 나한텐 영원히 슬픈 배우일뿐이야.'"
"뭐?"
"아저씨가 아무리 코믹 연기를 해도 다혜씨는 아저씨 눈빛만 보면 눈물부터 난대요.아저씨 눈이 너어어무 슬퍼서."
"다혜 …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사냐?"
"왜요?데리러 가게요?"
"보고싶어서."
"아저씨에겐 부양해야할 부인과 애들 2명이 있는데 보고싶다고 다혜씨 맘 흔들어놓으면 나중에 남게 될 다혜씨는?"
"…."
"그냥 조용히 술 마시다가 집에 가세요.그게 다혜씨한테도 아저씨한테도 좋을거예요."
연희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축 늘어진 정민의 어깨를 살며시 어루만지고 그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이마에 키스해주는거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다혜씨가."
"…병신."
다혜인지,연희인지 누구에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연희는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하고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문고리를 잡고 막 나가려 하는 찰나에 정민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연희는 조용히 뒤돌아 정민을 바라보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약간의 두려움도 섞여있었다.)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넌 누구냐?"
"…죽은 최다혜씨의 하나밖에 없는 딸.
아저씨가 앞으로 책임져야할 자식은 2명이지만 아저씨가 책임지지 못한 자식,하연희."
.
.
.
"난 여자가 아니라 딸이예요,아빠."
첫댓글 ㅠㅠ완전슬포
허걱....이런이런이런ㅠㅠ..번외가보고싶습니다만; 부탁하는건 실례인가요~?
최고..완전반전이네요
헉...완전정말최고의반전///
대박이다 ...반전 쩔어요 ㅠ
우와............신기해요ㅠ.ㅠ마지막 부분에서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왓다는ㅠㅠㅠ소설이랑 음악이 완전완전 어울려요!!!!!!!!!!!재밌게 봤어용♥
우왕........반전도짱이고ㅠㅠ 음악도짱이고ㅠㅠ
와아ㅜㅜ진짜대박이예요
... ... .. 글을딱 다읽으니까 음악이끝났네요.. .. 하하, 다시 플레이 됬는건데 못들은건가; 아 암튼 반전이 너무 잼있어요ㅠ0ㅠ우항!!!! 재밌게 보구가요 ㅎㅎㅎ
오우!! 엄청난 반전인데요!! 완전 대박이야~! 잘 읽었어요!
우왕 소설짜임이 조은거같아요>_<재밋따♡
와....반전최고다;;;
반전, 딸이 불쌍해용,,ㅅ,
와. 진짜 대박인데요? 재밌어요 ! 반전도 .. 풉. 아, 저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