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어휘풀이
-둘러리 : ‘둘레’의 방언
-프로메테우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족의 영웅. 제우스를 속여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어 인간의 영웅이 되었으나,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코카서스 산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후에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되었다.
♣작품해설
1941년 11월 29일 연희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가 갖는 특수성은
각기 다른 동·사양의 드 설화를 형상화한 점에 있다. 즉 이 시는,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
(肝)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토끼가 특유의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지는 내용의
‘귀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
슬로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밤에는 그 간이 되살아나 영원히 고통을
겪는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교묘히 결합하여 새로운 심상을 창조해 내고 있다. 이렇게
이 두 설화를 차용한 까닭은, ‘귀토지설’에서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저항 의식을, ‘프
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자기 희생 의식을 취함으로써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시인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다.
윤동주는 벼랑 끝에 몰린 위기에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 속죄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를 인간의 존엄과 양심을 지키며 식민지 시
대를 살아야 했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두 설화의 문면(文面)을 글자 그
대로 수용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하여 작품 속에서 투영시키고 있어 주목된다.
먼저 1연에서는 거북의 유혹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 했던 토끼, 즉 화자가 지상 낙원이
용궁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산중임을 깨달은 후, 그 곳으로 돌아와 ‘간’을 꺼내 바위 위
에 말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토끼의 행동은 바로 간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간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보다도 간이야말로 거북에게 맞설 수
있는 가장 크고 효율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간’이 ‘습한’ 것은 한때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며, 그것을 햇빛에 말리는 것은 다시는 유혹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욕망의 절제를 통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연에서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귀톶
지설’ 속에 끼어들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설화에 공통적으로 ‘간’이 등장하기 때문
이며, 또한 이 ‘간’은 모두 상대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3연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기른 독수리에게 자기의 간을 뜯어 먹도록 요구한다. 이 독수
리는 4연에서 ‘너’로 지칭되고 있는데, ‘나’가 육체적 자아라면 ‘너’는 정신적 자아라 할 수
있다. 결국 ‘너’라는 독수리는 화자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아의 예리한 의식이 된다. 그러
므로 ‘너는 살찌고 / 나는 여위어야지’라는 구절은 자신의 육체는 희생되더라도 정신만은
지키겠다는 의미이다. 한편 끝머리의 ‘그러나’는 여위어 대항할 힘은 없어도, 정신만은 빼
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뜯어 먹히더라도 간은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굳은 결
의를 표명한 것이다.
5연에서ㄴ 화자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며 자신의 의지를 확인한다. ‘용궁
의 유혹’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
문이다. 6연에서는 불쌍하기는 하나, 프러메테우스처럼 화자도 인간을 위한 속죄양이 되겠
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엇ㅂ이 침전하’는 것은 그 같은 거룩한 자
기희생 정신의 표현이다.
[작가소개]
윤동주(尹東柱)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1925년 명동소학교 입학
1929년 송몽규(宋夢奎) 등과 문예지 『새 명동』발간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
1936년 숭실중학 폐교 후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