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가는 길 우리의 나그네 인생길"
[누가복음 10: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출근 시간 만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출근시간에 유모차를 끌고오다니… 수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아이도 이 상황이 힘들었는지 계속 울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픈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엄마는 승객들의 짜증 섞인 눈길이 두려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죄인처럼
아이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휴대폰으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틀어 유모차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학 점퍼를 입은 한 여성은 자리를 아이 엄마에게 양보했으며 누군가는 아이가 보채다 벗겨진 신발을 주워서
신겨 주기도 했습니다.
따뜻한 눈빛과 행동으로 꽁꽁 얼었던 아이 엄마의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길이었고, 복잡한 출근 길인 줄 알면서도 어떨 수 없이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러나 친절한 승객들 덕분에 그녀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상태를 살필 수 있었고, 아이는 엄마의 돌봄 속에 진정되어
편안하게 병원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뜻밖의 장면을 만들어 내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몸도 마음도 강팍해졌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하기에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은 어제 하루, 아니 지난 한주와 한달간 이렇게 나의 착한 행실로 누군가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 적 있으신가요?
성경은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그들이 너희의 행실을 ‘보고’ 라고 말씀합니다.
‘보이고’와 ‘보고’.. 이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큽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번째 교훈은
선행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거나 칭찬받으러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당시 유대인들에게 구제와 자선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변질되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사람에게 보여 칭찬을 받으면
이미 사람에게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한 이웃 사랑을 뛰어 넘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혹시 구제를 할 때 손익계산부터 하고 있지는 않나요?
철저히 우리 교회, 우리 교파, 우리 지역, 우리 나라 중심의 이기적인 구제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강도 만난자가 부잣집 가족이었거나 왕실 사람이었거나 권력자였다면 절대 외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관련 없는 사람, 내가 무시했었던 사람이었기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이웃입니다.
내가 규정하고 내가 만든 이웃 테두리, 나 중심의 경계를 깨트리고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이웃입니다.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인가에 대해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인가? 를 물으셨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일까요?
이웃은 내가 관심가지고 나와 수준이 맞는 주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연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낯선 자, 내가 꺼리고 피하게 되는 이들도 우리의 이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29~35] 마침 한 제사장이 ~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하여’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보고 불쌍히 여기고 가서,
상처에 기름을 붓고, 싸매고,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 주었습니다.
사랑은 동사입니다. 우리도 사마리아인처럼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열심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기는게 전부가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를 돕다보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기에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다 보고 계시고 때가 되면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 모두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으로 이 시대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마리아인이 되어
이 세상을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길 기도합니다.
🛐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내 이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도록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살아가는 힘을 얻게 하시고,
이웃에게 행복이 가득한 웃음 바이러스를 전하면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새로운 오늘이 되게 하소서.
받는 것에 대한 마음을 버리고 주는 것에 대한 마음을 키우는 나눔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매일매일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는 제가 되도록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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