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이르기를 “오환족은 본래가 동호족으로 한나라 초기에 모돈선우에게 나라를 배앗기자 나머지 무리들이 오환산으로 이동하여 살았기에 그 산이름으로 종족이름을 따왔다”고 하였다.
오환족은 독립돤 나라를 세우지 못하였다. 한무제 시기인 서기전 119년에 곽거병이 흉노의 좌측을 공략하고 오환족을 내지로 교치하여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5군에 나누어 살게하였다. 그리고 유주의 치소인 지금의 북경시인 계(薊)에 오환교위(烏桓校尉)를 두고 감시토록 하였다.
49년에 이르러 오환족은 더욱 장성 안쪽으로 교치되어 요동속국, 요서, 우북평, 어양, 광양, 상곡, 대군, 안문, 태원, 삭방등 10군에 살았다. 한무제 시기부터 후한초에 이르는 동안 오환족은 중국 내지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후한 말기에 이르러 오환족은 점차 중국의 혼란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때에 상곡, 요서, 요동, 우북평에 사는 4부의 오환족은 스스로 왕을 칭할 정도로 커졌고, 어양, 안문, 삭방, 대군 등지의 오환족은 숫자가 이미 50만에 달하였다.
200년에 관도전쟁이 끝난 뒤에 유주, 기주에 세력을 키웠던 원소가 조조의 군대에게 패하자 그의 아들인 원상과 원희는 요서로 도망가서 오환의 수령인 답돈에게 투항하였다. 그들은 오환의 세력을 이용하여 기주를 다시 찾고자 하였다.
207년에 조조는 몸소 오환의 정복에 나서서 지금의 요녕성 조양인 유성에서 답돈을 격파하였다. 일부의 오환족은 조조의 세력 경내로 이동하였고, 4세기에 이르러 모용선비에게 흡수되었다. 동북지역에 남아있던 오환족은 우문선비에게 속하였다 끝내는 고막해에 융합되었고, 일부는 눈강유역에 거주하다 실위족에 흡수되었다.
이 당시 오환족 연합왕조의 요서대인이었던 난루는 백제계로 요서지역에 머물며 백제와 연계하여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난루의 후손인 난원경 묘지명에 따르면 난루의 후예들은 모용선비 시기에도 요서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난원경은 이곳에서 한반도의 백제로 왔다가 나중에 백제가 멸망하자 당나라에 망명을 한다.
첫댓글 삼국지에서 오환의 비중은 -_-;; 흐음.. 원소가 이들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건 나뿐인가.. (하긴 그당시 누가 원소가 지리라 생각햇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