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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로운 눈꽃 길을 걸었다. 창립 20주년을 준비하며 거창한 뜻을 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2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으로 향하는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첫 산행에 참가했던 인원은 일곱인데 그들이 20주년 리마인드 산행에 함께 했으면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산행 장소도 그 곳, 북한산 아카데미 하우스였으면 했는데 그마저 되지 않았다.
서울 사는 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안산자락길과 인왕산으로 2024년을 보내는 산행을 가기로 공지한 뒤에도 속상함이 가시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무력감을 많이 느꼈던 터였다. 산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무력감에다 자괴감이 겹쳐졌다. 마음의 불편함이 뱃속으로도 전해졌다.
해서 그 날 오전 11시 30분쯤 플랫폼에 내려 출구 쪽으로 올라가는데 반가운 피플러버 고문과 꼬맹이에게 제대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화장실로 향했다. 10분쯤 속앓이를 풀려고 애쓰는데 언젠가부터 "행님" 어쩌구 하는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든다. 그새 많이 모인 모양이다. 한 층 올라가야 하는데 직선 거리로 50m쯤 떨어졌는데 이렇게 크게 들리나 싶었다.
한 층 오르니 과연, 일본 고등계 형사가 쓰는 모자의 뜬구름 총무를 비롯한 선후배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근 5년 만에 산악회 산행에 동행한다는 그냥 형님이 반갑기만 했다. 멍게 전 총무도 오랜만에 산행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린란드 형님이 조금 늦게 합류해 고갯짓으로 머리 수를 헤아리니 열다섯, 오기로 한 사람이 모두 모였다.
안산자락길은 기초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서울의 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짐작된다. 높낮이가 없이 길이 평탄하고 데크까지 깔려 장애인 접근성이 빼어나다. 아브믈 형의 둘째 동연이도 휠체어로 이곳을 찾곤 했단다. 해서 눈 온 다음날 위험한 산행이 아니란 것을 아니까 동연이, 아빠가 오랜만에 선후배들과 좋은 길 걸으라고 보내준 것이라 했다. 둘째로 이 길이 사랑받는 것은 꽤 시원하고 괜찮은 조망 포인트들을 거느렸다는 이유에서다. 셋째로 전체 길이가 7km로 어르신들이라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히 걷고, 걸음걸이가 빠른 이라면 9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자락길 데크에 오르기 위해 어느 아파트를 끼고 올려다보니 산 쪽에 눈꽃이 활짝 피어났다. 간밤에 서울의 눈이 5cm 밖에 오지 않았다 했는데도 산 위에는 눈꽃이 화려했다. 회원들 모두가 좋아하니 나도 속상한 마음이 꽤 풀어졌다. 잘 됐다. 이 정도면 20주년과 송년의 취지에 부합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회원들도 모두 좋아라 하는 눈치다.
딱히 생각해둔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우리는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되 봉수대는 오르지 않기로 했다. 더욱이 축하연까지 시간도 넉넉하니 트틈이 쉬기로 했다. 무악재 쪽에서 옛 서대문형무소와 한성과학고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삼삼오오가 돼 인왕산 부처바위를 왼쪽으로 건너 보며 걸었다. 유려한 희망과용기 회장의 설명이 넘나든다. 능안정 못 미처 정자로 걸어 나와 처음 쉬었다. 아톰 형이 행렬을 놓치는 바람에 함께 쉬지 못했다. 회장이 예의 매혈해 가득 메우곤 한다고 소문 난 과자 상자를 열어 초코칩을 내밀었다. 그냥 형님이 고급스러운 맛의 연양갱을 하나씩 건넸다. 순례길에서 한국 순례객들이 먹곤 하던 부드러운 맛의 연양갱이었다. 회장의 차도 따듯하기만 했다.
아톰 형과는 봉수대 오르는 길 옆 바위 조망 포인트에서 만나 열다섯이 함께 쉬었다. 어르신 두 분이 왼쪽에 있긴 했으나 열다섯이 함께 있으니 부대원들이 그득한 느낌이었다. 얼마 만에 열다섯이란 숫자를 되뇌이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는데 통솔하기 힘든 구석도 있었다. 이것도 물론 계엄령이 발동한 군사문화 잔재가 물씬 풍기는 발상이었다. 갖가지 꽃이 스스로 피어나 서로를 넘나드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공화국인데도 말이다.
하여튼 우리는 두 번째 쉼을 멈춘 뒤 체력단련장 거쳐 메타세콰이아 숲으로 향한다. 체력단련장에 아무도 없는 게 신기했다. 늘 어르신들이 왁자하게 몸단련을 하던 곳인데 추워서인지 인기척이 없었다. 늘 앞발차기를 하던 어르신도 보이지 않았다. 난 안산자락길을 서너 차례 갔는데 늘 그 어르신을 봤다. 70대 중반쯤이었는데 태권도 사범마냥 긴 다리를 머리 위로 들어올려 발차기를 하셨다.
메타세콰이아 길은 상당한 각도로 내려가며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미끄럽다. 초반부터 느낀 것인데 많은 이들이 걸어 즈려밟는 바람에 미끄러운 곳이 생겨났다. 평탄한 길도 그랬는데 여기는 각도가 상당해 더욱 미끄러웠다. 아니나다를까 피플러버와 꼬맹이가 꽈당 미끄러졌다. 순서는 헷갈리지만 둘이 그런 것은 분명히 기억난다. 난 딱 중간이다. 선두 그룹은 열 명쯤, 나를 빼고 아톰 멍게 뜬구름 아브믈(?) 요정도가 한참 뒤처져 있다가 작심한 듯 내게 확 붙거나 했다. 메타세콰이아가 겨울에는 이런 이파리 색이네, 색다른 느낌을 안긴다. 숲 속에 조성된 휴게소가 있는데 많지도 않은 인원이 여기저기 벤치를 나눠 앉아 우리 일행이 들어서긴 힘들다고 선두는 판단했던 것 같았다. 그냥 지나쳤다. 서대문구청 내려가는 쪽으로 내려섰다. 비닐을 덮어 맨발로 걸을 수 있게 만든 곳 옆으로 걸었다. 지자체가 저렇게까지 열심히 어르신들 챙겨야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각자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며칠 뒤 훨씬 차가워진 날에 어린이대공원을 걷는데 어르신들이 햇볕 난 잔디를 맨발로 즈려밟고 있었다.
아무튼 그 길을 터벅터벅 걷는데 괴성이 들려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눈여겨 보니 웬 사내가 사람들을 지나친 뒤 어딘가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반 바퀴쯤 돌았을 때 또 난데없이 그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라도 그가 화를 풀길 진심 빌었다.
꼬맹이의 지적. 그는 발달장애인인 듯합니다. 발달장애의 특성 중 하나로 상동행동이 있는데, 그 분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상동행동이 아니었나 하고, 외부의 자극에 예민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니 그러려니, 이해를 해야 하는 거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새삼 깨닫는데,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자락길의 절반쯤을 돌아 다시 데크로 올라섰다. 멍게가 재촉한다. 그냥 봉수대로 올라 건너편으로 건너뛰자는 것이었다. 데크 길이 지루하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홍은동 쪽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녹번역과 홍제동이 바라 보이는 조망 포인트로 향했다. 누군가 내 행동을 눈여겨 봤다면 녹번역에 붙은 아파트 특정 동의 특정 층을 주시함을 알아챘으리라. 그 아이와 포르투갈에서 6박 7일을 함께 했으며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사위 녀석과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진 것이 보름 전이었는데도 궁금해 하는지 참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암튼 북한산을 바라보는데 앞쪽 능선만 분명하고 그 뒤쪽은 영 흐릿하다.
다소 지루함이 데크 길에 찾아들었지만 회장을 비롯한 선후배들은 별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재잘재잘 동심으로 돌아간 듯도 했다.
시작한 지점이 나왔다. 시나브로 산악회의 중추 엔진으로 부상한 감자바우 형이 하산하겠다고 알렸다. 내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겹게 산행에 나왔다고 진즉 말했던 터였다. 무리할 일이 아니었다. 형은 축하연에 내놓으려 했던 선물을 건네고 등을 돌렸다. 덩달아 호랭이도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며 따르려 했다가 형이 '조금만 걸으면 완주할 수 있다'며 말려 뜻을 접었다.
이제 생태이동통로를 건너기 위해 자락길에서 내려서야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음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모두 아이젠을 챙긴다. 나와 지리산만 멍하니 서 있다. 귀찮다고 했다. 난 그런 것이 아니고 챙길 만한 날씨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챙기지 않았다. 그린란드 형님이 "육발이 있잖아. 무지무지하게 크고 무식한 아이젠, 우리 회원 중에 큰 산 갈 사람은 알 밖에 없을 것 같아 줄려고 챙겨왔다"며 꺼내 주셨다. '큰 산 갈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싶어 조금 이따 보시자고 말씀드렸다. 축하연 때 그 육중한 아이젠, 멍게 말에 따르면 '거의 크램폰 수준'의 임자는 따로 있었다. 큰 산 이름을 닉네임으로 갖고 있으니 그린란드 형님의 뜻대로 될 것이라 믿는다.
아무튼 조금 늦게 내려갔더니 회장이 예의 모아이 석상 얘기를 꺼냈다. 뒤늦게 귀동냥을 하는데 우리 회원 중에 그 섬을 가본 이는 피플러버 형 밖에 없다느니, 별로 안 닮았다느니 하는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나랑 멍게 등이 따라 붙었을 때 이미 선두는 통로를 건너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늘 뒤에서 꾸물거리는 아톰 형이 툴툴거린다. "왜 계단으로 올라가지, 옆으로 난 길로 자연스럽게 나가면 되는데?"
역시나 계단 초입에서 호랭이가 편한 길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꼬맹이도, 서너 걸음 앞의 아브물이 차례로 돌아선다. 우리 회원 모두가 좋아하는 딜쿠샤에서 만나기로 하고 돌려세웠다.
올라가니 회장의 해골바위 설명이 극진하다. 누군가 다른 이가 눈 쌓인 해골바위 위로 올라간 흔적을 발견하고 놀라워했다. 마침 동짓날이다. 무속에서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며 모시는 신을 새로 맞는 의레를 치른다고 고문이나 회장이 거듭 강조했다. 우리의 법상이 상경하지 않은 이유도 동짓날을 정성스레 맞기 위해서라 했다. '계엄 버거' '네 란 버거' 하는 밈(meme)이 유행하는 가운데 동지를 맞았다.(매년 동짓날에 즈음해 새알팥죽을 먹는다. 3호선 옥수역 옆 옥수해물찜인데 웨이팅이 엄청 심한 곳이다. 5만원, 6만원하는 아구찜이나 해물찜을 걸판지게 먹어대는 동창회나 계모임, 교회모임 옆에서 우리 부부는 용감하게 만원 밖에 안하는 팥죽을 먹곤 했다. 올해는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15일) 오후 1시쯤 찾았다가 엄청난 현타를 느끼고 기함해 돌아섰다)
계엄 사태에 많은 이들이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고 실토하곤 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나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누가 르랬던가. 매일 눈 뜨는 게 기적의 연속이라고. 속보와 단독에 귀를 쫑긋 세우고 뉴스 특보를 연신 챙겨 보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나날이 이어지기를 모두 바라보자.
아무튼 해골바위에서 오른쪽으로 수평 이동한다. 동짓날을 맞아 도 닦는 분들이 치성을 드리고 있을지 모르니 조용히 통과하자는 회장의 당부가 있었다. 제법 눈꽃 풍광이 볼 만해 탄성을 겨우 참았다. 한양도성 성곽 옆 인왕산 정상에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 산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달팽이 바위를 보라고 해 올려다 보는데 아무래도 올챙이 바위가 더 적당하다 싶었다.
아! 이젠 벗느라고 열심이다. 난 속으로 비웃으며 기다렸다. 무악대사가 잠깐 놓친 새 도성을 지금 위치에 놓는 바람에 이곳을 빠뜨려 불교 중흥의 기회를 놓쳤다고 개탄했다는 회장의 설명을 뒤늦게 머리에 채우며 도성을 바라보니 달리 보인다. 계엄 지도부가 무속의 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초현실적인 현실이 그것에 겹쳐지니 머릿속이 혼미하다.
인왕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인왕산의 높이는 338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에는 타포니(Tafoni)가 발달한 토르(Tor)가 많다. 주로 서울시 무악동 남쪽기슭 135m 고도에 위치한다. 인왕산의 토르는 주빙하 기후에 의해 화학적 풍화가 진행되어 생성된 것과 후빙기에 절리 발달에 따른 차별침식으로 생성된 것이 있다고 한다. 흔히 타포니는 토르와 관련되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화강암 토르에서 관찰되는데 인왕산 또한 그에 해당한다. 토르에서 타포니가 발달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풍화가 더욱 진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7년과 2008년 인왕산에서 관찰된 식물은 전체 75과 232종 38변종 5품종으로 총 275종이며, 귀화종은 37종이다. 주요 출현 식물은 생태계 교란 야생동?식물인 국화과의 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등이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시민들의 유원지였으나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하였다.
2012년 인자요산(현 지리산)의 산행기에서 가져왔다.
딜쿠샤 역시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권율 장군의 은행나무가 지척에 있고 주변에는 온통 고층아파트로 겹겹이 에워 싸여 있는데 무슨 동화 속 공간 같기만 하다. 내가 처음 이 주택을 본 것은 한참 전인데 늘 그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곳이 그 세월을 견디며 여즉 버티고 있는 건가? 아버지와 아들, 딸의 얘기가 한국 근대사의 슬픔, 질곡과 맞닿아 있어 애닯다. 그리고 아파트 숲에 가려 질식할 것만 같다. 그냥 형님께 조심스럽게 여쭸다. 이곳이 처음이신가요? 그래 처음이야! 안산자락길을 걷는 내내 형님이 초행일 것 같았지만 여쭙지 못했다. 인왕산 해골바위도 가본 곳이 아닌 듯 싶었다. 사실과 다르다면 죄송하다.
딜쿠샤는 처음 와보신 것이 분명했다. 먼저 들어가 있던 창원 촌놈이 맨꼴찌로 나왔다. 보고 배운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실 은행나무 옆에 북한음식 전문점 능라밥상이 있다. 보신 분들이 있으리라. 이북 요리사 출신이 셰프로 일하는데 나도 이용한 적이 있다. 맛보기 쉽지 않은 북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연말 모임 장소로도 괜찮다. 나도 회사 선후배들과 송년 점심을 했던 것 같다.
이어 누구나 예상하듯 홍난파 가옥이다. 친일은 분명한데 반박할 구석도 적지 않은 논란의 인물이다. 덩쿨이 있으면 그런 느낌이 덜할텐데 퇴락한 느낌이 겨울이라 더욱 절절해졌다. 이곳 역시 뭔가 비현실적이다. 옆 고층 아파트 108동에 76 신태섭과 김연순 형이 산다. 물론 아들 재평이는 따로 산다. 태섭 형의 동생 명섭은 동기인 이화영과 함께 일하다 옥고를 치르다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다. 난 그런 얘기를 늘어놓을 기회를 놓쳤다.
아무튼 용의주도한 회장은 기상청 앞을 지나며 아직도 이곳에 눈이 내려야 서울에 눈이 왔네 한다 하며 일행을 이끌었다. 돈의문 놀이터를 지나 경희궁 앞으로 해 서울역사박물관 앞 전차 전송하는 모자상을 지나쳐 축하연 장소로 인도했다. 눈치챘겠지만 그는 열심히 너무도 열심히 머릿속으로 일행 수를 세고 뒤처진 넘들 걸음걸이까지 계산하며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게 무리를 이끌었다. 내가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 내게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택일하게 하면서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면 다음 번에는 어디에서 쉬고 어디로 갈지 결정하고 있었다. 난 자락길을 반 바퀴 돌았을 때 눈치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열다섯이 정시에 도착했고 미리 간 멍게와 뜬구름이 잘 세팅해 주고 84 황순현이 리플렛과 펼침막을 기부해줘 무사히 축하연을 마쳤다. 아, 오솔길이 기탁한 떡은 약간의 사고를 겪었지만 맞춤한 시각, 자리의 흥이 막 올랐을 때 도착해 화염병 촛불로 타올랐다. 기발했다. 술병에 휴지를 꽂은 뒤 불을 붙이니 화염병 모양이었다. 오솔길이 떡을 맞춘다고 했을 때 뜬구름은 계속해서 케이크 커팅을 하자고 했는데 난 뜯어 말렸다.
자 그리고, 여러분을 배 곯아 화나게 만든 일과 관련한 나의 해명이다. 난 적지 않게 긴장했다. 술만 들어가면 제정신을 잃는 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음식을 깔아 축하연 세리머니를 흐트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독짱 형 추모의 시간도 있었는데 뭘 먹어 대면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린란드 형이 포문을 열어 피플러버, 산바람 형이 불만을 터뜨렸다. '산악회가 많이 무서워졌다' '학창 시절 이후 얼마 만에 단무지와 깍두기에다 깡소주를 마셔대나' '의전을 안 해 본 이들이 지도부에 있어 이런 사달이 생긴다' 등등.
아무튼 오솔길과 달라무, 황순현, 댕기, 만사지당, 마포나루 순으로 합류해 자리를 빛냈다. 모두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더 많은 얼굴들과 더 뜨거운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여물지 않은 모양이다. 기다릴 것이다. 앞으로 20년!
첫댓글 대장님의 산행기가 올라왔다 하여, 일하다 말고 휘리릭 들어왔습니다. 엊그제의 기억이 더욱 생생한 글이네요. 꽈당의 순서는 꼬맹이, 피플러버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브클형도 꽈당하셨다고...ㅋㅋㅋ 암튼 앞으로 20년(더 될지도 모르겠지만..ㅋㅋㅋ) 건강하게 만나자고요.
아쉬움과 기대감이 겹치는 산행기네..
재밌게 잘 읽었고, 내년에도 함께 정겨운 산행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건강 잘 챙기면서요~~
한 가지만 더! 지적질은 아니고 글 중에 " 한참을 눈여겨 보니 웬 사내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 사람들을 지나친 뒤 어딘가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목의 한 사내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인 듯합니다. 발달장애의 특성 중 하나로 상동행동이 있는데, 그 분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상동행동이 아니었나 하고, 외부의 자극에 예민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니 그러려니, 이해를 해야 하는 거죠.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새삼 깨닫는데,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생각이 짧았네. 내 글의 잘못을 바로잡고, 꼬맹이의 댓글을 붙이되 굵은 글자로 해 더욱 주목하게 했습니다. 뼈아픈 지적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