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27일 첫 국무회의에서 자신과 가족의 재산이 17억7822만 원이라고 밝혔다.
질풍노도처럼 공직사회를 뒤흔든 재산공개의 신호탄이다.
당시 YS는 '내 지갑은 돈이 지나가는 정거장'이라고 했다.
정치 자금을 받았어도 호주머니에 넣지 않고 나눠줘 떳떳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먹혔다.
법적 근거도 없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강력한 반발에도 밀어붙인 원동력이다.
우리 재산공개제도는 1978년 제정한 미국 윤리규정의 영향을 받았지만 더 엄격하다.
미국은 본인과 배우자 재산만 공개하면 된다.
우리처럼 부모, 재산까지 알릴 의무는 없다.
미국 공직자들은 정확한 금액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만 밝히면 된다.
실제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미국 대통령 부부가 밝힌 재산은 180만~700만 달러(약21억~82억 원) 두리뭉술했다.
어제 공직자들이 공개한 재산을 살펴본 서민은 고단한 삶이 더 팍팍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지난해 전체 고위 공직자 10명 중 7명은 재산이 늘었고,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393억 원,
안철수 국민의 당 상임공동대표가 1629억 원으로 공직자와 국회의원 중 최고였다.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이 환율 영향으로 6년 만에 감소했다는 한국은행 발표가 겹치면서 박탈감은 더 커졌다.
하지만 특정 시점의 공직자 자신과 일정 기간 국민소득의 증감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재산공개 이후 부자 공직자는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리는 반면 가난한 공직자는 어깨를 편다.
법정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인지 모르지만 재산공개때만 거꾸로인 셈이다.
공직자 548명(30.2%)이 뭐가 켕기는지 부모와 자녀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것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거부 사유가 의심스러우면 공개를 명령하지만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고지 거부 기준을 강화하거나 재산을 줄여 신고한 사람은 엄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윤리위가 '팔이 안으로 굽는' 마당에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홍수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