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아이스
―결혼기념일
민소연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
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
한밤중에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
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
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
거듭 부풀어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서 호흡을 뱉었다
어쩌면 함께 닳고 있는 것 같았다
박자에 맞춰 피어오르는 게 있었다 입김처럼
희뿌옇고 서늘했다
숨을 삼키다 체한 밤이면 너를 깨웠다
내기를 하자고 했다
누가 더 먼저 없어질 것 같은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자고 했다 너와 나는 모두
내가 먼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려서
우리는 오래도록 같은 편이 되었다
내가 죽은 척을 하면 너는 나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등 뒤에서 각자의 깍지를 움켜쥐었다
영원한 타인에 대해 생각했다
동시에 숨을 전부 내쉬었다
품 안에서 녹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갗이 들러붙었다
― 2023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심사위원: 안도현, 유성호)
민소연
한양여대 문예창작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