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N7tV-PEua8
<요한계시록 3:4-6>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다른 교회에는 칭찬을 먼저 하고 책망을 나중에 했는데 사데 교회는 책망을 먼저하고 칭찬을 나중에 하고 있지요. 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이 있다고 하지요.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살아있지만 실제는 죽은 상태인 사데 교회 대부분 성도들 가운데서도 비록 소수이지만 진실한 믿음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가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어도 여전히 빛 가운데 살아가는 소수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타락한 세상이어도 여전히 참된 진리를 고집하며 살아가는 진실한 믿음의 소수들은 있게 마련이지요.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냐 없냐를 가지고 논쟁하기도 하는데 저는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북한 권력이 기독교 신앙을 말살시키려 해도 그런 가운데서도 소수의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고 믿음의 길을 지켜가는 거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생활이 많은 경우 다른 사람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좋은 친교의 관계 속에 지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데 교회처럼 살아있지만 죽어 버린 교회로 전락될 수도 있지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날에는 지천에 세워진 게 교회이기 때문에 이 교회가 맘에 안들면 다른 교회로 쉽게 옮겨갈 수도 있겠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는 동네 정도가 아니라 오늘날로 따지면 한 도시에 교회 하나가 있을까 말까했던 시대이기 때문에 교회를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결국 죽어버린 분위기의 사데교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떠난 게 아니라 거기에서 자기들이 배우고 깨달았던 살아있는 믿음의 도리를 묵묵히 지켜갔던 겁니다. 다수가 지배적인 곳에서 소수로 지낸다는 것은 참 쉽지 않지요.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고 그래서 홀로 외롭게 지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지 않지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기댑니다. 그래서 소수로 지내는 외로움과 서러움을 참고 인내하면서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순수한 믿음의 길을 가는 거죠.
사람은 그 믿음의 중심을 모르지만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사데 교회 안에서 별로 인정도 못받고, 인기도 없고, 때로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자들이었지만 그 소수의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사데 교회가 존재하는 중요한 의미였던 거죠. 이 소수의 사람들마저 없었다면 사데 교회는 칭찬할 게 하나도 없고 오로지 책망만 받았을 부끄러운 교회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 마시고 자신이 가야 할 믿음의 길을 순수한 마음으로, 또 진리에 합당하게 걸어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소수의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4절 중간 부분에 보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흰옷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주님 오심을 영접할 때 입는 옷을 상징하지요. 즉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영광이 함께 할 것을 약속하신 겁니다.
게다가 4절 후반부에 보면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렇게 진실한 믿음의 길을 가려는 자들을 합당한 자다, 즉 예수님께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세상에서, 그리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외면과 멸시를 당했겠지만 주님께서는 바로 이들이 예수님께 합당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앞에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합당한 자가 진정으로 합당한 자인 거죠.
5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여기에서도 흰옷이 또 등장하지요. 예수님과 함께 영광과 기쁨과 평화를 누릴 때에 입는 옷이 흰옷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겪었던 서러움과 슬픔과 외로움과 억울함은 사라지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평화와 하늘의 영광이 함께 할 것을 약속하고 계시지요.
게다가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도 시인되어 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누군가를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계시지요. 심지어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까지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모두가 악하게 살지만 그 속에서 나홀로 선하게 사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게 아니지요. 모두가 자기 실속을 챙기며 살지만 그 속에서 나홀로 나눔과 섬김과 봉사로 살아가는 것도 결코 억울하거나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나홀로 힘겹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믿음의 길을 가는 것도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시는 분이시지요.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고, 우리의 이름을 영원토록 기억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백성으로 살게 하실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