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3.25 19:12
정이품송과의 인연
1970년대 말에는 마침내 속리산으로 확산되어 정이품송에도 예외 없이 침입하였으며, 그 피해정도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불과 2년 만에 피해 ‘극심’의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산림청(국립산림과학원)에서 솔잎혹파리 방제연구 실무책임자로서의 중책을 맞고 있던 본인으로서는 초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최후 수단의 방제대책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방충망을 설치하기까지의 급박하였던 상항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직접 정이품송을 찾아 안부를 물어보고 건강상태도 체크하고 있다.
속리의 정이품송正二品松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7-3에 위치하며, 수고 14.5m, 흉고둘레 477cm, 수령 약 600년의 소나무로서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용문산의 은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연기념물 노거수이며, 수관은 원래 삿갓 또는 우산모양으로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매우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1980년대 초 중부산간지역을 휩쓴 솔잎혹파리의 피해의 영향으로 수세가 급격히 쇠약해 졌다. 1993년 2월에는 강풍에 의하여 동쪽방향 가지가 부러지면서 수형파괴가 시작되었으며, 2004년 3월에 내린 폭설로 상층부 가지가 부러지고 2007년의 태풍과 폭설 등으로 서향의 대형 측지가 절단되는 등 크고 작은 피해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현재는 불균형적으로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수형이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그러나 정이품송은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므로 현재까지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정이품송의 유래는 1464년 조선조 7대왕 세조께서 난치의 종양으로 고생하던 중 약수로 유명한 속리산 법주사의 복천암을 찾아가던 길에 이 소나무 밑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소나무 가지에 임금이 탄 가마가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이를 본 임금이 “연 걸린다” 하고 꾸짖으니 소나무가 가지를 번쩍 들어 일행이 모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자 임금이 이를 기특히 여겨 친히 옥관자를 걸어주고 후일에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천연기념물백서, 200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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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 수난시대
정이품송은 1970년대 초부터 생장불량 및 수세쇠약현상이 나타났다. 즉, 1974년 속리산 진입도로공사 때 수관樹冠밑으로 나있던 도로를 우회시키면서 50cm내외의 복토가 주요원인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뿌리가 썩어가는 등 수세쇠약과 수형파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충청북도는 1977년 2월 23일 정이품송에 특별히 관심을 보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는 특별 지시를 받았으며, 이후 시비施肥를 비롯하여 각종 병해충의 방제 등 보호·관리에 최선의 노력을 강구하였으나 갑자기 침입한 솔잎혹파리의 피해를 저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소나무의 치명적인 피해해충인 솔잎혹파리Thecodiplosis japonensis는 1977년 속리산 말티고개 정상에서 7본의 소나무에서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3년 후인 1980년에는 주변지역으로 1,500ha의 면적에 확산되었으며, 이때부터 정이품송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정이품송에 솔잎혹파리의 침입이 확인된 것은 1978년 8월 25일이었으나 피해정도는 극히 경미하였으며, 1980년 7월 7일의 조사에서는 피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솔잎혹파리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하여 1980년 10월 14일에는 수관하樹冠下에 1,200㎡의 비닐피복을 하였으며, 1981년 5월 15일에는 침투성살충제인 테믹Aldicarb입제의 근부처리와 동년 7월 31일에는 스미치온fenitrothion의 수관살포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방조치에도 불구하고 1981년 춘기의 이상기후(바람)로 인하여 그 해 9월 8일의 조사결과 솔잎혹파리 충영형성율이 78.2%에 달해 피해 ‘극심’상태였으며, 고사위기에 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정이품송주변을 종합방제체계로 각종 방제수단을 총 동원하였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정이품송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따라서 정이품송을 살리자는 여론이 민간단체를 비롯한 각계에서 일어났으며, 관리담당부서인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정이품송 살리기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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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巨大한 방충망 설치
(예비시험에서 설치까지)
속리산에 솔잎혹파리의 침입을 계기로 정이품송을 사수하기위한 우리 연구진도 비상사태에 돌입하였다. 1980년대 초 당시 솔잎혹파리의 가장 효과적인 방제법으로 침투이행성살충제인 포스파미돈phosphamidon에 의한 수간주사법이 개발되어 실용화되고 있었으나 이 방법을 정이품송에 적용할 경우 수간에 50개 이상의 천공穿孔을 하여야 함으로 원형보존의 원칙에 의거허여 본 방법은 적용할 수 없음을 전제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연구진의 사전방제대책회의가 진행되었으며, 최후 수단으로 성충의 산란시기에 방충망을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방충망을 설치할 경우 솔잎혹파리의 생태특성을 고려하여 5월 중순부터 7월 상순까지 약 50일간 방충망을 씌워야 하므로 광량차단에 의한 정이품송의 생장과 활력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하여 예비시험을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예비시험은 국립산림과학원 구내의 100년생 소나무 1주를 선정하고 재봉사 1인의 5일간 작업으로 대형 방충망을 제작, 솔잎혹파리 우화시기인 1980년 5월 21일부터 7월 10일까지 50일간 설치하고 수광량 및 소나무의 생장상황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방충망 내의 광도는 35,000~40,000lux로 측정되었으며, 이것은 소나무의 광보상점light compensation point 이상으로서 생장에 별 지장이 없음을 확인하고 만일에 대비하였다.
솔잎혹파리의 극심한 피해로 정이품송이 고사위험수준에 달하자 방충망을 설치할 것을 보호대책회의(문화재위원회)에 건의하였다. 이에 보호대책회의에서는 1981년 10월 6일 과 12월 11일 및 1982년 2월 23일의 3차에 걸친 마라톤회의를 통하여 건의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으며, 마침내 1982년 5월 24일~26일 사이에 공사를 벌여 높이 18m, 너비96m의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대형 방충망을 설치하였다. 그 결과 당해연도인 1982년 7월28일의 솔잎혹파리 피해(충영형성율)는 3%미만으로 기적과도 같은 방제효과를 거두게 된다. 즉, 솔잎혹파리의 침입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한 것이다. 이후 생육 및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일정기간 후에는 정이품송의 수관상부는 방충망을 개방하는 과정을 거친 후 관람객들이 정이품송의 자연미를 음미할 수 있도록 제거하였으며, 1991년 9월 드디어 방충망 철제구조까지 완전제거조치 하였다. 1992년부터 2009년 현재까지는 매년 정기적인 점검과 동시에 병충해 방제작업을 실시하여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정이품송의 건강장수를 기원하며
정이품송은 지금까지 솔잎혹파리를 비롯한 각종 병해충과 자연재해의 수난을 극복하면서 600여년을 버텨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험난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소나무의 평균수명은 약 3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이품송도 평균수명은 이제 다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앞으로 주변 환경과 관리 상태에 따라서 수명은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캘리포니아California 중부 동쪽 화이트마운틴White Mountain의 산비탈의 브리슬콘소나무Bristlecone pine; Pinus aristata Engelm의 나이는 4,650여년으로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목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연기념물 노거수인 정이품송도 브리슬콘소나무와 같이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와 경관을 유지하면서 우리민족의 끈기와 함께 오래도록 보전되기를 기원한다.
글·사진 | 정상배 문화재위원, 한국수목보호연구회 회장
사진·문화재청, 연합포토, 국립산림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