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와라 히로시 <소문>
“인간이란 누구나 남에 대한 칭찬보다 욕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또 듣고 싶어하죠.” 누구에게나 ‘소문’에 얽힌 추억이나 경험담이 있을 것이다. 가깝게는 바로 내 자신의 일화부터 멀게는 나와 전혀 관계도 없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까지. 소문이란 사실 입증이 모호할수록, 험담이나 비방의 성격이 강할수록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나가 소문의 대상자를 극단적인 상태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마치 끈적끈적한 거미줄에 걸려든 희생물처럼 헤어 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몸을 조여 오는 공포와 불안. 소문이란 그 성격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우리는 이미 그 영향력을 경험해봐서 알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 이유에도,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 불거진 의혹에도,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의 불행에도 그 시작에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발단이 되어 이내 세상 모두의 입에 오르내린 소문이 있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장편소설 <소문>은 바로 ‘소문’이 일으킨 살인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소문’이 지닌 힘과 악영향에 대해 섬뜩할 만큼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소문을 전달하는 대중들의 마음속 호기심과 이기심, 어리석음에 대해 날카로운 어조로 일침을 가한다. “WOM이 널리 퍼지는 가장 큰 심리적인 요인은 인간의 잠재적인 공포와 불안입니다. 여자애들에게는 무서운 이야기, 기분 나쁜 이야기가 제일 효과적이죠.”
“너 그 소문 들어봤니?” 어느 날 시부야의 여고생들을 중심으로 공포의 도시전설이 퍼져나간다. “한밤중 시부야에는 뉴욕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대.”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소리라며 무시하기엔 왠지 모를 께름칙한 뒷맛이 남는 이야기. 소문의 효과인지 향수 ‘뮈리엘’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데…. 사실 이 소문은 신상품 향수 론칭을 위한 홍보전략으로 소비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한 입소문 마케팅, 즉 ‘WOM(word of mouth)’을 활용하기 위해 광고기획사에서 조작해낸 거짓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심의 공원에서 여고생 시체가 발견되는데, 시체는 ‘레인맨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발목이 잘린 채 버려져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자가 연속해서 발생하고, 그들은 모두 발목 부분을 잘린 채 살해당한 여고생들. 과연 소문이 현실이 된 살인사건인 것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칼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칼은 팔았어요. 하지만 그걸로 사람을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만약에 그 칼을 이용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칼을 판 사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죠? 그걸 흉기로 사용한 사람이 문제죠. 칼이 사람 죽이는 도구라고 생각한 사고방식이 문제예요.” <소문>은 오기와라 히로시만의 스타일로 엮어낸 사이코 서스펜스이자 미스터리 소설이다. 광폭한 사이코패스에 의한 의문의 연속살인사건, 그리고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와 현장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펼쳐지는 서스펜스이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스토리에는 오기와라 스타일의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와 따뜻한 유머가 숨어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마침내 도달한 마지막 한 문장의 충격적인 반전은 마치 면도날에 베인 상처처럼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잊히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무더운 여름 밤, 매력적인 소설 한 편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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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NDUNG** 원문보기 글쓴이: 인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