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태종무열왕이 전국을 순회하던 중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였다고 하여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조선태종도 이곳에서 유람하였다고 전하여지며, 한발이 있을 때 동래부사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망부석에는 옛날 왜인에게 끌려간 남편을 이곳에 나와 기다리던 여인이 기다리다 지쳐 끝내 화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하여진다.
푸른 바다가 바라보이는 이곳 중턱에 폭 10m 총 연장 6.4㎞의 순환 관광도로 4.3㎞, 오솔길 2.1㎞가 있다. 북쪽에는 영도와 방파제로 연결된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아치섬(朝島)이 보이고, 그 너머로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五六島)가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멀리 일본의 대마도(對馬島)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여기서 대마도와의 거리는 56㎞밖에 되지 않는다.
바닷가의 깎아 세운 듯한 벼랑 위에는 흰 등대가 있고, 그 밑으로 신선대(神仙臺)라 부르는 기암이 있으며, 오른쪽으로 망부석(望夫石)이 있다.
4.3km에 이르는 태종대 일주 관광도로 중간에 관광객을 위한 작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산책소로도 건설되어 있다. 여기에서 남서쪽으로 300m쯤 내려가면 인공 해수풀장인 곤포(昆布)의 집에 이른다. 이 이름은 이 일대 바다가 미역밭인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은 부산시의 임해 관광지 개발계획에 발맞추어 만들어졌다.
해수풀장은 1977년 개장하였으며, 해수풀장 주변에서부터 남동쪽 해안 일대는 배를 타지 않고 뭍에서 하는 바다낚시의 보고로서 돔·새끼고등어·쥐치 등이 연중 푸짐하게 낚인다.
부산시는 이 곳을 국민 관광지로 지정 중점 개발하고 있다. 태종대의 경관을 바다에서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의 운항, 순환 열차 등 각종 위락 시설을 갖추고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으며, 새로운 자원의 개발을 구상하는 청사진을 설계하고 있다.
글,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10년 역사, 부산 영도 등대(Lighthouse)
110년간 육지의 끝에서 밤의 식구를 인솔한 그 집을 발견했을 때, 숱한 바다의 비문(非文) 앞에서 늘 꼿꼿했을 하나의 대문자 앞에 섰을 때, 조금 감개가 무량해지는 것이다.
부산 영도 등대.
한반도 동남단 최대(最大) 항구의 끝, 원형의 35m짜리 백색 콘크리트 골격이 반짝이고 있다. 20년째 등대와 함께 살아온 항로표지원 김명환(49)씨가 “낮에 보이는 영도 등대 빛깔을 ‘안도의 빛’이라고 한다. 타지에서 배 타고 수개월 만에 돌아와 이 등대를 보면 얼마나 기쁘겠나”라고 말한다. 등대를 둘러싸고 어선과 상선 몇 척이 해협을 건너온다. 짐을 부리고 혹은 싣고 돌아오는 것들. 갈매기가 그 위를 소식처럼 떠다닌다.
원래는 ‘절영도 등대’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영도는 군용 말 목장 때문에 ‘목도(牧島)’라 불렸는데, 이곳 말이 워낙 빨라 그림자가 보이질 않는다고 해 ‘절영도(絶影島)’라 칭했다. 1974년 행정 편의상 ‘절’자를 빼고 영도 등대로 개명했고, 1988년 영도 항로표지관리소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에 이른다. 지척에 무인 등대가 서 있는 일명 주전자섬, 생도(生島)가 보인다. 더 멀리로는 대마도가 보인다. 대마도를 상대하는 남문 유일의 양항(良港)으로, 시계가 좋은 밤엔 국경을 넘은 서로의 불빛을 구경하기도 한다. 가장 멀리 보일 때가 9~10월이라 한다.
영도 등대는 접근성이 뛰어난 등대다. 영도대교 덕분에 사실상 섬의 지위에서 벗어났는데, 부산역에서 승용차로 30분만 오면 태종대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등대에 닿는다. 등대 바로 우측에 태종대가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활을 즐겨 쏜 곳이라 전해진다. 정자처럼 평평한 바위와 더불어 부산 일대에선 보기 드문 울창한 숲과 해식 절벽이 해풍에 따라 기괴한 조각이 돼가고 있다. 오래 닳은 돌바닥이 미끌미끌하다. 관광객들이 모여 앉아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
태종대 바로 옆에 신선대(神仙臺)가 있다. 옛날 신선과 선녀들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곳 바위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선바위 안쪽에 망부석 하나가 뾰족이 섰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됐다는 전설. 전설의 고향이기 전에 자연사 박물관이다. 7000만년 전 이곳 경치를 먼저 둘러봤을 공룡들이 발자국을 여럿 남겨 놨다. 백악기 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길이가 450㎜짜리도 있다. 이곳 해안 절벽은 유색 고무 찰흙을 여럿 겹친 뒤 꽈 놓은 것처럼 녹색과 흰색, 붉은색의 암석이 맞물려 띠(슬럼프 구조)를 이루고, 바닥엔 마그마가 퇴적암을 뚫고 들어오면서 생긴 열이 그려낸 동글동글한 무늬(구상혼펠스·Orbicular hornfels)가 천연 그림을 그려놨다. 아이들이 안내 표지판 앞에서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된다. 등대 좌측엔 둥근 자갈이 쌓인 역빈(礫濱·자갈해변)이 펼쳐져 이국적인 경치를 자아낸다. 파도의 힘이 강한 해식 절벽 아래 가벼운 모래는 쓸려가고 무거운 자갈만 남았다. 서로 부딪치면서 둥글어진 검은 자갈이 썰물 때마다 쌀 쓿는 소리를 낸다. 배가 고파 그런가. 경치 구경, 바람 목욕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이제 등대의 시간이다.
오후 7시, 등대에 불이 들어온다. 수평선의 푸른 빛이 진해지면서 이윽고 바닷물과 섞인다. 빛의 핵심은 등명기(燈明機). 지름 1m 남짓한 등명기가 수평 회전하면서 빛을 쏜다. 40㎞까지 뻗어나가고, 이 빛이 18초에 세 번 항해자에게 도달한다. 섬백광 18초 3섬광, 이걸 전문용어로 등질(燈質)이라 한다. 밤바다가 구겨진 화선지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주름이 흔들릴 때마다 그 위에 떠가는 작은 배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항해술이 좋아졌다지만 소형선은 여전히 등대를 필요로 한다. 사무실에서 쪽잠을 준비하던 김 항로표지원이 “궂은 날 레이더가 없으면 배가 계속 대마도 쪽으로 가기도 한다”고 했다. 빛이 안 듣는 날엔 음향으로 무신호(霧信號)를 보낸다. 길 잃은 배는 그 소리를 듣고 뱃머리를 돌릴 것이다.
오전 5시 50분, 등대의 불이 꺼진다. 비로소 빛이 소멸한 전망대로 올라간다. 바다가 붉어지고 있다. 오륙도와 동백섬, 남형제섬 같은 작은 점들이 지워진다. 바람이 작정한 듯 몰아친다. 곧 비가 올 모양이다. 이 바람에도 출항하는 배가 있다. 생도에 집단 서식한다는 칼새도 낙동강으로 먹이를 물러 날아간다. 이들은 저녁쯤 올 것이다. 어둠의 식구가 돼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영도 등대 등대 시설과 미술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6000권의 도서를 소장한 해양 도서실도 있다. 오전 9시~오후 6시.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및 매주 월요일 휴관. 숙박 불가. 부산 영도구 동삼동 1054. (051)405-1230
태종대 오전 4시~자정. ‘다누비 열차’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동절기엔 오후 7시)까지 운행한다. 운행 요금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051)405-8745
가족끼리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등대도 있다. 제주도 산지 등대, 부산 가덕도 등대, 여수 거문도 등대. 울산 울기·간절곶 등대는 방학 기간인 12월~2월 1박이 가능하다. 문의 해양수산부 (044)200-5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