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시인의 향수를 읽다보면 어느틈에 나의 생각은 아주 어렸을때의 기억으로
나를 인도합니다.나는 왜정시대에 서울 용산이란 곳에서 태어났지만 반은 외가가
있는 경기도 평택군 서정리의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곳의 정서가 지금도
나를 꼼짝 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곤 합니다. 내가 국민학교 일학년때 6.25사변이란
끔찍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란도셀을 메고 학교를 가던 길에 비행기에서 삐라가
뿌려지고 거기에 공산군 남침이란 주먹만한 활자가 찍혀있었고 이것은 나의 어린
시절을 아주 참담하게 만들었습니다.아버지는 용산 철도국 공작창에 나가셨는데
거기서 피란길을 남들보다 편하게 할 리어커를 손수 만드셔서 우리 일가는 그
리어커에 재산가치란 손톱만치도 없는 물건들을 실은 리어커를 밀고 피란길에
나섰습니다.
마포강을 배를 타고 건너 여의도 비행장을 거쳐 영등포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내또래의
아이들이
누더기같은 옷을 걸치고 울면서 부모의 뒤를 힘겹게 따라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
니다.철도 기관사였던 아버지는 부산행 마지막 열차를 끌고 부산까지 가셔서 거기서
노동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외가가 있는 서정리로 갔는데 그때가 밤이었습니다.요란한 개구리 울음소리,
맹꽁이 울음 소리 아마도 장마때였나봅니다.서정리 역에서 한참 내륙쪽으로 들어가면
동막이 있고 가재리란 곳,거기서 국민학교 일학년을 보냈습니다. 거적을 깔고 앉아서
선생님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기나긴 일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물레방아와 언제나 여물을 씹는 전쟁과는 무관한
황소,게으른 하품을 하는 그 평화...
산에는 이름모를 풀벌레들,나의 어머니는 송탄이란곳까지 떡을 팔러 가셨고 나는 틈나는
대로 어머니의 떡좌판에서 허기진배를 달래야했습니다.우리는 피란민이란 명예스럽지
못한 말을 마을 아이들에게 들으면서 피란민 생활에 점차 익숙해졌고 여름날 밤 멍석을
깔고 누워서 성근별이 눈앞 가까이에 있는 것을 만져보듯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고
멀리서 포탄소리가 들리면 또 몇사람이나 죽을 까 그것이 걱정이 되곤했지요.외할머니
외삼촌 그리고 외사촌들, 수성 최씨가 집성촌인 그곳은 나에게는 어릴때의 꿈이 있었습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외가에 갔을때 아직도 우리가 밀고갓던 그 리어커가 마당 구석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낡고 녹슬고 초라한 그 리어커 바퀴들...
이제 그때 그분들은 거의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님니다.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나면 그분들은 모두 살아나서 내 곁에 있게 됩니다.
아!
이런 이야기를 내 손주들에게 들려주면 과연 감동을 받을까?할아버지 그거 거짓말이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볼 그 아이들에게 나는거짓말하는 할아버지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까지나 향수는 나의 것이지 남의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향수는 나의 것이고 정지영 시인의 향수는 그분의 것입니다.
첫댓글 어디로 떠내려갈 것인가... 더 이상 떠내려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때까지는 그래도 걸어볼만한 인생길이겠지요? 아직도 떠내려갈 그곳이 궁금하다는 것은, 삶의 무상함을 한줄 글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작은 행복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