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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17세기, 새 세상을 꿈 꾸는 세자빈이 있었다.
먼 적국(청나라)의 수도 심양에서 부강 조선의 꿈을 꾸던 비운의 왕세자빈의 얘기를 연극무대에서 만나 보자!!
"별궁의 노래"는 김용상씨가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을 연극공연으로 올린다..
"별궁의 노래"를 극단 신화(대표 김영수)가 창단 20주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김영수 각색, 연출로 막을 올린다. 5월 21일 부터 30일까지 소월아트홀에서 공연을 한다.
특별출연으로 김재건, 윤주상, 서희승 배우를 비롯해서 최병규, 최준용, 노현희, 정찬훈, 이은정, 한재영, 정종훈, 최대훈, 김대흥, 강성민 등 역량있는 배우들이 극단 신화 창단20주년 기념공연을 함께 출연한다.
별궁의 노래는 17세기의 조선이 처한 병자호란의 뒷 얘기를 심양(소현세자와 세자빈의 볼모 생활)과 조선(인조와 후궁 조소용과 서인들)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 "조선왕조인조실록" "심양장계""심양일기" 등 철저한 고증과 소설적 상상력으로 완벽하게 되살아난 비운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드라마틱한 삶이 고즈녁히 담겨있는 것을 연극무대로 극단 신하가 옮겨 놓는다. 비운의 왕세자빈의 질펀한 역사의 질곡을 먼 적국의 수도 심양에서 피어났던 부강 조선의 꿈을 꾸는 세자빈의 얘기가 시작된다.
공연명: "별궁의 노래"
공연일시 : 2010년 5월21일(금) ~ 30일(일)
월(공연 쉼), 화,수,목,금(오후8시), 토,공휴일(오후3시, 7시), 일요일(오후3시)
공연장소 : 소월 아트홀
주최 : 극단 신화. 소월 아트홀
원작 : 김용상
각색/연출 : 김영수
출연 : 노현희, 정찬훈, 최준영, 이은정, 최병규, 한재영, 정종훈, 최대훈, 최효정, 조이행,
이희련, 천민정, 박진수, 강성민, 김 단, 황수일, 윤태민, 김영호, 현영균, 윤복음,
김민혁
특별출연 : 김재건, 윤주상, 서희승
관람료 : 일반 30,000원. 중.고생 20,000원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 잊혀진 여걸 소현세자빈(민회빈(愍懷嬪) 강씨 이야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만 무능한 군주 인조. 일국의 왕세자로 태어났지만 저적국에 끌려가 8년간의 볼모생활을 하고, 귀국 후 아버지와 신료들의 냉대와 의심에 시달리다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들이 권력과 이해타산에 눔이 멀어 나라와 백성을 버리던 격변의 17세기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던 세자빈이 있었다. 조선 최초의 여성외교관이자 시대를 앞서나간 개혁가였던 민회빈 강씨. 성리학과 중화주의의(명나라를 섬기는) 잣대에 얽매여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살피지 못했던 이들을 질타하고, 민생에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과 청나라의 팔기군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키우고자 했던 그녀. 칼날 같은 감시 속에서 세자의 죽음 이후 별궁에 유폐되었다가 폐세자빈이 되어 죽음을 당하기까지 파란만장한 민회빈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오늘의 알파걸을 있게 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장부
민회빈(愍懷嬪)은 조선 여성으로는 최초로 외국(청나라 수도 심양과 북경)에서 장장 8년을 살며 청나라와 조선간의 무역을 주도한 최초의 여성 기업인이고, 무려 1백50만 평에 달하는 광대한 농장을 경영한 농장주였다.
용렬한 인조(仁祖)의 감시와 행악질로 원대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위었지만 조선의 문제점을 짚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강성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개혁과 개방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던 미래지향형 여성경영인으로 살았던 여장부이다.
민회빈(愍懷嬪)은 8년이나 적국에서 볼모생활을 하면서도 왕실 여인으로는 유일하게 궐 밖, 그것도 조선보다 더 넓고 발달한 청나라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설게된 것을 자신과 조국을 위한 기회로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여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유교적 제약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과 왕실 여인을 옥죄던 법도 등 갖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띄어닌 판단력과 수완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지녔던 진정한 여성 지도자로서 그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되돌아 보고 강인한 여성상을 부각시켜 최근 더욱 거세지고 있는 우먼파워에 부응코자 하는 작가의 집필의도가 있다.
작품 줄거리
이야기는 임오년(1642년)초, 청나라가 농사를 지으라며 떼어준 600일 갈이 밭에 세자빈 강씨가 농사준비를 서두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세자빈은 사시찬요 등 농업서적들을 들춰보고 알게 된 농사지식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농사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이듬해에는 냇가(사하보)에 논을 만들고 자체 제작한 수거로 물을 대 벼농사도 시작한다.
세자빈이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은 늘 모자라던 심양관 식구들의 먹을거리도 마련하고, 남는 양곡과 채소는 청나라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 외에도 귀국 후 배곯는 백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농법을 찾아보자는 뜻도 있었다. 또한 계속된 전쟁으로 지갑은 두둑하지만 물자난에 허덕이는 청나라 사정을 이용해 조선에서 청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져다 팔고, 조선의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에게 귀하게 여기는 청나라 물건은 조선에 가져다 파는 무역도 시작한다.
세자빈은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아무 잘못도 없이 포로로 잡혀와 노예로 살고 있는 조선 백성들을 속환하는데 쓰거나, 늘 트집거리를 찾는 데 몰두하는 청나라 대신들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하며 조선과 청국 관계를 원만히 조율하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처음엔 소극적이던 세자에게 청나라 실력자들과 교유하며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도록 부추겨 나라를 다스리는데 부족함이 없는 큰 그릇으로 만드는 데 온 힘을 다 한다.
하지만 세자빈의 시아버지인 인조는 온 힘을 다해 부국강병의 길을 찾고 있는 아들 내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기는 커녕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준 청나라에 빌붙어 자신의 왕좌를 노리는 정적으로 바라본다. 인조가 이런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 배후에는 간악한 조소용의 음모가 있다.
세자빈은 어렵게 청국의 허락을 받아 작고한 아버지 영전에 곡하고 몸져눈운 어머니를 찾아보기 위해 약 7년 만에 고국을 찾았으나 궐내 분위기는 싸늘하다. 임금은 노골적으로 냉대했고 심지어 아버지 영전에 인사하러 친정에 다녀오는 것 조차 막았다.
어이없는 임금의 행악을 뒤로 하고 심양에 온 세자 내외는 뚜얼곤을 따라 북경을 함락하는 청군 대열에 합류, 청나라가 거대한 명나라를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유민들의 마음을 추슬러가며 중원에 대제국을 세우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만읂 것을 배운다. 아물러 조선을 부흥시키려면 성리학과 사대부들이 쳐놓은 단단한 벽을 뚫고 북경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던 서양의 눈부신 문물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이 선행돼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한편 중원의 지배자로 우뚝 선 뚜얼곤은 이젠 더 이상 조선의 인질들을 붙잡아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세자 일행을 귀국시킨다.
을유년(1645년) 2월, 파란만장했던 8년 볼모생활을 끝낸 세자와 조선 왕실 여인으로선 유일하게 자그마치 8년이나 바깥세상을 체험하면서 정치 감각을 키우고 무영과 농장 등 경제활동을 통해 경영인으로 살아온 세자빈은 서국 문물과 과학기술 도임을 통해 민생안정과 부국조선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꿈에 부풀어 귀국한다. 하지만 인조는 여전히 세자 내외를 못마땅해 하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계속 핍박한다. 아버지의 가혹한 냉대에 가슴앓이를 하던 세자는 귀국 2개월만에 까닭모를 죽음을 맞는다. 그럼에도 정신 나간 인조는 세자의 장례마저 종법을 무시한채 서둘러 해치우고. 후사도 세자의 아들인 원손이 아닌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에게 세자를 책봉하는 등 세자빈 가슴에 대못을 박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엉뚱한 누명까지 씌워 폐서인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사약까지 내린다.
주요 등장 인물
민회빈(愍懷嬪)(소현세자빈) : 남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로 끌려가 있는 동안 농사를 짓고 무역을 해 돈을 모으고 남편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남편 못지않게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추진력도 뛰어난 여걸이었으나 못난 시아버지의 미움을 사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인조(仁祖) : 조선의 16대 왕. 서인세력을 등에 업고 인조반정을 일켜 숙부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서인 세력과 후궁 조소용의 치마폭에 파묻혀 지냈다. 재위 25년 동안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세 차레나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피난한 무능한 왕이자 맏아들 소현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손주들 까지 죽게 한 냉혈한자.
소현세자(昭顯世子) : 인조의 장자이자 17대 왕인 효종(孝宗)의 형. 병자호란 뒤 세자의 몸으로 세자빈과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 심양에 끌려가 8년 볼모생활을 했다. 심양과 북경에서 눈부신 서양문물을 접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려 했으나 귀국한 지 2달만에 이유도 알 수 없이 죽었다.
봉림대군(鳳林大君): 뒷날 17대 효종이 됨. 소현세자의 동생. 형과 함께 청나라에서 볼모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엔 형을 극진히 대했으나 청나라에 대한 시각차와 농사와 무역 등 바깥일에 나서는 세자빈을 못마땅해 하다 관계가 소원해진다. 형이 죽고 세자로 책봉된 이후(왕위에 오른 뒤에도) 형수와 조카들을 외면한다.
조소용(趙昭容) : 인조의 후궁. 과년한 나이에 지밀나인으로 궁에 들어와 인조를 치마폭에 위감은채 떵떵거린다. 세자빈과는 사소한 일로 견원지간이 돼 사사건건 헐뜯고 인조와 세자 부자간을 교묘히 이간질해 소현세자 일가족을 참화 속으로 밀어 넣는다.
뚜얼곤 :후금 누르하치의 9번째 아들. 청 태종 홍타이시의 이복 동생. 전쟁터에서 공을 많이 세워 어렸을 때 누루하치가 차기 황제 감으로 생각할 정도의 인물. 누루하치가 죽고 형인 홍타이시가 황제가 되지만 구왕으로서 보필을 함. 전쟁터에 선봉장에 서서 공을 많이 세우고 병자호란때 진두지위를 함. 청태종 홍타이시가 죽자 그의 아들 푸린을 황제로 등극 시키고 본인은 섭정왕(황)이 됨. 나중에는 황부가 됨. 뚜얼곤의 진두지휘 아래 청나라가 명나라 북경을 함락시키고 중원의 주인이 됨. 청제국의 기반을 닦아 놓는 역활을 함.
첫댓글 파일 잘 받아네요 시간 날때 읽어 볼께요
이글도 역시 슬픔이 아로새겨 있네요~~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과거를 알고 현재를 잘 살자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