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자전거 / 심병길
수학적으로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는 없다. 따라서 점은 면적이 없다. 면적이 없는 것은 붙잡지 못한다. 붙잡지 못하는 것은 쓰러진다. 점은 허상이며 현실에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원과 접하는 직선을 접선이라 한다. 원과 접선은 점으로 만난다. 둥근 바퀴는 지면과 접한다. 바퀴와 지면은 점으로 만난다. 면적이 없는 점은 땅을 붙잡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퀴는 쓰러진다. 그것이 쓰러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넘어지는 쪽으로 미리 쓰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때 허상은 현실이 된다. 구르는 바퀴는 쓰러지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 바퀴 두 개를 연결한 뒤 그 중심에 앉았다. 그가 바퀴를 굴리자 바퀴가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바퀴를 굴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힘껏 페달을 밟아 지나간 길 위로 삶의 고단한 흔적들이 묻어났다.
나는 땅거미가 어스름해지고 집집마다 굴뚝에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이면 집을 나섰다. 조그만 키에 긴 그림자를 매달고 나는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멀리서 자전거를 끌고 오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낮 동안 모든 힘을 언덕 아래에 쏟아부은 아버지는 자전거를 굴려 언덕을 오를 힘이 없었다. 아버지가 달려오는 나를 번쩍 안아 올리신다. 붉은 저녁해가 성큼 앞으로 다가서고 온 세상이 눈 아래로 내려선다. 아버지 손에 들린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다. 아버지가 나를 자전거 짐받이 위에 올리고 언덕을 오르신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 하나를 올려놓은 것이지만, 나는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오르시는 아버지의 넓은 등이 온 세상을 덮은 듯 푸근하기만 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 했다. 나는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를 가르치는 모든 아빠들이 그러하듯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붙들어주었다. 손을 놓으면 아이는 넘어졌다. 나는 아이가 포기하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넘어져도 계속 일어섰다. 결국 비틀대며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고 한 달쯤 지나자 혼자서도 자전거길 옆 공터를 몇 바퀴고 넘어지지 않고 달리게 되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면 나는 한강이 바라보이는 자전거길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강물을 바라보았다. 자전거길로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지나가곤 했다.
“아빠, 저 길로 가면 뭐가 나와요?”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전거를 타다 말고 곁에 서 있던 아이가 내게 물었다.
나는 자전거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여의도와 김포를 지나 강화와 인천까지 갈 수 있고, 동쪽으로는 팔당과 여주를 지나 부산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글쎄.” 하고 말했을 뿐이다.
아빠들은 모두 언젠가 한 번쯤은 아이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아빠, 이 길로 가면 뭐가 나와요?”
세상 모든 아빠들은 그 길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알고 있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글쎄.”
아이들은 자라면서 그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고, 그 후로 다시는 그 길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그늘진 무성한 수풀과 소쩍새 슬피 우는 그 길에 대해서는….
나는 오십이 되도록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어릴 때 한 번 배우려고 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몇 번 호되게 넘어지고 나서 자전거 배우는 걸 포기했다. 그렇다고 이제껏 살아오며 자전거를 못 탄다고 특별히 불편하거나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었다. 나는 걷거나 뛰었고 버스나 지하철을 탔으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대부분 운전을 하며 살았다. 사람들은 내가 다리가 두 개 달려 있으므로 당연히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게 자전거를 탈 줄 아냐고 일부러 물어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아이가 한강에서 길을 묻던 날 자전거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한밤중 집 근처 깜깜한 학교 운동장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먼저 안장을 최대한 낮추고 발을 땅에 닿도록 하여 발끝을 땅에 대었다 떼었다 하며 자전거를 굴렸다. 그렇게 중심을 잡는 연습을 며칠 한 후 발을 페달에 올리고 구르는 연습을 했다. 나는 넘어졌지만 계속 일어섰다. 이번에는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넘어지지 않고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 수 있게 되었다. 오십이 되어서였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한강 자전거길을 달렸다. 그러나 서쪽으로는 인천도, 동쪽으로는 양평도 가보지 못했다. 그저 출발점에서 조금 멀리 떠났다 곧 지쳐 다시 돌아오곤 했다. 더구나 아이는 자전거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주변에 넘쳐나는 나이여서 금방 자전거에 시들해졌다. 아이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도 않았고 나는 아이로부터 ‘이 길로 가면 뭐가 나와요?’와 같은 질문도 다시는 듣지 못했다.
그 뒤로도 나는 가끔 혼자서 자전거를 탔다. 접이식 자전거를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적당한 곳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꺼내 두어 시간쯤 타곤 했다.
언젠가 팔당전망대길을 지나다 남한강을 끼고 나 있는 자전거 도로를 발견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작은 공원도 있었다.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나 말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는 공원으로 건너가는 다리 양쪽으로 연꽃이 가득했다. 강을 따라 길게 난 자전거길 옆으로 황금빛 꽃들이 바람에 넘실대고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놀란 물새들이 화들짝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그날 자전거를 타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원에는 비를 그을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주변은 순식간에 몇 미터 시야만 빼고 온통 뿌옇게 변해버렸다. 나도 자전거도 금세 흠뻑 젖었다. 잿빛 하늘에서 그어 내려온 직선들이 사방에 촘촘하게 장막을 치면서 그것들의 두께가 세상의 풍경들을 지웠다. 나도 자전거도 빗속에서 풍경과 함께 지워졌다. 그러자 문득 내가 자전거를 돌리는 게 아니라 자전거가 스스로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저 페달 위에 발만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빗물이 길바닥에 부딪혀 튀어 오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빗길을 활주로처럼 미끄러지던 자전거가 물보라 위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어느새 구름 위까지 날아올랐다. 그때 멀리서 석양을 등에 지고 언덕을 오르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그리고 아! 아버지를 태운 자전거가 언덕을 넘어 하늘을 날았다. 그날 하늘은 온통 세상의 아빠들을 태운 자전거로 가득했다.
어느 햇빛 좋고 하늘이 유난히 파란 가을날, 아이가 자기와 닮은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 나를 찾았다. 조그만 아이가 햇빛 속에 쪼그려 앉아 들꽃이나 개미 무덤 같은 것을 구경하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물끄러미 소쩍새 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 곁으로 가만히 다가갔다.
“얘야, 여기도 있을 만해. 내 걱정하지 말고 세상 구경 실컷 하다 천천히 오렴.”
그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아이의 볼을 부드럽게 만지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