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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스님의 삶과 깨달음 2
대행은 자기 한 몸이라도 덜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난으로 힘들어 하는 엄마나 오빠를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 겠다고.
그러던 차에 대행에게 기회가 왔다.
대행은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영천에 사는 외할머니의 소개를 받아 어떤 집에 심부름하는 아이로 가게 되었다.
꼭 3년간이었다.
대행은 엄마 없는 아이를 업어 키웠다. 보수라는 건 아예 없었다.
하루 세끼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과 이제는 무서운 아버지도 없고 따라서 바깥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그것만이 보수라면 보수랄 수 있었다.
아직은 상수도라는 게 없던 때였다.
그 집안의 식수를 공급하는 임무가 아기를 보는 일과 함께 어린 대행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의 하나였는데, 그것은 마치 어린 토끼 새끼에게 드럼통을 안겨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대행은 군말 없이 물지게를 지고 우물가로 나갔다.
주인이 준 동전 한 닢을 손에 쥐고, 동전 한 닢에 물은 두 통이었다.
일본인 주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킨 소녀는 열 번도 더 쉬어야만 했다.
서툰 지게 솜씨 때문에 양동이의 물이 반쯤은 다 쏟아져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일곱 번이나 더 다녀와야 했다.
하루에 여덟 번씩 대행은 물지게를 지었다. 물을 흘릴 때마다 어지간히 머리통도 쥐어 박혔다.
한 열흘 쯤 지나 지게질에 익숙해지자 거의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되었다.
남의 집살이를 하며 겪은 고통은 이루 다 말 할 수 없었다.
참 많이도 울었다. 아기가 불쌍해 소녀 대행은 업고 자다시피했고 아기가 울면 안타까워 자기도 울었다.
그러나 주인은 아기한테 줄 과자를 대행이 먹었다고 구박하기도 했다.
한 겨울이면 찬물에 기저귀를 빨아 널어야 했다. 손이 얼어 터지기 일쑤였다.
3년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또 머지 않아 다른 집으로 가곤했다.
어린 나이에 회사 일을 돕는 급사가 되기도 했고 배가 고프다 고프다 못해 이름도 모를 남의 집 문전에 쓰러진 일도 있었다.
어떻게나 엄한 지 아버지 보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던 그녀는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미지의 존재한테 아빠>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맡기고 죽고 사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한 해 한 해가 흐르고 어느덧 대행도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결혼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풀어야 할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남아 있었다.
이미 아홉 살 때부터 자신을 위로하며 이끌어온 '아빠'는 이제는 스승으로서 가혹한 시련을 그녀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녀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과 모든 아픔을 다 겪게 할 모양이었다.
네가 죽어야 나를 보리라. '아빠'는 드디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죽어야 '아빠'를 본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 대행은 질문 아닌 질문에 매달렸으나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갈증은 점점 깊어졌다. 그녀는 목마르게 '참'을, '영원'을, '아빠'를 찾았으나 목마름은 적셔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한 번 나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인데 늙고 젊고가 따로 있겠는가. 어차피 이렇게 갈 거라면 차라리 그냥 가는 게 좋겠지?'
마침내 그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집을 떠났다. 그녀는 이제 '아빠'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를 셈이었다.
내가 죽어서야 그 참된 것을 볼 수가 있다면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었다.
정처 없이 걸었다. 마침내 절벽 위에 섰다.
발 아래로는 검푸른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아빠'의 가르침을 따라 이 세상을 여의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견딜 수 없는 절망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 무의 심연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예기치 못한 방해자가 나타났다.
시간을 잊은 채 강과 그녀가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흐름이 그녀였고 그녀가 흐름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었고 모든 것을 놓았으며 모든 것을 쉬었다.
흡사 돌덩이가 된 듯 그녀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에서는 아무런 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중추명월과도 같은 맑음이요 명경지수와도 같은 평화였다.
어찌해서 바로 그런 순간에 그 삼매의 깊은 체험이 그녀를 덮어버렸던 것일까.
'아빠'는 바로 나였고 나는 곧 '아빠'였던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도리를 그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꼬박 반나절을 거기서 선 채로 보냈나 보다.
그녀는 문득 법열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기쁨이었다.
이름 지을 수도 없는 충만감이 지극한 간절함과 함께 그녀의 내면에서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의 대행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제 그녀의 나이는 열 아홉이었다.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은 멀리 부산이었다.
부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고초의 연속이었다.
남못지 않은 일솜씨를 타고났던 그녀는 당시 미군이 주둔해 있던 근처에서 군복을 수선해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대행에게 최초의 물질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워낙 근면이 몸에 배인 데다가 친절했기 때문에 군복 수선의 일감은 쌓이고 쌓였다.
이듬 해 봄이 되자 그녀는 경제적인 면에서 제법 여유를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해가 바뀌고 이듬해 봄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자리에 앉자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낮이 조금 지나서 네 가게로 어떤 손님이 찾아 올게다.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사람이 찾아올 거야. 네가 아니면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고통스러워해줄 사람이 없어.
모든 사람들이 침을 뱉고 눈살을 찌푸리는 그 가여운 사람에게 네가 인정을 베풀 수 있겠니? 그리고 여자인 네가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겠어?"
대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빠'가 말하는 그 측은한 사람이 문둥병자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행은 속삭였다. "전 두려워 하지 않아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오늘 오후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는 한적한 오후, 허술한 판자집이 서 있는 곳을 돌아서 한 사내가 엉금엉금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에는 우그러진 중절모를 쓰고 있었고 몸에 걸친 옷은 걸레쪽처럼 해져 있었으며 신발은 없었다.
"어서 오세요." 대행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사내는 피고름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사내의 얼굴은 일변 썪어 터지고 있었고 일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채 아물어가고 있었다.
눈썹이 없다. 한쪽 눈에서는 피고름이 흐르고 있다.
비틀어진 입 때문에 무어라고 중얼거리기는 하지만 그 소리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한쪽 손은 몽둥이처럼 문드러져 손가락이 없었다.
"저, 저, 저..."
"말씀하세요. 옷이 아주 험하게 됐군요."
"사실은 그게... 제 옷을 좀 누벼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좀 죄송해서... 돈도 없어요..."
"거기 좀 앉으시겠요? 제가 갈아 입을 옷을 한 벌 드릴테니까요."
대행은 우선 집히는 대로 남자 옷 한 벌을 집어 사내에게 준 뒤 사내의 갈갈이 찢긴 옷에 천조각을 대어 옷을 누비기 시작했다.
한 시간 쯤 걸렸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사내가 와 있는 동안에는 아무 다른 손님이 찾아오지를 않았다.
다만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무심코 안을 들여다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도망쳐 버렸다.
"아가씨는... 천사로군요..."
누비고 기워서 이젠 새것처럼 된 옷을 갈아 입고 나서 사내는 중얼거렸다. 그 이상은 입을 떼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 왔던지 사내는 얼굴 근육을 힘겹게 씰룩거렸다. 아마도 감동을 참는 것 같았다.
그의 눈에서는 피고름이 섞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서 가 보세요. 꼭 병 나으시고요."
"......"
대행은 집히는대로 군인들이 수선대금 대신 두고 간 피엑스 물품 중에서 통조림들을 싸서 그에게 건네 주었다.
사내는 그녀를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는 천천히 그곳을 떠났다.
대행은 그날 하루가 다 가도록 우두커니 앉아서 그 측은한 사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병... 병... 병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러나 그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모든 존재의 본질적 고통을 또 다시 절감한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고통을 극복하는 길을 따라서 걸어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병마에 시달리고 굶주리는 모든 이들이 또다른 나요, 대행이었다.
얼마만큼 돈이 모였을 때 그녀는 허술한 식당 하나를 인수하였다.
그녀는 배고픈 것의 서러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부둣가에서 하역작업을 하며 생활을 영위해 가는 순박한 노무자들을 보며 그녀는 그들의 아픔, 아니 세상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꼈다.
식당 이름은 '낙원'이었다. 그녀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주변의 어려운 노무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고단한 육체 노동을 하는 그들이 국밥 한 그릇을 먹어야 할 것인지 먹지 않고 참아야 할 것인지를 망설이고 있다고 느끼자 그녀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무자들은 차츰 대행의 사심 없는 호의에 응해 오게 되었다. 낙원 식당은 차츰 그들의 아름다운 생활 근거지가 되었다.
훈훈한 인정이 오고가는 그 식당에서 대행으로서는 오랜만에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식당 일을 돕는 포항 아주머니 내외분도 신바람이 났다.
점심 식사 시간이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수십 명의 노무자들이 식당으로 몰려 들어오면 식당은 금방 즐거운 소란 속에 파묻히곤 했다.
그 속에서 대행은 몸이 피로한 줄을 몰랐다. 그러나 대행이 직접 식당을 경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가끔씩 식당에 들렀을 뿐 식당일을 포항 아주머니 내외분한테 맡기고 자신은 계속 수선소를 맡아 일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선 일은 물론 식당일 또한 대행의 길은 아니었다.
그녀는 고작 몇십 명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면서 만족해 할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이었다.
번개 같이 그녀의 뇌리를 치는 무엇이 있었다.
그렇다. 물질로 베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게 베푸는 것이 참된 베풂이다.
마음의 묘법을 통해 무위의 행을, 무주상 보시를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베풂이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방한암 대선사!
#묘공대행선사(한마음선원)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