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작 '백년의 고독'이 지난 11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적지 않은 이들이 상당한 수작으로 꼽고 있다. 추운 겨울 방안에 틀어박혀 마술적 리얼리즘이 엮어내는 방대한 내러티브에 고혹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국 BBC 트래블은 16부작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의 절반이 공개된 뒤 일주일 쯤에 원작자에게 부엔디아 가문이 세운 도시 마꼰도(Macondo) 등에 영감을 준 도시들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1967년 처음 출간돼 40여개 언어로 옮겨졌고 5000만 부가량 판매된 20세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원작인데 원작자가 영화화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부엔디아 가문의 일곱 세대에 걸친 방대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어떻게 담아내겠느냐고 걱정했던 것이었다. 그가 2014년 타계하자 두 아들이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어 시리즈 제작을 허용했다. 두 조건을 달았다. 콜롬비아에서 촬영하며 스페인어로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모두 16부작으로 제작되는데 이번에 절반이 먼저 공개됐다. 영어를 쓰는 배우가 등장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낯익은 배우가 없어 캐릭터와 스토리에 그만큼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방대한 분량을 소화할 수 있으며 난해한 마술적 리얼리즘에다 막대한 제작비까지 쏟아부을 수 있는 넷플릭스와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 같기도 해 보인다.
가공의 마을 마꼰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원작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콜롬비아 북부 아라카타카(Aracataca) 마을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인정했다. 그곳 말고도 콜롬비아 북부 막달레나, 라 과히라(La Guajira) 지방 등이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BBC 기자는 콜롬비아의 카리브 연안을 구석구석 여행하며 판타지와 실재가 모호하게 뒤섞인 이 작품이 투영돼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광활한 늪지, 마꼰도 창립자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찾아 해메다 도시를 세우게 했던 푸른색 물(바다), 끝 없는 바나나 경작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만년설, 타는 듯한 저녁 놀, 별들이 반짝이는 시커먼 밤하늘, 그러다가도 강렬한 태풍, 무려 5년 가까이 지속된다고 작품에 묘사된 엄청난 폭우 등이 제법 그럴 듯하게 다가오는 풍광이란 것이다. 마르케스 스스로 한때 "카리브 연안의 리얼리티는 거친 상상과 닮아 있다"고 했다지 않은가?
Aracataca
마르케스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이드 도날 라모스는 위대한 작가가 1927년 이 집에서 태어났으며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조부모와 살았다고 안내했다. "아주 활동적인 아이였는데 이곳에만 오면 조용해졌다고 해요." 할아버지 작업실에 선 채로 그 가이드는 "할아버지가 작은 물고기를 만들면 가보(마르케스의 어릴 적 애칭)는 그림을 그렸대요"라고 말했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만들던 금 물고기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할머니는 1세대 안주인 우르술라 이구아란처럼 동물 모양 양초를 만들곤 했다. 라모스는 원작 소설의 제목이 처음에는 'The House'였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그만큼 풍부한 얘기들이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는 아울러 "모든 캐릭터들이 경험했던 영원한 고독이" 작품의 원동력이 됐음을 강조했다.
이 도시의 기차역에서는 마꼰도를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고 한 여성 주민은 말한다. 열차 행렬이 지나갈 때 나비들이 휩쓸려 날아가는 장면은 그런 느낌을 극대화한다. 책에서 마르케스는 마꼰도에 현대 문물이 들어오는 것을 상징하는 장치로 열차가 통과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바나나를 가득 실은 120대의 열차 차량들이 "저녁 내내 통과했다"고 적었다. 아라카타카에서도 한때 승객과 바나나를 실어 날랐던 쳘도는 오늘날에는 화물만 운반하는 단선 철도만 이용한다. 하지만 지금도 주민들이 벤치에 모여 앉아 열차가 지나가며 나비들을 몰고 사라지게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 도시의 중앙 광장은 시몬 볼리바르를 기리는데 여인들이 카트를 끌며 음료들을 팔고 있었다. 근처의 주민들은 마르케스가 '투르크인 거리'라 부른 곳의 층계참에서 쉬고 있었다. 이곳은 중동 이민자들이 상품을 팔곤 하던 마꼰도의 상업 허브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면 일제히 달려나와 강물에서 멱을 감는데 바닥에는 마르케스가 "선사시대 계란들"과 같다고 썼던 닳은 돌들이 널려 있었다.
여느 사업체든 마꼰도 이름을 붙였고, 마르케스 벽화가 넘쳐났다. 도서관과 호텔 객실도 소설 캐릭터 이름이 붙여졌다. 이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를 담은 그림과 동상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Ciénaga
아라카타카에서 북쪽으로 60km를 달리면 이 도시가 나오는데 카리브해의 바닷가를 품은 매력적인 곳이다. 20세기 초에 바나나 수출항으로 각광을 받아 돈이 넘쳐나던 곳이어서 거리가 모두 포장돼 있고 자갈이 깔려 있다. 하지만 시에나가는 소설의 절반 이후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나온다.
1928년 유나이티드 프론트(The United Fruit Company) 직원들이 더 나은 노동 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벌였는데 콜롬비아 군에 학살당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됐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어 추정될 뿐인데 마르케스는 소설에다 단 한 명만 살아 남았다고 묘사했다. 현지 가이드 겸 화가인 예이네르 멘도사는 이 도시의 옛 역사에 세워진 마체테(정글 칼)를 든 바나나 일꾼 동상을 가리키며 "자유의 프로메테우스로 불린답니다. 마르케스가 소설에 묘사한 일은 콜롬비아에서 바나나 학살로 알려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나중에 멘도사는 시에나가의 화려한 메인 광장 건너편, 1902년 천일 전쟁 동안 화재로 파괴된 산 후안 바우티스타 교회를 가리켰다. 그는 "교회가 보수당에 의해 파괴되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나중에 재건하는 장면으로 되살아났다"고 설명했다.
다분히 식민 시대와 공화정 시대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시에나가란 이름은 사실 "늪"을 뜻한다. 이 도시 옆에는 유네스코 생물보호지역인 Ciénaga Grande de Santa Marta와 콜롬비아 최대 늪지를 갖고 있다. 멘도사는 "마르케스는 (시에나가부터) 횡단해 바란퀼라 도시를 향해 여행하곤 했다. 당시에는 고속도로가 없었다"면서 "그리고 그렇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집시 캐릭터 멜키아데스가 헤쳐 나온 커다란 늪을 건너는 식으로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Riohacha와 La Guajira
카리브해 연안을 따라가면, 버스들은 1525년 콜롬비아 최초의 스페인 정착지가 세워진 산타 마리아 시로 들어간다. 그 시를 벗어나면 이 나라의 북단 끝이 나온다. 라 과히라 지역은 바지런한 핑크 플라밍고 무리와 푸른 바다, 골든 비치, 갈색 사막, 소금 평원 등을 거느리고 있다.
라 과히라는 백년의 고독이 정말로 시작하는 곳이다. 마꼰도를 세우기 전, 소설의 캐릭터들은 라 과히라에 있는 그들의 집을 떠났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친구를 살해하고 달아났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새 출발을 원하고 있었다. 마르케스 본인 이야기 역시 이 곳에서 시작했다. 새 땅에서 모두 새롭게 시작한다는 주제는 부분적으로 그가 어릴 적 조상들로부터 들은 얘기, 라 과히라의 가장 큰 도시 리오하차(Riohacha)에서 아라카타카로 옮겼다는 얘기에 근거한 것이다.
리오하차는 부모의 신혼여행 때 마르케스가 잉태된 곳이다. 어릴 적, 할머니는 그에게 그 도시와 라 과히라에 대한 환상적인 얘기들을 들려주곤 했다. 인류학자이며 리오하차 주민인 와이들러 구에라는 마르케스가 소년일 때 조부모, 어머니와 함께 리오하차를 방문했으며 나중에 그는 "씨 찾기 여정"이란 식으로 묘사했는데 그는 소설에 넣을 때 빌려와 윤색을 했다고 설명했다.
구에라는 해적들의 습격과 이 도시가 수호 성인인 누에스트라 세노라 데 로스 레메디오스에게 바쳐진 것을 얘기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리오하차에서의 해적 습격은 상세히 소설에 소개됐고, 가장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레메디오스이다.
리오하차는 마르케스 부모의 결혼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줬던 성직자의 고향이기도 한데 그가 공중 부양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구에라에 따르면 이 성직자는 소설에서 핫 초컬릿을 마시면서도 공중으로 부양하는 니까노르 레이나 신부 캐릭터에 영감을 제공했다.로 살아났다.
리오하차와 라 과히라는 더 넓게는 이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와유(Wayúu) 인들의 고향이다. 부엔디아 가문을 위해 일하는 비시따시온과 까타우레가 대표적이다. 마르케스는 아라카타카에서 조부모와 살았는데 그 집 하인들도 와유 족이었다. 마르케스는 어린 시절 와유나이키(Wayuunaiki, 와유족 언어) 단어를 몇 개 배웠고, 소설에 등장하는 두 어린이 아라만따와 아르까디오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전에 와유나이키를 배운다.
본인도 와유 족인 구에라는 토착 캐릭터들을 포함시킨 것이 문화적 풍부함을 더했다고 말했다. "비시따시온과 까타우레는 수면 역병과 우주론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면서 꿈들은 영적 세상에 다리를 놓고 현실을 예측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마르케스가 2014년 멕시코에서 숨졌을 때,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연안에서 추출한 마법이 그의 저술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때 "리얼리티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내 모든 작업에 단 한 줄도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