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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9-13>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유대인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9절 첫 부분에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이처럼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당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지요. 절대 다수인 유대인들이 휘두르는 횡포 앞에서 절대 소수인 기독교인들은 별 저항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해야 하는 일이 빌라델비아 교회에서는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은 어제 읽었던 8절 말씀에서처럼 소수의 작은 능력인데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켰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진실한 믿음의 길을 인내하며 걸어갔던 거죠. 사도요한은 이 점을 칭찬하면서 이제 때가 되면 너희를 괴롭혔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몇 명이 너희 발 앞에 절하면서 나 예수가 너희를 사랑하는 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것은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풍요롭거나 화려하거나 편안하거나 소원대로 이루어 지는 것에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 무시당하고 박해당하고 조롱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참고 인내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변함 없는 믿음의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것에서 나타났고, 그래서 이들을 박해하던 유대인들 중 몇 명이 오히려 이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 유대인들이 너의 발 앞에서 절하고, 예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 기적 앞에서 사람들이 많이 머리 숙였지만 예수님 십자가 죽음을 진두지휘했던 로마 백부장은 예수께서 참혹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모든 과정을 다 보고 난 후에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지요.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권능은 반드시 풍요롭고 화려하고 형통하고 기쁜 곳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오히려 나타날 수도 있고,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유대인들에게 박해와 고통을 당할 때 그 상황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는 유대인 중에 이처럼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 앞에 절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즉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될 필요도 없고, 더 높은 직분을 가질 필요도 없고, 더 강해질 필요도 없지요. 본문의 표현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변함없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주님을 떠나지 않는 꿋꿋함 속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0절에 이런 말씀이 이어지고 있지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위기나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주님의 말씀과 뜻을 지켜갈 때에 주님께서도 우리를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실 때, 즉 주님 다시 오시는 최후의 심판 때에 그 심판에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까지 말씀하고 계시지요.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 즐겁고 기쁘고 보람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누가 나를 괴롭히거나 내가 어떤 시험에 들었거나 잘 걸어오던 믿음의 길, 봉사와 헌신의 길이 어떤 이유로 인해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해서 나의 믿음이 변질되거나 믿음의 자리에서 떠날 위험이 있을 때,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신뢰하면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과 헌신과 진리의 삶을 변함없이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1절에서 예수님은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고 계시지요.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가고 있는 믿음의 길, 내가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봉사와 헌신과 섬김의 길이 하늘의 면류관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면 다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하늘의 면류관을 소망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왔고 봉사와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왔다면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삶을 포기해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속히 오신다고 말씀하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붙들어 오던 믿음과 헌신과 섬김을 굳게 잡으라고 권면하십니다.
12절에서 끝까지 잘 인내해서 이긴 자들에게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약속하고 계시지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 있는 기둥처럼 영원히 안전하고 든든하고 굳건하게 서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게다가 그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이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말씀하지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이름이 나에게 온전하게 새겨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최종적인 목표가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성전의 기둥 같이 하나님 나라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내 몸과 마음과 삶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영광과 사랑과 평화의 이름이 확실하게 새겨져서 그 예수님과 영원토록 살아가는 것,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믿음의 최종적인 목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가운데 여전히 역사하시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