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a schola alba est.”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이 문장은 “첫 수업은 휴강이다”라는 뜻입니다.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보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저를 쳐다봐요.
다시 한 번 “수업이 끝났습니다. 첫날 수업은 이걸로 휴강입니다”라고 확실히 말해주면 그제야 얼굴이 환하게 바뀝니다.
그리고 신나게 강의실 밖으로 나가며 한 마디씩 합니다.
“역시 명강의야!”
"지금 바로 나가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세요. 봄날의 아지랑이는 강한 햇살을 받은 지면으로부터 투명한 불꽃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르기 때문에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_<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중에서 |
이 수업의 과제는 ‘데 메아 비타De mea vita’를 A4 한 장 분량으로 적어내는 것인데요,
‘데 메아 비타’는 ‘나의 인생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몇몇 학생들은 이 과제에 대해 어느 시기의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묻곤 합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써야 할지, 꿈꾸는 미래에 대해서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쓴다는 게 그저 막막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제의 목적은 그 질문 자체에 있습니다.
바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조우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는 것이니까요.
어느 시기의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죠.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에 대해 분석해주는데,
이때 글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시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학생들의 글을 보면 문장의 시제가 대부분 과거시제입니다.
아마도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내일은 불명확하고 오늘은 이야기하기 애매한, 그런 생각이 반영되었을 거예요.
인간은 오늘을 산다고 하지만 어쩌면 단 한순간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와 오늘을 비교합니다.
미래를 꿈꾸고 오늘을 소모하죠.
기준을 저쪽에 두고 오늘을 이야기합니다.
그때보다, 그때 그 사람보다, 지난번 그 식당보다, 지난 여행보다 어떤지를 이야기해요.
나중에, 대학 가면, 취직하면, 돈을 벌면, 집을 사면 어떻게 할 거라고 말하죠.

10대 청소년에게도, 20대 청년에게도, 40대 중년에게도, 70대 노인에게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고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이에요.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교수님은 ‘나의 삶에 대해’ 자유롭게 써보라고 하셨지만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뭘 하고 싶은지,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간 순서대로 지나온 날들을 떠올려봤습니다. 내가 자라온 시골 동네, 부모님과의 관계, 어린 시절 느꼈던 외로움 등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의 매듭을 발견하고 풀며 많이 울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과제는 마음의 치료 과정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삶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 제자 박민정
‘이게 과연 내 인생인가?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뭐라고 생각해왔지? 나는 어떤 인생을 바라는 걸까?’ 멈춰 있던 머릿속 태엽이 갑자기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살아온 지난날이, 당시에 바랐던 크고 작은 소망들이, 저를 억눌렀던 여러 사건들이, 그로 인해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초라한 모습이, 그리고 제가 바라고 있던 이상과 불안했던 마음들이 모두 하얀 종이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저만의 ‘데 메아 비타’를 쓰고 나니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쫓기듯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던 저 자신이 처음으로 스스로의 인생과 솔직하게 조우했던 순간이었습니다. - 제자 황예린
출처 / 교보문고 K북캐스트
5년간 수많은 대학생과 청강생들에게 사랑받은 서강대학교 한동일 교수님의 인생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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