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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와진실 원문보기 글쓴이: 단 천
광개토 태왕의 문벌책(文伐策)과 계몽운동가 이해조
진정한 자주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의 자주', '가치의 자주'가 선행되어야 한다
광릉21포럼 회장 김창호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이날 있었던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던 미국의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테러사태는 세계 여러 나라에 무력보다도 더 강한 힘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후 헌팅턴의 '문명의 출동'과 그의 논지를 비판한 뮐러의 '문명의 공존' 이라는 책이 주목 받았다.
하지만 당시 필자가 주목한 것은 미국의 시스템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이나 미국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영토를 가진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테러를 당하면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영토도 작고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시스템으로 세계 여러 나라와 경쟁하는 것은 시행착오만 계속하며 열강의 들러리 노릇만 반복할 뿐이다.
이제 우리나라에 맞는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자랑하고 싶고, 가장 큰 나라를 가졌던 시대가 광개토 태왕의 시대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개토 태왕이 등극하기 전 고구려가 고국원왕이 백제의 침공으로 평양성에서 전사하고 연나라의 침략으로 왕성이 함락되어 미천왕의 시신이 끌려가고 주국모(朱國母)까지 납치를 당하는 치욕을 겪을 정도의 위기시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광개토 태왕이 등극한 시기도 선대왕인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이 국가체제를 크게 개혁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민심은 분열되어 있었고 중국의 5호16국 시대라는 용어가 말해 주듯 국내외의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때에 광개토대왕은 혼란이 거듭되는 국·내외의 정세를 일사불란하게 수습한 뒤에 민심을 하나로 모아 고구려를 당대의 제일국가로 만들었다.
그 처럼 어려웠던 혼란을 수습하고 고구려를 당대 제일국가로 만든 광개토대왕의 정책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고구려의 건국 설화인 주몽설화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주몽이 천손 이라는 것에 주목하나 우리는 동명성왕이 부여왕의 마구간에 마정(마굿간지기)으로 있었으나 활솜씨와 뛰어난 지략으로 천하를 도모하려고 탈출했다는 내용에 주목해야한다.
결국은 마굿간지기였던 주몽이 천손의 나라인 조선의 부흥을 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 것으로 정리해야 옳을 것이다. 임금이 마정이었다는 설화를 내세워 백성들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었고, 후대 제왕에게는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시조가 마정이었다는 사실의 설화는 고구려의 제계층을 통합으로 이끌어 왕이나 왕족이라 할지라도 창칼을 들고 국가의 간성구실을 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사회로 만들었다.
을파소와 온달장군의 예에서 보듯 고구려의 명상과 명장은 농부나 마부출신이다. 더욱이 한반도내 한족들의 거점이었던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미천왕은 소금장수 출신이었다. 이는 고구려의 시스템이 주몽설화의 지표를 충실히 따랐음을 나타내며 광개토대왕도 이를 충실히 따랐다. 고구려 사회는 출신과 배경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구조였던 것이다. 한편 마구간지기를 거치지 않거나 노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국가지도자가 되거나 관료로 발탁될 수 없는 사회였다.
광개토 태왕은 소수림왕의 아우였던 아버지 이련(후에 고국양왕)이 왕제(王弟)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외세의 위협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장군의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장졸과 장군으로서 백성에게 헌신하였다. 광개토 태왕의 부왕 고국양왕은 소수림왕의 아우로서 군중의 장군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광개토 태왕은 왕도가 아닌 장상이나 서민들이 받는 경당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궁중이 아닌 백성과 함께 생활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어느 누구 보다고 백성들의 고초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광개토 태왕은 군중과 백성들 틈에서 문·무와 공상적인 이론뿐만 아니라 체험을 통해 피부로 와 닿는 실증적인 현장학습을 경험했다. 태자로서 동서 남북으로 출정하여 천군만마(千軍萬馬)중에서 동거동락을 하며 수년을 보낸 뒤에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더욱이 왕위에 오른 후에도 왕위의 존엄한 권위를 돌보지 않고 병사와 더불어 산야를 누비며 침략군을 막았다.
고구려의 설화와 광개토 태왕비, 중원 고구려비, 무용총 벽화와 덕흥리 벽화 등을 보면 고구려의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기의 나라를 물려받은 광개토 태왕이 당대 제일국가를 만든 정책은 일과 노동을 권하는 설화를 통해 국가의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앞선 문화를 통해 주변나라를 제압하는 문벌책(文伐策)이었던 것이다. 시조가 말똥치던 마정이었다는 설화를 통해 장군이나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말똥을 치우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는 사회 구조로 합의 되었기에 백성들의 자발성를 이끌어 내어 당대 제일국가를 만들었던 것이다. 말똥치던 사람이 서로 크게 유익케 해서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지향하며 문벌(文伐)했기에 정복의 대상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고구려의 깃발 아래 천손의 나라로 통합 된 것 이다.
오늘의 국가 위기 극복 방안도 허황된 낙원을 지향 하기 보다는 말똥 치는 일, 노동을 권하는 문학과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김구 선생님의 소원은 대한 독립 이었다고 한다. 『단순한 독립이 아닌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우리나라에서 먼저 실현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민족의 장래는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홍익이념을 가졌던 고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거느리며, 2000년 이상 안정된 복지사회를 이루어 나갔으며 후일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이념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러한 홍익이념의 개혁정책은 칼자루를 휘둘러 강압적으로 변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비단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안아 아무 저항 없이 스스로 변하도록 하는 「자정작용」이어야 하며, '융단폭격'식 개혁이다. 이러한 개혁은 문화적인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우리가 가까운 역사공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분은 이해조 선생이다.
이해조 선생은 100년전 일본제국주의가 침략의 칼날을 드세우고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 할 때, 신문화 운동과 민중계몽운동에 앞장서 당시 한자문화와 유교적 사회제도를 한글생활문화와 홍익이념의 사회제도로 복원시키려 했다. 많은 사람은 이해조 선생을 「자유종」이라는 신소설을 쓴 소설가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조 선생은 인조의 셋째아들 되시는 인평대군의 10대손으로 왕족출신의 기득권을 포기한 개혁 사상가이며, 민중계몽운동가이다.
1907년 대한협회와 1908년 기호흥학회 등의 사회단체에 참여하여 신학문을 소개하며 민중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한글만을 사용한 제국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며 민족언어의 발전에 기여하며 국권회복을 위해 무능한 정부와 관리의 부패 및 일본세력의 내정간섭과 국권침탈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우리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신소설 「자유종」은 봉건제도에 비판을 가한 정치적 개혁의식이 뚜렷이 담긴 작품이다. 특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신교육의 고취, 사회풍속의 개량 등 개화의식이 두드러져 있다. 형식면에서는 토론소설로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상호존중의 사회 분위기를 진작시키려는 뜻도 담겨있다. 「춘외춘」, 「구의산」, 「화사계」, 「원앙도」, 「봉선화」 등의 작품들도 봉건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 여권신장, 개가문제, 신교육, 미신타파 등 새로운 근대적 의식과 계몽성을 담고 있다. 더욱이 「화의혈」, 「탄금대」, 「빙공착영」, 「소학령」 등은 사회계몽이라는 도덕적 기능과 소설의 오락적 기능에 대한 동시적 인식 등은 근대적 문학관을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
문학평론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이해조 선생의 작품 「자유종」에 대해 누구를 계몽하고 싶은 의욕이 넘치다 못해 더욱 자유롭지 못하게 쓴 소설이 「자유종」이라는 혹평을 하는 이도 있다. 또한 소설가는 해결사가 아닌 까닭에 해결의 열쇠가 작가에게 있는 추리 소설에서도 막판의 해결을 독자에게 맡기기 예사인데, 이해조 선생은 오히려 작가가 누구를 계몽하고 싶은 의욕이 넘치다 못해 구성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옳은 것을 찬미하고 잘못을 풍자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려는 뜻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소설과 문학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작가는 한 시대를 이야기하고, 한 시대의 모순을 찾아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오늘과 같은 혼란과 혼돈의 시대에 새 시대의 지평을 여는 지혜를 이해조 선생님의 신문화 운동과 찾아보면 어떨까? 지금 우리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선생께서 쓴 소설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사를 주도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지도자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처럼 문벌책(文伐策)을 쓰며, 국가전략을 문화에 두어야 한다. 작가들은 이해조 선생님처럼 사회에 자정작용이되는 융단폭격을 가해야 한다. 독일이 세계사를 이끄는 주요국가로 등장한 것도 괴테의 등장이 있고 나서다. 괴테문학은 "눈물로 씨 뿌리지 않고 밭이랑에 물을 주지 않고서야 풍성한 알곡들을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풍성한 알곡들을 거두는 신비한 세계를 아무런 댓가도 없이 얻을 수는 없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 또다시 말똥치는 일을 권하는 주몽설화처럼 존경받는 부와 귀함의 시작은 노동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권하는 문학을 통해 우리사회를 자정시킨 뒤 인류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문벌(文伐)을 떠나자. 세계 인류사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모습도 멀지 않은 바램이 될 것이다.
진정한 자주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의 자주', '가치의 자주'가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한 자주와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의 자주', '가치의 자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희 장군이 강동6주를 회복한 것처럼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닌 문화의 힘으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고구려와 대진국의 고토를 찾는 것이었다. 지난 1세기는 갈등과 충돌의 제국주의 문명이 지배했다면 미래는 상생과 평화의 홍익문명시대로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원하는 길을 가야 한다. 지금은 늦다고 해도 인생은 길게 내다보고 높게 살아야 한다.
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는 노년의 운허(도선 대사와 무학 대사를 잇는 현대사 속에서 최고의 학문을 가진 스님) 큰스님께 “어느 세월에 그것을 다 번역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운허 큰스님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들려 주며, ‘어떤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법이며 혹여 내가 못하면 내 제자가 이것을 반드시 이룰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운허 큰스님이 광복후에 독립운동가에서 교육운동가로 헌신한 뜻이 이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진 재능을 살려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면 충분히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이 뜻한 바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돈과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의지가 없고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것도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지만 희망을 찾다보면 희망은 보이게 마련이다. 사람이 죽으면서 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재능을 살려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면 반드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
한 사람의 바램은 단지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국민 개개인이 나서면 현실이 된다. 국가와 언론이 바뀌지 않는다면 생각을 바로 하고 있는 국민이 스스로 바꿔 나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땀 흘리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땀 흘리는 사람이 행복할 권리가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 스스로 주변의 인재를 발굴하고, 이웃에게 추천하고 소개하면 된다. 그것만이 우리 겨레가 살길이며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과 인류의 번영시대를 여는 길이다. 단지 한 사람의 생각은 이상일지 모르지만,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생각을 모아 실천하면 현실이 된다.
나 부터의 실천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의식혁명을 이룰 때,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도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이것이 고조선, 고구려, 대진국,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광개토대왕시대와 같은 진정한 자주와 독립을 이루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