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산책길
십이월 중순이다. 올 겨울 들어 며칠 첫추위가 닥쳐 몸이 움츠려졌다. 이후 기온이 조금 풀리나 싶더니 둘째 주중 화요일 낮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정기고사 기간 첫날이라 오후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같은 부서 동료들과 학교에서 멀지 않은 시티세븐 상가로 나가 점심을 함께 들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정규 교사는 부장과 나뿐이고 너머지 네 분은 기간제나 시간 강사들이었다.
식후에 우산을 받쳐 들고 반송시장을 거쳐 집까지 걸었다. 오후 자투리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옷차림을 바꾸어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나서 남산교회 앞을 지나 퇴촌삼거리로 갔다. 우람한 가로수 메타스퀘어는 갈색으로 물들었다가 새털 같은 잎들이 떨어지는 즈음이다. 메타스퀘어는 연녹색 잎이 돋을 때는 싱그러웠지만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나는 모습도 운치가 있었다.
사림동 주택가로 건너가 사격장 방향으로 올랐다. 교육연수원을 지나 창원대학 북문으로 들었다. 생활관 앞 연잎이 시든 청운지는 수면이 고요했다. 가장자리엔 깃이 하얀 거위 한 쌍이 부리를 맞대 부비며 귀엽게 놀았다. 경영대학과 사회대학 앞을 지나니 젊은이들은 간간이 오갔다. 활엽수가 많은 캠퍼스는 한때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다웠는데 낙엽이 져서 나목이 되어 있었다.
예술대학 앞에서 공과대학 앞으로 갔다. 가늘게 내리는 빗속에 산책하기 알맞은 캠퍼스였다. 대학 구내 곳곳엔 대학인들의 현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플랜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아니고 직원들의 의견 표출이었다. 교수회의에서 사무직원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는데 대한 불만인 듯했다. 대학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 몫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힘겨루기로 비쳐졌다.
동문으로 나갈까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갈까 잠시 망설였다. 역으로 올라 용추계곡 입구로 들어가도 되겠으나 저녁에 약속된 자리가 있어 늦을 듯해 마음을 거두었다. 동문으로 빠져나가 경남경찰청 앞을 지났다. 노변에는 도내 각 시군에서 온 버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어 도청 별관에서 나오는 늙수그레한 아주머니들이 나타났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쭈니 자원봉사자들이라 했다.
도청 뜰은 내가 가끔 들리는 산책코스 가운데 하나다. 거기는 경상남도 지도 모형의 연못이 있다. 가장자리 물억새와 갈대들을 시들어 있었다. 능수버들도 잎사귀를 다 털고 가는 줄기만 드리워져 있었다. 매실나무는 가볍게 내리는 겨울비에 가지마다 투명한 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이른 봄 화사한 꽃을 피웠을 산수유나무는 선홍색 열매를 달고 있었다. 직박구리가 몇 마리 찾아왔다.
도청 정문에서 중앙로를 걸어 용지문화공원으로 갔다. 달포 전 단풍이 물들었을 땐 보도에는 낙엽이 수북했던 거리였다. 공원의 시든 잔디는 빗물을 함초롬히 머금고 있었다. 용지호수 곁으로 가보았다. 소나무 사이로 너른 호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위쪽에서 내려 본 용지호수는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하는 듯했다. 나처럼 빗속에 우산을 받쳐 쓰고 산책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내가 지인과 약속한 장소로 가기 전 들여야 할 곳은 시내 할인매장이다. 어둠이 내리는 거리는 네온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제와 청소포를 사기 위해서였다. 시청을 돌아가는 모퉁이 노란 꽃을 피운 털머위가 눈길을 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할인매장에 들어 용무를 보고 다시 용지호수로 왔다. 수면 위 까만 쇠물닭이 부지런히 헤엄쳐 다녔다.
호숫가 산책로를 걸어 내가 사는 동네 근처로 갔다. 이웃 아파트단지 상가 횟집으로 들렸다. 교장으로 퇴직한 분으로부터 얼굴을 뵙자는 연락이 와 정한 자리였다. 주남저수지 인근에서 터 잡아 사신지 오래된 분이다. 나와 교류가 있는 한 친구도 동석하게 되었다. 모처럼 뵌 교장은 현직을 떠난 지 몇 해 지나는데도 아주 정정했다. 해가 바뀌기 전 서로 건강을 다짐한 잔을 들었다. 18.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