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75%를 소비하는 포털, 책임은 ‘나 몰라라’…문제 있다
(입력: 서울대총동창회보 547호/2023.10.15)
이동관 (정치76-81) 방송통신위원장
가짜뉴스 온상 SNS, 포털 자정 기능 강화
KBS, 공영방송 목적에 맞게 ‘재건축’
언론지형 공정하게 바로잡았다는 말 듣고싶어
고사직전 토종OTT 아끼지 않은 지원
대담: 신예리 (영문87-91)
전 JTBC 교양팩추얼본부장(현 자문역)
지난 8월 28일 제9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취임한 이동관 동문. 국정 감사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쪼개 총동창신문과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총동창신 문 논설위원으로 봉사한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홍보수석 등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대외협력 특보를 거쳐 방송통신위원장까지 맡게 된 그의 행보에 많은 이들의 눈길이 쏠려 있다. 10월 11일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 동문을 만나 포부를 물었다.
-임명되기까지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쉽지 않은 청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미리 예상하셨을 텐데 방통위원장이 꼭 돼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솔직히 안팎의 반대가 많았죠. 대처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돌파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폭 문제나 언론 장악 의혹에 대한 오해를 풀 자신이 있었어요. 대통령께서도 이해하시고 격려해주셨고요. 인사권자의 임명 의지가 강해서 제가 못 하겠다 안 하겠다 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꽃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미디어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더 커 졌습니다. 선거에 이겨서 의회의 구도를 바꾸는 것 못지않게 미디어 생태계의 지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겠다는 위기의식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죠. 힘들겠지만 나중에라도 ‘이동관이 언론 지형을 공정하게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를 듣 는다면 그 어떤 자리보다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겠다는 포부이신데,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도 각기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죠. 특히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외국계 기업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의 경우 방통위에서 규제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나요?
“사각지대라고 볼 수 있죠. 통상 마찰 문제까지 있어서 사실상 그동안 방치돼 있다시피 했습니다. 다행히 최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그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는 글로벌 컨센서스가 형성되면서 각종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도 그런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고 전보다는 협조적으로 응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가짜뉴스라고 판단돼 협조를 구하면, 심한 경우 차단하거나 삭제하기도 하고 관련 콘텐츠에 관계기관의 심의상태 관련 안내문구를 표시합니다. 이처럼 내부에 심의기구를 둬 자정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진일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국감에서도 논란이 된 게 법적근거가 없는데 이들 업체를 어떻게 규제하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새로운 영역이 생길 때 기업이 스스로 자율규제를 통해 조치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고 그런 사례들이 축적된 이후에 법적 규제 필요성이 커지면 그때 입법하는 순서로 가야 합니다. 자율 규제 시스템 없이 바로 입법으로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뉴스 소비패턴을 보면 포털 의존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방송, 신문보다 더 앞서 있죠. 그동안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릴 것 없이 포털의 알고리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왔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네이버의 경우 알고리즘 구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어요. 그래서 방통위에서 공정성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 결과를 보면 75%의 뉴스 소비자가 포털을 통해서 뉴스를 접합니다. 그럼에도 포털이 언론으로서 아무런 책임을 안 져요. 가짜 뉴스를 실어 나르고 있음에도, 원천 생산한 언론사에만 책임을 묻고 거기서 해결을 안 해주 면 네이버는 ‘나 몰라라’ 합니다. 포털의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신문ㆍ방송사들이 디지털 전환 초기단계에서 포털에 싼 값에 기사를 넘겨주는 방식을 택한 게 큰 실책이었죠. 그 바람에 외국과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바로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포털에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부분에 대해선 법적근거가 없다며 ‘포털 장악’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선 자율규제에 맡기고, 궁극적으로는 입법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여야가 바뀌면서 입법을 한다, 못 한다 오랫동안 씨름이 이어져 왔는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로잡기 위해 노력할 생 각입니다. 공정한 생태계에서 자유로운 정보소통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기울었으니 오른쪽으로 기울도록 만들겠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국정감사장에서도 제가 그랬어요. 가짜 뉴스 단속이 왜 야당한테 불리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속단이라고요. 최근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딥페이크 기법의 가짜 뉴스까지 나오는 판에 앞으로 무슨 큰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공정한 언론 지형, 생태계를 만드는 게 나의 소명이고 그것이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자기한테 불리한 진짜 뉴스를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면서 문제를 더 키운 측면도 있습니다.
“사실 가짜 뉴스란 용어가, 적절한 용어는 아닌 것 같아요. 허위 정보 또는 허위 조작 정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겠죠. 다만 가짜 뉴스란 말이 갖는 파괴력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쓰게 되죠. 국감장에서도 저에게 가짜 뉴스의 정의가 뭐냐 묻더군요. ABC 등급으로 나눠 답변했어요. A급 가짜 뉴스는 허위 조작 정보, B급은 사실임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이거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퍼트린 정보, C급은 본인은 사실로 믿었는데 나중에 아니었던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건강한 사회라면 공론의 장에서 B, C급은 걸러지기 마련입니다. 철저히 규제해야 하는 대상은 A급 가짜 뉴스죠.”
-언론을 소비하는 시민들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방통위 산하 시청자 미디어재단에서 그런 일을 하죠. 그런데 ‘미디어 리터러시’란 용어가 잘 안 와 닿아요. 가짜 뉴스 식별법, 좋은 뉴스 구별법 등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공영방송의 개혁 문제는 보수ㆍ진보 정권 모두 주요 사업으로 추진했지만 사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다를까요? “현재 KBS가 공영방송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나? 저는 그 의문점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KBS2 채널의 경우 왜 공영방송이 민영 방송과 똑같이 예능 프로와 드라마로 경쟁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보도, 시사, 다큐멘터리 등의 분야에서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일본 NHK가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NHK를 보면 누구나 저기에 나오는 뉴스는 대체로 맞을 것이란 신뢰가 있습니다. NHK 뉴스 프 로그램은 재미는 없지만, 보도준칙에 맞춰 확인 안된 것은 절대 내보내지 않습니다. 얼마 전 수신료 병합 징수를 중단한 것도 KBS 개혁을 위한 것입니다. KBS는 재건축 수준의 개혁이 필요합 니다.”
-그런 방대한 작업을 임기 내에 다 마칠 수 있을까요?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못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려고요. 전 세계에 750만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고, K컬처가 퍼져 나가고 있는데, 우리가 세계로 송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방송채널은 기대에 못 미 치고 있습니다. 아리랑TV나 현재 KBS 월드 수준으로는 안됩니다. 국민적 신뢰를 얻는 뉴스를 하는 공영방송, 24시간 영어 방송으로 우리의 콘텐츠를 세계 전파하는 국제방송 채널이 필요하다 고 생각합니다.”
-전 정권에서도 그랬지만 임기 전에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법적 절차를 지켜서 진행한 겁니다. 지금의 KBS 상황을 악화시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KBS가 2007년 공공기 관운영에 관한 법률개정에 따라 공공기관 평가대상에서 빠졌어요. 그 전에는 경영평가에 따라 기관장을 해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임기를 방패로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금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넷플릭스 등에 맞서 국내 OTT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밝히셨죠.
“방통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과기부, 문체부 등과 다같이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현재 토종 OTT는 고사 일보 직전입니다.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지 만, 지금처럼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지속적으로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규모를 키우고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정책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동창회보에 걸맞은 질문도 드려보죠. 모교 재학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요.
“여러 단과대학이 1975년에 관악으로 모이기 시작했지만, 75학번들은 동숭동 갔다, 종암동 갔다 하며 공부를 했지요. 76학번인 우리가 진정한 관악 1세대라고 할 수 있죠. 김부겸, 정두언, 임 태희, 최금락 등이 동기예요. 관악캠퍼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죠. 관악캠퍼스가 골프장 자리였기 때문에 풀밭이 많았어요. 지금 법대 자리의 풀밭에 앉아 카드 게임인 마이티를 많이 했죠. 그럼 당시 윤천주 총장이 돌아다니면서 스페이드 A를 뺏어가곤 하셨어요. 그 한 장이 없으면 게임을 할 수 없으니까요.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학연구소 조교 시절, 구영록 교수님을 따라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간 일입니다.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당시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거기서 다 만났습니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브루스 커밍스부터 서대숙, 김학 준, 한승주, 이정식 교수 등 양국의 석학들인데 어떻게 그 분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는지 신기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울대를 관악캠퍼스로 옮긴 게 서울 시내에서 시위 못하게 하려고 한 거란 이야기가 정설로 떠돌지 않나요.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나중에 민관식 국회 부의장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서울대도 해외 유수 대학처럼 한곳에 모여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해요.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종합대학으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데모 등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큰 교육방향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동창신문 논설위원도 오래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동창회에 한 말씀하신다면.
“김종섭 회장님은 제가 동창신문 논설위원 할 때도 워낙 열정적으로 일하시던 분이라 잘 이끌어 주실 거란 믿음이 있어요. 동창회 행사에 자주 참석은 못하지만, 관심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정리=김남주 기자
김동관 방통위원장은 2023년 8월에 취임하여 임기를 채우기는 커녕 2023년도도 못 넘기고 12월에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