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백성 천손민족의 계보[2]
창세기 9:25~27에 기록된 노아의 노래에서 한 가지 꼭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27절의 “그가 셈의 장막들 안에 거주할 것이다”에서 동사의 주어인 ‘그’란 야벳이 아니라 하느님이며, 따라서 이 구절은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가 아니라 ‘하느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며’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가나안은 그의 형제들을 위하여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
-25절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셈의 하느님 여호와를 예배하라
가나안은 그를 위하여 종이 될 것이다
-26절
하느님이 야벳을 창대케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하느님) 셈의 장막들 안에 거주할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은 그를 위해 종이 될 것이다
-27절
많은 서양의 주석가들이 그리스와 로마가 이스라엘을 비롯한 아시아의 셈족을 침략하여 영토를 확장시킨 것과 연결을 지으면서 27절 둘째 문장의 주어를 야벳으로 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둘째 문장을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번역하면서, ‘거한다’는 것이 셈의 영토에 대한 야벳의 정복을 의미한다고 해석 한다. 즉 “하느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야벳이 셈의 영토를 점령케 하소서”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아주 정치적인 해석이다.
하느님의 거처인 셈의 장막
이러한 해석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보스(Vos)이다. 그는 “야벳을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에서 ‘거한다’는 것이 영적인 동거를 의미하지 않고 실제적인 정복을 의도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야벳이 셈의 장막을 정복한 후 거기에서 구속과 계시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이 서양 사람들(야벳)의 아시아 사람(셈)에 대한 제국주의적 영토 침략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이용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문법적으로나 문맥상으로나 전혀 인정될 수 없는 해석이다. 이 잘못된 해석을 따르게 되면 우리는 본문이 실제로 의도하는 바를 완전히 놓칠 수밖에 없다. 27절 둘째 문장의 주어는 첫째 문장의 목적어인 야벳이 아니라, 첫째 문장의 주어인 ‘하느님’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며”로 번역되어야 한다. 문법적으로나 문맥상으로나 그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옹켈로스 탈굼(Targum of Onkelos), 필로(Philo),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라쉬(Rashi), 아벤 에즈라(Aben Ezra), 데오도르트(Theodoret), 바움가르텐Baumgarten), 그리고 델리취(Delitzsch) 등이 지지했다. 최근에는 현대 구약신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월터 카이저(Walter C. Kaiser, Jr)가 강하게 지지한다. 그는 27절 둘째 행의 주어가 야벳이 아니라 ‘하느님’으로 간주되어야 할 이유를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두 개의 절로 구성된 문장 안에서 후절(後節)의 주어가 표현되지 않았을 때는 전절(前節)의 주어가 그 후절에서도 주어로 간주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므로 전절의 주어인 하느님의 이름 ‘엘로힘’이 둘째 절인 “셈의 장막에 거하소서”의 주어로 인정되어야 한다.
둘째, 전절에서 목적어로 사용된 야벳이 후절에서의 주어로 간주될 경우 그렇게 생각해야 할 뚜렷한 문맥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27절에서는 그와 같은 문맥상의 이유가 없다.
셋째, 27절이 속해 있는 9장 이후 계속되는 몇 장(章, Chapter)의 문맥에서 셈이 제일 큰 복을 받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만약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고 하여 셈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9장 이후에 펼쳐지는 셈과 그 후손에게 약속된 복과는 문맥상 조화가 되지 않는다.
넷째, 27절 둘째 문장인 “그리고 그가 셈의 장막들 안에 거하게 하소서”에서 ‘그’를 야벳으로 이해하는 것은 27절의 문맥상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야벳은 창대케 되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아의 축복과 저주의 말씀에서 25절은 가나안에게 말씀하신 것이고, 26절은 셈과 가나안에게, 그리고 27절은 야벳과 셈과 가나안 세 사람 모두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볼 때, 27절 둘째 절의 주어를 ‘하느님’(엘로힘)으로 번역하여 하느님이 셈에게 특별한 복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월터 카이저, 「구약성경신학」, 생명의 말씀사, 1989, pp.113~114).
매우 타당한 설명이다. 문법적으로나 문맥상으로나 27절 둘째 절의 주어는 하느님이며, 하느님께서 셈에게 특별한 복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리라는 것이다. 즉 셈의 백성 가운데 ‘하느님의 특별한 임재’가 있을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26절에 주어진 셈의 복과도 아주 잘 연결된다. 하느님은 ‘셈의 하느님’이시므로 그는 특별히 셈의 장막에 ‘내주’하시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축복과 내주는 뗄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연결된다. 진실로 하느님은 셈의 백성들에게 거하실 예정이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그의 거처를 셈의 장막에 두기로 뜻을 정하셨다.
아래는 베이커 성경 주석 「창세기」에서 발췌한 27절 둘째 절에 대한 해석이다. 27절 둘째 절을 셈에게 약속된 복으로 바르게 설명하고 있다.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주요한 유대인의 문헌들은 다른 문헌들과 더불어 엘로힘을 동사의 주어로 삼고 있는데, 그렇게 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새로 문법적 주어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느님의 ‘두 가지’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함이 보다 자연스럽다. 즉 그(하느님)는 야벳을 ‘창대케 하실’ 것이지만 셈의 장막에 ‘거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볼 때, 예언은 보다 영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셈은 ‘하느님의 거처’였다. 단순히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면, 이 구절이 지니는 그와 같은 숭고한 개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게 되고 만다.”(조셉 S. 엑셀, 이기문 역, 「베이커 성경주석 창세기」, 서울: 기독교문사, 1982, p.353)
그렇다! 하느님은 ‘셈의 하느님’이시며, 따라서 여호와 하느님은 ‘셈의 장막’을 당신의 거처로 삼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셈의 장막은 하느님의 거처가 되었다. 노아 언약의 중심은 ‘셈의 장막’과 ‘그 장막에 거하시게 될 하느님’이다. 장차 하느님의 영광은 그가 거하실 ‘셈의 장막’을 통해 회복될 것이었다.
가장 큰 복을 받은 셈
노아의 예언적 노래에서 셈은 가장 큰 복을 받았다. 셈에게는 축복이 두 번 선언되었다(26, 27절). 야벳에게는 축복이 한 번 선언되었다(27절). 함이 받은 축복은 없으며 오직 저주만 세 번 선언되었다(25, 26, 27절). 함은 그의 아들 가나안 안에서 저주를 받았고, 또 함 족속들은 일반적으로 축복을 상실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노아가 함의 전 후손을 저주하지는 않았으나 축복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위임 권위에 대항했던 함이 받은 세 번의 저주는 형제들의 종이 되라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첫 번째 종 된 자는 바로 함이었다. 이것은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권위에 순복해야 하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위 아래 들어가는 사람만이 위로부터 권위가 주어진다. 반권위의 정신을 가진 자는 승진할 수 없다. 권위에 복종하는 자만이 권위를 얻을 수 있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노아의 세 아들이 등장하는데, 현대 인류학은 함의 후손이 흑인종, 야벳의 후손이 백인종, 셈의 후손이 황인종의 근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족속은 지금의 리비아, 이집트, 에디오피아 등으로 이동해 주로 아프리카인의 조상이 되었고, 첫째 야벳은 그리스, 인도, 러시아 등으로 이주해 유럽인의 조상이 되었으며, 작은 아들 셈은 서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셈계 민족 및 시베리아를 거쳐 북만주 일대에 산재한 우리 한민족의 원류, 그리고 베링 해협을 건너간 남북미 원주민들의 조상이 되었다. 세계의 역사는 노아의 예언이 일치하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우리는 노아의 예언적 노래에서 셈이 가장 큰 복을 받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노아는 셈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시하였다. “셈의 하느님 여호와를 예배하라”(26절). “하느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소서”(27절). 셈은 ‘명성’, ‘영광’ 이라는 뜻이다. 셈은 하느님의 명성이요, 하느님의 영광이다. 여호와는 셈의 하느님이시며, 셈은 자신의 장막에 거하시는 복과 구원의 하느님을 열방 모든 백성에게 선포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알이랑 민족 우리 한국인은 셈 계열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유대민족과 더불어 특별선택을 받은 천손민족이다.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