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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김인환 목사)
(마 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생각해 볼 이야기
¶ 프랑스 요리에 그레이뉴이에라는 요리가 있습니다. 이 요리는 식탁위에 냄비를 가져다 놓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개구리를 산채로 넣고 조리를 합니다. 이때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개구리가 펄쩍 튀쳐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약 15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붓습니다. 그러면 개구리는 따뜻한 물이 좋아 가만히 엎드립니다. 이후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데도 개구리는 자기가 삶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기분 좋게 요리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 혹은 비전상실증후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 속의 진리 찾기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증상에 빠져 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서도 고난은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믿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기도도, 아니 자녀들을 위해 드리는 대다수 부모들의 기도도 고난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딤후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던 바울, 그는 복음을 위해 살다보면 반드시 고난도 함께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마지막 모습, 아니 그들이 누리게 될 마지막 축복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축복이 무엇입니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Ⅰ. 우리가 어떻게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 본문 10절 보세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누가 복이 있다고요? 자기를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자,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고난 받는 자가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강조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복된 모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위하여 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삽니다. 자기를 위하여 공부하고 자기를 위하여 일하고 자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를 위하여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의를 위하여 산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게 산다는 뜻일까요? 아니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성경에서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 박해로 인해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 또한 11절 보세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11-12절은 10절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의를 위하여 사는 것에 대한 설명이라는 말입니다. 그 설명이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나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의를 위하여 사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가 의를 위하여 사는 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질문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바꾸어 볼까요? “나는 예수님만 있으면 충분한가?”
- 지난 주 김동호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으로 한미준(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강의를 생중계를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 가장 제 마음을 건드린 강의는 유기성 목사님 강의였습니다. ‘목회자의 위기와 극복’이라는 주제였는데 거기서 유기성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자의 위기를 말하려면 먼저 정상적인 목회자의 상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상적인 목회자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 위기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정상적인 상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살피면 알 수 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냐?’ 충분하면 위기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으면 거기서부터 위기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 찔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께 헌신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죠. 의가 아닌 다른 것,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Ⅱ. 우리가 어떻게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 의를 위해 살면 반드시 고난이 찾아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 어떻게 살면 고난을 받는다고요? 간단합니다.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면 됩니다. 의를 위해 살면 반드시 고난이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의를 위해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고난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 사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고난이 싫어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장로님이 몇 분 계십니다. 한 장로님은 저를 만나서 기도해주실 때마다 “하나님, 우리 김목사님, 평탄하게 목회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세상에 기도할 때 평탄을 위해 기도하지 고난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요? 고난이 두렵고 싫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11-12절 보세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고난이 올 때 어떻게 하라고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해석하면 기뻐 뛰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아갈리아오’가 ‘굉장히 높이 뛰다’라는 의미가 있거든요. ‘높이다’라는 의미와 ‘아갈로’와 ‘뛰다’, ‘솟아나다’라는 뜻인 할로마이의 합성이거든요. 무슨 말입니까? 가장 기쁜 일을 만난 사람처럼 기뻐 뛰라는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 이게 말이 됩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 그럴 수 있는 것이지, 고난이 오는 데, 그것도 바싹 조여 오는 고난인 핍박이 오는 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그런데 있더라고요? 골로새서 1장 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바울이니까 가능한 것이라고요? 아니요. A.W.토저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책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즐거워하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왜요? 죄와 허물로 망가진 나를 구원하신, 주님, 그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고난받는 것, 그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 그렇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그 사람은 의를 위하여 살다가 받는 고난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죄악의 낙을 즐거워하기보다는 의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Ⅲ. 우리가 어떻게 의를 위해 고난 받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 성경을 보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입니다.
(히 11:36-38)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 잘 아시는 것처럼, 이 구절은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의 결론입니다. 그 결론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산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그들이 고난을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조그만 고난도 견디기 힘든데 그들은 어떻게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늘의 소망, 하나님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 소망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학위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밤을 새서 공부하는 고난을 견딥니다. 승진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직장에서 받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견딥니다. 암이 나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라도 견딥니다. 무슨 말이에요? 바라는 소망이 있으면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견디고 싶습니까? 고난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고난을 견디고 싶습니까? 아니 고난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즐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12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뭐라고요? 하나님 나라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의를 위하여 살았던 그들은 모두 박해를 받았습니다.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견디었습니다. 아니 즐거워했습니다. 모세가 다윗이, 바울이 고난을 견디고 즐거워했습니다.
- 왜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소망, 그 영광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고난을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것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큰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로마서 8장 18절에서 확신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 따라 생활 속으로
레이 스테드만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은퇴하고 뉴욕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한 평생 선교사로 일했지만 연금도 없고 건강도 잃었습니다. 그때 마침 노선교사 부부는 맹수 사냥 여행에서 돌아오는 루스펠트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대통령을 한 번이라도 보려고 애썼고, 승무원들은 대통령수행원들을 따라다니며 요란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노선교사부부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노선교사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뭔가 잘못됐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아프키카에서 하나님을 위해 온 삶을 바쳐야 했던 것일까? 여기 이 사람들은 사냥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것뿐인데 다들 못 봐서 안달이고.. 우리에게 관심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
- 뉴욕에 도착하자 선착장에서는 악단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고 시장과 고위관리, 신문기자등 기사를 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교사 부부는 배에서 내릴 때에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 그날 밤, 이스트사이드에서 찾은 한 싸구려 별장에 묵은 노선교사는 상심하여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난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평하시지 않아.”
- 아내는 권면으로 그는 침실로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표정이 완전히 달라져서 침실에서 나왔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여보, 주님이 해결해 주셨어. 대통령은 이렇게 환영 받으면서 귀국하는데 우리는 고국에 와도 아무도 맞아주는 사람이 없어 얼마나 비참했는지 하나님께 말씀드렸지. 그러자 주님이 마치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 넌 아직 본향에 가지 않았다!”
- ‘넌 아직 본향에 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 그 천국에 들어가는 날, 빵파레가 울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입장하는 그날 천사들이 노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주님 품에 안겨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이것보다 행복한 것, 이것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 하노니 의로 인하여 핍박을 기쁨과 큰 복으로 받아드리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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