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일 목요일 (자) 위령의 날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이러한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는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시며, 깨어 있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4,7-15
7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8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 9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10 하느님 마음에 들어 그분께 사랑받던 그는, 죄인들과 살다가 자리가 옮겨졌다. 11 악이 그의 이성을 변질시키거나, 거짓이 그의 영혼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들어 올려진 것이다 12 악의 마력은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솟구치는 욕망은 순수한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13 짧은 생애 동안 완성에 다다른 그는 오랜 세월을 채운 셈이다. 14 주님께서는 그 영혼이 마음에 들어, 그를 악의 한가운데에서 서둘러 데려가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그 일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15 곧 은총과 자비가 주님께 선택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들을 돌보신다는 것이다.
제2독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6,3-9
형제 여러분, 3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5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7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서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위령의 날을 맞아,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여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 살펴보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삶이란 무엇입니까? 이 험한 세상에서 온갖 유혹과 불의, 나태를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 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이미 죽음의 세력을 이긴 참된 삶일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다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죽음은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죽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맞게 되는 죽음의 순간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영원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끝없는 욕망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죽음을 앞두고는 새롭게 눈을 뜨게 되지요. 재물, 명예, 권력이 모두 헛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계심을 깨닫게 되며, 진정 귀한 가치를 알게 되지요. 이렇게 죽음은 참되고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도록 하루하루를 참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묵상 글·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