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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를 결심하다 / 성철스님 수행일화 7
해인사 퇴설당에서도 화두를 들었다.
선방 대중들의 묵언이 호통보다 무겁고, 고함보다 예리했다.
죽비소리에 자신만의 마음을 펼쳤다.
그러면 '눈 쌓이는 집' 퇴설당에 보이지 않는 눈이 내렸다.
영주는 비로소 선객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
좌선의 몸가짐이 의젓했다. 한번 앉으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절집 식구들이 보기에는 절밥 얻어먹으며 유발한 채 면벽하고 있음이 꼴불견이었다.
그래도 영주는 여여부동했다. 그러자 대중들이 영주를 향한 삐딱한 시선을 점차 거둬들였다.
퇴설당에 해인사의 노장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영주의 신상에 대해서 묻고, 또 이것저것을 떠보았다.
영주 또한 스님들에게 바람직한 참선 수행법을 비롯하여 불교 전반에 관한 의심들을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시원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산 스님(1890~1965)이 큰절로 내려왔다.
동산은 설악산 봉정암에서 효봉, 청담 등과 안거를 지낸 후 백련암에 머물고 있었다.
동산의 설법이 당대 제일이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음성 또한 티가 없고 고왔다.
법문을 하면 장소가 어디든 신도들로 넘쳐났다.
아무리 가난한 절도 동산이 법회를 열면 3년 먹을 양식이 들어온다고 할 정도였다.
주로 '증도가'와 '신심명'을 설했다.
영주는 퇴설당을 찾은 동산에게 거침없이 물었다. 다른 선객들이 듣기에도 당돌했다.
"제가 혼자 공부하여 무자 화두를 들었는데 바른 길로 들어섰는지요? 스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깨달음은 어떤 경지인지요?"
동산은 이상한 놈의 발칙한 질문이 싫지 않았다. 대답 대신 빙긋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백련암으로 놀러오게"
영주는 날을 잡아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훗날 자신이 그곳에 머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처음 본 백련암은 정겨웠다.
동산은 영주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영주의 답을 들으며 동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긋이 쳐다봤다.
이윽고 나직이,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중이 되시게."
감전된 듯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 영주에게 동산은 몇 마디를 보탰다.
"속인으로는 선방에 오래 머물 수 없을 것이고, 또 나간들 어디를 가겠는가. 이제 자네가 세상에 머물 곳은 없다네. 중이 되어 제대로 참선해서 지금 들고 있는 의심을 끊어보시게."
영주는 온통 깨달음에 관심이 있었지, 중이 될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큰스님이 출가를 명령하고 있었다. 동산은 불명까지 지어서 내밀었다.
'성철(性徹)'
그것은 '자성(自性)을 확철(確徹)하게 깨쳐 성불하라'는 뜻이었다.
동산은 영주가 이미 한 경계에 이르렀음을 간파하고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성철이란 이름에는 부단히 정진하여 대철대오(大徹大悟)하라는 동산의 바람이 들어있음일 것이다.
하지만 영주는 중이 되겠다는 대답을 안 하고 물러나왔다. 머릿속에서는 성철이란 이름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산이 백련암에서 큰절로 내려왔다. 주장자를 비껴들고 동안거 법문을 했다.
"여기 길이 있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영주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것은 영주에게 주는 법문이었다.
문자가 없는 경은 결국 문 없는 문이었다. 조주의 무자화두가 문득 환해지는 듯했다.
영주는 출가를 결심했다. '성철'로 살아가기로 했다.
영주는 봄날 묵곡리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옴이 아니었다. 더 멀리 떠나기 위해 잠시 들른 것이었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마른기침을 했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얘기는 드문드문 들었다. 네가 한다는 공부가 정녕 석씨(釋氏)를 따르겠다는 것이냐? 집을 떠나겠다는 것이냐?"
"예. 산에 들겠습니다."
"사내는 모름지기 공맹을 익혀 사람의 길을 가야지, 어찌 산속에 들어 해괴한 귀신들을 따르겠다는 거냐. 대대로 유림인 우리 이씨 집안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영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했다.
"장남이 삼강오륜을 저버리고 허무한 적멸지도(寂滅之道)에 들겠다니 죽어서 조상을 어찌 대할 것인가. 혈육의 인연을 끊고 불효불충의 길로 들어선다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다시 묻겠으니, 정말 석씨에 의지해서 빌어먹을 작정이냐?"
영주는 그래도 말이 없었다. 침묵만이 호롱불에 무심히 타들어갔다.
이윽고 영주가 해인사에서부터 준비해 온 거짓말을 풀어놓았다.
"아버님, 저는 중이 못 되면 급히 죽을 사주랍니다."
아버지 이상언의 안색이 바뀌었다.
"대체 어느 놈이 사람의 운명에 대해 포악질을 해대는 것이냐?"
"저를 본 스님들이 한 입처럼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신음을 뱉었고, 아버지는 끝내 돌아 앉아 버렸다.
성철은 훗날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회고했다.
"거짓말을 했지요. 나를 그냥 두면 곧 죽는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들이 그런 데 제일 약하거든."
다음 날 영주는 부모에게 큰절을 올렸다.
"앞으로 오랫동안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길 떠나는 영주를 아버지는 내다보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내 덕명은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영주는 이후 한 번도 속가에 들르지 않았다. 혈육들이 세상을 떴을 때도 묵곡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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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불가에 뺏겼으니 이제 유림들을 무슨 낯으로 보며 서원이나 향교에 나가 어찌 배례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시대 중은 노비, 무당, 상여꾼, 기생, 백정, 광대와 더불어 천민이었다.
자식이 돌팔매를 맞으며 동냥질 할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내 일찍이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거늘, 집 떠날 자식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의 분노는 아들을 잡아간 석가모니를 향해 분출했다.
식솔에게 경호강에 그물을 치게 하고 물고기를 잡아오도록 했다.
펄떡이는 물고기를 집어넣고 끓이도록 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첫째 계율을 조롱하며 살생으로 삿대질한 셈이었다.
나름 석가에 대한 복수였다. 저녁마다 매운탕을 들며 눈을 부릅떴다.
"석가야, 그래 나를 지옥으로 보내 보거라."
그러나 어머니 강 씨는 아버지와 달랐다. 강 씨는 남은 물고기를 물통에 담아 경호강에 놓아주었다.
어머니는 짚이는 데가 있었다. 자신이 시집 올 때 세운 소원을 떠올렸던 것이다.
손녀 딸 불필은 할머니 강 씨의 소원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는 묵곡리로 시집 오던 날, 가마에서 내린 뒤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큰 인물을 낳겠다'는 원을 세웠다고 한다.
큰 스님을 가진 할머니는 항상 바른 마음과 단정한 태도로 태교에 임해서 뒤틀어진 오이나 무를 먹지 않았고,
울퉁불퉁 못생긴 과일도 먹지 않았으며, 평상이나 마루에 앉을 때에도 모퉁이는 피했다.
행여나 나쁜 것을 보거나 듣게 될까 열 달 동안 대부분 밖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지냈는데,
아침저녁으로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세상에서 제일가는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기도드렸다."
영주는 다시 가야산에 들었다.
홍류동에서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을 걸으며 흡사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영원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이었다.
지난 번 지리산 대원사에서 건너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있는 것들은 물론이요, 바위와 흐르는 물도 말을 걸어왔다.
영주는 곧장 백련암을 찾아갔다. 동산 스님을 뵙고 절을 올렸다.
스님은 속가를 다녀온 영주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봤다.
"그래, 결심하였는가?"
"예, 스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아하 올해는 백련암에 봄이 일찍 오겠구먼."
그렇게 동산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큰절 퇴설당에서 수계득도식이 있었다.
이영주라는 속명을 버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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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3월3일, 세상 나이로 25세였다. 성철은 출가시를 지었다.
미천대업홍로설 彌天大業紅爐雪
과해웅기혁일로 跨海雄基赫日露
수인감사편시몽 誰人甘死片時夢
초연독보만고진 超然獨步萬古眞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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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은 동산 스님의 둘째 상좌였다.
하지만 나중에 맏상좌(성안 스님, 속명 유성갑)가 제헌의원에 당선되어 환속하는 바람에 첫째 상좌가 됐다.
이로써 용성 - 동산 - 성철로 이어지는 한국 불교계의 선맥이 출현했다.
#법보신문 #백련불교문화재단
첫댓글 감사합니다 ()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_()()()_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