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어쩌다 사랑했는데 내 전부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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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정하게 폭압적입니다 나는 무책임하게 순종적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구원은 늘 우리가 눈을 감아을 때만 옵니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문이 닫혀야 시작됩니까 문득 우리가 씹어 삼키는 이 살덩어리들의 국적이 궁금해집니다 당신은 사랑합니까, 나를. 이 살덩어리만큼
/김안, 육식의 날들
당신이 내 온몸의 각을 떠 내가 부정하는 신을 향해 번제를 드려도 원망 없어요 당신이 눈물 젖은 내 영혼을 사막의 햇볕에 말려 개들에게 던져주어도 마찬가지죠 허무한 사랑의 골짜기인 당신, 나는 당신이 아무리 악하게 굴어도 두렵지 않아요 당신이 나를 도륙하고 그 살에서 기름을 짜내어 태우니 잠시 어둠이 밝습니다 고통의 참뜻인 당신, 가만히 우리 기억 지옥별에 가두네 아무것도 없는 내 얼굴 베어들고 멀리 가네
/이응준, 시편 23편
그대는 말한다 당신은 첫 페이지부터 파본인 가여운 책 한 권 같군요 나는 수치심에 젖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묻는다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 어느 것이 먼 훗날 불멸의 침대 위에 놓이겠는가 확률은 반반이다 눈을 떴을 때 그대는 떠났는가 떠나고 없는 그대여 나는 다시 오랜 습관을 반복하듯 그대의 부재로 한층 깊어진 눈앞의 어둠을 응시한다 순서대로라면, 흐느껴 울 차례이리라
/심보선,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내가 놓으면 그대로 놓쳐져 버릴 사람이라서, 놓치고 나면 휑한 마음에서 슬픈 소리만 웅웅댈 텐데 나는 그게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태로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모레도 살아야 하잖아 그래서 나는 손이 얼얼해질 때까지 너를 더 꽉 쥐어 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세상이 내게 너라는 선물을 내려준 것만 같아서 나는 태어나 처음 사람의 온기를 느껴본 아기처럼 네 손가락을 꼭 쥐고 있을 거야 내 작은 손으로 너를 붙잡고 있는 건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고 또 미련한 것이래도, 내가 놓으면 너는 그대로 놓쳐져 버릴 사람 같아서
/윤달봄, 견디기 힘든
우리는 영영 고립되기로 한다. 폐허가 된 사랑이 우리를 가두고 녹슬게 한다면, 차라리 텅 빈 그리움에게로 망명할 것이다. 강아지처럼 웅크린 몸으로 메마른 내 어제를 핥으며, 적색 신호등에도 때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유수, 망명
추악함에 체온을 더해줘. 이대로 굳어버리고 싶어. 한순간에 사라지고 싶어. 날 꺼내 줘. 빈 껍데기 속에 다시 날 가둬 줘. 내일을 지워 줘. 출구가 무너졌으면 해. 세계의 모든 절벽처럼.
/최유수, 추락
왜 그러는가
별은 또 내게 왜 주는가
언제 무엇으로 다 갚으라고
무한대의 빚부터 안기우고 시작하는가
처음부터 위기에 묶어두는가
/김경미, 지구의 위기인가 내 위기인가
* 진짜 좋아하는 시라서 전문 첨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의 틈에 밀려 잠시 덮기는 좋았으나
영영 지울 수 없는 사람아,
너를 들이면 나는 내 심장 위치를 안다
/백가희, 향수
첫댓글 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너무 좋다 고마워 여시 김경미 작가님의 지구의 위기인가 내 위기인가 이 작품은 어떤 포인트에서 좋아해?
화자가 짝사랑하는 대상을 지구로 빗대어서 표현한 것 같은데,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쉬울 때만 찾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물론 지구의 의도는 모르지만) 의도가 있든 없든 그는 나에게 다정하고 섬세하고 잘해주고 (그걸 별로 표현한 것 같아. 예쁘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심성... 다정폭격기...ㅠㅠ) 그냥 나 혼자 계속 감기는 느낌?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고 괜히 희망고문 당하고 (뭐 옆에서 보는 사람은 속터질지도 모르지만...어장관리라는 둥 플러팅이라는 둥) 근데 내가 전에 지구 같은 사람한테 감긴 적이 있어서 더 와닿았던 것 같아 난 그래도 다 좋았거든 그래 가지고 놀아라 이런 마음으로 붙어있었어
@어쩌다 사랑했는데 내 전부가 됐어 아니 왜 또 구구절절 TMI를...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좋아해 이 시.
@어쩌다 사랑했는데 내 전부가 됐어 와와... 여시 얘기까지 들려줘서 너무 고마워 이렇게 들으니까 놓쳤던 내용이 확 들어온다 덕분에 좋아서 몇 번 더 봤어!! 고마워 여시
너무 좋다ㅠㅠ
와 글 다 좋아..........
혹시 비슷한 맥락?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시집이나 책 추천 해줄 수 있어?
너무너무 좋아ㅠㅠㅠ
시인들이 다 다른분들이고 내 취향대로 묶어 올리는 거라 저분들 시집을 다 사지 않는 이상은...ㅠㅠ
백가희, 새벽다섯시 너무좋아 일기장에 필사했어 고마워❤️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슬프겠는가 이 부분 뭔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ㅜㅜ 좋은 시들 고마워요
여샤 백가희 시인 시집 있어?? 저 시가 어디에 실려있는지 알고싶어 ㅠㅜ
아, 제목 잘못 적었다. 백가희 작가 <간격의 미>라는 에세이에 수록 된 향수라는 시야. 첨부는 전문.
@어쩌다 사랑했는데 내 전부가 됐어 너무 멋진 시다.. 필사했엉 고마웡
@어쩌다 사랑했는데 내 전부가 됐어 여샤 나 이 책 샀다 ㅠㅠ고마워!
필사해야지 진짜 너무 좋아..
진짜좋다 ㅠㅠ 올려줘서 고마워 감성에 젖어버려....
ㅠㅠ시에 빠져서 연어하다가 왔어 여시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