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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일시 |
12월1일 오후 6시6분 |
♢발신국 |
충북 |
♢수신일시 |
同 오후 8시10분 |
♢발신자 |
충북제천경찰서장 |
♢수신자 |
보안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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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문 역)電 文 譯 |
금년 3월 27일이라고 자백하나 4월 22일이다.
수신인 |
내부보안과장 |
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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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 |
제64호 | |||
발국(發局) |
관 보 제 천 국 제 1 호 12월 1일 수부(受付) 오후6시5분 2 / 28 자 |
금년 3월 27일이라고 자백하나 4월 2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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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국(着局) |
수신 오후8시10분 수 신 자 |
4. 충북경수(慶收) 제2802호의 1
융희 3년 12월 2일 충청남도 관찰사 최정덕(崔廷德)
내무대신 박제순(朴齊純) 각하
폭도내습(暴徒來襲)의 건
본월 15일 오전 1시경 관하 걍경경찰서 부(部)내 한산군 동하면 신후리(韓山郡 東下面 新厚里)에 사는 이완석방에 한국칼(韓刀一)을 휴대한 폭도10명이 내습(來襲)
때 마침 숙박중의 전라북도 옥구군(玉溝郡) 구복동(九福洞) 중매상 김진옥(金振玉) (당36세) 소지 위의 금품을 강탈 도주한 지보고(旨報告)에 접한 동지(同地) 주재 일(日)경사 2명, 한(韓)경사 2명은 곧바로 현장에 출장조사 하였던바 적(賊)은 전기(前記) 피해자택을 거(距)한 10정여(町餘)의 同郡 東下面 下面里 사는(居) 주막 趙早孫 及 이승원(李承元) 方에서 위의 금품을 약탈한 사실을 발견하였으므로써 다시 나아가 15일 16일 양일에 대( )하여 조사를 속행하였으나 어떤(何等) 단서를 얻지 못하고 지금(目下) 계속 조사 중에 있다고 한다. 위 보고함
좌 기(左 記)
김진옥(金振玉) 피해품
1. 현금 43원 16전 5리(厘)
20전 은화(銀貨) 38원 5리 동화(銅貨) 5원 16전 5리
1. 광목 2필(匹) 30척(尺) 가격 10원 5전
1. 당목 2필 30척 同 15원
1. 옥양목(玉洋木) 1필 30척 同 9원 67전 5리
1. 두건(한식풍차韓式風遮) 9건 가격 8원 10전
1. 면사(綿糸) 2통(84권(卷) 同 8원
1. 조표권연(鳥票卷烟)외 11건 同 14원 25전 계 1백 8원 24전
조조선 피해품
1. 현금 1원 50전 20전 은화 6매(枚) 5리 동화 40매 10전 은화 1매
1. 담욕(毯褥담요) 1매 가격 1원 45전
계 2원 95전
이승원 피해품
1. 옥양목 45척 가격 5원 59전
1. 낭영(囊(?)纓) 60개 동 4원
1. 중면사(中綿糸) 30전 동 2원 80전
1. 색진사(色眞糸) 50조 동 1원
1. 조표권연 1개 동 99전
1. 엽전 合하여 동 30전
계 13원 60전
5. 충북경비목(忠北警秘牧) 제2015호의 1 <隆熙 3년 12월 3일>
충청북도경찰부장 경시(警視) 판동영차랑(坂東榮次郞)
내부경무국장(內部警務局長) 송정 무(松井 茂) 앞
선반(先般) 제천경찰국의 손에 나포한 폭도에 관하여는 본 12월 13일 전보 동 24일 비목(秘牧) 제1228호의 3으로써 보고한 바와 같이(與)한 바 모든(該) 나포폭도 중 이교철은 저명한 수괴(首魁)이므로써 다시 작년 5월 26일 경비훈
(警秘訓) 제79호에 의하여 좌(아래)에 보고한다.
1. 성명 연령 신분 직업 전관직의 구별
(가) 李敎哲은 본명을 이교영(李敎永)이라 칭하고 충북에서는 이춘삼(李春三)이라 하고 경북에서는 이용담(李龍潭)이라고 칭하였다. 년 37세
(나) 전관(前官)이 없으나 양반으로 이조의 공신 문의공(文義公)의 후예(後裔)라고 자칭(自稱)한다.
1. 수괴(首魁)가 된 동기
정변(政變)을 분개(憤慨)하여 수괴 이명상(李明相과) 호응 같(共)히 일어난(起)자
1. 취포(就捕)에 대한 감개(感慨)
별지 본인의 연설은 대요(大要)와 같(如하)다.
1. 인솔 또는 지휘한 폭도수급(暴徒數及)이 그들이 사라진 기간(其消長)이 광무 11년 아래로(以降) 융희 2년 후 점차 감소하였으나 아직 본년 3월경은 약 60명을 직솔(直率)하고 있었다.
이래기 많은(多의) 토벌에 만나(遭遇하)고 또 이명상 죽은 후(死去後)는 직솔(直率)의 부하 10수명으로 되었는데 그러므(故)로 此의 소취(嘯聚)로 달아나는(奔走)중 나포한 것
1. 주된 근거지 혹은 주된 출몰지역
강원도 영월군 충청북도영춘 단양군 경상북도영천 풍기 순흥 예천 상주군
이교영 연설대요(演說大要)
우리 대한 삼천리가 다 일본의 것이 되고 이 나라 국토(江山林泉一帶)에 남은바 없다. 이제 대한 삼천만 동포는 어떻게(何히) 되어갈 것인가? 인구조사와 같음(如함)은 일본이 되게 하는 외에 무슨 필요가 있느냐? 너희들(취조에 종사한 복도(福島)순사 이하를 가르킨다.)도 무슨 연고로 그런 일을 하는가 대답하라. 우리 대한제국폐하로 부터 월급을 받으면서 우리 대한황제폐하의 월급을 생각하지 않느냐? 대한의 공신은 월급이 그 얼마냐? 그리고 너의 월급은 여하 우리 대한의 산천으로부터 나(生)는 월급을 먹는 자로서 대한공신의 아래에 있을 것이냐? 너희들은 대한녹신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한국을 멸망시키려 한다. 현상을 회복하려 하여 우리가 국가를 위하여 이롭게 함은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는 우리나라(吾國) 현상을 회복하고저 한다. 너희들은 너의 나라를 계략(計略)하라. 왜 대한을 계략할 필요가 있는냐?
너희들은 의병을 칭하여 폭도라고 한다. 너희들은 우리나라의 금전을 빼앗고(奪) 우리국토를 먹(食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한국의 부자들로부터 의식을 받아서 한국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므로 곧 한국의 재(財)로써 한국을 위하여 힘을다(盡力)한다. 이를 가르켜 폭도라 함은 무슨 말이냐? 이(此) 하늘을 찌르는(衝天의) 원수이다. 그리고 우리는 도리어 너희나라를 생각하고 옛날 임진년에는 일본과 조선이 전쟁이 있어 일본이 전패(戰敗)하여 매년 일인(日人)의 인피삼백장(人皮三百張)을 내게(納)하는 약속으로써 和를 許하였다.
이래 매년 3백장의 인피(人皮)를 납(納)함은 너희 나라의 인종을 몰살(盡)하기에 이름(至함)을 가련히 여겨 너희나라의 소멸(消滅)은 한국에도 연(延)하여 손해를 미칠 것을 생각하고 인피를 대신하여 부산에 활인(活人)3백을 들어 놓고(入置) 한국을 위하여 견심(見審 -監視의 意)을 시켰다. 이일에 미쳐서(此事延) 금일(今日)의 모양을 보인(呈한)다. 너희나라를 이같이(汝此히) 생각하였는데 이에 반대하여 한국의 전부를 일본으로 삼으려고 들어옴은 무슨 일이냐? 지금 너희들은 우리나라에서 너희들의 뜻과 같이 현금을 취하여 대황제폐하로부터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일이냐?
이전으로써 말하면 우리나라 대황제폐하의 뜻과 같이 세금을 취하여 부족이 없었다. 이제 너희들이 와서 폐하에게 너희들의 대관보다 적은 금원(金員)을 정(呈)하고 고래(古來)의 구습(舊習)을 다 파기하고 폐하에게 정(呈)하는 것을 마저 감(減)하여 전재(錢財)가 부족하다. 연초세(煙草稅) 가옥세(家屋稅) 주세(酒稅)를 취하고 또 부족함은 무슨 말이냐? 우리나라의 이전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었다. 백성이 즐거워(四民樂) 하고 재화가 풍족(財足)하였다. 보국안민을 생각하는 자 다 너희들 마음대로 오늘날의 고통을 이르게(致)하여 쇠(衰)케 하는 것이 아니냐? 또 일본인이 지휘하여 무슨 연고로 한국의 산하(山河)를 측량하느냐? 국토 탈취(奪取)하는 외에 필요가 없는 일이다. 너희들도 내 나라에 와서 장사일(商事)만을 하고 나 역시 너의 나라에 가서(來하여) 장사만을 한다면 서로(相互)에 어그러짐(差支 )이 없을 것인데 너희들(汝等)은 오직 재물을 탐하고 색을 밝히려(貪財好色) 온 것이 아니냐?
한국 삼백육십주 예부터(古來) 군수가 있어 다 국군(國郡)을 이루었다. 그런데 군수는 너희들이 와서 쫓아내는(驅馳) 바가 되어 이제 군수를 너희들의 하인으로 삼았다. 먼저 들어온 자에 뒤에 들어온 자가 되어 이를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보라 공맹자가 있는 집은 다 불에 소각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또 이와 같은 사람은 없다. 이와 같은 존경할 제단(祭壇)은 너의 소각하는 바가 되었다. 너희들은 한국의 개명(開明)을 지휘(指導라 하지 않고)하기 위하여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너는 이전대로 하고 오직 지휘만을 한다면 족(足)하다. 이전의 법은 다 파기(破棄)하고 다 소멸(消滅)하였다. 이런 횡포를 자행(恣行)하고 개명(開明)을 지휘한다 하고 한국의 산하(山河)에 재물을 탐색하는 너희들은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대의(義)에 의거(依)하여 우리를 도적이라 함과 같이(如)함은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너의 나라는 機械(기계)도 우리나라보다 좋고 또 재물도 한국이 따를 바가 아니다.
이 미치지 않는 토지에 와서 대황제폐하에는 너희들 대관 보다 적은 월급을 주고 너희들만 많이 먹(喰)는다. 일본인은 재물만 탐(嗿)할 뿐이다. 재물이 또 부족하면 연초세 주세 가옥세로부터 간장 기름세(醬油)등 우리 백성이 스스로 만든 것(自作) 에 이르기 까지 중세를 취하여 너희나라에 가져간(奪)다는 것은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우리는 나라일(國事를)에 원을 품고(抱怨) 우리나라의 부자로부터 의식을 얻어(得하여) 행동하나 한국의 재물로써 한국의 일에 힘을 다할(盡力) 뿐이었지 도적(賊)이라 하겠는가? 너희들은 단지 한국에 재물을 탐하여 왔을 뿐 다른 것이 (他) 아니다. 개명(開明)의 지휘(指揮)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개명의 지휘는 지휘 하면 족한데 韓人의 상관이 되어 한인을 사역(使役)함을 개명의 지휘라고 하는가?
이제 한국인은 생활이 곤란하여 너희들의 사역에 감읍(甘)하고 오백년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를 잘라 보조원이 되고 순사가 된다. 3원(圓)을 얻으면 그것 뿐 8원을 얻으면 그것 분으로 너희들에게 사역(使役) 당한다. 너희들은 탐재(貪財)뿐만 아니라 大韓民을 사역(使役)하는 것을 일삼는다. 무엇을 개명의 지휘라고 말하는가? 한국의 원래의 선비들은 면학하는데 각인(各人)의 마음에 임(任)하였다. 너희들은 와서 학교를 세우고 아침에는 조식(朝食)을 습(拾)하고 저녁은 석식(夕食)을 모아서(集하여) 먹(喰)는다. 빈민의 子弟에 모두 학교에 배우게 하려한다. 배우는 곳은 일본어이냐 너희들의 사역을 강요하고 하고자 하는데 불과하다. 너희들은 우리나라의 돈과 재물을 탐하고 재화가 부족하면 한국은 너희나라에 글과 책(文卷) 으로써 전당(典當)을 탐한다. 너희들은 한국을 먹(喰하)는 외에 무슨 물건(何物)이 있느냐? 우리에게는 우리의 나라(國이)가 있다. 너에게는 너의 나라(國이)가 있다. 서로 침략치 않으면 어그러짐(差支)이 없겠는데 너희들이 와서 지금이 상황을 보인(呈)다. 역(逆)으로 우리 또 이런 지경에 이른(至한)다. 대한국(大韓人)외에 불쌍한 사람이 있는가? 너희들은 탐재호색(貪財好色)을 하여 우리 대한황국의 백성은 사경(死境)에 이르렀다.
한인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 만국재판(萬國裁判)에 호소하여 그러한 후에 죽는다 해도 무슨 원한이 있겠는가? 天命 3년 하늘의 뜻(天意)에 따라 너희들을 몰아낼(驅馳할) 때가 올 것이다.
말할 것 이것 밖에 없다.
폭동살인범인 이교영 압송 도중에 있어서의 상황에 대하여 주의보고(注意報告)
11월 25일 경사 김종석(金鍾奭)과 共히 범인 이교영을 압송하여 淸州로 출발도중 충주경찰서 근무순사 김택민(金澤民) 차랑(次郞)의 보고는 右와 같다.
처음 제천경찰서로부터의 압송관 花田순사의 주의에 依하여 범인의 이른바 우국강개(憂國亻康 (慷 ) 慨)의 지사로써 스스로 맡은(自任하는) 자(者)임을 알아 터득(知得)하였으므로써 출발에 즈음하여 김순사에 대하여 세심 저(彼)의 언동에 주의하도록 뜻을 포함하여 두었던바 과연 약 1리를 나아간(進한)때 김순사를 향하여 무러(물어) 가로되 이 일본순사는 한국말을 이해하고 알아듣는가고 김순사 문득 생각하기를 마침되었다 하고 답하여 가로되 아니 겨우 1개월 가량 전 일본으로부터 새로 왔을 뿐으로 아직 한말(一語)도 모른다 하였다. 저는 심히 회심의 미소를 흘리면서 쾌활한 어조로써 열심도도히 말하여 나아간 大要의 의미는 좌와 같다. 가로되(曰) 지금 내가 말하는 바를 가만히 들어라. 그대들은 지금 그대로 엄숙한 복장을 하고 검을 차고(佩) 총을 휴대(携)한 자세는 실로 훌륭한 관리이면서 실로 그 내용을 생각하면 실제는 국적(國賊)인 일본인의 사역에 종사하고 있지 않느냐? 돌아보고 깊이 생각(回顧熟考) 하라.
이제 우리 대한의 상태는 어찌하여 겉모습 교묘히 속여 단장하고 이웃나라의 우의를 표준하면서 내심 두려운 탄교(呑嚙(삼킬,씹을)의 욕망을 통(정辷呈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원수(仇)인 일본은 날마다(日一日) 우리나라를 잠식(蠶食)하는데 급급하지 않느냐? 저 일본은 그 한 수단으로 필요 없는 일본 관리를 한없이 우리정부에 보내어 이제 우리국정의 중대한 주요 업무는 거이(의) 저 국적(國賊)의 무리의 손바닥 가운데(掌裡)에 파악(把握)되고 중앙정부는 장차 메워지고 뒤집혀(塡覆)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요(要)하는 고가(高價)인 봉급은 모두 우리 동포의 고혈(膏血)에서 나온다. 이미 가까이 주(酒) 담배(煙草)에 까지 중세를 부과한다. 슬프다 여하한 맵고 사나운 정치모습(苛政暴狀)이냐?
몸소 농사지어 자기가 먹고(喫) 나의 손에 술을 빚어(釀) 스스로 즐김, 마심에 무슨 중과세의 필요가 있느냐? 기왕(旣往)에 있어 우리들은 우리들의 국가에 대하여 진력할 길(途)을 치(致)하여 또 여유(餘裕)가 있느냐? 슬프다(噫) 우리들은 지금 존경하는 황제의 따뜻한 애무(愛撫)의 손을 이별하여 차고 잔인한 한계(冷酷限)가 없는 계부모의 매운 꾸지람(苛責) 신음(信音)하고 있다. 가련할 우리 동포여 우리들은 이같이 하고 또 저 이리의 낙인이 찍힌 무리(彼等印狼)의 입과 배를 채우는데 힘쓰지(勤勉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생각건대 여기에 이르면 구장촌치(九腸寸齒)의 감(感)을 금(禁)할 수 없다. 이같이 하여 이제 장차 구(九)사(死)에 임박(瀕)한 국운을 만회(挽回)하여 밤낮의 가혹한 정치(日夜苛政)에 울고 있는 동포의 고통을 구함은 그야말로 누구의 책임이냐?
뜻있는 대한국의 건아가 굳게 얽어 지휘하고 옛것을 일으켜(緊揮舊起하여) 하늘을 함께 머리에 일 수 없는(俱不戴天)의 국적(國賊)에 갚는(酬하는) 결실(秋)은 지금이다. 나의 자(茲) 적은 충성(微忠))의 뜻을 안고(抱) 에오라지 국가를 위하여 진력하기를 약속하고 절풍목우(櫛風沐雨)에 달게 여기(甘하)고 다른 날에 크게 하는바 있고저 하였던바 천운이 이르지 아니하여 지금 줄로 묶어(縛繩)의 빛남을(耿) 원수의 적(仇敵) 손에 받아(受하여) 유감(遺憾)히 죽으나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일신의 운명을 포기(抛棄)함은 쉽다하여도 이 나라를 여하(如何)히 할 것이냐? 임금이여 임금은 이 복(服)을 나누어(割) 그 마음 아파함을(其閔)을 씹어(啖하여)도 오히려 좋다. 구적(仇敵)의 크게 눈뜨고 보게 함(頣使)에 달게 여김은 그 본의(本意)가 아니다. 지금 기회(機)를 보고 비밀히 나의 전함(傳)을 풀라. 나의 어떤 곳(或處)에 많은 금액의 재물(金員)을 숨겨두고(隱置) 있다. 지금 자(玆)에 자유의 몸이 된다면 권토중래(捲土重來) 임금(君)과 함께 손을 끌고(携) 크게 국가를 위하여 진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저 사람이 말하는 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으라. 김순사 이때 集然大喝을 머금고(啗) 또 엄(嚴)히 그 부조리(不條理)를 깨닫고(諭) 일한협약(日韓協約)에 인하여(仍) 부조(扶助)되고 있는 한국의 현상은 장차 얼음이 어는(凍氷) 봄날에 만(맛?)난 것과 같다. 우리들은 이 다행한 기회(機)에 만나서(際) 전심(專心) 국가장래의 행복을 기뻐하고 즐겨하면서 관(官)에 직(職)을 봉(奉)하고 애오라지 일신(一身)의 작은 힘(微力)을 진력(盡力)할 것이다.
설령 국가의 대계(大計)를 그르치는 자는 너희들과 같은 미련하고 미혹되고 어리석음이 풍부한(頑迷愚朦의) 가볍고 소홀한 사나이(輕忽漢)이다.
저(彼) 다시 한마디(一語)를 말하지 않고 다음날(翌日) 세교(細橋)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을 때(小憩時) 전화통화의 상황을 보고 살피지 아니한(不審) 가장자리(眉)를 자주 시험(頻試) 이의 해석을 베풀고(與) 또 이 문명의 이기(利器)도 지금은 창설(創設)의 때이므로(際故) 오직(單히) 관아(官衙)의 전용(專用)에 끝이나 장래는 민중각자의 요구에 마땅(便)하기에 지극(至하는)한 아름다움(旨)을 말하였던바 저(彼)는 무슨 일인지 깊이 묵상(黙想)하면서 청주에 도착하였다. 우연히 청주보통공립학교의 문전을 통과함에 즈음(際)하여 기내(機內)에 몇 십 인의 아동이 모이고 또 헤어지면서 장난하며(嬉嬉) 놀이하고(戱戱) 있음을 계획하지 않고 멈추어 서서(不圖停立하여) 물어서 말하되 저들은 우리 한국 학동(學童)인가? 그렇다고 답하니 저 또 문(問)하여 교사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고, 그일한인(其日韓
人)이 함께(俱히) 교편(敎鞭)을 잡고 있는 것급(及) 일본제국은 이와 같이 (百事萬般)에 이르러(涉하여) 한국의 선도계발(善導啓發)에 힘쓰고 있는 뜻(旨)을 말하여 들려준바 저(彼)는 다시 사고하는 것과 같이 공(共)히 마음 속 어떤 물건(何物) 인가 경청(傾聽)하는 것과 같이 그 면모(面貌)에 일종(一種)의 이색(異色)을 역역(歷歷)히 볼 수(見受하였다)있었다.
以 上
6. 고비수(高秘收) 제 7054호의 1
<융희(隆熙)3년 12월 3일>
통감(좌죽(佐竹) 총무장관(總務長官) 헌병대장
외파무관(外波武官) 주차군사령관(駐箚軍司令官)(參謀長)
경무국장(警務局長)
충청북도경찰부장으로부터 좌(위)의 보고가 있었다.
재천경찰서에서 폭도 3을 체포(逮捕)하고 한국총(韓銃) 하나를 압수하였다.
우문(右文:윗글) 報告(通報)함
대한민국문교부 국사편찬위원회 |
편찬발행 |
대한독립운동사 |
자 료 16 |
의병편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