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다이아와 라이아는 둘이서 쇼핑하러 가고 다섯 남자는 모두 미용실로 왔다. 카인 뒤를 따라서. 먼저 왔던 칼리프는 여관에서 말했던 그대로를 이행 중이다.
“아줌마! 아줌마는 왜 제 머리를 가지고 장난을 쳐요!”
“호호호홋. 너무 늦게 알아차린 거 아니우? 난 어제 미용실에서 나간 직후에 올 줄 알았는데.”
씩- 씩- 이 아줌마가 정말!
맞받아침에 당한 칼리프는 화를 식히기 위해 씩씩거렸다. 직원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반대편 머리도 달달 볶아주랴?”
“심하게 볶지 말란 말이에요! 이것도 풀어달란 말이에요!”
“그럼 적당히 웨이브를 넣어줄까요?”
“너무 티 안 나게 넣어줘요, 제발~! 그리고 오른쪽 머리는 풀어야 하니까 돈 안 줘요! 제가 해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요!”
“호호호호호! 알았어요, 알았어.”
깔깔 웃은 직원은 칼리프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미용실로 온 카인과 오스카, 치프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용실이 꽤 커서 10명이 각자 앉아도 충분할 터였다. 그만큼 대기 중인 미용사들도 많았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끝만 살짝 자를 겁니다.”
카인과 치프, 오스카가 입을 모아 동시에 말했다. 그것을 느꼈는지 셋은 거울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치프와 오스카는 싱긋 웃으며 서로를 바라봤지만 카인은 여전히 묵묵했다. 칼리프의 머리로 장난을 쳤던 그 여직원이 거울에 비춰지는 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따라온 게 전부인 신의 머리는 꽤 길어 목덜미를 덮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직원의 호칭에 있었다.
“저 ‘처녀’는 왜 머리를 안 쳐요? 안 한 대요? 다른 여자 분들도 하는데 그냥 같이 하지.”
“풋!”
치프와 칼리프, 오스카에게서 일제히 실소가 터졌다. 카인은 눈썹을 치켜세운 게 전부다. 그러던 중에 오스카는 뭘 잘 못 들었나? 고개를 갸웃거린 뒤 말했다.
“누가 여자라고요?”
“어머, 남자분이셨어요? 죄송해요. 그럼 뒤에 계시는 분만 홍일점인 거네.”
“풋.”
“…….”
또 다시 실소가 터졌다. 오스카는 덧붙이는 것으로 자신과 카인의 오해를 풀었지만 신은 아니다. 다리를 꼬고 잡지를 보고 있던 신은 자신을 지칭하는 그 말을 들은 듯 미간을 확 좁혔다.
네 저 년을 확 그냥-! 그리고! 감히 웃었겠다?
꾸깃.
순간적인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신은 손에 쥐어져 있던 잡지를 확 구겼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직원들이 가위질을 멈추고 그를 돌아볼 정도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신의 주먹을 본 카인의 입이 살짝 열렸다.
“참아. 성장 중이라서 뽀얀 네 얼굴 탓이니까.”
“너 말이야.”
“일반인은 건들지 않는 게 좋아.”
“큭…….”
생각 같아서는 죽이고도 남겠지만 카인이 말린 관계로 신은 살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0분 후.
미용실 용무를 끝낸 카인과 치프는 먼저 나와, 모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 하늘을 보며 백사장을 천천히 걸었다.
“괜찮냐?”
“응.”
“나한테까지 숨기시겠다?”
받아친 치프는 조금 다듬은 꽁지머리를 묶으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모래가 옷에 묻지만 개의치 않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백사장,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푸른 바다, 거기다 모처럼 맑은 파란색의 하늘. 간간히 흘러가는 새하얀 구름은 마치 겨울이 다 간 것처럼 보였다.
“라이아 마마의 정보, 정확하다고는 하지만…….”
“불안하냐?”
“일단 아버지한테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아.”
“하지만 아버님은 배에 안 계셨다며. 정확한 사정을 모르시는 거 아냐?”
“그래도 확인해야 할 건 있어. 솔직히 지금 심정으로는, 로튼 애플이 기다리고 있는 대륙은 그냥 통과하고 싶어.”
“마지막 섬 <소렌스힐본> 이라고 했지? 그럼 신한테 얘기를 해보든가.”
“그래야겠어.”
바다를 보고 앉았던 카인은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치프는 오른쪽으로 틀어, 친구의 등에 등받이가 되어주었다. 콩, 하는 작은 마찰이 두 사내의 뒤통수 사이에서 났다. 카인이 풀어헤친 머리까지 친구의 머리에 기댄 것이다.
“참. 내가 오스카한테 들은 게 있는데.”
“?”
“아쿠아리버, 검집이 따로 없는 모양이더라?”
등 뒤에서 들리는 친구의 말에 카인이 눈을 살짝 떴다.
“기억에 박힌 책장에 찍혀 있던 사진을 떠올려봐. 검만 홀로 있지 않던?”
그러고 보니……. 맞아. 그랬어. 큰일 날 뻔 했네. 두 자루의 검을 어쩔 수 없이 갖고 온 게 전화위복이 될 줄은.
“그리고 아쿠아리버가 사라진 지 꽤 됐잖아.”
“일전에 내 손에 사라진 해적단에게 받은 정보에 의하면, 사라진 지 700년 됐대.”
“그래, 것 봐. 시간이 시간인 만큼 가품이 돌아다닐 확률도 있다 이거지. 하지만 완벽한 진품을 흉내 내지는 못 해.”
“물병자리가 찍혀 있잖아.”
“그게 검의 앞인지 뒤인지 어떻게 알아?”
“!”
카인은 눈을 좀 더 크게 떴다. 치프의 말에 의해 새삼 보이지 않던 게 보인 것이다.
그렇구나. 검은 날이 서 있는 부분과 날이 없는 부분이 따로 있고 앞뒤로 따로 있어! 그러한 부분들이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거지 지금?
“그 직원 무사할까?”
친구의 진지하다 못 해 가라앉아버린 분위기를 바꾸듯, 치프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누구? 아아. 글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스카와 칼리프가 있으니까.”
하지만 카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난동이 미용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미용실 안.
끝만 자르는 가위질이 끝난 오스카는 머리카락을 올려 묶은 뒤 얼른 신을 붙들었다. 카인이 나간 직후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난 것이다. 비슷한 길이인데 카인이 더 빨리 끝난 이유는, 그는 미용실에 들어오면서 묶었던 끈을 풀었지만, 오스카는 풀지 않았다는데 있다.
끈 푼다고 조금 늦어진 것이다.
“이거 놔라! 저 여자 죽여야 내 속이 풀리겠단 말이다! 놓지 못 할까! 너희도 이리 와! 가만 안 두겠어!! 내가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웃어?”
“참으세요, 저하! 저도 오해 받았잖아요!”
“넌 풀었잖아! 그럼 카인은 왜 오해 안 받고 그냥 갔는데!”
“형은 얼굴에서부터 박력이 넘치니까 그렇죠!”
“그럼 난 안 그렇다고? 이건 황태자로서의 치욕이야! 얼굴에 흙칠하는 거라고!”
칼리프의 머리에 비닐 모자를 씌운 직원은 물품 정리를 하면서 온몸을 떨었다. 오늘 하루 생명의 위협을 참 많이 당하는 그녀였다. 칼리프는 살기는 안 흘렸지만, 지금 오스카에게 붙들려 있는 신은 온몸에서 살기를 흘리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직원들은 모두 몸을 떨었지만, 특히 농담 아닌 농담을 했던 그 직원은 더 했다.
죽을 지도 몰라! 정말 죽일 지도 몰라!
“칼리프 형 좀 말려줘요!”
“나 머리하는 중이야.”
“너 지금 수수방관 하는 거야? 가만 안 두겠어!”
고래고래 터지는 신의 목청을 본 칼리프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뺐다. 그러자 흰색 봉투가 하나 집혀서 나왔다. 거울을 통해서 봉투를 보여준 칼리프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간만에 용돈 받았거든? 케이크 먹기 싫으면 계속 난동 부려도 돼, 버리고 갈 거니까.”
우뚝.
케이크 하나에 모든 것을 던져버린 신의 행동이 즉각 멈췄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기를 모두 거둬들이고, 이어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잡지를 펼쳤다.
“얼른 끝내라.”
“피식.”
케이크 하나에 꼬리를 내린 신의 행동에, 칼리프와 오스카는 마주 보고 작게 웃었다.
“형도 화장 좀 할래요?”
“…….”
칼리프의 말에 신은 눈을 왼쪽으로 돌렸다. 고민하는 눈치다.
그 시각 두 왕녀는 액세서리 숍에 있었다.
“언니, 언니! 이거 어때요, 이거?”
“응응, 예쁘다. 머리핀 한 번 해볼래?”
“언니는?”
“음-. 난 저거.”
라이아가 가리킨 것은 밴드 세트다. 상완에 대는 띠와 손목에 대는 띠는 모두, 갈색에 가운데 부분이 굵고, 나머지는 길고 가늘었다. 주황색으로 전체를 치장한 라이아가 옷 밖으로 묶으면, 주황색과 갈색 대비로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거 살까? 어때 보여?”
“응, 어울릴 것 같아. 주황색은 갈색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잖아.”
“응응.”
두 왕녀는 각자 고른 머리핀과 끈, 그리고 밴드 세트와 목걸이, 귀걸이 등 필요한 물품을 갖고 계산대에서 계산했다.
“총 35,000G입니다.”
다이아가 봉투에서 40,000G를 꺼내 건넸다. 계산 후 가게에서 나온 뒤 라이아가 물었다.
“왜 지갑이 없어?”
“오랜만에 받은 사비라서 그래. 경제권은 카인이 꽉 쥐고 있거든.”
“혼자서?”
“응. 그래서 나를 포함한 모두는 직접 얘기해서 적당히 받아가. 봉투는 나중에 카인한테 반납해야 하고. 이거는 그냥 갖고 있으면서 천천히 써도 된다고 했어.”
허. 라이아는 콧방귀를 크게 끼고 사납게 물었다.
“독재자야?”
“그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냐! 너 왕녀잖아, 왕녀가 왜 호위무사한테 휘둘리는 건데?”
“배 위에서는 호위무사 아냐.”
“그럼 뭔데?”
“함장이야.”
“허, 좋아해. 너 왕녀야, 왕녀, 공주라고! 공주가 호위무사한테 휘둘리는 게 말이 돼? 우리는 왕녀니까 왕녀답게 당당히 행동하면 돼! 어디 있지? 당장 가서 따져야겠어!”
라이아는 씩씩거리며 무작정 걸었고 다이아는 뒤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고, 끝내는 다이아가 끌려가는 격이 되었다.
“아, 언니, 언니! 우리 다 불만 없어!”
“말도 안 돼, 이건 폭정이야!”
“우리 다 사고 친 거 많단 말이야!”
동생의 말에 라이아는 휙 돌아섰다.
“무슨 소리야?”
“카인이 경제권을 꽉 쥐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나랑 치프가 카드를 한 번씩 빼돌렸거든.”
“그래서.”
“그랬더니 출항한 뒤 바다에 던져버리겠대.”
“그래서 누구 빠진 적 있어?”
“응. 칼리프가 한 번 제대로 빠졌었어.”
다이아의 말에 라이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11월 24일 밤중에, 칼리프는 카인이 자는 틈을 타서 카드를 빼돌리려고 하다가 들켰다.
“바다에 던진다고 했을 텐데?”
이후 배 밖에서 크게 들린 풍덩 소리에 일행은 모두 일어났고, 칼리프는 감기에 걸려 꼬박 사흘을 앓아야 했다.
“카인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신도 두 끼 굶었다고 했잖아. 그것도 진짜고 칼리프도 진짜야. 본인들한테는 악몽처럼 남아있어. 처음 카드 빼돌렸을 때 200만G 넘게 탕진했었거든. 카인이 괜히 경제권을 손에 쥔 게 아니란 말이야. 다 에드리브 호 대원들이 저지른 사고가 밑바탕이 된 거거든. 그러니까 폭정 아냐.”
“힘들지 않아?”
“필요하면 얘기해서 받으면 되고, 또 오늘처럼 그냥 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우리로서는 카드를 안 가지고 있는 게 차라리 나은 거야. 자금이 꽤 많거든. 이번에 해군 본부에 가면 의뢰비가 1000만G가 들어오는데, 카인은 그거 안 받으려고 할 지도 몰라. 지금도 800만G 가까이 있는 셈이니까.”
“많이 모았구나.”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라이아는 들고 있던 가방을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
“자. 여기다 넣어. 언니가 지갑 하나 사줄까?”
“정말?”
“응. 탈출하기 전에 돈 좀 받은 게 있거든. 점심 먹으러 가자! 아침을 안 먹었더니 배고프다. 그리고 지금 언니가 갖고 있는 돈은 카인한테는 비밀이다?”
“왜?”
“비상금으로 남겨두는 거란 말이야. 알았지?”
씨익- 언니의 미소에 다이아도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댓글 언제나 열심히인 서우누님... ... ... ... 오래오래사세요...
하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