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음식과 유기농 재료로 식단을 짜는데도 2500원이면 충분합니다. 단, 음식찌꺼기를 최대한 줄이고, 많이 먹이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공부방 교사들이 자원봉사로 활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부실도시락' 파문이 저소득층 결식아동의 영양상태와 건강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 끼당 2500원으로 부실식단이 아닌 '튼실한' 유기농 식단을 제공하는 공부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원은 똑같이 2500원...식단은 천지차이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실직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개소한 꿈나무학교(서울 강동구 천호동 소재)는 7년째 운영되는 저소득층 어린이 방과후 교실이다. 이 학교는 정부로부터 매달 1명당 2500원(일일 1끼 기준)의 급식비를 지원받고 있다.
꿈나무학교 어린이들은 학기 중에는 방과 후에, 방학 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1년 내내 이 시설에서 보호를 받는다. 점심만 먹는 어린이가 있고, 점심과 저녁 하루 2끼를 지원받는 어린이도 있다. 꿈나무학교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식사 이외에도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부모로부터 방치된 시간동안 보호를 받는다.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꿈나무학교에서 지내는 어린이들의 1주일치 식단은 매우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1월 17일부터 22일까지 1주일간의 식단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간식도 제공된다. 간식은 찐 고구마, 김치부침개, 빵과 우유, 만두, 귤, 떡, 사과 등이다. 계절과일과 공부방에서 직접 만든 만두, 김치부침개 등을 많이 먹는다.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
꿈나무학교에서 쓰는 식재료의 80∼90%는 유기농 제품이다. 닭고기는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먹이지 않은 닭으로 요리하고, 계란은 반드시 유정란을 먹는다. 조류독감 등으로 닭이 무더기 폐사 당하는 일이 있을 때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다른 제품으로 대체한다.
무농약 쌀로 밥을 짓고, 사과와 배 등 과일류는 저농약 상품을 먹는다. 과일은 아직까지 무농약 제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귤은 유기농 상품을 먹게 하고, 귤껍질은 말려 귤차를 만들고 간식시간에 먹는다.
양념도 유기농이다. 지리산 솔뫼농원에서 생산한 국간장, 생활협동조합에서 만든 들기름, 100% 국산참깨 참기름, 현미유 등을 쓴다. 조미료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
해산물은 재래시장에 가서 물을 보고 직접 구입하고, 냉동제품은 사지 않는다. 우리 땅에서 제 계절에 나는 재료가 가장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수입산은 피한다. 김치도 주말농장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만들어 먹는다.
고기반찬과 나물반찬 사이에서
김수정 꿈나무학교 조리사는 "요리의 기본은 제철음식"이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까스나 닭 요리에는 말린 나물처럼 아이들이 즐겨 찾는 것은 아니지만 영양이 충분한 것을 함께 줘서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수정 조리사는 "한 끼당 2500원이면 풍족하지는 않아도 안전한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며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등 성장기 어린이들의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 노출되기 쉬운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좋은 식재료로 만든 안전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수정 조리사는 "조미료에 익숙한 아이들은 처음에 맛이 없다고들 하지만 음식에 쏟는 정성을 아는지 곧 익숙해진다"며 "조미료를 안 쓰는 요리는 조리과정이 매우 복잡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줘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조리법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꿈나무학교 어린이들은 고기반찬에는 반드시 취나물 등 나물반찬을 같이 먹어야 한다. 햇빛을 많이 받은 '마른나물' 등의 나물반찬을 먹지 않으면 고기반찬도 안 준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
불균형 영양상태를 균형으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
김경희 꿈나무학교 사무국장(교사)은 "아이들은 단맛과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해져 있다"며 "불균형한 영양상태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더러 싸우기도 하면서 입맛을 돌려놓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식단에서 나물반찬을 밀어내고 계란찜, 닭도리탕 같은 것만 찾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7년간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입맛도 바뀐 것이다.
김수정 꿈나무학교 조리사는 "양념치킨, 피자, 과자를 찾던 아이들이 공부방에 다니면서 그런 음식을 덜 찾게 된다"며 "아이들도 입맛이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년 동안 꿈나무학교에서 밥을 먹은 우상희(가명, 서울 강동초 5학년) 어린이는 "학교에서 먹는 단체급식보다 공부방 밥이 훨씬 맛있다"며 "여기서 먹는 재료는 유기농인 데 학교에서는 무슨 재료를 쓰는 지 말해주지 않아 잘 모른다"고 말하며, 학교와 공부방 밥맛을 비교했다.
노현미(가명, 서울 천동초 6학년) 어린이도 "공부방에 다닌 뒤로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아프지도 않고, 키도 많이 컸다"며 "공부방에서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 먹는 피자, 떡꼬치, 라볶이, 만두는 안전하다"고 말했다.
꿈나무학교 어린이들은 최근 문제가 된 '부실도시락'에 대해서도 "더럽다" "기분 나쁘다" "건빵이 뭐냐? 그런 것 주면 안 다닌다" "이사 가버린다" "데모할 것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공부방 어린이들 "불량식품, 불량도시락은 싫다!"
꿈나무학교 교사들은 최근 불거진 '부실도시락' 문제에 대해 "결식아동 급식지원 사업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며 "도시락 등 급식사업이 1500명 이상 대규모로 진행되는 한 변화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부실도시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지역공동체에서 안전한 먹거리로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동네 공부방들이 많다면 지금처럼 부실이 구조화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시락, 식권, 상품권 지급 등은 결식아동 급식지원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이들은 "아이들이 안심하고 찾아가 밥도 먹고 숙제도 하면서 사회성도 기를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NGO와 협력하면 결식아동 지원사업은 지금보다 훨씬 양질의 전환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꿈나무학교 김수정 조리사는 "성장기 어린이들의 발육과 건강을 위해서는 유기농산물을 적극 권장해야 한다"며 "넉넉한 재정은 아닐지라도 운영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김수정 조리사는 "유기농산물은 값이 비싼 대신 품질이 좋다"며 "정부와 생협이 연대해 유기농산물의 할인이나 유통기한 짧은 유기농산물(야채류)을 후원해준다면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한 달에 한번 '불량파티'를 열어 과자, 피자, 양념치킨 같은 음식을 먹기도 한다는 꿈나무학교 어린이들은 "불량식품, 불량도시락은 싫다"며 "공부방처럼 작은 공동체에서 안전한 먹거리로 따뜻한 밥상을 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