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라는 이름의 유래
모란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성남이 광주에서 분리 독립되기 이전에 광주군수를 역임했던 김창숙은 고향이 이북의 평양이었다.
김창숙은 한국전쟁 때 당시 육군 대령으로 홀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남쪽으로 내려온 일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가 1970년 당시의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에서 황무지 개간사업을 하여 동네가 형성되자
고향 이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는 뜻에서 평양을 상징하는 모란이라는 이름을 이곳의 지명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모란시장의 역사
조선시대 한양과 한양의 동남부쪽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모든 물류가 송파나루를 경유하게되고 송파나루는 번성하게 된다.
남한산성의 명물인 해장국 "효종갱"이 송파나루를 통해 한양의 양반가로 새벽에 배달되어 지금의 새벽배송의 효시가 되었고
송파나루의 4,9일 장이 포화상태로 되면서 지금의 성남 수진교와 대원천 하류 근방으로 1962년 부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서울의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를 시작하면서 시장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그 후 도시화.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수진동 시장은 포화상태가 되어 이전이 불가피하여 1990년 지금의 장소인 대원천 하류지역인 성남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지금 22,000㎡의 면적에 13개 구획으로 나누어 950여개의 점포가 들어선 전국 최대규모의 민속시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1994년 분당선이 개통 되면서 역이름이 모란시장과 가까워 모린역으로 명명되었고 모란역이 1996년 8호선 종착역이 되었다.
<입구에서 본 모란시장>
<모란시장 약도와 뒷면의 모란민속시장 설명>
<식당촌에서 바라본 상가지역>
<상가지역에서 바라본 식당가 지역>
<옛날의 시장풍경>
<5일장을 나와 상설시장쪽 거리>
지금은 흑염소 특화거리인데 예전에는 유명했던 보신탕 거리
<모란시장의 명물 참기름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