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순례
증평 치명자의 모후 성당
신성근 신부(성사전담사제)
「장이 서던 들판 위에 세워진 믿음의 자리」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하심,
들판에 사람이 모입니다.
이곳에 믿음의 공동체가 자리합니다.
100년이 넘었습니다.
열네 번째 순례는 증평 치명자의 모후 성당입니다.
장이 서던 자리, 사람이 모이던 자리
증평 성당이 자리한 곳은 ‘장뜰’입니다.
‘장(場)’은 시장을 뜻하고, ‘뜰’은 넓게 트인 들판을 의미합니다.
장이 서던 넓은 들판,
사람들이 모이던 삶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물건만 오가던 곳이 아닌,
사람, 소식, 삶이 오갔던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성당이 서 있습니다.
옮겨온 자리, 이어진 신앙
증평 성당의 시작은 1920년 9월 23일,
감곡 장호원 성당에서 분가된 고마리 본당에서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후 1936년 4월, 공동체는 증평으로 옮겨옵니다.
이는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신앙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증평에서
진천 본당, 괴산 본당, 초중 본당이 분가했습니다.
증평 성당은
믿음을 나누고 확장하는 어머니 본당이 됩니다.
낡은 성전에서 새 성전으로
현재의 자리, 장뜰로 100번지.
이곳에는 1955년에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세월은 건물을 낡게 했고,
신자들의 발걸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2014년 10월 새로운 성전이 봉헌됩니다.
이 새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기도와 기다림이 쌓여 이루어진 열매입니다.
치유의 기억, 메리놀의 손길
증평 성당은 치유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1956년 12월 1일 장이 서는 날,
메리놀 수녀님들이 첫 진료를 시작합니다.
손수레에 실려 오는 이들,
길바닥에 누운 채 찾아온 이들,
뱀에게 물려 생명이 위태로운 이들,
악성 피부병으로 고통받던 이들,
결핵으로 앓고 있는 이들
이곳은 단순한 진료소가 아니었습니다.
연간 6만 명에 이르는 환자에게
생명을 살리는 자리,
희망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청주, 진천, 음성, 괴산, 주덕, 미원, 오송, 오창까지
직접 찾아가는 순회 진료를 펼쳤습니다.
의료 시설이 부족했던 시대,
이곳은
중부권의 생명을 지키는 등불이었습니다.
사라진 건물, 남겨진 기억
메리놀 진료소는 증평수녀의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마침내 1987년 폐업, 1990년 8월 31일 문을 닫게 됩니다.
그리고 2015년,
성당 신축과 함께 건물은 철거되고
단 하나, ‘시약소’만이 남게 됩니다.
이 작은 건물은
맞배지붕 단층 구조로
좌우 대칭의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증평군 최초의 「충청북도 등록문화재 제3호」로 지정됩니다.
이곳은 이제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생명을 살렸던 기억이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장이 서던 자리에서, 믿음이 흐르다
장뜰은 여전히 사람들의 자리입니다.
다만
물건을 나누던 자리에서
이제는 삶과 믿음을 나누는 자리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증평 성당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던 자리에서 신앙이 모이는 자리로
생필품을 나누던 자리에서 생명을 나누는 자리로
이곳은 그렇게
시간을 품고, 기억을 품고,
사람을 품고 살아가는 성당입니다.
「장뜰에 서서」
성당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장이 서던 들판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 한가운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