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MBC '네멋대로 해라'의 매력중 하나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입체적이고 생명력이 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각자의 하는 일이 있고, 각자의 삶의 궤적이 있다. 거기에는 복수(양동근)와 전경(이나영)같은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꼬붕(허인범)이나 이 드라마의 유일한 악역처럼 보이지만 그안에는 손가락을 잃고, 그래서 자신의 어린 자식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슬픔을 가지고 있는 박정달(김명국)같은 인물들의 삶이 존재한다. 그래서 '네멋대로 해라'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기준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달리하면서 여러 관계들을 맺어나간다.
그래서 '네멋대로 해라'는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루는 복수-전경-미래(공효진)의 이야기외에도 보다 다양한 관계들이 성립되며 시청자들이 그것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수의 병에 대해 알게 된 미래와 복수사이의 대사도 사람을 울릴 수 있지만, 미래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꼬붕(허인범)을 경찰서에 넘기는 장면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사와 씁쓸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네멋대로 해라'다.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캐릭터와 그들이 맺는 관계 하나하나가 주인공못지않은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추먹는 모습이 눈물겨운 이유
그리고 필자는 주연배우들을 제외한다면 '네멋대로 해라'의 그 많은 캐릭터와 관계들중에서 복수와 그의 아버지 중섭(신구)의 모습을 가장 흥미있게 본다. 이는 단지 이들이 드라마안에서 보여주는 모습뿐만 아니라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 양동근과 신구가 이 드라마를 통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들 스스로의 상징성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복수와 중섭의 관계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계이기도 하다. 그들은 단지 혈연으로 맺어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일뿐만 아니라 일종의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중섭은 다른 드라마의 아버지처럼 복수에게 어떤 강제적인 영향력이나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로 여느 '실패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아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약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아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할 뿐이고, 그것을 무조건적인 희생보다는 자신이 아들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진것도 별로 없고, 소매치기시절 아들을 강력하게 붙잡아 앉힐만큼의 힘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신 아들을 위해 정달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고, 아들의 미래를 위해 헤어진 뒤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아내(윤여정)를 찾아가 복수의 돈을 받지 말아달라고 애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복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100% 만족시키는 아들은 아니다. 그는 소매치기를 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바라는 대학공부는 뒷전이며, 아버지를 여전히 속이고 스턴트맨 생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속이는 동시에 바로 그런 자신 때문에 마음아파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한다. 그는 자신의 병보다는 자신이 죽은 뒤 혼자 살아갈 아버지를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대한의 사랑을 아버지에게 표현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네 멋'은 유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최대한 배려하는 '네멋대로 해라'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이 둘이 함께하는 모습은 언제나 서로간의 애정과 안타까움이 함께 교차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잔잔한 감동과 슬픔이 함께한다. 아버지는 그동안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앞으로 보상해주겠다는 사랑을 쏟으려하고, 아들은 앞으로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는 오랫동안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기쁨과 희망으로 식사를 하는 아버지와 이런 식사의 기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아들이 울음을 참으며 밥을 먹는 이른바 '상추씬'은 주인공들간의 씬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멋대로 해라' 팬들로부터 가장 감동적인 씬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복수와 중섭이 신구와 양동근이라는 배우에 의해 연기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동시에 '네멋대로 해라'를 현재와 같은 드라마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계층의 캐릭터중 가장 전형에 벗어나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면서도 작품마다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줄 아는 연기자들이다. 그들은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이름을 말하면 그 이미지가 쉽게 떠오를정도로 자신들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복잡한 노인 캐릭터
신구는 한마디로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서민적이면서도 괴퍅하고, 동시에 인간적일 수 있는 노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다. 워낙 연기한 배역이 많기에 그의 연기를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가 최근 보여주는 연기는 한마디로 전형적인 노인에 빠지지 않는, 캐릭터에 살아숨쉬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그런 연기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서민계층의 노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물론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그여자 사람잡네'같은 작품에서는 좀더 부유한(?) 노인의 역할을 연기했지만, 그 작품들에서도 그는 좀처럼 '있는집'의 실권을 쥔 노인으로서 근엄하고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버려진 쓰레기 하나도 뭔가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부지런한 생활을 하는 것이 몸에 뱄다. 그래서 더 억척스럽고 강인한 생활력이 느껴지고, 때로는 고집스러울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더 드라마에서 주변적인 인물이었던 노인의 캐릭터에 살아숨쉬는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런 그의 캐릭터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구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이미 수년전 몇편의 드라마에서 일반적인 노인, 혹은 아버지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를 자주 소화해왔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안나지만(기억나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신구외에도 강부자, 최명길, 김무생, 이영범등이 출연했던 드라마다. SBS 홈페이지에도 관련 정보가 없어서.. 최근 SBS 드라마넷에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 드라마에서 학교 선생님 출신으로 매우 온화하고 사려깊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할 때는 '웃음 세 번'을 경고수단으로 삼으며 세 번 웃자마자 갑자기 집안을 '엎어버리는' 은근히 공포스러운 캐릭터로 출연했고, 역시 '자전거를 탄 여자'라는 일일 드라마에서는 알부자면서도 목욕탕에 버려진 때밀이 타올을 가져오고, 그러면서도 사리분별에 맞춰 돈을 쓸때는 쓰는, 균형감각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 영화 '반칙왕'에서는 송강호의 아버지로 출연해 별볼일없이 살아가는 아들을 마구 구박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영화에 활력을 더하기도 했다.
'웬만해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이런 신구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좀더 극단적인 면을 부여하면서 신구를 좋은 연기자일뿐 아니라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신구는 그 이름 '노구'(!)가 설명하듯, 정말 어떨때는 '개같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괴퍅한 일면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흔히 '뒷방 늙은이'로 표현되는 힘없는 노인도 아니었고, 재산권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점잖게 노인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는 아이처럼 작은 것에도 집착하고 욕심부리는 한편, 동시에 정말 화가 날때는 몽둥이를 들고 집안 전체를 뒤엎을 정도로 폭력적인 모습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는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노씨집안에서도 가장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폭탄같은 존재였고, 에피소드는 그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구만큼 평범한 서민 가정에 살면서도 극단적인 면을 동시에 표출하는, 순진한 웃음과 쌍욕이 동시에 어울리는 중견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노인 캐릭터의 탄생이었다. 지금까지 작품속의 노인 캐릭터란 노인이 된 현재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그런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노인이니까 엄하고, 노인이니까 무력하다. 하지만 신구가 연기하는 노인이란 산전수전 다 겪은 삶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만의 삶의 법칙이 있고, 그만큼 만만치않은 상대이자 동시에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그는 먹을 것이나 공짜에 집착하며 때때로는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하는 존재지만, 동시에 자기 집안의 재산권을 틀어쥐고 재테크에 능한 모습을 보이며(심지어 주식투자도 한다), 가족들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순간순간 재빠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노인으로서 주연배우들의 관찰자나 보조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와 비견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배우 이순재가 MBC '동의보감'이나 '상도'에서처럼 카리스마적인 노인 역할이나 '내사랑 누굴까'에서의 엄하면서도 온화한 할어버지역할등 드라마의 성격에 따라 하나로 정해진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노인(혹은 나이많은)이 가진 상징성을 연기로 잘 표현한다면, 신구는 한 작품안에 그 모든 요소를 공존시키면서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게 살아온 서민계층의 노인의 모습을 표현한다.
노구에서 KGB로, 그리고 다시 고중섭으로
또한 신구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이후 그 캐릭터를 보다 다양하게 응용하면서 이런 독특한 노인 캐릭터를 완성시켜나간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그가 연기한 'KGB' 김금복이라는 캐릭터는 단지 힘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실세다. 그는 눈깜짝않고 폭력과 살인을 지시하고, 자신이 가진 부의 위력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면서 모든 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 집안에서는 손자의 생일을 챙겨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지만, 자신의 이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그는 '할아버지'가 아닌 'KGB'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놓는다. 만약 신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음험하고 구렁이같은 교묘한 속내를 가진 노인을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가 있었을까. 같은 영화에 출연한 백일섭이 어떤 배역을 맡아도 약간의 인간미가 느껴지듯, 신구는 어떤 역을 맡아도 자신이 가진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할줄 아는, 현실적이면서도 약간은 극단적인 모습이 엿보이는 노인의 모습이 묻어나온다. '그여자 사람잡네'에서도 그는 단지 집안 살림 하나하나에 간섭하는 쪼잔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면서 때론 질책을, 때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범한 마음씨를 보여주는 할아버지를 연기한다. 그가 연기하는 노인에는 카리스마나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오는 코믹함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대신 한 배역에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있다. 그는 드라마에 잘 융화되면서도, 그 캐릭터의 근원자체는 현실에 기초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신구의 캐릭터는 '네멋대로 해라'에서 또한번의 전환점을 마련한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연기하는 고중섭이라는 인물은 냉정히 말해 결코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고, 자식이 소매치기가 되는 것을 막지못했으며, 이제 그 아들도 떠나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인생에도 삶의 희노애락, 그리고 희망과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들 복수가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을 막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는 절대로 아들의 삶의 길을 바꾸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안에서 아들을 위해 돈을 저축하고, 음식을 마련하며, 아들을 위한 공부방을 마련한다. 그가 아들에게 주는 우유는 금전적인 가치로는 보잘 것 없지만, 거기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다. 유치장에 갇혀있는 아들을 빼낼 수 있는 힘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그대신 자신이 사람처럼 쳐다보지도 않았던 형사에게 애걸이라도 하는 인물이 중섭이고, 그런 중섭의 캐릭터는 한 캐릭터안에서 수많은 표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신구의 연기를 통해 완성된다.
늘 무던하고 착한 듯 하면서도 아들의 양복입은 모습을 보고 아들이 소매치기를 하러 나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불같이 화를 내고, 자신의 아들을 위해 헤어진 전 아내와 만나 감정을 억제한채 담담하게 아들이 소매치기였음을 말하는 중섭의 모습은 그동안 서민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안에서 늘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살아있는 표정을 가진 한 개인의 모습을 연기했던 신구의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정 계층을 연기하면서도 그 계층의 전형성에 빠지지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작품속에 투영시킬 수 있는 배우가 신구다.
잘생기지 않아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반면 그의 아들 복수를 연기하는 양동근은 그 자체가 이미 캐릭터의 전형성을 깨는 인물이다. 그는 한 10년쯤 일찍 태어났다면 아마도 조연으로 머물렀을지도 모를 그런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솔직히 말해 잘생겼다기보다는 악동에 어울리는 모습이고, 그가 맡은 캐릭터역시 기본적으로는 결코 작품의 중심에 설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아직 뜨기전 출연한 '학교'나 '광끼', 혹은 '짱'같은 학원물에서나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뉴 논스톱'에서나 그는 언제나 장난끼있고 코믹한 캐릭터를 맡았다. 이런 캐릭터는 작품의 양념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주연을 맡는 것은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양동근은 이런 캐릭터에 자신만의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성격파' 청춘스타가 충분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매력은 '평범한 서민'과 때론 대책없어 보이는 '낙천주의'의 결합에서 나타난다. '수취인 불명'을 제외한다면, 그는 작품속에서 늘 그저그런 능력을 가진 평범한 서민이면서도 결코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출연한다. 그가 아역시절 출연했던 KBS '서울 뚝배기'에서도 그는 말잘듣는 모범생 아이나 대책없는 악동이 아니라, 장난꾸러기면서도 아저씨 아줌마들과도 말이 잘 통하는(?) 캐릭터로 출연했다.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뭐 특출난데도 없이 간간이 말썽을 피우지만 그렇다고 그냥 떽떽거리는 말썽꾸러기 아이도 아닌, 참 밉지않은, 보면 유쾌한 웃음이 나오는 인물을 연기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한동안의 성장기를 거쳐 그는 '뉴 논스톱'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물론 공부못하고 말썽 잘 피우는 캐릭터는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학원물에서도 조금씩 드러난 것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주인공에게만 비중이 집중되는 미니시리즈나 영화에 비해 다양한 인물들에게 비중이 나눠지는 시트콤은 그가 가진 잠재된 캐릭터를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구리구리하지만 낙천적이다
그가 '뉴 논스톱'에서 가진 기본적인 캐릭터는 사실 매우 능력없고 얄미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말그대로 '빈농의 아들'이고, 언제 밥한번 제대로 사는적도 없으며, 심지어 남의 물건을 슬쩍하거나 사람을 속이는 것을 다반사로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불쌍'해보인다거나 미워보이지 않았던 것은 양동근 특유의 낙천적인 모습에서 비롯된다. 그의 상황은 사실 무척 비관적일수도 있지만, 그는 그것을 웃음으로 표현한다. '구리구리'하다는 말과 함께 그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남에게 구박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주눅들지는 않는다.
그의 애정문제에 관해 진지한 모습을 띄었던 몇편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늘 화면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심지어 슬픈 장면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슬픈 장면 뒤에도 곧바로 '구리구리'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위안(?)을 주고 삶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뉴 논스톱'속의 양동근이었으며, 이는 다시 가수활동을 통해 양동근 자신의 것으로 확대된다. 앨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카리스마'대신 넉살좋은 웃음을 내세우면서 일상속에서 유쾌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재미없는 일상에 활력소를 만들어내는, 그리고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절망속의 희망
그리고 '네멋대로 해라'의 고복수는 그런 양동근의 캐릭터에 인생의 깊이를 더한 인물이다. '네멋대로 해라'의 복수는 사실 삶의 희망이라곤 없는 캐릭터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시한부 인생을 벗어난다해도 그는 여전히 소매치기 출신의 초보 스턴트맨일 뿐이다. 가진 것도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암담하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란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단지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의 삶을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아보겠다는 희망과 의지이다. 그는 죽어가는 그순간에도 웃음을 잃지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상대방에게 풀기보다는 자신의 혼잣말로 풀어버리고, 자신이 처한 불운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한탄하기 보다는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듯, 오히려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을 생각하는 것이 복수다.
양동근은 그런 복수의 캐릭터를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고복수이자 양동근인'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는 남에게 나쁜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끝을 흐리면서 어눌하게 표현하는 그의 억양을 통해, 그리고 때때로 보여주는 그의 공허한 눈을 통해 형상화한다. 그는 상황에 따라 울고 웃지만, 그 속에는 그순간에도 늘 남을 걱정하며 자신의 주장은 조금씩 마음속에 담아놓듯, 늘 조금은 상대방이 그의 말에 파고들 여지를 남겨두는 그의 대사와, 순간순간 어느 한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공허한 눈빛을 담아내는 그의 표정연기가 있다. 그는 참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만들만큼 한 개인의 캐릭터에 깊은 감정이입을 느끼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평범하고 별볼일없는, 심지어 반항적이지도, 그렇다고 멋진 외모를 가진 것으로 설정되지도 않은 캐릭터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게 만든 것은 양동근이라는 배우가 가진 힘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배우들이 흔히 걷게되는 전형을 따라가는 대신 더욱더 자신이 가진 캐릭터를 작품속에 강하게 이입함으로서 오히려 각각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네멋대로 해라'이후 너무 비슷한 캐릭터나 연기의 톤을 반복하는 것을 주의한다면, 양동근은 어쩌면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성격파 배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흔치않은 배우다.
그들만의 캐릭터
세상에는 수많은 배우들이 있고, 그 배우들은 보다 잘생긴 얼굴, 그리고 더욱더 멋진 배역을 얻기 원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과 연기력을 가지고, 오직 자신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배우들은 더욱 가치있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네멋'에 사는 배우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 아니겠는가. '네멋대로 해라'라는 작품자체가 주는 재미와는 별개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리고 앞으로 대표할지도 모를 살아숨쉬는 자기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신-구 성격파 배우를 한 작품안에서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