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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우주의 창조원리 : 천지의 시간개벽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 『道典』 2편 49장
우리의 인생은 신비 그 자체다. 인간은 우주와 생명의 수수께끼를 돌돌 말고 나와서 미지의 운명의 길을 걸어가며 이를 한 올 한 올 풀어
가는 꿈과 자유의 투사이다. 한없이 이어져 있는 레일 위를 기차가 달려가듯, 우리 인생도 진리의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며 한 생애를 살다
간다.
인간이 어떠한 짓거리를 다하여도 그때마다 소리없이 고여 우리의 영혼을 멍울지게 하는 이 침묵의 심연은 무엇인가? 어떠한 권좌에 올라선 사람도, 인생의 진창에서 끝없는 고통과 쉴 틈 없는 들볶임에 눈물짓는 사람도, 지구 땅덩어리를 다 살 수 있는 황금 백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유한한 삶이 다하기 전에 기어코 풀어내야 할 커다란 숙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찾아 나서려고 하는 이 의문의 해답은, 일찍이 청세조(淸世祖) 순치제(順治帝, 1638∼1661)가 금산사에서 말을 타고 놀다가 구도에의 충격을 크게 받고 인생의 허무를 고백한, 생동하는 다음의 양심선언과 동일한 것이리라.
황금빛 곤룡포를 붉은 가사로 바꿔입고 구도길에 나서니,
내 본래 서방(인도)에서 구도하던 한 이름 없는 승려이더라.
그런데 어찌하여 떠돌다 제왕의 왕가에 떨어졌는고.
아, 내가 생겨나기 전에는 무엇이 나였던 것일까?
사람으로 생겨난 이 나는 누구인 것일까?
아, 이렇게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두 눈 감으면 몽롱한 환상의 어둠 속에서 노니는 이는 또 누구인가?
백 년의 세상사 한밤의 꿈이요,
만리강산은 한 판의 바둑놀음이로다.
(吾本西方一納子, 然何流落帝王家! 未生之時誰是我, 我生之後我是誰?
長大成人方是我, 合眼朦朧又是誰? 百年世事三更夢, 萬里江山一局棋? 「順治皇帝 出家偈」에서)
산하대지의 주인으로서 6세에 황제가 되어 18년간 나라를 통치하며
중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자 했던 그가 인생의 무상과 허무의 마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내 이제 빈손 들고 부처님께[西] 돌아가노라(我今撤手西歸去)”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순치제의 경우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씩
삶의 신비와 우주의 수수께끼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의문이 솟아오르는 순간과 마주치게 된다.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이 의문의 불덩어리는 태초에 신(神)이 우주를 생성할 때 오직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만 넣어준, 근원에 대한 향수(鄕愁)의 염(念)을 솟구치게 하는 그리움의 뿌리임에 틀림없으리라.
우주는 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만약 조물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무엇 때문에 인간을 만들어내었는가? 그리고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이 지상에서의 인생이란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실패작일까? 아니면 선악과를 따먹은, 유혹에 약한 인간의 원죄와 타락 때문인 것일까?
인간의 뇌세포가 진리의 빛으로 깨지기 시작하던 인류문명의 여명기로부터 이지(理智)가 극도로 발달한 말세의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이러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다만 무지의 광기(狂氣)로 채색된
채 오늘도 순진한 신앙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인생의 번뇌와 괴로움이 투정을 부리며 영혼을 들볶을 때, 인간은 무지의 벽 앞에서 아파하고 허전함으로 인해 흐느끼게 된다. 종교는 왜 이다지도 많아야 하며, 무지한 선천종교의 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성전(聖戰)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채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가?
나는 그 동안 학문의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의 과학적 사고논리에만 깊이 젖어, 천지 대생명의 율동을 가슴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상실함으로써 진리의 불감증 환자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가슴아픈 사실이다. 그들의 정신을 열어주고 함께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를 뼈아프게 체험하였다. 그런데 지난 1980년대에 이르러 신과학의 세계관이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단편적이고도 직선적인 묵은 세계관을 극복하고 우주의 근본과 생명의
본원을 통일적으로 보려는 안목과 사고가 생겨나, 21세기를 맞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욱 성숙해가고 있다.
신과학의 세계관에서는 기존의 정태적, 선형적, 단편적, 분석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주를 해석하려는 서구의 논리를 극복하고 동태적,
비선형적(순환적), 다차원적, 통일(통합)적, 주관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조망한다. 신과학이 어떤 의미에서는 21세기의 새로운 과학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우주에 대한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는 역시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증산도에서는 이러한 궁극적인 의문점을 우주의 창조원리 차원에서 처음 밝혀주고 있다.(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증산도의 진리』 정독을 권한다.)
2-1. 시간이란 무엇인가
천지일월의 창조
우리가 바라보는 신비스러운 이 천지는 처음에 어떻게 열렸을까?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증산 상제님은 도통의 문을 열어주는 핵심 말씀을 주셨다.
*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니라.(『道典』
6:51)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씀을 깊이 깨치기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에서 주창되고 있는 우주창생론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근래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무(無)에서 탄생한 아기우주가 급격한 팽창(inflation)과 대폭발(Big Bang)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우주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 대폭발 후 우주에서는 불과 수십 분 만에 양자와 중성자가 융합하여 수소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생겨난 수소구름은 수십
억 년의 세월을 거쳐 장려한 일월과 뭇 별들을 광대한 공간에 수놓았다.(여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증산도의 진리』 1장을 참고)
두 시간관 :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순환하는 시간
그러면 이렇게 우주자체의 변화성과 조화성으로 생겨난 천지일월은
어떻게 창조의 변화운동을 일으킬까? 여기에서 이 우주를 도도한 흐름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시간의 문제가 등장한다.
콜롬비아호가 취항한 1981년 4월 이후로 지구의 역사는 우주사 시대로 접어들었건만, 아직도 시간에 관한 한 원시적인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대단히 많이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시간은 태초로부터 미래를 향해서 직선적으로 영원히 흘러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즉, 태초에 전능한 어떤 유일신이 혼돈의 우주로부터 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인간이 생겨나고, 그 후
인간이 타락하여 극악무도한 말세가 되어 심판의 날이 임하고, 그 다음에는 꿈같은 낙원의 안식 세계가 영원 무궁토록 이 지상에 계속되리라는 ‘직선적(linear) 시간관’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일정한 변화원리를 따라 순환(circulation)함으로써 존재한다. 극미의 원자세계나 극대의 천체 운동이 모두 순환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운동을
이루어간다. 낮과 밤의 주기적인 교차, 사계절의 주기적인 순행(順行)
등등. 어디 그 뿐인가! 우리의 생명조차도 음양의 순환리듬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낮에는 동(動)하는 양기를 타고 무의식의 기반 위에 있는 의식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황혼이 서서히 밀려와 이윽고 밤이 되면 대지에 짙게 드리우는 음기운을 타고 육신은 잠의 세계에 빠져들고, 마음의 날개는 무의식의 공간 속을 날아다닌다. 무의식이 체(體)이며, 의식은
무의식이 용(用)하는 차원이다. 즉, 우리의 영혼은 다음날을 위해서
밤에는 하룻동안 의식의 공간에 너저분하게 헝클어져 있는 사연을 지워 버리면서─무의식 세계에 옮겨놓는─휴식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세계는 이렇게 크게는 ‘의식(낮) → 무의식(밤) → 의식(낮)’의
순으로 순환함으로써 생명활동을 영위해 나간다.
대우주는 생(生)우주적인 순환의 리듬(주기)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 순환의 주기성을 크게 둘로 구분해 보면, 전반기는 ‘창조 과정’ 그리고 후반기는 ‘성숙을 위한 재창조의 파괴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 전한
‘예전의 하늘과 땅, 새 하늘과 새 땅’, 불교에서 겁(劫)으로 표현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우주의 순환 이야기나 미륵 천주님이 오실
때 ‘하늘의 별들이 바뀐다’는 대변국소식, 그리고 유교의 우주관과
『주역』, 『정역』의 역도(易道)에서 정립된 선·후천의 시간관은
모두 우주의 순환하는 변화정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도 완벽한 순환적 시간관을 이야기한다. 우주는 4유가를
한 주기로 하여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데, 우리는 현재 이 네 유가 중에서 마지막 시기인 칼리 유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또 브라만은 창조와 수렴(결실)을 하는데, 이를 하루로 치면 12시간은 창조하고 12시간은 퇴화(退化)하는 운동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즉, 우주의 창조와 파괴가 시간의 순환을 통해 무한히 반복된다는
소식이다. 불교나 자이나교에서는 시간의 순환을 열두 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바퀴에 비유하고 있다. 또 구약의 에녹은 열두 천문을 통과하는 천체 운동에 의해 우주가 순환하는 모습을 천상에서 직접 보았다고 한다. 동서양 종교문화에 빈번히 나오는 12수를 주의 깊게
눈여겨 보라.
신의 창조 목적은 세속(俗)의 세계를 성(聖)의 세계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던 엘리아데(M. Eliade)는, 동서양의 신화, 종교, 제의, 건축양식 등을 종합 검토하여 저술한 『우주와 역사』(일명 ‘영겁회귀의
신화’)라는 저서에서, ‘우주의 근본적인 변화리듬의 영원한 반복은
주기적인 파괴와 재창조(re-creation)’라 말하고,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일정한 시간의 끝[終]과 시작[始]에 대한 무의식적인 관념이 있으며, 이는 생우주적(bio-cosmic)인 리듬을 관찰하는 데서 기원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우주생명의 영원한 재생의 리듬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생명도 새해를 맞을 때마다 과거의 종말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대우주 순환설을 대시간(Great Time)설이라 하였다.
독일의 신학자였던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은 『역사와 종말론』이라는 저서에서 “종말론이란 세계의 끝과 그 파멸에
관한 교리”라고 말하고, “서양역사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진 종말론은 세계적 사건의 주기성(periodicity)이라는 생각에서 발생했으며,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의 과정을 자연계의 계절 순환으로부터 유추해서 성립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일년 사계절이 계속
순서대로 따라오듯이 세계의 과정에서도 ‘세계의 해’, ‘대세계년(大世界年)’이라는 사계절(우주의 일년)에 해당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동서 문명의 역사,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중국사상, 토인비와 슈펭글러의 역사철학 등 모든 순환론을 집대성한 그레이스 케언즈(Grace E. Cairns)는, 『역사철학』이라는 불멸의 저서에서 우주 순환의 최후 목적에 대한 총결론으로
다음의 한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인류와 다른 우주의 생물들에 대한 그러한 초역사적인 목표는 역사에 대해서 영혼의 해방이라는 목적을 부여한다. 인류는 지상에서 완전하게 된 사회질서에
가까이 인도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 (그리하여 인생의 섭리는) 우리가 절멸(絶滅)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보다 높은 차원의 영성(靈性)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신성(神聖)한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역사철학』, 443쪽, 459쪽)
이상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들은 모두 동양문명에서 약 5,700여 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각고(刻苦) 끝에 정립된 선·후천에 대한 소식으로서, 천지가 인간과 만물을 화생하고 길러서
성숙시키는 천지 문명의 일회 주기(우주 일년)에 대한 메시지들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시(時)-간(間)(Time-Between), 즉 선·후천개벽 시간대의 대 교역점에서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불트만이 말했듯이 우리가 맛보고 있는 고통의 세계는 신의 저주가
아니라 시간의 속성에 휩쓸려 들어가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이 시간의 정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시간의 흐름이 곧 우주조화신(造化神)의 얼굴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떻게 영원에서 영원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우주 본체신(하나님)은 천지일월 속에 자신의 존재원리를 숨겨놓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들은 시간 그 자체의 흐름을 통해 (변화의 진리자리를) 깨쳐야 한다.
구소련에서 가장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였던 니콜라이 코지레프 박사는 시간에 관한 신(新)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현대과학의
시간관이 동양 우주론의 시간관과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이 세계에 있어서의 생명의 원천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고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바로 시간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불가사의한 자연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시간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연결시키고 또 존재계의 모든 사물을 결부시키고 있다.
현대과학이 밝혀내었듯이, 우주의 조화생명[氣]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변화원리[理]의 흐름이 바로 시간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천지일월의 순환운동에 의해서 비로소 우리에게 인식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간의 속성과 시간의 흐름에 관련된 우주의 법칙을 알려면 반드시 천지일월의 운행법도를
깨쳐야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묶어서 말한다면, 시간이란 우주의 신(우주변화정신)이 현상계에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켜 놓은 조화신의 자기얼굴이다.(‘본체=현상’의 일체관계를 생각해보라.)
시간의 흐름도 체(體)와 용(用)의 시간대로 흐른다
천지의 시간도 ‘어머니 시간[母時]’과 여기서 생성되는 ‘아들 시간[子時]’으로 구분되어 흘러간다. 즉 ‘시간은 시간을 낳는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모든 시간의 모체가 되는 시간을 찾아낸
분은 『정역』을 지은 김일부 대성사이다. 그는 이를 원역(原易)
375도라고 정의했다.
원역은 천지의 순환 속에서 시간의 출발이 이루어지는 모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근원 시간[母時]이다. 이러한 모체 시간은, 현실세계에서는 음양의 두 가지 시간을 창조의 궤도로 쓴다. 즉, 어머니 시간이 천지 속에서 작용(用)할 때는, ‘선천 윤역(閏易)’의 양의 시간대와 ‘후천 정역(正易)’의 음의 시간대라는 대칭적인 시간질서로 천지만물과 인간생명을 잡아 돌린다.
문명구조의 전환의 문제는 시간개벽의 문제로 귀결된다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미래의 충격』이란 저서에서 현대문명의 거대한 변혁의 특성을 이렇게 전해 주고 있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혁명, 성(性)의 혁명, 인종의 혁명 그리고 가장 빠르고 심각한
기술상의 혁명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산업사회의 전반적인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초산업사회 혁명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혁명이란 새로운 사태를 뜻하는 것이다. 혁명은 수많은 개인의 생활에 신기한 사태를
가져다주고, 달라진 제도나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제3의 문명’은 어떤 변혁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먼저 결론을 내린다면, 이것은 인류의 문명구조의 전환 문제이자 대우주의 창조섭리에 얽혀있는 세계개벽의 문제이다. 문화적, 사회적
차원뿐만 아니라 자연의 시간질서가 바뀌는 개벽문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해명될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혁의 총체적인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시간대가 순환하며 주기적으로 빚어내는 새로운
창조개벽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제3의 문명의 도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것이다.
동서의 성자와 철인들이 예고하고 있는, 긴장되게 다가오고 있는 변국의 내용인 ‘새로운 사이클이 생기는 재조정의 시기’, ‘위대한
새 인종의 출현이 이루어지는 수정시대’, ‘일곱 번째 큰 수가 다 돌았을 때’, 또는 ‘황금의 사투르누스가 쇠로 변한다’는 이야기들은
모두 우주가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한다는 천지 시간의 순환성을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주시간은 도대체 어떠한 원리로 순환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먼저 천지만물을 잡아 돌리는 조화기운[聖氣]이 작용하는 변화의 체(體)와 용(用)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2-2. 인간은 우주(천지일월)의 주인이다
체(體)와 용(用)의 논리
동양의 정신은 인간과 우주의 오묘한 신비를 간단한 체(體)와 용(用)의 논리로써 밝혀준다. 체와 용은 변화의 본체와 작용을 의미한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모든 현실변화의 작용은 이것을 일으키는 근원적인 몸(본체)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간단한 예를 근취저신(近取諸身)하여 우리의 몸에서 찾아보자. 체와 용의 관계는 자신의 몸에서 가장 쉽게 터득된다. 오장육부가 들어있는 몸통은 변화의 중심체인데, 이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작용(用)하는 것은 사지(四肢), 즉 팔다리이다. 머리와 몸통과의 관계도
동일하다. 좀더 세분해서 팔을 보라. 하나의 팔뚝 전체가 체라면 이를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섯 손가락이다.
그런데 대단히 중요한 점은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체와 용은 일체
관계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다르게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손과 그것이 맞붙어 있는 팔은 하나이지만 엄연히 손은 손이며 팔은 팔로서 양자는 달리 생겨나 일체로 작용한다.
우주를 마음에 그릴 때는 항상 이러한 체와 용의 관계를 동시에 인식하면서, 일체와 분리의 양면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창조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우주의 신비와 변화세계의 상호 연관성은 사실 깨치고
보면 이처럼 간단한 것이다. 다만 이를 해명해주는 논리구조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정신자세와 트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체와 용의 상호관계를 정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한
국가조직의 중심자리에 있는 핵[體]은 국가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그의 지도역량을 현실적으로 펼치는 일[用의 구실]은 행정기관의 공무원과 크게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때문에 성사시키는 주체적 입장에서 거꾸로 볼 때는 국민이 국가의 주체[體]이며,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어 이들을 이끌어 가는 사역자[用]의
역할을 하는 중심 일꾼이다. 가족을 예로 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가정의 중심[體]자리에 있으며, 자식들은 부모의 교육방침과 가훈을
따르며 저마다의 이상을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인생의 역꾼[用]이다.
부부관계에서 남편은 가정의 체, 아내는 용이다. 그러나 이것도 현실적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식들이 부모의 뜻과 삶의 지표(이상)를 실현시켜 가는 주체가 되며, 아버지 어머니는 이들을 뒷바라지해 주는 사역자의 밑거름 역할을 한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사항이니, 문제의식을 가지고 잘 기억해 두기를 재삼 당부하는 바이다.
건곤과 천지일월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은 네 가지이다(양:木·火, 음:金·水).
이를 사상(四象)이라 하며, 시간으로는 사시(四時), 공간으로 전개될
때는 사정방위(四正方位)가 된다. 인체에도 사지가 있다(十자의 모습으로 생각해 보라). 이 네 가지의 우주력은 한 뿌리의 조화기운(중성土, 무극)으로부터 흘러나와 현상세계를 작용 변화시켜 간다. 즉,
사상(四象)은 용(用)이며, 중심 토는 변화의 본체이다. 물론 현실 변화의 입장에서 볼 때는 사상이 천지조화의 이상을 펼치면서 변화작용을
해나가는 주체가 된다. 이 중성의 조화기운이 변화해가는 길을 도가에서는 도(道)라 한다. 이 길과 조화되는 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 세계의 주인이 되는 길이며,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信]자리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의 상대적
조화기운도 중성의 조화기운인 토(土)로부터 분화되어 이루어졌다.
음양은 우주만유의 유형무형의 모든 양면성과 상대성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그러면 우주의 순수음양의 조화기운인 건곤과 천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천지와 일월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 있는 것일까? 또 천지일월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서는 우주와 천지의 관계는
무엇인가?
건곤은 관념적인 조화의 핵심체(體)이나, 천지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는 우주생명의 역사의 무대로서, 현실세계에서 만물을 생성하고 그 이상을 실현시켜 가는 창조의 작용(用)체 역할을 한다. 천지와
일월의 상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천지는 음양의 본체(體)이며,
만물을 생성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음양(태극)운동은 일월이 수행(用)한다.
이를 좀더 자세히 말하면 순수음양의 조화기운 자체[無形]인 건곤(乾坤)은 천지로 드러난다. 여기에서 건(乾)의 반려자로서 곤도(坤道)의
작용을 현상계에 펼치는[用] 주체가 바로 지구이다. 천은 조화의 바탕으로 음이지만[체] 이 곤으로서의 지구는 형체를 쓰고 있는 양[용]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조화의 바탕을 음, 형체를 쓰고 드러나 있는
작용체를 양으로 본다. 또 반대의 체용으로도 생각해 보라.
또 태양은 무형의 건(乾)을 대행하여 양기운을 지구에 던지고, 그 양기운은 지구[坤]의 유일한 짝이 되는 태음[月: 달]의 음기운과 조화되어 음양의 태극운동을 이룸으로써, 지상의 만물을 길러낸다.
즉, 천(天)·지(地)가 서로 음양으로 한 짝을 이룬 뒤에 일(태양)·월(태음)과 다시 한 몸체〔천지(음) 일월(양)〕를 이루어, 인간과 만물을
화생하여 길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일월은 대자연의
순수 객관세계로서 만물을 빚어내는 조화의 바탕(음)이 되어, 인간을 자신의 짝으로(주인으로) 생성하여 완전한 우주의 주객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는 우주의 한소식을 듣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므로 가슴으로 확연히 느껴질 때까지 반복하여 깨치라.
인간은 우주의 열매
그러면 인간은 이 우주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또한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천지일월과 인간의 관계에서, 이 양자는 음양의 짝으로 존재한다. 천지일월은 우주의 시간대를 형성하는 변화와
조화의 주체(體)이며, 인간은 그 이상을 현실 세계에 직접 실현시켜
가는 사역자[用]가 된다. 이는 천지일월도 그의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주인공)인 인간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즉, 인간과 천지일월은(주관과 순수객관으로) 한 몸으로 맺어져서 동일한 우주변화원리의 흐름를 타고 변화해 간다. 따라서
천지일월의 운행도수가 바뀌게 되면 인간의 문명과 세계사의
시운도 똑같이 변혁의 물결을 타면서 요동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체와 용의 상호관계를 반대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주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체에는 주체·본체 등의 뜻이 있는데 주의해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체와 용의 관계를 주체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우주의 주체는 우주 아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이런 위격(位格)으로 우주 속에서 태어났다. 대우주의 궁극적 이상은 인간을 통해서만 실현되므로, 인간이야말로 우주의 가능성이며 꿈이며 우주의 열매인 것이다.
체와 용을 둘로 분리시키지 말고 한 몸[一體]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기르라.(우주정신의 본체인 태극의 상대성 원리 때문)
천지와 우주
대개의 경우 천지는 우주의 일부이므로 체와 용으로 말할 때 무변광대한 우주가 본체이며 천지는 그 중에 일개 행성의 구석진 곳으로 알고 있다. 이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우주를 체라 하면 우주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도록 구체적 변화작용의 기틀이 되는 것이 천지(하늘과 땅)이기 때문이다. 즉, 천지는 우주의 조화기운[乾坤]이 개벽되어 우주의 온갖 변화를 일으키는 만물생성의 핵심체가
되고, 우주는, 인체로 말하면 이 몸체를 운용하는 팔다리(사지)와 같이, 천지의 정신이 영원히 작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무한(무극)의 시공성’이다. 우주의 시공간은 체이며 그 속의 무수한 별들은 변화의 작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를 거꾸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천지와 우주’의 변화의 일체관계에 대한 개념도 다같이 모르게 되는 것이다.
천지와 우주의 기본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인생과 우주를
논하고, 또한 동양의 정신세계를 제멋대로 비판하며 중생을 오도하는
무리를 적지 않게 보아왔는데, 이 또한 난법의 시대가 자아내는 무지의 단편이라 할 것이다.
우주는 천지의 몸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시공생성의 어머니이며, 천지는 우주의 온갖 변화가 일어나는 생명창조의 신묘한 몸체이다. 따라서 천지는 전체 대우주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핵심적인 작용(用)을
하는 우주조화의 산실(産室)인 것이다. 이 천지의 자녀로 태어난, 대우주의 위대한 주인공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천지일월의 열매이다. 모든 종교(유·불·선·기독교), 철학, 현대과학의 가르침의 결론도 이 한마디를 깨쳐 실천하는 것에 있다.
2-3. 상제님이 주재하시는 우주 일년의 4계절 순환
그러면 이 우주 창조의 순환정신은 무엇일까? 상제님은 그 핵심정신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해답을 내려 주신다.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道典』 2:49)
*모든 일이 이치 없이는 못하는 것이니라.(『道典』 4:66)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일주기(一週期) 단위인 지구 일년의
근본 창조정신은 ‘탄생(生) → 성장(長) → 성숙의 수렴(斂) → 휴식(藏: 결실된 종자를 거두어 저장)’의 사계절 시간질서를 따라 순환한다. 또한 작게는 오전과 오후를 반복하는 하루 24시간의 순환 질서에서부터, 크게는 인류 역사의 대국적 발전 과정 역시 생장염장의 자연
질서를 따라 순환한다. 마치 지상의 초목이 지구 일년의 창조 주기에
따라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커 나가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인류 문명은 우주 일년의 변화 주기에 따라 ‘탄생·성장·성숙·휴식’하는 것이다.
이번 우주 일년의 봄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이 때가 처음으로 현생 인류의 조상(Homo Sapience Sapience)이
화생(化生)되어 지상에 태고문명의 여명이 동트기 시작한 ‘시원(始原) 문화시대’이다. 이 봄철의 시간정신의 핵심을 ‘생(生)’이라고 한다.
우주의 여름철은 만물이 분열하며 성장하는 시간대로서 그 창조정신의 핵심을 한마디로 ‘장(長)’이라 일컫는다. 이 때는 우주의 봄철에 화생(化生)된 생명이 번식을 거듭하고, 인류문명 역시 여러 갈래로
나뉘어 발전한다. 이 시기에 만물을 분열 성장시키는 기운을 동양철학에서는 불기운(火, 숫자로는 7)으로 나타낸다.
우주의 가을철은 ‘통일의 시대’요, ‘성숙의 시대’이다.
봄·여름의 생장과정 동안 가꾸어 온 모든 생명의 진액을 갈무리하는
완성의 시기요, 결실의 시대인 것이다.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지상에 오곡백과가 탐스럽게 여물듯이, 인류는 우주의 가을시간대에 이르러서야 이 지상에 통일문명의 이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을
성숙시키는 가을기운은 금(金)과 대광명의 백색으로 상징된다. 이처럼 수렴(收斂)·결실하는 가을철 정신의 핵심을 ‘염(斂)’이라 한다.
우주의 겨울은 지상의 많은 지역이 얼음으로 뒤덮혀 버리는 ‘빙하기’이다. 이 시기는 다음 우주 봄철의 새로운 탄생을 예비하기 위해 생명의 진액을 우주의 본원[水]으로 되돌려, 하늘과 땅이 휴식을 취하는 ‘장(藏)’의 시간대이다.
이 우주의 순환법도는 어떤 인격적인 신이 인위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천지 자체의 조화 원리에 의해서 스스로[自] 그렇게[然]
돌아간다.
이렇게 자기충족적(self-contained)인 우주질서를 주재하시는 천지의
통치자가 바로 상제님(하느님)이다. 상제님은 생장염장의 법도를 근본으로 하여 천상과 지상문명의 발전과 통일을 주도해 나가신다. 그러므로 신비에 싸여 있는 절대자의 진면목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상제님이 주재하는 우주의 법도, 즉 우주가 변화해 가는 원리를 먼저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대인을 배우는 자는 천지의 마음을 나의 심법으로 삼고,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체득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에 나아가느니라.(『道典』 4:74)
선천(先天)과 후천(後天)
우주는 태극의 대칭성 원리에 의해, 크게 양과 음의 시간대인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되어 순환한다. 선천과 후천이란 일년 사계절을 ‘전반기 봄·여름’과 ‘가을·겨울의 후반기’를 선·후로 하여 부르는 말이다. 물론 하루에도 선·후천은 존재한다. 낮(양)과 밤(음)의 주기적인 대칭 변화작용이 그것인데, 하루 중 오전은 선천으로, 오후는 후천으로 작용한다. 여기서 시간대는 항상 음양의 쌍으로
순환하며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낮과 밤이 양과 음으로 대칭을 이루어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면서 사계절의 리듬을 형성하듯이, 천지의 시간대도 인간과 우주자연을 창조·변화시키기 위해 선천과 후천의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선천과 후천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나 밤과 낮이 전혀 질적으로 다르듯이, 사실은 운동하는 원리 자체부터가 정반대이다. 만물이 탄생·성장(자기 발전) 운동을 하는 천지의 봄·여름(선천)은 남성 에너지[乾]가 주도하여 인간을 성장시키므로 6양(陽)시대 또는 건도(乾道,
陽道)시대라 하고, 후천의 6개월(6×10,800〓64,800년) 동안은 여성
에너지(坤)가 중심이 되어 결실 성숙시키므로 6음(陰)시대 또는
곤도(坤道, 陰道)시대라고 한다. 이것은 극히 짧은 찰나의 주기에서부터 대우주의 커다란 순환주기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이다.
선천은 생장분열의 과정이기 때문에 과학과 철학이 판을 달리하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때이다. 특히 만물이 세분화·다극화의 극한에 다다르는 우주의 여름철 말기가 되면, 인간의 정신마저도 분열기운의 포로가 되어 생명의 근본을 상실하고, 인류사회는 윤리기강이
무너지게 되어 극도의 혼돈 상태를 연출하게 된다. 바로 이 우주 여름철의 말기가 기성종교에서 외쳐온 ‘말세’, ‘말법’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우주는 결코 무한히 분열 성장운동만을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면, 우주 만유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반대 방향의 창조운동을 시작한다[極卽反]. 분열의 최극단에 이르면 다시 통일의 새 기운이 움트고, 반대로 통일 수렴의 정점(頂点)에서 다시 분열기운이 싹튼다. 마치 달[月]이 차면 다시 기울고, 오르막이 다하면 다시 내리막이 있듯이, 선천의 분열도수(度數)가 다[盡]하면 후천개벽의 통일도수가 숙명적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후천 가을세상은 상생(相生)의 시대이며 성숙과 통일의 시대이다. 선천시대 동안 극도로 분열 대립하던 여러 종교와 이념, 사상 등이 모두
하나의 열매진리로 합쳐지고, 정치와 종교도 한 갈래로 통합되어
종교적 이상을 직접 구현하는 새로운 도권(道權) 정치의 대개벽
문화시대가 열린다.*
*옛적에는 신성(神聖)이 바탕을 세움에 성웅이 겸비하여 정치와 교화를 통제관장(統制管掌)하였으나, 중고(中古)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을 보지 못하였나니, 앞으로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道典』 4:32)
선·후천 우주의 일주기 시간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창조원리의
내용을 압축하여 정리하면 앞의 도표와 같다.
천지 사계절의 변화성
이 우주에는 생장과정의 선천 5만 년 양(陽)시대와 성숙운동하는 후천
통일·염장의 5만 년 음(陰)시대를 주재하시는, 권능의 대권자이신 인격적인 하느님이 계신다. 대우주의 통치자로서 바로 그 하느님의 위(位)에 계신 상제님(上帝님, 우주 주재자 하느님의 공식호칭)께서, 천지조화의 바탕인 ‘기(氣)의 생성변화 원리’로써 우주 사계절의 변화(생·장·염·장)를 일으키는 천지일월의 변화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 주셨다.
*萬物資生 羞恥는 放蕩神道統이라.
春之氣는 放也요 夏之氣는 蕩也요
秋之氣는 神也요 冬之氣는 道也니
統以氣主張者也라.
만물은 바탕을 타고 생겨나나니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는 생성의 근본원리는
방(放) 탕(蕩) 신(神) 도(道) 통(統)이라.
봄기운은 만물을 싹 틔우고(放),
여름기운은 만물을 기르고(蕩),
가을기운은 성숙케 하는 신(神)이요,
겨울기운은 본체로 환원하는 것(道)이니,
내가 주재하는 천지 4계절의 만물 창조원리는 모두 기(氣)로써
주장하느니라.(『道典』 2:110)
봄에는 하늘에서 내치는[放] 생(生)의 기운[木]을 받아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이 탄생하고, 여름이 되면 만물을 분열·성장시키는 불[火] 시간대(365¼)의 기운에 따라 천상과 지상문명이 발전해 간다.
그리고 후천 가을에는 결실하는 수렴통일[金]의 정역(正易) 시간대를
따라 인간이 성숙하는 대개벽의 천지대운이 열린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천지의 가을기운은 신이다”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가을의 대개벽세계는 모든 것이 신도(神道)로 성취된다[秋之氣神也]는 뜻이다. 신도(神道)에 대한 것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천지의 겨울이 되면 지구는 더욱 신비한 시간세계로 빠져든다. 상제님은 이 때 우주의 조화기운[水]은 도(道)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천지의 겨울시간대에 깃들어 있는 생명질서의 속성을 밝혀주신 이 말씀에는 실로 심오한 뜻이 내재되어 있다.
천지의 겨울은 다음 우주 일년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생명활동을 모두 멈추고 새 기운을 축적하는
지구문명의 휴식기[藏]이자, 지구의 많은 지역이 천지와 인간을 생성한 영수(靈水)의 고체 상태인 얼음으로 뒤덮이는 혼돈(混沌) 상태의
빙하기이다. 아무런 생명활동이 없는 듯하지만, 겨울이야말로 다음
우주 봄철에 새로운 종(種)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생명창조의 포란기(抱卵期)이다. 그러므로 겨울의 창조정신은 봄·여름·가을의 창조정신인 ‘방·탕·신(放·蕩·神)’의 모태가 되며 생명활동의 바탕이 되므로, ‘도(道)’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우주의 변화 원리(理)와 여기서 전개되는 인사(人事)
문제의 관계[理事無碍]를 살펴본 바 있는데, 상제님은 이러한 선·후천 우주의 시간 정신에 따라 지상 인간구원의 인사문제를 최종
매듭지으신다.
천지의 생명창조운동 일주기는 129,600년 : 대주기 속에 소주기가 들어있다
증산 상제님은 천지일월 순환의 대주기를 처음 밝혀 낸 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운가사에 새 기운이 갊아 있으니 말은 소장(蘇張)의 구변이 있고,
글은 이두(李杜)의 문장이 있고, 알음은 강절(康節)의 지식이 있나니
다 내 비결이니라.(『道典』 2:39)
상제님은 송대(宋代)의 철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이 밝힌 12만
9천 6백년이 인류 역사 전개의 일주기를 정확하게 규명해놓은 우주
일년(cosmic year)의 개벽도수라고 인정해 주셨다. 즉, 129,600 수(數)는 천지일월이 만물을 ‘탄생-성장-성숙’케 하는 우주 일년의
이수(理數)로서, 당신이 주재하시고 통치하시는 개벽시간대의 비밀을 바르게 전한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 129,600수가 나오는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만물의 모든 변화는 순환의 지속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구가 태양을 안고 순환운동을 무수히 반복할 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이면에 누적되는 변화의 에너지는 차원을 달리하여 장차의 큰 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천지자연은 만물을 길러내기 위해서 지극한 정성[至誠] 기운으로 일초의
쉼도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변화운동의 기본 도수 360은 다시 360회의 완전한 일주기 반복 운동을 함으로써, 대순환의 기본 일주기가 짜여진다. 그리하여
지구와 태양[日]과 달[月]의 삼자 운동에서 지구는 하루에 360도의
자전 운동을 하여 낮과 밤의 1일 시간대를 창조해 내는데, 이것이 1년
360일 간 다시 계속 순환함으로써 일년 사계절의 완전한 변화도수를
빚어낸다(360도×360일〓129,600도).
이러한 변화원리와 동일하게, 천지일월이 변화운동할 때도 순환의 일주기인 360년을 다시 360번 순환 반복하여 변화의 힘을 계속 누적시키면, 129,600년(360×360)을 한 주기로 하는 천지일월의 사계절이
이루어진다. 즉, 이로써 우주의 인간창조 운동의 일주기[우주조화정신의 창조의 1년 대주기(Cosmic year, 宇宙年)]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문명을 창조하여 살 수 있는 지상의 생존 기간은, 선천
5만 년 건운(乾運)의 남성시대와 곤운(坤運)의 여성시대인 후천 5만
년 동안의 기간을 합한 10만 년이다. 이것을 처음으로 밝혀준 것이 증산도의 개벽 우주론이다. 그리고 나머지 약 3만 년은 빙하기로 천지의 재충전을 위한 휴식기이다. 지구와 우주의 일년 도수 관계를 다시 간단히 요약하여 나타내면 위 도표와 같다. 물론 이는 지축이 정립된 상태의 정도수(正度數)를 기준한 것이다.
천지의 4대 개벽운동
천지개벽이란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의미 그대로 태초에 하늘과 땅의 열림, 즉 천지의 생성을 뜻한다―이를 창조개벽이라 한다. 그런데
변화하는 현실 우주에서의 천지개벽은 음양의 순환을 통해 우주가 새로운 차원의 변화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천지의 일체생명이 새로운 시간대에 들어서는 시간변화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천지개벽이란 대국적으로는 천지일월의 각 계절의 운행원리에 의해서 새로운
시간과 공간대가 열리는 천지기운의 대변화 사건을 말한다. 나아가 이러한 시간대의 거대한 변화운동에 따라 인간이 묵은 기운을
벗고, 성숙된 새 문명과 새로운 삶의 질서를 열어나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이 지상에 처음으로 생겨나는 봄의 탄생(선천)개벽, 인류문명이 봄에서 여름철의 성장과정으로 넘어가는 중개벽, 후천가을로 넘어갈 때 인류성숙의 보편적인 세계구원을 위한 후천대개벽, 그리고
우주의 겨울철로 들어가는 카오스개벽에 이르기까지, 현실세계에서
작용하는 대자연의 시간대의 개벽운동은 모두 이 사계절의 환절기 때마다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주 일년의 사계절은 각 계절마다 각기 다른 네 개의 시간대가 형성되어서 이루어진다.
이 점이 우주의 시간개벽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개벽은 궁극적으로는 우주자연의 시간질서개벽의 주재자인
상제님(하느님)에 의해 성취되는 천지의 문명개벽사건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권 3부에서 상세히 살펴본다.
이 때는 선천과 후천이 바뀌는 천지개벽 시대 ː 여름말에서
가을로 전환한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우주의 일년에서도 어느 시간대에 살고 있을까?
상제님께서는, 오늘의 인류는 천지의 일년 중 봄·여름의 성장과정인
선천시대가 모두 끝나고 통일과 결실의 후천 가을문명시대로 막 전환하려고 하는 대변국기에 처해 있다고 말씀하시고, 당면한 이 전환기를 ‘천지성공(天地成功)시대’, ‘천지개벽시대’라고 선언하셨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약 5만 년 전인 이번 우주 일년의 봄에 최초로
생겨나 여름철의 기나긴 성장의 여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자신의 생명을 성숙시켜야 하는 가을우주(후천)의 시간대 속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온 천하가 가을운수[秋運]의 시작으로 들어서고 있느니라.(『道典』 3:11)
일찍이 상제님의 지상 강세를 선포한 수운 대성사가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용담유사』 「용담가」)”라고 한 것은,
실로 이 때가 선천세상을 마감하고 후천 5만 년의 새 운수시대를
여는 무극대도가 출현하는 때라는 우주의 도비(道秘)를 전한 것이다.
후천개벽으로 지구의 공전궤도가 바뀐다
동양정신을 공부하지 않고 서양의 사유방식과 논리로만 무장된 사람이 도(道)의 큰 기틀을 깨닫기란 어렵다.
물론 서양의 사유방식도 철저하게 습득해야 하겠지만 먼저 대세를 보는 큰 안목을 열어주는 동양공부를 한 뒤에, 서양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이다. 앞에서 알아 본 서양의 예언가들과 철인들이 말하는 다가오는 개벽천지의 변국 소식도 모두 현상론에 불과할 뿐,
그러한 대변화가 왜 일어나느냐 하는 원인에 대한 해명이 전혀 없는
것도 서양정신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이르나니 내가 천지를 돌려 놓았음을 세상이 어찌 알리요.(『道典』 4:98)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계절변화는 천지의 방위가 바뀜으로써 일어난다고 밝혀주셨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지구 자전축 경사의
변동과 지구 공전궤도의 변화’로 나타난다. 바로 이것이 천지의 시간질서를 완성하는 개벽의 정체이다.
우주 일년의 한 주기 동안 모두 네 번 일어나는 천지개벽의 현상 중에서도 인간의 삶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개벽이 바로 가을개벽이다. 가을개벽은, 봄·여름의 분열생장 시대를 종결짓고 통일성숙의
후천이 새로 열리는 개벽으로, 이 때는 우주 시공의 에너지장(場,
field)이 질적으로 대변화하여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의 자전축의
기울기도 동시에 변한다. 선천시대에는 지구 자전축이 현재와 같이
동쪽으로 23.5도 기울어져 있지만, 후천 가을철에는 지구 자전축이 정남정북으로 정립한다. 뿐만 아니라 일년 365일의 타원 형태의 지구
공전궤도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일년 360일의 정원궤도로 탈바꿈된다.
이 때부터가 실질적인 후천 가을세계로서, 정음정양으로 완전히
조화된 천지기운이 온누리에 넘쳐흘러 명실상부한 신천신지(新天新地)의 새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상세한 내용은 하권 3부 참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을개벽은 인류에게 실로 엄청난 환난과 고난을
몰고온다는 사실이다. 지축이 틀어지는 순간 60억이 넘는 세계 인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실제의 상황을 상상해보라. 바로
이 때 일어나는 대환난이 바로 동서고금의 성자와 수많은 예언가, 철인들이 한결같이 전하고 있는 대파국의 정체이다. 증산 상제님은 그
날 그 때의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루는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장차 열 사람 가운데 한 명 살기가 어려우리니 내 자식이라도 어찌 될지 모르느니라.” 하시니라.(『道典』 3:196)
*일본은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 세상을 불로 칠 때에는
산도 붉어지고 들도 붉어져 자식이 지중하지만 손목 잡아끌어낼 겨를이 없으리라.(『道典』 7:15)
2-4. 상극질서와 인간의 운명
하느님은 태초에 인간의 영혼 속에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주신 것일까? 아니면 시기와 교만의 타락한 마음을 심어놓으신 것일까?
인간의 죄는 과연 전적으로 인간만의 책임인 것일까?
증산도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다음과 같이 내려주고 있다.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느니라.(『道典』 4:14)
선천 우주의 창조원리는 상극(相克)이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하고 불변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리(변화의 참 이치)가 현실 우주만유에 그렇게 단순하게 드러나지만은 않는다. 물론 진리는 영원불변의 것이지만, 진리가 현상계에 드러나는 참 모습은 오히려 역동적인 변화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
우주의 창조정신[本體神]은 구체적으로는 극(克)과 생(生)의 양면성으로 드러난다. 만물이 처음 생(生)겨나서 커나가는 과정은 서로
극(克)하는 원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초목도 대지를 뚫고 나오는 역(逆)도수의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대기(大氣)를 쏘이고 해맑은
미소를 짓지 않는가? 인간도 어머니의 피막을 뒤집어쓰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생의 첫출발을 내딛는다. 행복이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역경(逆境)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영글어가듯,
모든 생명의 탄생과 성장은 끊임없는 극(克)의 극복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하권 1부 참고)
증산 상제님 말씀의 핵심 뜻은, 인간이 철들어 가는 선천의 성장시대에는 상극(相克)이 천지의 창조원리가 되어 인간의 만사(事)와 만물(物)을 길러낸다는 것이다. 우주가 만물을 생성하는 양면적 변화원리인 상극과 상생은 천지가 개벽되는 순간부터 우주의 불변의 창조원리로서 성립된 것이다.
죄로 먹고살아 온 선천 인간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 먹고살리니, 죄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선으로 먹고사는 것이
장구하랴. 이제 후천 중생으로 하여금 선으로 먹고살 도수(度數)를 짜 놓았노라.(『道典』 4:18)
상제님이 지상에서 천지공사를 행하시며 선언하신 이 말씀은, 부조리한 삶 속에서 원한을 뿌리며 살아가야만 하는 선천의 우리들에게
선·후천 우주에서의 인간 삶의 실상과 희망의 미래를 밝혀주신 만고의 성언(聖言)이다.
이 대경대법한 말씀을 깊이 음미하여 보라! 선천 상극의 시간대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제 자신이 아무리 양심적으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한(恨)의 씨앗과 죄악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흐르는 시간의 초침에서는 느끼기 어려울지
모르나 지금의 이 때는 미성숙된 상극의 시간대이다. 윤도수의 꼬리를 흔들며 흘러가고 있는 선천 시간대의 궤적 위를 내달아 온 인류의 자취를 보라! 무언가 이루어 보려고 나름대로 도전하다 넘어진
수많은 인간들의 회한어린 기억과 눈물 젖은 사연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러한 부자유한 상극의 생장시대에 경쟁자를 제거시켜야 생존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자체가 죄 아닌 죄를 낳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아이를 기르면서 온갖 선을 다하다가, 날 때에 이르러서는 일분 간의 악을 쓰나니 이로써 악이 생기느니라.(『道典』 2:101)
*묵은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도다.(『道典』 5:314)
원죄와 윤회, 전생의 업보와 우주의 창조 원리 등을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악의
씨’를 받아 가지고 생겨난다. 상극의 하늘아래 살아온 선천의
인간은 그 속에서, 때로는 폭풍우처럼 닥쳐오는 비정한 운명에 앙알거리며 반항하고 남을 저주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세계는 그칠 줄 모르는 경쟁과 투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인간은 도의(道義)를
따르는 진실된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깊은
원(寃)과 한(恨)을 맺고 비극의 인생행로를 걸어왔고, 갈수록 커지는
원한의 덩어리로 뭉쳐진 생명파괴의 폭탄을 가슴에 부여안고 살아온
것이다.
원한이 넘쳐흘러 살기가 폭발하는 이 선천 상극의 시간대는 천지의
순수 성령(聖靈)이 인간을 키우는 때이다. 이로 인해 인간(주체)과 천지(객체)가 부자유 속에서 성숙(통일)을 이루어내기 위한 머나먼 고난의 시간을 걸어왔다. 하지만 앞으로 개벽 후 후천의 만백성은 ‘선(善)의 씨’를 받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는 선·후천이 교역하는 대개벽과 더불어 우주진리의 얼굴이 상극에서 상생으로 가면을 바꿔 쓰기 때문이다.
천지도 이제서야 어른이 된다
우리는 흔히 어린애들은 싸워야 잘 큰다고 말한다. 때로는 코도 깨지고 팔도 삐고, 또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불경하게 굴다가 혼나기도 하면서 점차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철들어 간다. 이처럼 천지도 선천우주의 어린시절[生]과 청년기[長]의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때는 천지성공시대니라.(『道典』 2:29)
*천지에 변산처럼 커다란 불덩이가 있으니 만일 그 불덩이가 나타나
구르면 전세계가 재가 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 불을 묻었노라.(『道典』 5:168)
*선천개벽 이후로 홍수와 가뭄과 전쟁의 겁재(劫災)가 서로 번갈아서 그칠 새 없이 세상을 진탕하였느니라.(『道典』 7:24)
천지는 살아있는 순수 인격체의 거대한 성령이다. 천지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만물은 천지부모가 뿌려주는 기운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소우주로서의 운명을 타고났다.
이제까지 천지는 자신이 낳은 만물을 분열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상극의 변화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생명과 마음 그리고
인류사를 다스려왔다. 지난날 선천 생장(生長)과정 동안 천지부모가 기혈의 충동을 일으킬 때마다 그 자녀인 인간의 운명은 거세게 파도쳤다.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오는 천지의 몸놀림은 인간에게 견디기
어려운 죽음의 재앙을 퍼부었던 것이다. 인간이 대립하며 서로를 죽이는 것보다, 오히려 천지부모가 인간과 만물을 키우는 과정 속에서
극(克)의 기운을 뿜을 때 일어나는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재앙의 충격이 더욱 컸던 것이다. 이는 지난 누천년 동안의 인류역사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선천의 시간대에서는 인간과 만물뿐만 아니라 천지마저도 미성숙한
채로 돌고 있다. 그러나 선천의 미완성된 시간대에서 성장의 몸부림을 치던 천지도 우주생명이 완성과 조화의 후천 가을의 완성된 시간대로 뛰어들면, 더 이상 선천에서와 같은 무자비한 재앙의 기운을 뿌리지 않게 된다. 이는 물론 지금의 기울어진 천축과 지축이 다 같이 바로 서게 됨으로써 현실화된다.
인간성숙의 두 공안 : 선악나무와 생명나무
선천에는 상극이 생명창조의 원리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역사의 지평에 터져나오는 상극현실의 모순은 성숙을 향해 가는 인류사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이는 우주창조의 근본원리에서 보면 인간은 선천개벽기에 선악과를 따먹도록 되어 있으며, 또한 따먹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우주의 창조법도라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는 우주의 본체신이
인간을 길러내고 구원하는 생명의 창조 법도를 이원적(二元的)으로
표현한, 선천 상극우주가 내던지는 공안(公案)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악나무의 열매만을 따먹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열매도 반드시
따먹도록 되어 있다.
다만 인류가 생존해온 지금까지의 시간대는 분열과 상극의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천지의 봄·여름철의 과도기이므로, 기독교의 창조설화에 선악나무의 상극적 상징성만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늘과 땅의 때가 무르익어 천지의 성숙기인 가을시대가 도래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상생의 생명나무의 열매(가을의 생명,
우주의 조화옹 상제님의 진리)를 따먹을 수 있게 되었다. 미래 후천문명의 신화는 상극의 선악나무의 상징을 추억 속에 묻어 버리고 상생으로 거듭나는 생명나무의 상징으로 새롭게 꾸며질 것이다.
기쁨과 슬픔으로 수놓아진 선천 상극의 인생의 배는 선과 악, 생명나무와 선악나무, 상생과 상극의 물결이 주기적으로 넘실대는 시간의
파도를 타고 수많은 사연을 그리며 항진(航進)한다. 이 속에서 천지만물은 무궁한 변화세계의 물결을 타고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천 상극세상에서 인간의 고통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일찍이 예수성자는 이러한 선천천지의 창조 법도에 대해 “평화의 님은 먼저 투쟁의 님이어야 한다(『보병궁의 성약』 113:10)”고 설파하였다. 즉, 인류의 이상적인 평화의 시대는 인간 스스로가 상극시대 동안의 발전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온갖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성취된다는 것이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 겁기(劫氣)로 찌들어 있는 묵은 기운과 정신이 철저히 깨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의 고통(suffering)은 인간을 단련시키는 필요악(必要惡)이다.
결론을 내린다면, 6천 년이나 끌어오면서도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기독교의 원죄론(原罪論)에 얽혀있는 선천인간의 타락, 즉 선악과와
생명나무에 대한 공안(公案)은 우주 일년의 전반기인 선천의 상극우주의 창조정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태고시절에 이미 천국이 이루어졌으리라는 주장은 무지에서
나온 단견(短見)일 뿐이다.
기나긴 선천의 상극의 운로를 지나온 지금은, 우주의 상극성을
극복하는 상생의 대도가 인류문명사의 무대 위에 전격적으로
출현하는 가을(성숙)의 대개벽기이다.
천강서를 받고 후천개벽을 선포한 두 성인 : 수운과 일부 대성사
우주 시간대의 대칭성과 개벽에 대한 내용은, 모든 세계종교의 각
경전에 조금씩 언급이 되고 있는 우주 창조의 극치의 문제이다. 기독교의 신약성서에 나오는 “새 하늘 새 땅과 예전의 하늘과 땅”, 불교 『미륵경』의 “그 때(새로운 시간대)에는 기후가 고르고, 사시가 조화되며”라는 내용은 천지와 일월이 새로운 질서로 운행할 것을 암시해 주는 고귀한 말씀이다. 유교의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는 역철학에서는 이를 보다 원리적으로 해명해 주고 있다. 특히 선·후천
우주 시간대 구조에 대한 비밀은, 약 6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걸려서
체계화된 『주역(周易)』과 김일부 대성사의 『정역(正易)』에 이르러 그 신비의 베일을 완전히 벗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선·후천 시간대의 내용을 천상의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계시[神敎]받고, 이를 인류구원의 차원에서 전해 주신 분이 바로 동학(천도교)의 교조 최수운 대성사이다. 수운은 연담(蓮潭) 이운규 선생
문하에서 일부와 동문수학하며 역학을 배웠으며, 그 뒤에 홀로 혈심으로 구도정진하여 상제님으로부터 천강서(天降書 ; 侍天主 呪文)를 받고, 후천개벽의 새 우주시대와 하느님의 지상 강세사건을
김일부 대성사보다 먼저 세상에 선포하게 된다.
성인은 우주변국의 흐름을 타고 내려온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역법은, 천체의 주행에 일정한 규칙성과 고유한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탄생되었다. 즉, 역수(曆數)란 천지일월의 순환변화의 주기도수(週期度數)이다. 본래 우주의 신비를
찾아내는 생명의 상수(象數)에는 물상수(物象數)와 역상수(曆象數)가 있다. 물상수는 만물의 변화모습을 자연수로 파악하는 것이며(하권 1부 참고), 역상수는 천지 시간 변화의 비밀을 자연수의 구성원리와 변화논리로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정역』은 이러한 역상수의
역법을 완성한 문서이다. 다음은 『정역』의 「대역서(大易序)」에
나오는 말씀이다.
아! 거룩하도다.
우주의 변화가 무궁한 변화로 이루어짐이여!
우주의 변화란 역수(曆數)의 변화내용이니
역수의 시간대 변화가 없다면 성인은 나올 수 없고
시간의 새 질서를 열어 주는 성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우주 변화의 이상은 실현될 수 없음이라.
(聖哉! 易之爲易. 易者曆也, 無曆無聖, 無聖無易.)
일부 대성사는 우주의 시간대에 변화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이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타고 내려오는 성인이 있어, 그 인물이 우주의 신비와 인생의 섭리를 밝혀 한소식 전한다는 만고의 명언을 전하고 있다.
성인은 중생처럼 아무 때나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우주의 변화원리에 맞춰 반드시 인류역사 시간대의 크고 작은 개벽기에
오게 됨으로써, 최초의 창조 시간대와 미래 시간대의 변화내용이
밝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주 일년의 4대 시간대와 후천대개벽
『정역』에 의하면, 우주에는 각 계절마다 각기 다른 시간대가 있다는 시간의 비밀을 알아낸 성인은 공자이다. 공자는 다가올 미래 대개벽의 360일 시간대를 예고하면서 이렇게 개벽의 한소식을 전하고 있다.
시고(是故)로 사영이성역(四營而成易)이라.(『周易』 「繫辭」上 9장)
이것은 우주의 조화옹이 우주 대변화의 한 주기를 네 개의 시간대로
운
영하여, 천지와 인간을 생성 변화시키는 기틀을 열어놓는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네 개의 시간대 내용을 체계적으로 밝혀놓은 분이 바로 김일부 대성사이다. 『정역』을 보면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고 있다.(朞는 1년이라는 뜻이다.)
●제요지기(帝堯之朞)는 366일이니라.
●제순지기(帝舜之朞)는 365¼이니라.
●일부지기(一夫之朞)는 375도이니 15를 존공(尊空)하면 정오부자지기(正吾夫子之朞)는 당기(當朞) 360일이니라.(좬正易좭 「金火五頌」)
지금은 시간의 흐름이 미완성되어 있다. 우주를 파도치게 하는 시간의 꼬리인 윤도수(5¼일)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천지의 시간의 물결도 같이 요동치고 있다. 윤도수(閏度數)란 선천의 6일, 5¼일과 같은 시간의 꼬리를 말한다. 이 대우주에 거세게 일렁이는 선천개벽의 시간의 파도(윤도수)는 그 힘이 너무도 엄청나서 우주의 몸체인 천지일월[天體]조차도 기울게 만든다.
그런데 이 시간의 파도가 잠들어 가는 모습이 시간의 대개벽운동으로 나타난다. 이 말은 시간대도 삼변하며 완전한 우주의 캘린더(calendar) 도수인 360일의 정역(正易)으로 성숙해 간다는 뜻이다.*
우주의 봄철에는 조화력이 목기(木氣)이다. 만물을 극한으로 분열 성장시키는 선천 여름철의 주기(主氣)는 불(火)기운이다. 이 때는 목생화(木生火)하는 상생(相生)의 원리에 의해 시간의 파도가 잠들 때의
변화의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지만(366일 → 365¼일), 천지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는 화극금(火克金)하는 상극(相克)의 원리에 의해
하늘과 땅과 인간 삼계에 걸쳐 엄청난 대변화가 일어난다.
오늘의 인류는 우주가 생장분열기(선천말)에서 결실기(가을)로 바뀌려고 하는 결정적인 운명의 문턱을 막 넘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5. 시간대의 변화는 천체의 궤도수정으로 일어난다
동서양의 모든 위대한 성자와 철인, 예언가들은 한결같이 지구의 극이동을 대개벽의 가장 큰 변국으로 전해 주고 있다. ‘달의 주기가 완성되기 전에 … ’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도 달이 본래의 운행주기를 되찾을 때 비로소 지구의 고통이 멎으리라는 우주 시간대의
비밀을 조금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같은 현상은 천지일월이 운행하는 궤도의 형태(타원 혹은 정원)를 결정짓는 윤도수가 선천 윤역의 시간대와 후천 정역의 시간대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로 인해 윤도수라는 시간의 파도가 부침할 때의 충격은 천지만물을
울리기도 하고 웃음짓게도 하는 조화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국은 단순히 지구 차원에서 그치는 변화가 아니다. 이 때는 태양과 지구와 달을 포함한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의 극이동이 일어난다.
지금은 윤도수의 그물에 걸려 천체 자체가 극(克)의 정신으로 기울어져 있으므로, 태양은 7도, 달 5도, 금성·수성 7도, 천왕성 8도,
해왕성 18도 등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기울어진 채 타원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이 후천가을의 자유의 시간대로 일제히 뛰어드는 순간을, 노스트라다무스는 “죽음의 날이 생일이 되고 성령은 영혼을
행복하게 만들리라”고 하였다. 동·서양에서 전하는 모든 우주 순환론의 마지막 이야기는 뒤이어 오는 황금의 시대 크로노스와 연결이
되어 있는데(『우주와 역사』), 이것이 우주개벽의 신비에서 암시해
주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극이동의 소식으로 귀결된다.
이같은 파천황적인 대변국을 맞이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가 처음이 아님은 지각의 대변동으로 멸망한 대서양의 아틀란티스(Atlantis) 문명의 전설로도 알 수 있다(하권 1부 참고). 그러나 슬픔과 고뇌와 한(恨)이 뒤범벅되어 있는 지구촌에서, 이처럼 많은 인간이 파산의 문턱에서 대개벽의 변국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우주창조 이래로 지금이 ‘처음 있는 일’이다.
2-6. 개벽의 전주곡, 행성의 대합(大合) 현상
인간 문명의 성숙과 대전환의 변국은 이 세 번째 개벽의 극이동
과정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지구의 궤도가 수정되는 이 때의 대변혁은 천체의 한 기이한 현상에서부터 본격적인 출발을 준비하는데, 여기서는 이에 대해 가장 많은 자료를 우리에게 제시해 준, 불란서의 과학자 모리스 샤틀랭(M. Chatelain)의 저서 『세계의 종말(La Fin du
Monde;우리말 번역 ‘바로 그 날’)』을 참고하여 몇 가지 중요한
점만을 알아보기로 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계획에도 참가한 바 있으며 20년간 고대문명을 연구해 온 그는, 70노옹이 되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문학적 현상과 땅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사건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구의 대이변이 주기적으로 오는 행성들의 몇몇 합(合)과 언제나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행성들의 합 사이의 시간차를 계산하려고 시도했다. … 유대교와 기독교 특히 불교를 포함한 고대의 모든 종교들은 이 격변설에 신앙의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천지창조는 1만 2천 년 전 경에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면서 시작했다.(『바로 그 날』, 25쪽)
그가 말하고 있는 합(合)현상이란 태양계의 행성들이 한 자리로 모이는 행성직렬 현상을 가리킨다.*
80년대에 이미 시작된 지구개벽의 첫 신호
이제 나는 만일 세상의 종말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난다면 1982년, 2000년, 그리고
2020년에 있을 합(合) 현상보다 종말을 더 잘 설명해 줄 사건은 없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 우주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지구의 재앙이 일어난다면, 이 세 날짜 중 한 날짜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이 지구의 재앙은 화산폭발일 수도 있고 지진일 수도 있다. 또는 해일이나 대륙의 함몰, 행성이나 혜성의 낙하일 수도 있고 심지어 남극과 북극의 위치가 바뀌는 그러한 이변일 수도 있다.(『바로 그 날』, 242쪽)
이런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샤틀랭의 견해가 비록 시기적으로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지상의 모든 인간 역사의 변국은 하늘의 별들과의 모종의 기(氣)의 교류에서 이루어진다는 동양 정신세계의 가르침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正)질서를 향한 변화시대,
즉, 정역(가을)의 성숙시대로 향하는 지구 자전축과 공전궤도의 대이동은 이러한 대합현상을 계기로 일어난다.
나는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이유로 해서 만일 세상의 종말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남극과 북극의 위치가 바뀌게 되는 그 재앙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우선 양극의 전도라는 이 현상은 천체물리학적인 여러 원리들에 의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고 이미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몇 차례 이루어졌었다. 지구 자체의 지질학적인 역사 속에서 살펴본다면 이러한 현상은 수백 번이나 일어났었다.(『바로 그 날』, 243쪽)
사람들은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는 많은 병을 앓게 될 것이며, 어떤 기적에 의해 인류의 파멸에서 거의 완전히 도피하는 데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바로 그 날』, 240쪽)
우주에 7살(殺)이 든다
우주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가을개벽의 우주쇼는 후천으로 넘어가려는 준비를 서두르는 선천의 마지막 최종점검이며, 360일 도수의
성숙한 시간의 길[道]을 그릴 가을(후천) 우주질서로 들어가는 긴박한 시간대에서 일어나는 천공(天空)의 열병식(閱兵式)이다.
이러한 현상은 천지 기운의 ‘합(合)과 충(沖)의 순환 원리’로 일어난다.
간단히 결론을 내리면, 1981(辛酉)년부터 1987(丁卯)년까지 대우주 공간 가운데 생명을 길러내는 조화의 본체(體)에 해당하는 태양계에 우주의 7살(殺)이 든다.
1981년부터 와 닿는 이러한 우주의 살기는 일정한 잠복기간을 거쳐서
지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 금시에 이것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믿다가 그 때 일어나지 않으면 웃어 버리고 마는데, 이것은 우주의 변화운동을 보는 변화의 체용 관점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체용이란 기운이 태동하는 변화의 뿌리 자리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자리와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7살 기운이 지구에 실제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개벽시간대는 언제부터일까?(하권까지 계속 읽어 가면 알게 된다.)
지금 우리는 가을 정역의 신천지 시간대(360일)를 창조하는 대우주 조화생명[氣]의 호흡[風]이 제3의 개벽운동을 수행하는 우주역사의 대시(大時, Great Time)에 살고 있다.
카톨릭 운명의 마지막 교황
끝으로 샤틀랭의 저서를 통해 이 7살 시대를 예고한 성 말라키의 대예언을 보완하여 정리해 보기로 한다.
성(聖) 말라키(1094∼1148)는 교황권을 계승하는 112명의 교황들의 이름과 자질을
예언했다. … 그는 33일간 통치한 장 뽈 1세 다음으로 태양의 작용(原名:太陽의 辛苦)으로 교황 쟝 뽈 2세(지금의 요한 바오로 2세)가 통치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이는
80년대의 우주적 대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태양의 합과 행성의 합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성 말라키는 … 마지막이 될 다음의 교황은 로마의 베드로(Pertus Romanus)라 하는데 이 마지막 교황은 암살될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그 후 지상에 교회는 없어지고
바티칸은 파괴될 것이라 하였다.(『바로 그 날』, 48∼49쪽)
아마도 이것은 모두 ‘파티마 제3의 계시’가 말해 주고 있듯이 후천
우주시대로 전환하려는 과도기에 부름 받은 교황들의 천명을 암시한
것이리라.
1982년 12월 26일, 행성 대합(大合) 현상을 분기점으로 밀려오는 지구촌 변혁의 자취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는 선천시대를 종결짓고 후천시대로 전환하는
대격변의 마디시간대이다. 이 중에서도 우주의 7살 기운이 본격적으로 지구에 도달하기 시작하는 임술(1982)년 12월 22일 동지 이후부터는 각종 지구변화가 가시화되어 나타났다. 근래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64년부터 1990년까지 26년 간 남극대륙에서는 식물분포
면적이 5∼25배나 늘어났고 빙원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국 국립기상센터의 기후학자 앤츠 리트마는 “지난 1백 년 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후체제”라고 했으며,
캘리포니아 해양연구소의 팀 바넛도 “지금 우리가 새로운 기후시대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동의했다.(한겨레 신문, 1995.2.13)
80년대에 들어서서 일본, 미국, 호주, 중동, 중국 그리고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 등지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대소 지진과 90년대를 넘어서며 필리핀, 미국, 남미,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렬한 지진과 화산폭발 등에서 개벽기운이 점점 가시화되는 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1995년은 실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실감케한 두드러진 한 해였으며, 이후로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막대한 재산피해를 안겨준 강도 높은 지진이 90년대 후반부를 장식했다.
지구의 대륙의 판구조가 바뀌는 개벽이 시작되고 있다
지구촌 전역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 지진에 대한 가공할 소식들은 대변혁의 시점에 성큼 다가선 21세기에 와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도 서부지역을 강타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2001.1.26)에
이어 엘살바도르와 인도네시아에도 강진이 발생(2.13,14)하는 등 점점 규모가 큰 지진들이 잇따라 터졌다(동아일보, 2001.2.14). 최근에는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 동부의 니라공고 화산(3414m)이 폭발하여
백여명이 숨지고 50여만 명이나 되는 인파가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동아일보 2002.1.20). 이와 연관된 단층에만 지구상 총인구의 6분의 1인 10억의 인류가 살고 있다니 그들로서는
실로 불안한 내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이 아프리카에서의 대규모 화산폭발은 지각판의 구조가 재조정되는 시작점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세계의 내노라 하는 학자들도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지구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답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하늘과 땅의 변화를 빚어내는 우주변화의 천리에 무지한 서구 과학의 한계를 대변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이제 지구촌 전체는 본격적인 가을철의 천지개벽과 연관된
각종 재앙─지진, 화산폭발, 기상이변, 질병 등─이 더욱 강도 높게 발생하는 총체적인 재난지대로 화해가고 있다. 따라서 이곳
한반도도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천지 질서가 뒤바뀌는 개벽철에 어찌 한국 땅이라고 해서 온전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예수는,
그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고 했다.
*하루는 어린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개벽이 될 때는 산이
뒤집어지고 땅이 쩍쩍 벌어져서 푹푹 빠지고 무섭다. 산이 뒤집혀 깔리는 사람, 땅 벌어져서 들어가는 사람, 갈데없는 난릿속이니라. 어제
왔다가 오늘 다시 와서 저 집에 가 보면 산더미만 있지 그 집이 없어진다.” 하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 하느니라. 먼 데 보지 말고 앞을 보고 다녀라. 구름이 돌면서 땅이 갈라지고 뒤집어지면서 하늘에서 옥단소를 불 적에 귀가 밝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道典』 7:19)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경고메시지에 이미 만성이 되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는커녕, 개벽의 파도를 맞닥뜨리기 전에는 도저히 고쳐질 수 없는 자기 기만과 무관심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천지는 말이 없으되 오직 뇌성과 지진으로 표징하리라”고 하신 증산 상제님의 말씀처럼, 그 누가 천지에서 들려 주는 신비로우면서도 지극히 잔인하리만큼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대개벽의
암호를 해석하겠는가?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환난은,
후천 가을을 여는 천지의 수기(水氣)가 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지구 정화(淨化)의 과정인 것이다.
천지가을의 대개벽의 시운을 타고 있는 오늘의 인류는, 자신의 생명이 시간의 제물이 되어 진공 속으로 소멸되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느냐, 아니면 천지의 가을문명인 후천통일세계를 창조하는 대사명을 걸머진 구원의 일꾼으로 살아남느냐 하는, 선천시간대의 인생을 총결산하는 천지의 졸업식장에서 분주히 서성이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권 3부에서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