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영월까지, 강원도 두메산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종착역은 상동이었다.
수도권 주민이라면 익숙할 부천 상동이 아니라,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이 된 태백산 자락의 조그마한 산촌이다.
이곳은 도시의 흥망성쇠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원래는 야생동물의 터전인 이름 없는 깊은 산골이었지만
1916년 우연히도 중석이 발견되면서 1923년 본격적으로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고,
해방 후 한미중석협정이 체결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한때 전 세계 텅스텐 생산량의 10%를 차지할 만큼 성황을 이루었지만
1980년대 중국의 시장 개방 이후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면서,
1994년 폐광되면서 급속하게 몰락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상동의 버스터미널은 불꽃같이 타올랐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오롯이 남은 흔적이다.
이러한 사연이 있기에 오래전부터 상동에 남은 여러 가지 조각들을 붙여보고 싶었고,
해가 넘어가는 늦가을 저녁에 무리를 해서라도 상동을 향해 떠났다.
영월읍에서 차로 50여 분을 달려 상동읍에 도착하였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 움푹 둘러싸인 탓에 해는 이미 산등성이 너머로 숨어 보이지 않았다.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정신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버스에서 뜨뜻하게 데운 몸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원래는 상동 마을의 이런저런 모습과 폐쇄된 탄광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늦은 데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터미널 주변만 사진으로 남기게 되었다.
상동에 관한 자료를 찾다 이러한 블로그(http://blog.daum.net/11757/16886581)를 발견했다.
여러 제약 때문에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 내게 많은 참고가 된 글이다.
폐광 이후 상동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영월 상동마을은 첩첩산중 태백산 자락에 아주 좁은 계곡 사이로 길쭉하게 늘어서 있다.
지도로 보면 버스터미널은 31번 국도를 벗어나 막다른 길로 빠진 뒤에 나오는데,
읍사무소와 중고등학교가 있는 마을보다 탄광이 있었던 지점에 최대한 가깝게 만든 탓이다.
그래서 태백에서 영월을 오가는 시외버스는 중간에 국도를 벗어나 잠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온다.
이는 상동터미널이 태생부터 탄광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뜻이다.
위치를 보면 탄광이 한창 성행했을 때에는 여기까지만 오는 시외버스가 제법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폐광된 이후 마을이 텅텅 비면서 모두 지나간 과거가 되었고,
지금은 붐볐던 당시를 기록하기 위한 흔적만이 곳곳에 남아있을 뿐이다.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이 동상으로 남은 자리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다.
마을의 수명은 80년대~90년대 초반에서 다했지만 운 좋게도 상동터미널은 지금까지 남아,
조금씩 모습을 바꿔가면서 매일같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광산으로 가는 길을 가운데 두고 주차장과 대기실이 각각 격리되어 있다.
매표소가 있는 조그마한 건물은 다시 꾸며져 동상과 함께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곳이 되었다.
유리벽이 있는 물결 지붕 모양의 대기실과 지난 삶을 그려놓은 흔적들이,
어울리지 않는 듯 어색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잠시 상동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상동읍은 한창 절정이었던 1970년에는 24,118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았다.
당시엔 영월읍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구가 많았기에 결국 1973년 읍으로 승격될 만큼,
이 당시에는 쌍룡시멘트와 함께 영월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둥이었다.
그러나 폐광이 되어 사람이 떠나간 현재 인구는 1,157명(2017)에 불과하다.
1986년에 상동읍에서 분리된 중동면의 1,586명에도 미치지 못하며,
영월군 안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이자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이 되었다.
현재 인구는 최전성기의 1/20 수준에 불과하여 완전히 활력을 잃은 텅 빈 땅이 되었다.
광산이 개발된 1923년부터 폐광된 1994년까지,
상동의 흥망성쇠 기간은 우연히도 사람의 수명과 얼추 들어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일흔하나라는 불꽃같은 삶을 살다 유명을 달리했다고 볼 수 있다.
삶의 절정기였던 시절, 그 당시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터미널 벽에 그려져 있다.
밭을 일구던 농부와 탄광에서 돌을 캐던 광부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엮여
갖가지 삶의 노래를 부르며 성공을 위해 뛰었을 지난날...
그들의 미소와 좌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이 그림에서,
상동 사람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1980년대의 쇠퇴기, 1990년대의 그 시점이 지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찾아온 이곳에서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이들.
비록 그때 그 시절은 아니지만 아직 이곳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주민들은,
이곳에서 나머지 삶의 조각들을 어렵게 붙이고 있을 것이다.
영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었던 영광스런 지난날은 이제 머나먼 옛일이다.
지금은 영월에서도 가장 인구가 적은 산촌이자 폐광만큼 폐가가 많은 낙후 지역이 되어버렸다.
남은 주민들은 그 당시를 어떻게 추억하고, 또 몰락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4년이 지난 시점에서 180도 달라진 삶의 궤적을 끼워보고 싶었으나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버스터미널에 홀로 들어와 보았다.
이미 해가 넘어간 저녁이라고는 해도 건물 안은 깜깜한 암흑이었고 표를 파는 사람도 없었다.
매표소 뒤에는 이불과 침대가 있고 그 너머로 부엌처럼 생긴 공간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니,
집처럼 지내면서 표를 파는 곳이 분명해 보였다.
매표소에 사람이 없길래 한참을 벨을 눌렀더니 늙은 할머니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셨다.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서울이라고 답했고, 거기까지 차가 없다고 원주까지 가는 종이 표를 끊어주신다.
원주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하니 3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결국 영월행으로 표를 바꾸려 했는데 돈을 세는 게 어려우신 모양인지 한참을 망설이며 헤매셨다.
돈을 드리는 손님이 방법을 알려드리고 일일이 설명을 해서야 겨우 표를 바꿀 수 있었다.
현재 상동터미널을 드나드는 버스는 서울, 원주에서 태백을 오가는 버스가 전부이다.
그나마도 시간표에 적힌 것과도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17:50 차가 서울행으로 적혀있지만 실제로는 원주까지 운행되며 그나마도 영월 중간타절 노선이다.
또한 모바일 예매는커녕 조회조차 안되어서 여기를 오려면 녹전 / 석항으로 검색을 해봐야 한다.
세상 물정이 어둡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께서 홀로 터미널을 이끌어오시니,
빠른 변화에 발을 맞추기가 몹시 어려워 방문 자체가 사실상 제한되고 있는 셈이다.
겨우 표를 끊고 밖에 나와보니 노을조차 희미해지고 어두운 밤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버스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버스가 들어오는 입구에 붙은 상동시장길이라는 간판만 눈에 띌 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군복을 입은 군인 한 명이 나타났다.
외박 복귀를 하려는 모양인지 옷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채 버스를 같이 기다렸다.
이윽고 저 멀리서 버스가 들어왔는데, 기사와 인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는 동네 주민끼리 서로 아는 사이라 해도 기사와 군인의 만남은 참으로 신기했다.
불꽃같았던 삶의 조각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일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이들마저 사라진다면 현재 남은 조각들은 어떻게 흩어지게 될런지.
수십 년 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와도 똑같은 모습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첫댓글 저런 시골 터미널도 있군요
강원 산골까지 KD는 드러와 영업을 하고 있군요 ㅎ 잘 보앗어요
네 드나들때 모두 KD차량을 이용했습니다 :)
예전에는 명암,화성고속버스도 많이다녔는데 지금은제천발기준으로20시45분 한대뿐이네요.
시리즈 잘 봤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맥시멈님 글만 보면 최소50은 되시지 않았나 싶을정도의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랍니다ㅎ 상동터미널은 사실 첨 듣습니다ㅎ 이상하게 쇠퇴해가는 지역의 터미널을 보면 애착이 가서 꼭 가고싶네요. 다음 시리즈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저 또한 쇠퇴하는 지역의 터미널에 애착이 갑니다. 짧은 글에 많은 걸 담으려니 그게 가장 어렵고 부담스럽네요.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
네, 동감합니다. 50대의 연륜이 되어서야 비로서 느낄 법한 풍부한 감성과 여유로운 표현, 동선마다 천연 조미료처럼 맛을 내고 마무리에 깊은 여운까지 담아내는 그런 뚝배기 같은 정감이 녹아 있습니다.
상동정류장, 폐광되기 전 까지는 제쳔발-태백행이 사북경유보다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한참 나이때(폐광 전,후 시점), 버스로 몇번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상동읍을 경유했었죠.
일부러 영암운수를 타려고 기다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주 도로에서 골짜기로 약간 들어 갔다가 후진으로 턴(T)해서 나오는 구조였었는데,
당시에 10분씩 비교적 긴 시간을 대기하다가 출발 한걸 보면, 한참때는 이용객이 많아 그 시간을 고려한 배차 시간이었을 듯 이제서야 짐작이 갑니다.
멋진 제목처럼 불꽃 같았던 삷의 조각-상동 터미널,
어쩜 우리 인생과 닯은 듯 싶습니다.
강원도 산골 마을의 저녁즈음은 유독 옷깃을 여미는 풍경이군요..
한창 때에는 사북 경유보다 많았다면... 얼마나 자주 버스가 다녔을지 예측이 잘 안되네요 ㅎㅎ 붐볐던 시기의 상동 모습이 궁금합니다. 짧게 반짝였던 상동의 흥망성쇠가 말씀처럼 우리 인생과 닮은 부분이 많은데 글로 표현이 잘 안된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Maximum 불꽃이란 제목에 - 텅빈 광장의 동상, 매표소의 흐릿한 불빛, 할머니의 계산과정, 마지막 상동골짜기 사진에 - 제목까지 고민하며 멋진 풍경을 담아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맥시멈님의 시골 터미널 여행기에 우리나라 버스관련 역사가 쓰여지고 있음을 대리만족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올 겨울이 따뜻해 지고 있습니다!
@중원고속 과찬이십니다. 중원고속님의 말씀이 추운 겨울을 사르르 녹이는 것 같네요. ^^
예전에 태백에제천까지 시승했는데
그때 상동정류장에서 동서울손님탑승.
그손님은 제천에서 동서울행무정차로
환승시키더군요.
동서울행 시간이 안맞을 경우 중간타절 노선을 태우고 환승시키는가 보네요. :)
@Maximum 네 그리고 영월터미널전 어느정류장에서 원주승객도 제천에서 앞시간버스로 환승하던 기억남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게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맥시멈님의 여행기를 보면서 터미널 기행에 버스 사진이 한 컷도 올라오지 않은 글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촬영해 오신 사진들 중에 업로드용 사진을 고르시면서 빠진 것인지 아니면 실제 드나드는 차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에 해당한다면 쇠퇴한 터미널의 모습을 상징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안 그래도 요즘 지역 쇠퇴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큰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매번 좋은 여행기를 앉은 자리에서 공짜로 보는게 한편으로는 민망스럽기도 합니다. 원고료로 커피 한잔이라도 챙겨드려야 하지 싶습니다.
실제로 버스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미처 찍을 생각을 안했는데, 이후로 다음 차를 탈 때까지 50분 동안 종점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하나 지나간게 전부입니다. 그 시내버스도 해가 다 떨어져서 찍을래야 찍을 수가 없었고, 제가 탔던 차가 올때는 완전히 암흑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버스 사진이 한장도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네요. 저는 그냥 재밌게 봐주시고 따뜻한 댓글 하나면 감사드립니다. ^^
제가 예전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다닐때, 사회과부도에서 본 `상동=텅스텐`이 많이나는 지역이 이곳 상동인줄은 이번에 맥시멈님의 기행기를 통하여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명색이 읍인데도 인구도 얼마되지 않는거에 더욱더 놀랬구요~~ 폐광의 영향이 상당히 컷나 봅니다.
이번 강원도 남부권 기행기를 보면서 느낀건 강원도 투어버스를 타고 맴시멈님이 가이드가 되셔서, 일주를 한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좋은글 잘보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극찬을 해주시니 조금 부끄럽네요. ㅎㅎㅎ 오랜만에 쓰는거라 어려움을 많이 느꼈는데 잘 봐주셨다니 다행입니다 ^^
10월에는 황금들녁의 벼들이 수확을
끝내고 11월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하나둘
떨어지고 밭작물인 배추.무.콩.깨..등등
수확을 마치고 나면 뿌듯함도 있지만
공허하고 을씨년스럽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합니다!
하지만 상동지역을 내년을 기약할수 없을
정도로 쇄락한 지역이기에 뭔가
허전하고 공허하네요
영월에서 고한.사북경유태백!
상동경유 태백으로 석항삼거리에서 두갈래
길로 나누어져 있는데 윗길은 4차선으로
곧게 뻗어있고 통행량도 많은데
아랫길 상동은 차량도 없고 석탄.텅스텐등 광물산업의 몰락처럼 인구도 줄어들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순수 버스여행으로 상동쪽을 다니기엔
진짜 큰 결심이 있어야 하겠네요.
계절의 변화를 풀어내신 것이 감성적으로 다가오네요. ^^
말씀처럼 내년을 기약하기도 어려울만큼 낙후된 지역이라 공허함이 더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상동뿐만 아니라 강원도 일대를 버스로 돌아다니기가 무척 어려워졌다는 것을 많이 느낀 하루였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제가 어릴때는 태백-동서울 무정차가 38번 국도가 아닌 31번 국도로 지나갔었죠.. 그래도 시외가 아니더라도 좌석으로도 영암이 다니고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죠
31번 국도와 38번 국도 모두 거리상으로는 비슷하고, 고갯길은 오히려 38번 국도쪽이 더 험한데도 인프라 차이가 이렇게 벌어진 것을 보면 상동이 얼마나 관심 밖으로 밀려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외버스가 꾸준히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Maximum 강원랜드 개발과 38번국도 4차선확장도 한몫 하는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