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37 < 이가리닻 전망대 – 환호공원 – 영일대-죽도시장-호텔 영일대>
음식에 제철이 있듯이 여행에도 제철이 있다. 이 계절에 또는 지금 꼭 떠나야하는 여행지가 있다는 것이다. 올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궂은 날씨일수록 내 집만 한 곳이 없어서 해마다 여름이면 모두가 즐기는 피서는 떠나지 않는다. 태양이 지면 그때가 저녁이 듯 인생도 몸이 지치면 소소한 일상도 짐이 되어 무겁고 마음까지 지치면 모든 삶이 무겁다. 그래서 여행도 에너지만큼 계획하고 떠난다.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던 8월의 더위를 보내고 오랜만에 추석여행을 포항으로 잡는다. 특히 12월이면 아들아이가 결혼을 하게 되니 그동안 셋이서 동행해왔던 여행은 아마도 이번이 마직막이 될 것이다. 퇴직 후 혼자 떠났던 여행지와 지난 5월 가족여행 중에도 포항은 빠져 있어서 이번에는 평소에 쉽게 갈 수 없는 포항 투어를 계획했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출발하여 경상북도 수목원을 지나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이가리닻 전망대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오전에 차분하게 출발하여 먼 길을 달리다 보니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하여 이가리닻 전망대까지 직진하기로 하였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며 휴게소에 모인 사람들의 풍경도 아름답고 신나는 과정이다. 또한 처음 가는 길은 늘 낯설고 멀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예습하고 떠나는 것이라서 목적지를 훤히 보면서 달린다. 그렇게 달려간 첫 목적지인 이가리닻 전망대에 도착했다. 생각대로 일몰을 감상하기에는 빠른 시간이었으며 지나는 길목에 훅 고개 한 번 돌려볼만한 정도인 이가리닻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 이가리에 위치한 이가리 닻 전망대는 인근에 큰 선박을 정착시키는 닻을 형상화한 것이며 푸른 해송과 자그마한 이가리 간이해수욕장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아마도 JTBC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 ‘런온’의 주요 촬영 장소라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핫플레이스로 소문이 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가리 닻 전망대의 뾰족한 부분은 독도를 향하고 있다고 하니 나름 국민 독도 수호의 염원을 담은 듯하다. 특별히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시간이 애매하여 우리는 곧장 스페이스워크를 즐기기 위하여 환호공원으로 향했다. 사실 이번 여행을 포항으로 결정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곳이다. 스페이스워크는 포스코가 기획, 제작하고 설치하여 포항시민에게 기부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조형물이란다. 스페이스워크의 총길이는 333m, 계단수 717개, 최고높이 25m(해발 81m), 317t의 철강재가 사용되어 제작되었다니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이곳에서의 트레킹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스페이스워크에서는 포항제철과 포항 앞바다를 전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높은 위치에서 걷는 아찔함이 압권이라니 거뜬하게 완주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와서 보니 한곳의 출발지에서 전체를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양쪽으로 나뉘어져 두 코스를 완주해야 한다. 333m 길이의 스페이스워크를 따라 오르고 내리며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몽환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동해 바다와 포항 시내의 아름다운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으나 일몰 시간에 맞추어졌더라면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더욱 황홀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을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또한 그동안 이곳저곳 다녔던 출렁다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 것이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 아찔한 스릴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곳이나 특색 있게 조성해 놓은 관광지는 많지만 특별한 경험이었고 예약 없이 무료로 동시에 150명이 이용가능하다는 스페이스워크에서 매력 있는 체험이었다. 아울러 스페이스워크에서 약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다음 목적지인 영일대로 향했다. 아직도 추석의 기온이라기에는 무색할 만큼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에도 더위와 함께 습도 또한 높아서 영일대해수욕장까지 둘러보기에는 무리인 듯하였다. 특히 밤이 되면 포스코의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워낙 빠듯한 일정과 더운 날씨 탓에 숙소를 찾아 마냥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는 영일교와 영일정을 한바탕 걷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숙소로 향하는 길목에 적당한 먹거리로 저녁식사를 해결할 마음으로 포항의 유명한 재래시장인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명절 전 연휴가 길어서 한창 북적거릴 것이라는 기대와 새로운 에너지로 들어 선 죽도시장은 좁은 시장 길 양옆으로 싱싱한 활어들만 펄떡대고 있을 뿐 지금 이 나라의 경제 탓일까? 사고 먹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무료개방하고 있는 공용주차장도 헐렁할뿐더러 넓은 시장 통은 왠지 물 빠진 바닷가를 걷는 것처럼 한산하고 쓸쓸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다지 회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아들아이는 사실 볼거리조차 냉랭하다. 저녁 식사를 대신할만한 먹거리도 마땅치가 않아 어쩌면 살아 펄펄뛰는 삶의 치열함으로 장사꾼들만 눈부시게 외치고 있을 뿐 장사꾼들의 긴 시름까지 무겁게 느끼면서 죽도시장을 빠져나왔다. 호텔로 가는 길에 우리 동네 같은 낯익은 고깃집에 들러 식사를 마친 후 호텔 영일대로 향했다. 호텔 영일대는 우리나라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경제부흥의 꿈을 키우셨다는 역사적인 곳인데 의외로 포항 시내로 깊숙이 자리해 있었다. 초창기에는 포스코 건설의 외국인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국빈 방문 때는 영빈관으로 이용했을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란다. 호텔 2층으로 올라가보니 영일대 호텔 투숙 귀빈 명단이 정리되어 있었다. 많은 유명 인사와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세계적 지휘자 금난새 등이 포항 방문 때마다 숙소로 이용했을 만큼 쾌적하고 편안하며 품격 있는 곳이었다. 요즘에는 호텔이 단순 숙박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하여 그곳에서 스테이케이션을 즐기는 호캉스로 여행 대신 호텔에서 힐링을 한단다. 우리가족에게도 아늑하고 조용한 호텔 영일대에서의 숙박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상의 휴식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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