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대상과 가톨릭대상을 비교해 보니
해마다 봉축일을 앞두고 불교계에서는 큰상이 발표 된다. 올해로 일곱번째를 맞이 하는 ‘불자대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수상자 명단에 때로 의외의 인물들이 들어가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불자대상의 수상자가 불자로서 최고로 명예로운 상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모든 불자들이 인정할 만한 인물들인지는 좀 더 숙고 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총무원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조계종 불자위원회에서 선정된 수상자가 과연 불자들의 정서와 부합 하는지에 대하여 따져 볼 일이다.
역대 불자대상 수상자를 보니
조계종 불자대상 선정위원회(위원장 총무원장 자승스님)는 지난 11일 불기 2554년 불자대상으로 고(故) 대한민국 해병 UDT
2004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7회째를 맞고 있는 불자대상 수상자는 어떤 인물 들일까. 인터넷에서 조회 하여 찾아 보았다.
역대 불자대상 수상자
이들의 직업을 보면 군인 5명(
이들 수상자 중에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쓸쓸히 퇴장한 사람도 있고, 수상 당시에 반짝 인기를 끈 후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불자도 있다.
또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주의를 탄압하던 정치인도 있는 가 하면 새로운 정권과 함께 존재가치가 사라져 버린 기업의 대표자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상자의 특징은
불자대상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군인’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들 군인 수상자의 대부분은 현역시절에 ‘4성장군’으로서 군의 요직을 맡고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010년도 수상자의 명단을 보면 준위출신도 있다. 천안함 침몰당시에 실종자를 수색하다 고인이 된
군인과 더불어 단골 직업군은 ‘체육인’과 ‘연예인’이다. 국민들의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매우 좋은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체육인의 경우 시대별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 하고 있다. 골프의
최근 2년간의 불자대상의 수상자를 보면 신도회의 임원이 등장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중앙신도회나 대불련과 같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신도회의 간부가 수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일반 신도들도 수상자가 될 수 있다는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자대상의 조건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만 불자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어떤 이들이 불자대상의 대상이 될까. 조계종의 불자대상 선정위원회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불자들이 대상이 된다고 한다.
불법홍포, 한국불교 위상제고, 불자 자긍심 고취, 종단 발전과 홍보, 국가 및 사회발전에 기여한 불자
불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불교의 홍보에 앞장섬과 동시에 사회발전에 기여한 불자가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 하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불자이어야 할 것이다.
4성장군의 군인, 인기절정의 체육인, 누구나 좋아 하는 텔런트등이 우선순위로 뽑힐 것임에 틀림 없다. 조계종의 불자대상이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델을 기준으로 한다면 타종교의 경우는 어떠할까.
가톨릭대상의 선정기준은
천주교도 불자대상과 같은 수상자가 있다. 이름 하여 ‘가톨릭 대상’이라 한다. 그런데 그 역사가 불교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꽤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1982년도부터 시상해 왔으니 올해로 26회라 한다.
불교대상의 선정을 주관하는 곳이 조계종의 총무원이고, 총무원장이 위원장인 것과 비교하여 천주교의 경우 ‘한국천주교 평신도 협의회’가 주관한다. 불교가 종단의 지도부에서 선정 하는 것과 달리 천주교는 신도회에서 대상자를 선정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4성장군, ,체육인, 텔런트, 정치인, 기업인, 등과 같이 유명하고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 하였다는 사람이 선정 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신자들이 선정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선정 기준은 어떤 것일까. 인터넷의 자료를 검색 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톨릭대상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웃과 세상을 위해 묵묵히 헌신, 봉사하여 공동선 증진에 크게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를 가려 뽑아 격려하고 시상하는 제도입니다.
가톨릭 대상의 선정 배경이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신자가 대상인 것이다. 그런 가톨릭 대상에는 어떤 부문이 있을 까.
크게 사랑부문, 문화부문, 정의 부문 이렇게 세분야로 나누어 상을 주는 것이다. 24회(2008년)를 맞는 동안 각 부문별 수상자는 사랑부문에 39명, 문화부문에 15명, 정의부문에 2명, 특별상 2명의 수상자를 선정해 수상 했다고 한다.
가톨릭대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그렇다면 최근 3년간 수상한 사람들은 어떤 인물들일까. 표로 만들어 보았다.
최근 3년간 가톨릭대상 수상자
표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평신도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간혹 특별상이라고 해서 국위를 선양한 유명인에게 주는 상이 있긴 하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개신교서에는 어떤 상을
개신교에도 위와 비슷한 상이 있을까.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 키워드 검색만 하면 쉽게 찾아 낼 수 있다. 개신교에도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주는 상이 있다. 이름은 ‘기독교문화대상’이다.
기독교문화를 형성하고 확산한 기독교문화예술인들의 성과를 격려 하기 위한 상이라고 한다. 가톨릭 보다 1년 늦은 1983년부터 시상된 기독교문화대상은 6개 부문(음악 오페라 국악 문학 방송 무용) 에 대한 문화와 관련된 상이다.
최근 3년간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최근 3년간 기독교문화대상 수상자
기독교문화대상자의 특징은 음악, 문학, 방송, 국악등 현대문화와 관련된 장르로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작품이나 수상자들이 선정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정 주체에 따라
불교, 가톨릭, 개신교 모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상을 하고 있는데 그 수상자를 보면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요인은 전적으로 수상자를 결정 하는 단체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관하는 단체의 성격에 따라 상을 받는 대상도 달라 지기 때문이다. 종교별로 상을 주관하는 단체는 다음과 같다.
종교별 시상 주관자
불교의 경우 조계종의 종단에서 주관 하는데 위원장은 총무원장이 맡고 있다. 반면에 천주교의 경우 성직자들이 배제된 평신도협의회에서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 불교의 경우 수상자가 ‘정치적’ 내지 ‘정략적’으로 선정될 우려가 매우 높은 것이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사건에 따라 달라 지는 것이다.
이번에 고
반면에 천주교의 경우 평신도만으로 구성 된 협의회에서 수상자를 선정 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다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4성장군과, 유명스포츠인, 인기연예인이 선정 되는 불자 대상과 우리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실천 해 나가는 가톨릭의 수상자를 보면 선정 주체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불교계에서 해마다 주는 두개의 커다란 상이 있다. ‘포교대상’과 ‘불자대상’이 그것이다. 포교대상은 출가수행자들이 거의 대부분 받는 상으로서 21회 째이다.
불자대상은 재가불자들이 받는 ‘신행대상’이라 볼 수 있는데, 역사는 일천 하여 고작 7회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아직 까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연예계에 종사 하는 불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연예대상’을 주어야 하고,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군인대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또 인기 스포츠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체육대상’을 주면 된다. 그러나 정작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보살행’을 실천 하는 불자들이 받는 상은 아직까지 없다.
‘지계’하고 ‘보시’하는 삶을 가장 이상스런 불자라고 한다. 이를 현대식으로 풀이 한다면 ‘도덕적인 삶’ ‘봉사하는 삶’을 살아 가는 불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이 자신의 할 바를 다하고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덕목인 “바라는 것이 없이 주기만 하는 삶인 ‘무주상보시’를 실천 해 간다면 이들에게 상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한 때 시류에 영합하여 선정된 불자대상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혀 지거나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지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보살행을 실천 하는 이상적인 불자상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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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고뇌의 강을 건너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
첫댓글 불교신자의 블로그에서 좋은 글이 있어 옮겨 왔습니다.
불교신자가 자신의 종교현실에 대하여 자성하는 글이군요. 우리 캐톨릭에서도 더욱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