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중세유럽과 중후한 근대 유럽풍이 아주 잘 보존된 도시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동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참화로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프라하와 체코 지역은 바이에른과 더불어 서방 연합군과 소련이 독일 본토로 진입하는 와중에도 가장 마지막에 수복되다 보니 다행히도 전쟁의 참화를 비껴갈 수 있었다.
처음 9세기에 프라하 성이 축조되었고, 1085년 보헤미아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14세기에 이르자 카렐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도시는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시의 인구는 4만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인 1344년에 주교구에서 대주교구로 승격되었고, 1346년엔 카렐 4세의 통치 아래 신성 로마 제국 전체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후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어갔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다. 1968년의 프라하의 봄 사건으로 유명하며, 1993년 슬로바키아의 분리에 따라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나무위키 내용을 요약정리)
프라하성은 현재 체코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카를교
난간의 30개의 조각상들(가장 먼저 세워진 네포무크 성상이 유명), 다리 위의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과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카를교에서 본 프라하성
천문시계가 있는 건물은 프라하 구 시청사 건물인데, 천문시계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도 있고 구 시청사 관람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천문시계의 내부를 그대로 볼 수도 있다.
구 시가지 광장 가운데 얀 후스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천문시계탑 꼭대기에서 본 프라하 구시가지
체스키 크룸로프
13세기 후반 블타바 강변에서 보헤미아 지역의 무역 거점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성과 마을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성과 마을의 건설이 완료된 후에는 보헤미아 왕국의 귀족이었던 로쥼베르크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여러 가문에 매각,양도 되어 오다가 1차,2차 세계대전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중세 이후 주민의 다수를 이루었던 독일계 주민들은 이 때 전원 추방되었다.
공산당의 지배 하에 있던 시기에 마을의 상당수가 훼손되었지만,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이후 공산주의정부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대부분이 다시 복구되었다.
냉전 이후인 1992년에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유럽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로 알려지며 체코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마을의 규모는 작은 데 비해,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을 가지고 있다.
성안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지
성안 중심광장
프라하 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인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고딕 양식부터 시작하여 수 차례 새로운 건축 양식들이 증축되면서 현재는 여러 양식이 복합된 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흐라덱 성탑은 체스키크룸로프의 상징이자 마을에서 가장 높아(54.5m) 좋은 전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구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