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돌아보니 친구밖에 없더란다.
전주시 효자동에 세워진 상산고.
그런데
집은 경기도 안산.
나는
남부시장 허른한 개천 옆
한옥집 화장실 옆 문간방에서
자취를 했다.
야자 시간에 담임샘 허락을 받고
인후동에서 철물점하는 외삼촌에게서
등록금을 받아 왔다.
그날 당직샘은 2학년 체육샘
난 이유도 모르고
밀대걸레 자루가 3개 뽀개질 때까지
엎드러뻗쳐 자세로 맞았다.
난 다음날 문제아로 찍혔다.
입학날 서울대를 갈 수 있겠다는
훌륭한 칭찬을 들었던 반월공단 노동자인
어머니는 주변에 입소문을 냈더란다.
난 택시를 타고 등교를 했고
방방 뛰던 최동성 담임샘은
분노를 넘어 태권도 유단자인
그 더러븐 체육쌤과 맞짱까지 생각했더란다.
그 여린 몸으로......
감사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학생은 인형과도 같았던 시절
난 영문도 모르고 껍질이 터지도록 맞았고
없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부르조아지의 삶을
2주간 살았더란다.
분노의 매타작은
한 학생을 제임스 딘으로 만들었고
그때 담배를 시작했더란다.
전교생이 야자를 하던 시절.
2층 복도에서 들리던 매타작소리는
모든 1학년 학생들을 움츠리게
만들었고
난 원치않는 버린 학생이 되어 버렸다.
타지에서 원정 유학왔다고
가진 게 없는 노동자의 자식이었다고.....
아버진 훗날 말씀하셨다.
나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라고
다음 날 나는
부르터진 엉덩이와 장단지, 종아리로
운동장을 10바퀴 돌아야했다.
사죄 한 마디 없는 얼굴만 몇 번 본
그 선생은 종아릴 풀어준다는 이유로
전교생이 아침 자습하는 시간에
동물원에 원숭이로 만들었다.
난 느꼈다.
힘 없는 놈은 억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억울함을,
난 포기했다.
대한민국에서의 서울대학을,
아니 대학을.
어울리고 대가리 터져가며
쌈질도 하고
새우깡에 막소주를 들이붓고
전주의 관통로를 야밤이면
뛰어 다녔다.
어린 나이에 성을 먼저 알아버린 준책이는
구이 학ㅡ교앞 문구점하던
어머님의 이윤을 훔쳐
젊음을 풀었고
딱딱한 공무원인 아버지와 다르게
일건이는
세상을 욕설로 풀어냈다.
노력은 하지 않고.....
원우는 전봇대에 다리를 찢어가며
유연성을 키웠고
끝내 아낙들의 입술에
열렬한 노력이 살아졌다.
무뚝뚝한 정기는
경찰인 아버질 빼닮아 군인이
되었지만 자유를 그리워하다
민간인이 되었다.
쫌만 참았다면 육군총장인데......
일년 선배였던 종대.
공부보단 빠구리가 우선이었고
의리를 최고로 살았다.
나이 어린 영기,
이 놈은 형님들보다 순수하다
여겼더니 어느새 깡패가 되어
입이 거나해졌고
세상을 형들보다 먼저 알아 버렸다.
짭새가 되어 서울에서 사는
형우는 묵묵하니
언데나 기둥이 되는 놈이다.
의지할 시간이 기대된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익송이,
이 친구는 진국이다.
투덜대는 일 없이 감싸주는
바다같은 사나이다.
잘사는 갑부집 윤홍,
운동 신경이 좋아
체육 쪽으로 갔으면 대성했을텐데
그놈의 해병대를
지원하더니.....
조금은 대기만성형인갑다.
광호.
이 놈은 문제가 많다.
가정사, 사회사 파란만장하다.
김동술로 불리던 덩치가
맘이 얼마나 여린지.....
난 서울대를 포기하고
10명의 친구를 얻었다.
아직 한 마음이 되지 않았지만
한 길을 걷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면 즐겁고 유익한
인생의 형제를 만들었다.
체육샘의 훈육은
아픔의 상처를 남겼지만
옆에서 지켜준 든든한
고삐리 칭구들이
지천명의 시기에
삶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