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나의 날이라고 하니 혹시 로또 복권이라도 당첨 된 것으로 오해 하실 까봐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시 “이 순간”을 떠올려 오해를 불식 하려고 한다: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 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중략)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시에서 “이 순간”을
“지금 여기서” 또는 “오늘
이순간” 이라는 말로 바꾸어 읽어본다. 그리고는 이순간 나
홀로 조용한 방에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니 오늘이 나의 날이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오늘이 나의 날이라고 굳이 주장 할 이유를 대 보라고 하면 오늘은 내가 천명을 받들어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이 땅에 태여 난 날이다. 나의
자유의지는 지난 칠십 수년간 어떤 의미에서 해바라기 같이 이세상 부귀공명만을 쫓으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명에 힘입어 태어난 내가 이제는 천명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여생을 편안하게 살 것 같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며 천명의 의미를 인생의 한계를 알고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천명을 이렇게 받아 들이면 나의 자유 의지가 무엇에도 쏠리지 않고 좀더 태연자약 해 질 것 같다. 내 머리 속에서 소유에 대한 집착 하나만
털어 버려도 살면서 생기는 불만과 갈등에서 자유로워 질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방한개가 부족한 가옥의 소유주이고 이 방한개가 부족한
결핍현상을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운명을 믿기 시작한다면 안달 하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오늘뿐만 아니고 일년 365일이
모두 나의 날이 되지 않을 까 싶다.
북송 시인 주돈유(朱敦儒*)의 “세상은 봄날의 꿈”이라는
사(詞)를 소개 합니다.
世事短如春夢
세상사 짧기는 봄날의 꿈과 같고
人情薄似秋雲
인정은 가을 구름처럼 엷으니
不須計較苦勞心
계산 하느라고 마음 괴롭히지 말지니
萬事原來有命
만사에 원래부터 천명이 있는 법
幸遇三盃酒好
다행이 술 석 잔이 생기니 좋고
況逢一朶花新
더구나 한 떨기 꽃까지 만나 새롭다
片時歡笑且相親
잠시 기쁘게 웃고 서로 친해 보자
明日陰晴未定
내일은 흐릴지 맑을지 정해지지 않았다.
*주돈유(朱敦儒,1081-1159)
자는 희진(希眞) 호는 암학(岩壑) 하남(河南)사람.
일흔 네 번째 나의 날을 맞아 개포동 우거에서 정 해균 배상.
첫댓글 정 대감의 글을 제때에 읽었더라면, 엊그제 동기생 몇명이 모여서 점심을 나눌때 생일 축하 건배라도 했을텐데 아쉽습니다. 몸과 머리를 누구보다도 더 바쁘게 만들면서도 항상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정해균大兄의 체취가 조금씩 더 진하게 다가오는군요. 좋은 말씀과 생각이 담겨있는 시 ... 더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