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닥터, 낭만 목사
몇 해 전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낭만닥터〉가 있었다. 돈이나 명예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한 의사의 이야기는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인 사람, 의술을 베푸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을 두고 '낭만 닥터'라 한다.
그러면 낭만 목사는 없을까?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드라마 속 낭만 닥터 못지않은 '낭만 목사'들이 참 많다. 일탈한 목사들이 어쩌다 있긴 하지만,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면서 영혼을 돌보고, 말씀을 전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농촌이나 작은 마을의 목회자들은 독거노인의 집을 찾아가고,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간다. 처음에는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봉사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주민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고, 마을 사람들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된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낭만이 아닐까? 낭만은 현실을 모르는 감상이 아니다. 어려운 현실을 알면서도 끝내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다. 계산하면 손해이지만 기꺼이 섬기는 마음, 보상이 적어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음이다.
목회는 원래 그런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의 발을 씻기셨고, 병든 자를 찾아가셨으며, 외면받는 이들과 함께하셨다. 목회 역시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그래서 참된 목회에는 언제나 섬김이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감당하는 희생이 있다.
그런데 세상은 목회자의 희생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은퇴한 목사로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일부 목사들 때문에 생겨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전체의 일처럼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 이름 없이 빛없이 시골 교회를 지키는 목사, 월세 걱정을 하면서도 성도를 먼저 챙기는 개척교회 목사들을 고운 눈으로 봐주었으면 싶다.
이런 목사를 두고 '낭만 목사'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오늘날 신학교를 찾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 한때는 목회자 수가 많다고 걱정했지만, 지금은 목회자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목회라는 길이 너무 힘들고, 너무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으로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낭만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낭만 목사'라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 목사 자신부터 이 낭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이기적인 세상 가운데서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므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낭만 목사로 보였으면 싶다.
세상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이들을 필요로 한다. 몸을 살리는 의사가 있듯이,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전하며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도 필요하다. 드라마 속 낭만 닥터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 곁에서 묵묵히 섬기는 낭만 목사들의 삶도 존경과 따뜻한 시선을 받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날이 오면 목회는 더 이상 희생만을 떠올리게 하는 직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리는 낭만 있는 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