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빵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책을 펼치는 소소한 즐거움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마이야르 반응‘에 중된된 인류를 발견할 수 있다. 강석기 제공
동네 서점(사실 대형 서점의 지방점이다)에서 책을 사면 필자는 늘 그 옆 건물에 있는 빵집(역시 유명 베이커리의 프렌차이즈점이다)에 들른다. 크루아상을 곁들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펼치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커피와 빵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그런데 다음번에 빵집에 가게 되면 다른 상념에 잠길 것 같다. 바로 한 세기 전 프랑스 화학자 루이-카미유 마이야르(Louis-Camille Maillard)의 삶과 그의 이름을 딴 화학반응인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다. 올해는 마이야르가 마이야르 반응을 발견해 보고한지 꼭 100년이 되는 해로 지난 9월에는 그가 활약했던 프랑스 낭시에서 100주년 기념 국제학회가 열리기도 했다.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화학자와 화학반응을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과학에세이에서 다루다니 아무리 필자가 화학과 출신이지만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이야르가 발견한 마이야르 반응은 인류가 불을 사용한 이래 늘 접하고 있는 생활 속의 화학반응이다. 즉 인류는 요리를 발명하면서 마이야르 반응에 중독돼 있다.
●음식에 풍미를 주는 분자 만들어 내요즘은 삶의 풍요로움을 중요시하기 때문인지 커피도 생두를 사와 직접 볶아 내려 마시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생두는 빛깔도 회녹색에 냄새도 약간 비릿하다. 그런데 생두를 볶기 시작하면 색깔도 점차 갈색을 띠고 커피 특유의 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두색은 더 짙어지고 향도 강해지지만 그 느낌도 달라진다. 따라서 어느 순간 로스팅을 멈춰야 한다.
커피를 볶을 때 수많은 화학반응이 일어나지만 이런 색깔 변화와 향기 생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반응이 바로 마이야르 반응이다. 뿐만 아니다. 오븐에 들어간 밀가루 반죽이 노릇노릇 구워지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구수한 빵냄새가 퍼지고 석쇠에 올려놓은 돼지갈비가 숯불에 갈색으로 익으면서 ‘고기냄새’(적당한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다!)를 풍기는 것도 다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다.
마이야르 반응은 포도당이나 과당 같은 당과 단백질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이다. 음식이라는 게 동식물의 몸이고 결국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질로 이뤄진 것이니 사실상 모든 음식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이 반응이 잘 일어나려면 높은 온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백도의 과정이 필요한 위의 식품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밥을 할 때 물을 좀 적게 잡거나 뜸을 좀 오래 들이면 누룽지가 생기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물이 충분할 때는 온도가 100도를 넘지 않지만 밥알이 물을 흡수하고 김으로 빠져나가면서 솥 바닥을 경계로 불과 마주하고 있는 맨 아래쪽이 건조해져 온도가 100도를 넘으면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노릇노릇해지면서 구수한 누룽지의 풍미가 나온다.
커피와 빵, 돼지갈비, 누룽지, 이밖에도 쿠키, 초콜릿, 팝콘, 심지어 간장까지. 이런 음식들을 좋아한다면 루이-카미유 마이야르와 마이야르 반응을 기억할 만하지 않을까.
●천재 과학자이자 의사였지만
100년 전 마이야르 반응을 발견한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카미유 마이야르. 출처 위키피디아
1878년 독일과 접경지역인 프랑스 로렌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이야르는 어려서부터 무척 총명해 주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한다. 불과 16살에 문학/철학 학사학위를 받은 마이야르는 낭시대 의대에서 본격적으로 과학과 의학 공부를 시작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폭넓게 공부한 마이야르는 특히 화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마이야르는 의학에 화학을 접목해 오늘날 생화학에 해당하는, 즉 인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1902년 파리대 의대로 옮긴 뒤에는 신장에서 일어나는 요소 대사와 관련 질환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한편 기초과학의 본질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서 도대체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12년, 34살 한창 때인 마이야르는 아미노산에서 단백질을 합성하기로 결심하고 이런 저런 조건에서 반응을 해보다가 특이한 발견을 한다. 즉 아미노산과 당을 같이 넣고 고온에서 반응시키자 용액이 갈색으로 바뀌었던 것. 이런 변화에 흥미를 느낀 마이야르는 용액을 분석해 아미노산과 당 사이에 반응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3쪽짜리 논문으로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당에 대한 아미노산의 반응: 멜라노이딘 형성 방법’.
즉 마이야르는 당과 아미노산의 반응 생성물이 갈색인 데에서 동물 털과 피부의 갈색색소인 멜라닌을 떠올려 이런 이름을 지었다. 멜라노이딘(melanoidin)은 지금도 쓰는 용어다. 사실 마이야르 반응 발견은 마이야르 입장에서는 그리 중요한 업적이 아니다. 그리고 이 논문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그 뒤 반세기 가까이 묻혀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마이야르의 삶은 순식간에 흔들린다. 연구에만 몰두한 천재들이 그렇듯이 마이야르도 인간관계 특이 이성관계에 서툴렀나본데 아무튼 1910년 32살에 의사의 딸인 잔-루이즈와 결혼한다. 결혼 당시 잔-루이즈는 이미 임신 6주였는데 양가집 처녀의 임신을 용인하지 않았던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서둘러 결혼을 했다고 한다.
결국 갑작스런 결혼은 당시 부르주아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아래는 그의 조카손자인 로베르 마이야르의 회상이다.
“강요된 결혼, 혼전 임신, 본인이 아이 아버지가 아니라는 생각, 연구에 대한 집착, 가정 모임의 부재, 가족의 말다툼. 수많은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결혼을 깨졌다. 자신을 실패한 요리처럼 느끼고 살았던 우리의 영웅은 이혼을 그리스비극처럼 바라보았다. 그 결과 전쟁에 뛰어들었고 알제리로 떠났다. 기억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마이야르는 군의관으로 입대했는데 5년 동안 근무하면서 건강을 많이 해쳤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파리대로 돌아가지 않고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로 떠나 주위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알제리 의대 교수로 일하던 이때는 이미 연구자로서 삶은 끝난 상태였다. 마이야르는 1936년 파리에 들렀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한다.
●발암물질도 함께 만들어져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분자들. 위로부터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미드와 HMF, 빵과 팝콘의 풍미를 주는 아세틸피롤린, 팝콘과 구운 고기의 풍미를 주는 부탄디온. C&EN 제공
마이야르 자신도 150여 편의 논문 가운데 하나 정도로 생각했던 마이야르 반응 논문은 그러나 20세기 중반 식품업계에서 음식이 요리될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재조명됐다. 특히 1953년 미국 농무부의 화학자 존 호지가 마이야르 반응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힌 논문을 발표하면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업적을 인정해 ‘마이야르-호지 반응’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식품 조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은데 다양한 당분자와 아미노산이 만나는 경우의 수도 많고 또 뒤이어 일어나는 반응의 종류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식품에서 밝혀낸 마이야르 반응은 그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미노산 글리신이 당과 반응하면 맥주가 연상되는 냄새 분자가 만들어지고 아미노산 발린이 반응하면 호밀빵 특유의 냄새가 나온다. 아미노산 시스테인은 고기와 크래커 냄새를 낸다.
그러나 마이야르 반응이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분자 가운데는 우리 몸에 해로운 종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조리를 할 경우 이런 분자들의 비율이 늘어난다. 고기를 너무 태워 먹지 말라는 것도 그런 이유다.
참고로 최근 한 식품회사의 라면 스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돼 논란이 되고 있는데 벤조피렌은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의 하나로 역시 고기를 구울 때 생기는 물질이다. 벤조피렌은 지방이 육수와 함께 수백도에서 타면서 생기는 그을음에 존재하는데 마이야르 반응과는 직접 관계돼 있지 않다.
한편 고기를 구울 때 PAH와 함께 문제가 되는 화합물로 이종고리아민(HCA)이 있는데 이종고리아민의 생성은 마이야르 반응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이종고리아민 화합물 가운데 일부는 마이야르 반응의 산물이 추가 반응을 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야르 반응과 관련된 가장 충격적인 연구결과는 지난 2002년 나왔는데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미드가 (유해 환경에 노출돼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몸에도 꽤 축적돼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스웨덴의 과학자들이 추적 조사를 한 결과 아크릴아미드가 식품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식품에서 일어난 마이야르 반응의 생성물이 추가 반응을 통해 아크릴아미드로 바뀌었다는 것. 음식을 통해 하루 섭취하는 아크릴아미드의 양이 100마이크로그램까지 될 수 있다고 한다.
음식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덜 일어나게 하려면 조리법을 바꿔야 하는데 예를 들어 고기는 굽지 말고 삶아 먹으면 된다. 빵도 오븐이 아니라 호빵처럼 쪄 먹으면 된다. 커피는 풍미가 좀 부족하다 싶어도 로스팅을 일찍 끝내는 게 좋다. 다들 입맛 떨어지는 해결책이다. 역시 세상일이 그렇듯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는가 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