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실내극 눈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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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극 눈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
종합대본
"거세" (가제)
실내극의 '아들' 이 가지는 선천적 결핍 남성과 눈뜨라의 '홍대리'가 가지는 후천적 결핍
남성이 주제를 연결 고리로 삼아, 콤플렉스의 측면을 두각 시키고. 해결하지 못하고 해결될
수 없는 결핍 상황에 대한 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결론을 끌어 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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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장
두 개의 양변기 아내의 화장실 세면대 공간
[홍대리] (안간힘을 쓴다) 으--- 응. (처절하게 일그러진다) 휴우---
두루마리 휴지를 잡아당겨. 밑으로 가져가는 홍대리. 조금 심하다 싶을 만큼 휴지를 드르륵
거리며 잘라낸다. 꽁무니로 전해지는 고통의 흐름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휴지를 잡아당긴다.
이때 아내의 공간 (세면대) 에 조명이 들어온다. 아내는 이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공간을
통해 표현 된다
[아내] 저, 여보 나 자기한테 물어보고 싶은게 있거든 오늘 미장원에서 주간지를 봤는데 글
세 삼십대 유부남의 74.2 퍼센트가 자기 아내에게 권태로움을 느낀다고 하더라구.
뭐 여자는 권태를 못 느껴서 참고 사나? 그건 좋다 이거야, 글세 그중 89.7퍼센트의 남자가
기회만 주어지면 아내 아닌 혼외정사를 가질 용의가 있다지 뭐야? 문제가 안 생기는 조건이
면 95퍼센트가 하겠다는거야. 이럴수 있는 거야? 자기는 어때? 자기두 나 모르게 나 아닌
다른 년들하구 잠잘 수 있는거야? 그럴거야?
[홍대리] (타르륵 소리를 내며 휴지가 동난다) 그걸 말이라구 하냐 (다 쓴 휴지를 버리고 바
지를 추스리다가 또 다시 요의를 느끼 변기 위에 주저 앉는다) 아후--- 젠장.
[아내] 그렇지? 정말이지? (웃음) 그럴 줄 알았어.세상에 남자들다 타락해서 지옥불에 떨어
져도 자기만은 안 그럴 줄 믿었다구. 난 자기의 그런 순결한 마음이 너무 좋아 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하옵니다. 우리 가정을 이렇게 굳건히 잡아 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홍대리] 어이구--- 쓰라려워
[아내] 자기 이번달에 보너스 타면 일만이천평 성전 건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건축헌금 내
자. 응?
[홍대리] 아픔이 있구먼--- 끄--- 응.(처절한 배변의 고통이라 눈물이 찔금거린다) --- 아
이구 --- 아--- 아. 아. 아. 휴우--- 아멘.
[김부장] (둔중한 몸을 뒤척거리며 휴지를 찾는다. 보이지 않는다) 허. 이것 참.
(슬쩍 휴지통을 들쳐본다. 절로 찌뿌려진다)
청소하는 놈들은 다 어디가 처박혀 있는거야? 월급 따박따박 받아먹으면 밥값은 해야 할거
아냐, 쯧. 이거 명색이 국내최대의 회사 변소에 휴지가 없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야.
[홍대리] (갑자기 나는 소리에 긴장한다)
[김부장] (파티션을 노크하며) 거기--- 누구 있나?
[홍대리] (다리를 반짝 들어 밑에서 보이지 않도록 변기위로 움츠린다)
[김부장] 아무도 없나? (파티션을 아래로 건너편을 살핀다) 아무도 없어? 에이.
딴 때는 곳간에 쥐방구리 마냥 틈만나면 변소에 와서 죽치는 것들리 오늘은 왜 하나도 안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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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은 바지춤만 얼추 부여잡고 겸연쩍은 헛기침으로 여기저기글 둘러본 뒤 변기에서 일
아나 나온다. 홍대리 신경이 곤두선다 문을 열려고 잡아당기는 김부장. 문고리를 악착같이
잡은 홍대리와 영문을 모른체 열려는 김부장.
[김부장] 어라? 이것 보게.(힘껏 당긴다) 이거 잠겼나?
[홍대리] --- 예. 잠겼는데요
[김부장] 아이쿠!
[홍대리] 아, 안에 사람이 있거든요
[김부장] (얼른 자기의 변기로 돌아가 앉는다) 어--- 어흠.
[홍개리] 으--- 흠
[김부장] 혹시 홍--- 윤조씨?
[홍대리] 예--- 혹시 부, 부장님이십니까?
[김부장] 이 친구야 안에 있으면 있다고 인기척이라도 내야 할거 아냐?
[홍대리] 시정하겠습니다
[김부장] 뭐 시정 까지야.저--- 거기 혹시 휴지--- 있나?
[홍대리] 다--- 썼는데요
[김부장] 이런.
[홍대리] 휴지--- 없으세요?
[김부장] (쓰레기통을 들여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결재 받으러 올라가다가 급해서 들르다
보니 말이야 큰일인데 빨리 결재를 맡아야 할 건인데. 쯧.
[홍대리] 그래도 갇혀있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요?
[김부장] 날 뭘로 보고하는 소리야!
[홍대리] (찔끔) 죄송합니다
[김부장] 그 쪽엔 건질만한 놈 없나?
[홍대리] 이쪽이요?지금 찾아보겠습니다.
[김부장] 참 이거 사장님 퇴근하시기 전에 결재를 받아야할텐데.
홍대리 건성으로 쓰레기통을 뒤진다. 발로 슬쩍슬쩍 밀어 본다.
[홍대리] 없는데요
[김부장] 거 참 이상한 사람들이야 도무지 다른 사람 생각은 전혀 하질 않는다만 휴지가떨
어졌으면 이야기해서 비치해야 할 것 아냐다른 사람이야 어찌됐건 저만 쓰면다다 이거야.
뭐야? 그리구 자네도 그래, 변소에 오는 사람이 휴지를 넉넉하게 안가져 오는 건 또 뭐야.전
쟁터에 총알 안가져 가는 것하고 똑 같잖아 자네같이 준비성 없는 사람이 대리자리 차지하
고 있으니 이 회사도 알조로구만. 에이 월급 도둑놈들.
[홍대리]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휴지를 안가져 올 수도 있는거지 뭐 그런일 가지
고 대리 자격이 이러니 저러니 그러시는 거냐구요
[김부장] 뭐? 야 임마 너 지금 반항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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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리] 좋습니다 저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제가 그 동안 회사에서 못 한일이 또
뭐있습니까? 대리 자리요? 하는 일로 보면 부장님보다도 서너 곱절 많습니다 부장님 근무
시간에 사우나가서 자고 있을 때 전 땀으로 목욕하면서 동동 거렸고. 장님 룸살롱에서 바이
어 접대한다고 아가씨들 속치마 더듬을 때 전 내 돈으로 현장 담당자들 커피 대접하면서 아
쉬운 소리했습니다 대리 자리 이거 뭐 고스톱쳐서 딴건지 아십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섭섭
합니다.
[김부장] 섭섭? 너 밥벌어 먹기 싫어?
[홍대리] 더럽고 치사하게 밥줄가지고 그러실 겁니까?
[김부장] (흥분) 더럽고--- 치사하게? 이 자식이 뵈는게 없구만 너. 이리와봐?
[홍대리] 이 자식? 반말하지 마시죠 당신이 사장 아들이면 답니까?
[김부장] 이런 상노므 자식! (문을 막차고 나온다) 나와 이 자식아!
[홍대리] (벌떡 일어나 문을 연다) 나오라면 겁 날 줄 아냐? 나왔다 어쩔래.
바지들을 채 올리지도 않고 속곡 차림의 홍대리와 김부장이 수닭처럼 서로 버틴다
[김부장] (멱살잡이) 이 자식 이 위아래없이 까불어
[홍대리] (밀친다) 잡지마 이 새끼야 니가 사장아들이라고 목에 힘을 주는 모양인데 웃기지
마 사장이 첩질해서 낳은 곁가지 주제에 니가 아무리 목에 힘을 줘도 넌 이 회사 못가져 임
마 알아 이 자식아.
[김부장] 뭐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이 있어(주먹을 날린다)
[홍대리] (날아오는 주먹을 떡 잡아낸다 무림의 고수처럼) 하--- 까불지마 이 자식아.
홍대리의 주먹이 정확하게 김부장의 얼굴을 가격하고 김부장이 자신의 변기 속으로 나동그
라진다
[홍대리] 나 이깟놈의 회사 안다니면 될거아냐. 이 새끼야!
[아내] 여보 나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가니가 깨워줄 때 기다리지 말고 때맞춰 일어나 나
중에 툴툴 거리지 말고 토스트 기계 고장났으니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구 프라이 할 때 노
른자는 꼭 빼고 먹어.
[김부장] 너! 이자식이 폭행까지 --- 고소할거야!
[아내] 툴툴거리지마 자기는 마누라 잘 둔 줄 알아 나라고 새벽 댓 바람에 교회에 가고 싶
어서 가는 줄 알아? 다 자기 때문이야 내가 하나님한테 자기 잘 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열
심히 기원하는지 자기는 알아? 툴툴거리지 말라구 저번 백일 새벽기도 하니까 대리로 승진
시켜 주셨잖아 이번에는 금식하면서 새벽기도 하니까 꼭 아파트 당첨시켜 주실꺼야 아파트
붙으면 나혼자 사나? 그래! 나 혼자 살집 아니니까 자기도 같이 새벽기도 가자 금식은 나만
할테니까 간절하게 매달려보자. 응?
[홍대리] 이런 옌장할.
bach의 교회 칸타타 제 140번 오케스트레이션 편재의 연주곡 홍대리 김부장은 아무일 없었
던 듯 제 자리로 돌아가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고 조명 O,L. 거실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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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들어오면 어머니는 관객을 등진채 소파에 앉아 있고 아들은 서 있다.
[어머니] 이젠 자자 꾸나, 나는 벌써 잠이 오는구나.
[아들] 어머니, 그런데 저 소리는 무엇일까요? 낮고 은밀하게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저
소리
[어머니] 얘야, 나는 소리든지 못하는 굴껍질 발끝에서 머리까지 전신이 울퉁불퉁 하단다.
[아들] 쥐인가봐, 내 머릴 밟고 가네요.
[어머니] --- 그럼, 먼저 잔다.
[아들] 그러세요, 야옹 소리는 제가 내지요 야옹,야옹.
하늘 가운데서 몰래 움직이는 북극성, 움직이며 미확인의 볼륨을 높일 때 아들은 더욱 큰소
리로 고양이 흉내를 낸다.
[아들] 야옹, 야옹, 야옹.
[어머니] 아직 그러고 있니? 나를 자게 버려 두어라 늙은 잠 깨면 다시 못 잔다.
[아들] 어머닌 안 들리세요? 우리 지붕 갉아 먹는 소리.
[어머니] --- 저 소리 말이냐? 그거라면 나도 수 없이 들었다 약을 놓을테니 야옹 소리 필
요없다.
[아들] 아니예요 제 몫은 제가 좆아야 해요 어쩌면 쥐소리가 아닌 듯도 한데.
야옹, 야옹.
[어머니] 네 마음데로 하려므나.
어머니는 다시 잠들고 초조해진 아들은 천장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아들] 야옹!야옹!야옹! 꺼져 이 쥐새끼들아. 꺼지란 말야!
[어머니] 깜작이야. 도대체 왜 그러니?
[아들] 이젠 들리시죠? 우리 삶이 톱질당하는 소리.
괘종시계의 추가 움직이는 소리
[어머니] 너는 떨고 있구나. 저것은 세월 가는 소리란다. 아직 몰랐니?
[아들] 아니예요 시간은 지금 쯤 시냇물을 따라 어둠 속을떠다니고 있을 걸요.
나는 알아요. 시계 가는 소리보다 더 완강하고 부드러운 저 소리.
[어머니] 엄마는 하나도 못 알아 듣겠구나. 왜냐하면 나는 곧 자게 될 것이니까.
돌아 누운 어머니는 먼 벌판이 되어 있고 아들 홀로 불안을 늘어 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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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무서워요, 누가 내 목을 내리친다면 나는 목 없는 고양이--- ,어머니--- 저기 ---
누가 우리 꽃밭을 밟고 오네요? 야아아옹, 야아아옹.
(이때, 아들이 늘어뜨린 불안의 꼬리를 밝으며 자꾸 문 두드리는 소리) 아버지--- ?
잠시 침묵 경찰관 2명이 들어온다. 아들을 체포한다---
[아들] (끌려가며) 어머니 몸조심 하시구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몇발자국 따라가며) 그래, 몸 조심하구 멀리 안 나간다.
어머니가 손을 흔드는 사이. 암전 몇 년후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
[어머니] 누구세요.
[아들] (소리만) 제기랄. 저예요, 어머니.
[어머니] 나비냐--- ?
중머리의 아들 등장. 그는 껌을 씹고 있다. 서로 감정 없이 포옹.
[어머니] 이제야 돌아왔구나,이 게 몇 년만이냐?
[아들] 2 년만이예요. 정확히는 2년3개월 하고 열 다섯째날.
[어머니] 오, 2년 3개월 하고 열 다섯째날.(다시 감정없이 포옹) 그 놈은 철저하기도 하지 하
루도 더 붙잡아두거나 감해 주는 법이 없으니, 그래, 이 번 여행은 어땠니?
(둘, 소파에 앉는다)
[아들] 어딜가나 거기는 똑같죠, 뭐 지루하고 따분하죠--- 게다가 사람 대접 못 받고 자유
없고 --- 그래요, 난 자유를 저당 잡혔어요. 뭐. 새삼스런 일도 아니죠.
그것보다 이 번에 있던 곳엔 물이 귀해 욕봤어요. 아, 그리고 피부병이 돌았죠.
[어머니] 피부병?
[아들] 그래요, 피부병. 우린 그걸 딱지라고 부르죠. 하루종일 긁고 문지르고--- 우릴 돌봐
주는 비둘기 놈들도 고름을 질질 흘려 댔었죠. (침을 탁 ꒈ는다)
[어머니] 정상이 아니었구나.
[아들] 모두들 정상이 아니었죠. 하긴. 그게 정상이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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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
[어머니] 그래, 점심은 먹은 거니?
[아들] 교문 나서자마자 짜장면 하나 사먹었죠. 껌 한통 하구요.(입을 벌려 보인다) 아, 그런
데 2 년 동안의 노역 수당이 다 날아가 버리지 뭐예요.
꽃 한 송이 못사고. 하긴, 꽃이야 훔치면 돼지만--- 기가 차서.
[어머니] 아, 그러게 웬 짜장면하고 껌이야? 빨리 와서 애미가 해주는 밥 먹을 생각은 않구
서
[아들] 거기 있으면 제일 먹고 싶은 게 뭔지 아세요? 그게 바로 짜장면하고 껌이거든요 ---
그리고 보니 이제야 술 담배가 생각나는군요--- 뭐 좋은 술 있어요? 그리고 담배는 캔트로
하나 줘요. 없으면 관두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담배를 건네주고 아들은 담배 냄새를 천천히 맡아 본 다음 불을 붙인다
그사이 어머니는 칵테일 두 잔을 만들어 온다.
[어머니] 나비야--- 그 동안 고생 많았지. 자. 건배!
[아들] 건배!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침묵. 문득) 왜 다리를 저셨을까?
[어머니] 응, 누구 말이야?
[아들] 아버지 말이예요.
[어머니] 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니? 너네 아버진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
어.
[아들] 꿈에 말이예요 전 거기서 항상 꿈을 꾸거든요. (한 모금 마시고) 꿈에--- 아버지는
우리 꽃밭에 물을 주고 계셨어요.
[어머니] 별 희한한 꿈도 다 있구나---
[아들] 그런데, 이상한 게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니까, 꽃밭을 밝구서 마구 달아나는데 한쪽
다리를 절둑거리시드라니까요 (중얼거린다) 왜 그랬지---
[어머니] 어려서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하더니 그 바람은 여전하구나.
[아들] (계속 중얼거린다) 하긴 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닌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동안 생
활비가 모자라진 않으셨어요?
[어머니]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다) 지금 까지는 괜찮았지--- 그런데 앞으로가 걱
정이구나. 몇 시간 안 있으면 생활비도 바닥날텐데.
[아들] (거칠게) 얼마나 흥청망청 써댔으면 그 많은 돈이 벌써 바닥난다 말요.
[어머니]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다고 너는 모를 거다. 네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까.
[아들] 그만두쇼, 매일 빠찡고나 하고 술 마시고 춤추고---
[어머니] (아들을 껴안으며) 얘야, 아무렴 그 피 같은 돈으로 그렇게 썼겠니?
[아들] 죄송해요, 어머니. 따질 생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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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래, 안다. 네 심정을 애미가 왜 모르겠니 .하지만 살림만 하면서 집안에 가만 있
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너한테 좋지 않은 소식이 있구나.
[아들] 뭔데요.
[어머니] 네가 들어가기 전에 사귀던 그 피부가 뽀얀 여자 말이야--- 어떤 보험회사 과장하
고 결혼을 했다는구나.
[아들] 그 게 정말 이예요? 그녀가--- 그럴 리가? 그럴 수 없어요. 그래선 안돼요.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했는데--- (좌절한다)
[어머니] 벌써, 여덟 번째다, 빌어먹을 년들. 네가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새를 못 참고
도망쳐 버리니--- 까짓 계집에들 잊어버려라. (아들 얼굴을 쓰다듬는다) 너같이 듬직한 남
자에게 여자가 또 없으려구. (아들의 행색을 훑어보며) 그런데 지금 네 꼴이 이게 뭐니, 예
쁘게 차려야지, 내가 너를 얼마나 귀엽게 키워 왔다구. 어릴 때 넌 꼭 고양이 같았지. 자, 전
에 입던 옷을 찾아보자.
어머니는 옷장에서 아들의 옷가지를 하나씩 던져준다. 아들이 차례대로 몸에 견주어 보지만
그 옷들은 하나같이 작거나 유행에 뒤떨어진다.
[어머니] 안 되겠다. 시내 나가서 쇼핑도 하고 옷도 새로 사 입자.
어머니와 아들 퇴장. 암전.
아들이 아버지를 찾는 소녀와 앉아있다. 이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명이 들어온다.
[아들] 이 아저씨가--- 응--- 수수께끼를 하나 낼테니까 맞춰봐, 응 ?
[소녀] 응.
[아들] 응--- 아침에는 네다리로 걷고, 낮에는 두 다리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동물은--- 뭘까?
[소녀] 응---
[아들] 응---
[소녀] 응---
[아들] 응--- 그 건 사람이란다.
[소녀] 아, 맞다. 애기 때는 기어다니고---
[아들] 그렇지, 그런데 이 수수께끼에는 아주 슬픈 사연이 있더란다.
어머니 들어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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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그게 뭔데요, 아저씨?
[아들] 그러니까---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시브스라는 나라가 있었지. 그 나라는 캐드무드
라는 용사가 만든 아주 작은 나라였어---
[어머니] (기쁜 듯이) 얘, 나비야. 벌써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거니?
[아들] (황급히 포옹을 풀며 변명하듯) 그냥 아는 여자예요.
[어머니] (소녀에게) 아이고 이뻐라 저는 우리아이가 여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쩌
나 하고 늘 걱정이었는데 아가씨가 있어서 참 다행이예요.
이때,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을 사랑한다는 몸짓을 한다.
[어머니] 그런데, 얘야, 며칠 새 돈을 물 쓰듯 하다보니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 냉장고도 텅
텅 비어 있고--- 집세며, 세금도 많이 밀렸구나.
[아들]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소녀에게) 조금 기다려 주겠어?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 그럼 다녀오겠어요.
[어머니] 그래, 걱정 마라, 이 아가씬 내가 잘 대접 할테니.
아들 퇴장. 어머니는 어색하게 서 있는 여자의 둘레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발로 걷어찬
다.
[어머니] 야, 이 갈보년아. 당장 꺼져 버려!
여자 겁에 질려 퇴장. 곧 아들이 물건을 잔뜩 안고 등장.
[어머니] 오, 나비야! (물건을 받아 놓는다)
[아들] (호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내 주며) 뭐, 별 것 아녜요. 그런데 내 여자는 어딜 갔죠?
[어머니] 네가 나가자마자 약속이 있다고 그만 가 버렸구나.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말이야
---
[아들] 빌어먹을--- (들고 있던 꽃을 팽개친다) 벌써 몇 번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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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활기 있게) 염려 마라, 세상엔 마음씨 고운 여자도 수두룩하단다.
(아들을 안아 위로하며) --- 오늘은 푸짐하구나.
[아들] 꾸러미 열어 보세요.
[어머니] (물건을 하나씩 꺼낸다)
커피--- 담배--- 구두--- 화장지--- 위스키--- 후추---
[아들] 그 후추, 로얄 호텔 뷔페식당에서 가져온 거예요. 진짜 인도 후추라구요.
[어머니] (냄새를 맡아보고) 정말 인도 후추구나.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 경찰 2명이 들어온다. 아들을 체포한다.
[아들] (끌려가며) 어머니, 걱정 말아요. 전 아홉 번째별을 따러 가는 거라구요.
[어머니] (몇 발자국 따라 가며) 그래, 나는 네가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구나.
[아들] 이 번엔 한 3년 썩을 거예요.
[어머니] 그래. 자주 편지하마.
어머니가 손을 흔드는 사이.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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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2장
[김부장] 혹시 홍--- 윤조씨?
[홍대리] 예--- 혹시 부, 부장님이십니까?
[김부장] 이 친구야. 안에 있으면 있다고 인기척이라도 내야 할거 아냐?
[홍대리] 시정하겠습니다
[김부장] 뭐 시정까지야. 저--- 거기 혹시 휴지--- 있나?
[홍대리] 다--- 썼는데요
[김부장] 이런.
[홍대리] 휴지--- 없으세요?
[김부장] (쓰레기통을 들여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결재 받으러 올라가다 급해서 들르다 보
니 말이야. 큰일인데 빨리 결제를 맡아야 할 건인데. 쯧.
[홍대리] 저--- 부장님 그쪽 휴지통에 참한 것 골라서 쓰시면 안될까--- 요?
[김부장]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내가 남이 쓴 휴지나 뒤져서 써야 하겠나?
[홍대리] 그래도--- 갇혀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김부장] 날 뭘로 보고하는 소리야!
[홍대리] (찔끔) 죄송합니다.
[김부장] 그 쪽엔 건질만한 놈 없나?
[홍대리] 이쪽이요? 지금 찾아보겠습니다.
[김부장] 참 이거 본부장님 퇴근하시기 전에 결재를 받아야 할텐데.
[아내] (슬립 차림의 아내. 머리도 풀려있고 엑스터스 직전의 숨가쁜 호흡이다) 아--- 아
--- 아---
[홍대리] 흡! (배변 고통이 급습한다) 아--- 후--- (아랫배에 엄청난 부하가 걸린 듯) 아
--- 후.
[김부장] 홍대리? 왜 그러나?
[아내] 아--- 여보--- 헉---
[아내] (냉랭한 표정. 흐트러진 슬립 끝을 추키며) 기분 나쁘게 듣지마, 자기는 의지가 박 약
인 것 같아, 뭐 하나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 없이 뜨듯미지근 하잖아.
남자가 한번 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 치워야지. 박력 있게 밀어 붙여봐. 결혼
한지 얼마나 됐다고 남들은 펄펄 나는데, 어휴--- 자기 나 수요 예배에 가자긴 안갈꺼지?
홍대리 표정 잠시 굳는다. 바흐의 칸타타 <눈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의 첫 동기가
두 번정도 반복되어 흐르다가 잦아들면 홍대리는 얼굴을 파묻고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한
다. 이때의 연주는 쿼탯이나 윈드 앙상블정도의 사운드로도 무방하다.
단지 조금 빠르게 연주되어야 한다. 오물이 묻어있는 휴지들 속에서 그나마 조금 깨끗한 녀
석이 건져진다.
[홍대리] 아--- 이거 좀--- 그렇네요.
[김부장] 어떤데? 상태가 아주 못 쓸 지경인가? 웬만하면---
[홍대리] 부장님 찾았습니다.
[김부장] 그래? 난 홍대리 자네가 찾아낼 줄 알았네.
[홍대리] (휴지에 묻은 누런 자국을 떼어낸다) 다행입니다. 빨리 결재 받으셔야 하는데 이나
마도 못 찾았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건낸다) 자 여기.
[김부장] (받는다) --- 흠. 저 홍대리.
[홍대리] 예?
[김부장] 이거 축축한데--- 다른 것 좀 더 찾아 보는게 어떻겠나?
[페이지] 011
[홍대리] 아, 그렇습니까? 아--- 어쩐다. (검은 비닐 봉투에서 일회용 휴지를 마지못해 꺼
낸다) 부장님 ---
[김부장] 그래, 괜잖은 놈 찾았나?
[홍대리] 아 아닙니다 (발로 쓰레기통을 툭툭 건드리며 짐짓 찾는 듯) 저 혹시 이번 인사발
령에 대해서--- 아 부장님은 인사과가 아니니까 직접 관여하지 않으시지.
[김부장] 그거야 뭐.
[홍대리] 만약에 말입니다. 제가 인사담당자라면 그래도 장차 이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실
분인데 자세하게 브리핑 해 드릴텐데--- 지금 친구들은--- 안 하나보지요?
[김부장] 내 말이 바로 그 말 아니겠나! 사실 이까짓 회사 경영 하는게 뭐 그리 대수겠나만
은 그래도 영감이 이나마 가꿔온 것이니까 뜻을 받들 여서 내 꾹 참고 배운다 생각하고 있
는데 말이지 그 전무, 그 작자가 사단이란 말야
[홍대리] 저런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김부장] 무슨 소문.
[홍대리] 어휴 아닙니다. 확증이 된것도 아닌데 경거 망동 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부장] 야--- 이 사람 왜 이러나. 내가 누구야?
[홍대리] (터지는 미소를 억누르며) 저야 물론 부장님을 믿지요. 하지만 전 다른 사람의 말
을 옮기는 그런 치졸한 놈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지요. 제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입이 무겁고 의리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습니다.
[김부장] (은근하게) 홍대리. 내가 왜 그런걸 모르겠나 다 알지 이래 뵈두 사람 보는 눈은
있어요. 그 전부터 저 친구는 믿을 만하다 믿고 일 할수 있는 친구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
지.
[홍대리]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김부장] 어차피 윗 세대는 이제 떠나야 한다구 회사도 자네나 나 같은 젊은 사람들이 책임
지고 나가야 할 것 아닌가? 안 그래?
[홍대리] 그렇습니다. (웅변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새로운 경영. 세계는 변하
고 있는데 우리만 구태의연하게 옛날 스타일을 고집하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갈 사람은 빨리 가고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새로운 시대가 회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 (절절한 통성 기도의 소리) 아버지 하나니--- 임!--- 주시 옵시고!--- 강하게 하시
옵씨고! 세계 제일의 교회로--- 옵씨고! 일만 이천명의 교회와!--- 불같은 성령의 감화. 감
동 감동으로--- 강하게 하옵소서. 모두들 우러러보는--- 원쑤 마귀들을 물리쳐 주시 주시
고--- 어떠한 고난과--- 환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옵소서--- 주여! 주여 --- 아
버지여!!!
[김부장] 그래! 바로 그거야! 대단한 비전이야!
[홍대리] 감사합니다.
[김부장] 자! (변기위로 올라가 손을 잡는다) 감사합니다.
[홍대리] (변기위로 올라가 손을 내민다) 악수하세.
[김부장] (손을 흔들며) 자네와 나는 이제 회사의 미래를 위해 한 배를 탄 동지야!
[홍대리] 성심 성의껏 부장님을 보필하겠습니다.
[김부장] 좋았어. 홍대리 . 자 가게!
[홍대리] 예
[김부장]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한잔하면서 회사의 앞날을 함께 계획해 보세.
[홍대리] 하지만 휴지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김부장] 아차! 휴지. 음--- 상관없네.
[페이지] 012
[홍대리] 예?
[김부장] 자 빤스를 벗어버리세. 빤스를 꼭 입어야 하나? 우린 젊은 세대니까.
남들이 하지 않는 신사고를 실천하는 거야!
[홍대리] 예! 좋습니다!
[김부장] 음! (팬티를 벗어 휴지통에 던져 넣고는 바지만 입은 체 문밖으로) 뭐하나. 얼른
가 세.
[홍대리] (검은 봉투에서 꺼내 들었던 일회용 휴지를 잽싸게 밑을 닦는다. 팬티를 올려 입고
바지를 올려 입는다) 예, 부장님 (발로 휴지통을 슬쩍 찬다) 빤스를 꼭 입어야 한다는 구태
의연한 사고를 단숨에 벗어버리지요!
두 사람 문 밖에서 만난다. 김부장은 홍대리의 손을 잡고 감격 어린 표정을 짓는다. 홍대리
도 동감한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홍대리도 동감한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
인다.
바흐의<눈 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 가 바이올린의 처연한 독주로 연주되면 홍대리
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김부장 결재판을 들고나선다. 잠시 손을 씻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
는 김부장의 모습과 홍대리가 처량 맞게 비닐 봉투를 부스럭거리는 모습이 천천히 딤 아웃
되어 어두워지는 가운데 천천히 사라진다.
조명 O.L
세월은 갔고, 어머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문 두드리는 소리.
[어머니] 누구세요.
[아들] (소리만) 제기랄. 저예요, 어머니.
[어머니] 나비냐--- ?
중머리의 아들 등장. 그는 껌을 씹고 있다. 서로 감정 없이 포옹.
[어머니] 예정보다 한 달이나 늦었구나.
[아들] (꽃을 꽃병에 꽂으며) 건방진 신참 놈을 두들겨 패다가 징계를 먹었어요.
그 놈이 무슨 장관의 먼 친척 뻘이라지 뭐예요. 씨팔, 재수 없게.
[어머니] 그래? 큰일날 뻔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무척 걱정했지 뭐냐, 앞으로는 너보다
출신이 좋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손대지 말아라. 밥은 먹은 거냐?
[아들] 네, 짜장면하고 (입을 벌려 보이며) 껌이죠.
[어머니] 그럼 담배하고 술만 있으면 그만이겠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담배를 건네주고, 칵테일을 만든다) 그래, 이번에 있던 곳은 어땠니?
[아들] 말도 마세요. 어찌나 부식 사정이 나쁜 곳인지 3년 동안 무우하고 땡감만 씹었어요.
가끔 나오는 달걀하고 오리고기는 그 빌어먹을 비둘기 놈들 아 다 쪼아 먹었구요.
[어머니] (잔을 아들에게 주며) 그래서 네 얼굴이 이렇게 상했구나. 건배!
[페이지] 013
[아들] (껌을 뱉고 한 모금 마신다) 거기 울타리는 왜 그리 높이 쳐 針는지--- 어디,
햇빛 구경을 할 수 가 있어야죠. 온 얼굴들이 곰팡이 피어갔고---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
을 수가 없었어요. 구역질나서--- (침을 ꒈ는다) 그런데, 작년 5월 (한모금 마시고)
18일엔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루 종일 국기도 올라가지 않고, 그 털빠진 비둘기놈들은 무
슨 회의를 그렇게 오래 하는지 하루 종일 구구구구--- 그 덕분에 그날 우린 물먹은 개구리
배를 해갖고선 구구단을 열심히 외웠어요.
[어머니] 글세--- 작년 그날이라--- 아마--- 그날 우리 나라가 축구에서 일본한테 진날이
지--- (갸웃둥)
[아들] 그러니까--- 우리 나라가 골먹은 날이군요. 국가적으로 꼴값을 떨었군.
(한 모금 마신다)
[어머니] (한 모금 마시고) 그런 셈이지. 그런데 그때 물가가 올라가 네가 벌어다 준 돈이
무척 헤프게 쓰였었다.
[아들] (한 모금 마시고) 아 참, 아버지 제사는 지내셨어요?
[어머니] 으응? 뭐---
[아들] 무슨 대답이 그래요. 안 지내셨죠?
[어머니] 아니, 지냈어. 꽃까지 사다 바쳤다.
[아들] 고마워요. (한 모금 마시고) 전에 제가 사귀던 여자 소식 들었어요?
[어머니] 누구 말이야? (한 모금 마시며) 곱슬머리 여자? 아니면 히프가 작은 그 여자? 죽
은 깨 투성이?
[아들] 아니, 이번에 들어가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 말이예요. 쌍꺼풀 수술한.
[어머니] 아, 그 화장 짙게 한 여자? 글쎄다--- 어디--- 몸 팔러 갔겠지.
[아들] 결국 그런 여자였군요. 그래도 나는 편지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술을 단숨에 마신다) 세상에 믿을 여자 하나 없네.
[어머니] (따라 잔을 놓으며) 무슨 소리, 넌 , 정말 괜찮은 여자를 아직 못 만난 거야.
(가슴을 헤쳐 자신의 젓을 아들에게 물려준다) 걱정 마라. 너만큼 생활력 강한 남자에게 왜
사랑이 따르지 않겠니. 그런데 옷이 이게 무슨 꼴이람.
(아들을 떼어 내고 일어선다) 그리고 옷장 속의 옷을 하나씩 던진다. 아들은 차례대로 몸에
견주어 보지만 그 옷들은 작거나 유행에 뒤떨어진다) 안되겠다.
시내 나가서 바람도 쐬고 옷도 멋진 걸로 골라 보자.
어머니와 아들 퇴장. 암전. 아들이 아버지를 찾는 소녀와 앉아 있다.
이들 이야기가 들리며 조명이 들어온다.
[소녀] 그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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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그리구--- 그들은 그 아이에게 오디푸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 그 건'부어오른 발'
이란 뜻이야.
[소녀] 쇠꼬챙이에 찔려서 발이 부은거죠?
[아들] 그렇지---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훌륭한 청년이 되었더란다. 그런데--- 그는 자
신에 관한 몸서리쳐지는 예언을 듣게 되지 --- 그러니까--- 자기가 --- 아버지를---
[어머니] 나비야 ---
[아들] (무관심) 왜요?
[어머니] 걱정이다. 생활비가 다 떨어져서---
[아들] (무관심하게 포옹을 계속한 채) 옆집에 가서 빌려 보세요.
[어머니] 누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겠니.
[아들] --- (포옹을 풀며) 제발 저에게 나쁜 일 돔 그만 시키세요.
[어머니] 아니, 예야! 다 살려고 하는 일이데 누가 나쁘다고 하겠니? 아무 일 하지 않는게
더 나쁜 일이지.
[아들] 전 여자가 달아날까 두려워요! (여자를 포옹한다) 이 번엔 어머니가 한 번 다녀 오
세요.
[어머니] --- 그럼--- 이 번만은 내가 해보마. 하지만 서둘러서---
[아들] (여전히 어머니를 외면한 체) 처음 하는 거니까!
[어머니] 이 애미는--- 꼭 잡힐 것만 같다.
[아들] 완전범죄를 꿈꾸지 말아요. 그 건 치사한 놈들이나 하는 속임수인데다가 그거야 말
로 용서받지 못할 범죄니까요!
[어머니] 그래도 떨리는구나.
[아들] 일하지 싫은 자는 먹지도 말랬어요!
[어머니] (결심한 듯) 그럼--- 한번 해보마. (문 앞으로 가서 잠시 선다) 뭐 주의할 사항은
없니?
[아들] (잠시 고개를 들어 어머니 쪽을 바라보며) 지문을 남기지 말아요. 그것만 잘 해내 도
처음 하는 일 치곤 좋은 성과니까.
[어머니] (중얼거리며) 지문 지문---
[아들] 잘 다녀오세요.
어머니 퇴장과 동시에 암전. 다시 조명 들어오면 아들 소파에 처량히 앉아 있다 이때, 어머
니가 잔뜩 물건을 안은 채 등장.
[어머니] (물건을 내려놓으며) 아니, 나비야, 너 왜 혼자 있는 거니?
[아들] 가 버렸어요--- 우리의 생활양식이 맘에 안든다고---
[어머니]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계집이 있나--- 아예--- 손 끊어라--- 그런 여자와 살았
다간 넌 마라 비틀어 질거야. 바가지나 긁어대고--- 시도 때도 없이 사내 정액이나 뺏으려
들지--- 아무 쓸모 없다. (어머니는 절망한 아들을 포옹하
[페이지] 015
고 아들의 손가락을 빤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 어머니는 호주머니 속의 돈 다발을 소파 밑에 감춘다.
경찰 2명이 들어와 어머니를 체포한다.
[어머니] (끌려가며) 잘 있거라.
[아들] 예, 어머니. 벼룩 조심 하시구요. 고참들 말에 무조건 복종하세요.
[어머니] (끌려가면서) 그래---
암전.
[페이지] 016
[장] 3장
[홍대리] 아, 이 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네. 자기 급한 일 끝났다 이거지. 나 참 20분이 다 돼
도록 뭐하구 안 나타나는 거야.
[아내] 여보 자기는 나 사랑해?
[홍대리] 어떤 놈은 부모 잘 만나서 제 멋대로 살아도 떵떵 거리며 살고 어떤 놈은 이거 마
음 놓고 똥두 못 닦는구나, 이런 염병.
[아내] 호호호--- 그 거짓말 참 맘에 든다. 호호호--- 나 또 태어난데도 자기 아내가 될 거
야. 정말.
[홍대리] 에이구, 이거나 긁지 (즉석복권을 꺼내 긁는다) 아자! 천 만원도 좋고 에스페로 한
대도 좋다, 자동차, 자동차--- 어이구? 요거봐라.
[아내] 대학 동창 민정이 있잖아. 그 애 이혼했다지 뭐야? 남편이 회사에 디자인하는 젊은
계집에한테 홀려서 살림을 차린걸 2년 동안 까맣게 몰랐다 잖아.
세상에 저번 우리 모임에 나와서두 허허거리더니, 그런 나쁜 놈일지 누가 알았겠어? 처음부
터 얼굴 값을 한다 했어.
[홍대리] 그러면 그렇지 내복에 무슨 자. 천 만원에 도전한다! 일--- 천 만원. 일--- 십 만
원--- 일--- 십 만원 .어이구 괜찮은데?
[아내] 자기는 나밖에 없지? 그치?
[홍대리] 일--- 천 만원, 야 요거봐라. 천 만원도 좋고 십만원도 좋다, 천 만원이면 차한대
뽑고 십 만원이면 술 한잔 먹자, 아 자자자--- 일--- 천--- 원? 쩝.
[아내] 자기--- 사랑해--- 날 배신하면 안돼. 응?
[홍대리] 자 천 만원--- 십 만원--- 일---
화장실 문을 후다닥 열고 뛰어드는 명성. 꽝 닫히는 소리!
[홍대리] (큰소리로) 왔다!
뛰어들던 명성, 홍대리의 큰 소리에 놀라 주춤한다. 주춤한 잠깐의 사이를 비집고 막혀 있던
설사가 주르륵 바지를 타고 흐른다. 난감한 표정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떼어보지만 한걸
음을 뗄 때마다 쏟아져 내리는 설사더미가 곤혹스럽다.
[홍대리] 부장님?
[명성] 후--- (변기방으로 들어가 앉는다)
[홍대리] 부장님 아니예요?
[명성] 아 녜요! (일단 뱃속에 남은 것을 변기에 쏟아놓는다)
[홍대리] ---
[명성] 이거 참--- (숨을 돌리고 바지에 묻은 설사를 변기에 털어 넣으며) 왜 소리를 지르
십니까? 참---
[홍대리] 최 명성씨?
[명성] 홍대리님? 대리님 대리님이 소리지르는 바람에 에이---
[홍대리] 왜?
[명성] 빤스에 지렸잖아요--- 이거 큰일났네. 어떡하지?
[홍대리] 자네 설사야? 어휴--- 슬슬 냄새가 나네.
[명성] 간밤에 술을 좀 과하게 먹었거든요. 이거 어쩐다? 대리님 이거 딴데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비밀이에요.
[홍대리] 부럽구만.
[페이지] 017
[명성] 예 뭐가요?
[홍대리] 변비보다는 낫지 않은가 말야.
[명성] 지금 같아서는 차라리 변비가 나을 것 같습니다.
[홍대리] 그런가? 하하하.
[명성] 대리님 휴지 좀 넘겨 주실래요? 여기 휴지가 떨어졌는데요.
[홍대리] 휴지 없어.
[명성] 예?
[홍대리] 나두 기다리고 있거든
[명성] 휴지를 기다려요?
[홍대리] 그렇게 됐어. 김부장이 마지막 휴지를 가져가면서 금방 갖다 준다고 했는데 아직
안오고 있어서.
[명성] 김부장님은요?
[홍대리] 응.
[명성] 포기하구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 보는게 빠르겠네요.
[홍대리]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여기서 20분이나 기다렸는데.
[명성] 대리님도 참 회사 생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척하면 아셔야지요.
[홍대리] 뭘?
[명성] 김부장님이 어디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입니까? 안 올껄요.
[홍대리] 설마. 결재가 늦어지는 모양 일테지 사장님한테 결재 받으러 가야 한다고 했거든
[명성] 제 말은 김부장님이 고의로 안 온다는 것이 아니구요. 잊어버린단 얘깁니다. 김부 장
님 은 원래 그런 기질이 있잖아요. 주위에서 항상 떠받들어 놓으니까 남을 생각하는 걸 전
혀 못하는 부잣집 외동아들 곤조. 20분이면 아마 결재 받는 건 이미 끝났을 텐데요.
[홍대리]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결재가 길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는 중간에 급한 전화나
손님이 왔을 리도 있고.
[명성] 아닙니다. 못 올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을 보냈을 수도 있잖아요.
[홍대리] 왜 매사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나.
[명성] 전 그 동안 경험한 바를 유추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홍대리] 그거야. 상황마다 다를 수 있는 거 아닌가. 자네 경험이 많지도 않을 테고
[명성] 20분이란 시간을 허비하시고도 얼마나 더 기다리시려고요? 대리님은 시간을 도둑 맞
은 겁니다.
[홍대리] 뭐 20분 정도 가지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것 있나.
[명성] 20분 정도라니요. 대리님 월급이 한 달에 얼마쯤 되십니까? 한 150 되지요? 그럼 한
달에 26일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약 6만원이구, 하루 8시간 근무를 하는 것으로 치면 시
간당 7500원 그 중에 20분이면--- 음--- 한 3천원 되네요. 구내 식당 두끼 분을 그냥 달리
신 꼴이예요. 그게 왜 20분 정도인가요?
[홍대리] 우리 회사가 어디 딱 8시간만 근무하게 되나. 두끼까지는 안될거야.
[명성]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20분이면 그 사이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수도 있고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는 시간 아닙니까.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면 삼대가 먹고 살 수도 있
는 겁니다. 하여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홍대리님의 귀한 시간을 김부장 때문에 도둑
맞았다는 점입니다.
[홍대리] 자넨 항상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나?
[명성] 네?
[홍대리] (신경질이 배어난다) 그래, 나는 사람이 좀 못나서 20분쯤은 기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어디 그렇게 무쪽 자르듯이 계산대로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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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 제가 언제 계산대로 된다고 했습니까? 분노해야 할 일을 그저 그렇거니 하고 넘기
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그냥 유야무야 넘어 가는게 어디 이 일뿐입
니까?
[아내] 자기는 왜 그래? 어머니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듣고만 있으면 어떻
게 해? 내 꼴은 뭐가 되냐구? 나 참, 당신이 마냥 어쩡쩡하니까 어머님이 더 그러시는거 아
냐? 난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아.
[홍대리] 그래 내가 뭘 어떻게 하란 얘기야? 가서 김부장한테 쫓아가기라도 하란 말이야?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도 상사 아냐?
[아내] 어머, 어머---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내 말이 틀렸어? 틀렸어? 어머님이 괜히 어 거
지 부리고 턱도 없는 심술 부리는거 당신도 알잖아 그런데 왜 가만히 있냐구.
[홍대리] 그렇게 니가 잘나서 매사에 손해 보는게 억울하면 회사 안 다니면 될꺼아냐? 그럼
되잖아?
[명성] 왜 화를 내십니까?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홍대리님은 안 그러실 줄 알았는데 결국 그 구닥다리 세대들하고 똑
같아요 강한 윗사람에게는 강하고 약한 사람한테는 권위적으로 지배하려고 드는 그런 태도
전 실망했습니다 환멸을 느낍니다.
[아내] 왜 나한테 화를 내? 화를 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홍대리] 내가 뭐 그렇게 잘못 햇어? 아무도 나한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 준 사람이 없
엇다구. 나도 피해자야 받은게 아무 것도 없어 그래 잘난 네가 가르쳐 다고 나이고 직위고
다 접어두고 네가 날 가르쳐 다고 뭐가 옳고 뭐가 잘못인지 위에서는 자기 말만 들으라구
목숨 줄잡고 흔들지, 아래서는 만만한 중간만 비난하지 가르쳐 줘봐. 가르쳐 줘. 얼른 !
[명성] (냉정하게) 혹시나 했는데 비겁하시기까지 하시군요.
[홍대리] 그래! 난 비겁하다 윗사람에게 대들 용기도 없고 아랫사람한테 관대할 여유도 없
이 그저 비겁할 뿐이야 (바지를 내리고 문 밖으로 뛰어나온다) 자! 이제 됐냐? 소리 칠까?
야! 김부장 이 자식아! 왜 휴지 안 가져오는 거야! 난 어떡하라구? 휴지가 없어서 이렇게 빨
가벗고 있잖아! 들리냐! 휴지 가져와! 휴지! 똥좀 닦자. 궁둥이 묻은 똥좀 닦아 보자! 야!!!
안들려! 나보고 비겁하다 잖아! 휴지!
홍대리가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 안을 맴돌고 있다. 바흐의 <눈 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
> 가 연주된다 멜로디라인의 바이올린 독주에서 두 대의 바이올린 멜로디라인 그리고
1,2 바이올린이 각 각의 화음으로 마지막으로 비올라와 첼로의 두툼한 코러스파트가 불어
나오는 현악 4중주로 변주되기를 바란다. 홍대리의 절규와 함께 음악이 맞물리면 더욱 이상
적일 듯하다.
세월은 흘렸고 약간 지저분한 방. 아들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
[아들] (느리게) 누구세요.
[어머니] (소리만) 제기랄, 나다. 이 호로 자식아,
[아들] 아, 어머니세요.
아들은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껌을 씹고 있는 어머니. 둘은 감정 없이 포옹.
[페이지] 019
[아들] (술주정뱅이가 다 되어) 지내시기는 어땠어요?
[어머니] (활기에 차서) 괜찮더라. 그런데 넌 그렇지가 못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소파에 가 앉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담배를 건네주고 칵테일을 만든다.
[아들] 전--- 모든 게 어렵고 힘들었어요--- 매일 술로 시간을 죽였죠--- 이런 곳에서 살
타입이 아닌 모양 이예요--- 정상적이 아니었어요--- (잔을 어머니에게 준다) 전 어딘가
포근한 구멍 속에 들어가 있길 원해요. 갇히기를---
[어머니] (한 모금 마시고) 그래, 거기 생활이 여기 보다 나쁘진 않더라--- 생각보다 자유롭
고 아담했어--- (한 모금 마시고) 고참들도 부드럽게 대해 주고--- 그 왜 있잖니, 여자가
여자를 사랑해 주는 것--- (쿡 웃는다)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짜릿하기도 하고---
[아들] (단 번에 술을 마시며) 사방이 그렇게 안전한 곳도 없어요.
[어머니] 그래, 그 건 구속이 아니라 자유였다.
[아들] (비틀거리면서 술을 가지려 간다) 그런데 여긴 엉망진창 이예요--- 여기서는 시간
이 다 썩어버려요--- (술을 병째 마신다) 그리고 왜 그렇게 불안한지--- 누가 자꾸 잡으러
오는 것 같고 --- 훔치지도 않았는데 말예요.
잠시 침묵
[어머니] 아, 참, 거기서 이상한 꿈을 꿨는데, 밤마다 누가 찾아와서 잠든 내 입에 뭘 자꾸
넣어주던데--- 내가 늘그막에 또 애를 가질려고 그러나---
[아들] 어머니도 참--- 그게 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구요.
[어머니] 그러니--- 그래, 생활비는 어떻게 됐니?
[아들] 한 푼도 안 남았어요. 벌써 옛날에 거덜난 걸요.
[어머니] 그럼, 내가 또 움직여야 겠구나.
[아들] 아니예요. 제가 가야지요. 어머니는 원래 한번만 하기로 했으니까.
[어머니] 아니다. 징역살이를 해서라도 어미가 아이를 먹여 살리는 게 당연하잖니---
[아들] 아닙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먹여 살려야죠.
잠시 침묵.
[어머니]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하자. 둘 다, 들어가기로.
[아들] (환히 웃으며) 그 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어머니와 아들 퇴장, 그들은 번갈아 무대를 들락거리며 TV,전축, 채소, 가구 등을 안고 들어
온다. 최소한의 소도구만으로 꾸며진 무대가 금새, 꽉찬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아들 꽃
을 들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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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얘야 , 넌 꽃을 훔쳐왔구나. 그 것 말고는 더 훔칠게 없더냐?
[아들] 그래요. 꽃은 세상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훔치고 싶은 거예요. 이것들을 훔칠려고 손
을 내밀면 이것들은 가늘게 떨고 수줍게 움츠려들죠. 그럴때마다 가슴이 뛰고 정말 부끄러
워져요. 내가 혐오스러워 지고 견딜 수가 없어요.
[어머니] 그러니까, 꽃보다 실용적인 걸 훔쳐오지 그러니. 그래야. 그런 몹쓸 생각도 안 들고
---
[아들] 우리한테 없는 게 뭐가 있어요? 우리한텐 부족한 건 아무 것도 없잖아요?
[어머니]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러면 다음 번엔 물망초를 좀 갖다 다오. 난 물망초를 좋아하
거든---
어머니는 훔쳐온 카세트를 튼다. 그리고 칵테일을 만들어 온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침묵.
[아들] (레코드를 뒤집으며) 왜 우릴 잡으러 안 오죠? 지문을 그렇게 많이 남겼는데---
[어머니] 나는 거기 문 앞에다 주민등록증도 놔두고 왔는데---
[아들] (초초 하게) 우리가 안 잡히는 건 아닐까요? 자수를 하는 게 어때요?
[어머니] 자수를 하다니? 넌 불안 한거냐? 불안할 게 없잖아.
[아들] 죄를 지었으니 잡혀야 할 게 아닙니까.
[어머니] 하지만 놈들은 우리가 자수하길 원하지 않을 거다.
[아들] 왜요?
[어머니] 놈들은 법이 지켜지길 원해. 죄를 지은 놈에게 범이 시행되길 원하지.
그들은 우리에게 양심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아. 우리는 죄를 짓고 벌을 받아야지, 스스로
뉘우쳐서는 안돼. 그들도 우리에게 벌을 주고자 원하지, 용서를 주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법대로 처리되어야 해, 그들은 그 걸 원해!
[아들] 돌대가리들!
사이 침묵.
[어머니] 이 건 정상이 아니야.
[아들] 그들을 기다리는 게 지루해요.
[어머니] 그래, 나도 지루하고, 심심하다. (긴 침묵)
잠시 암전. 천장에서 쥐가 뛰어 달리는 듯한 소음이 들리고 다시 조명이 들어오면, 어머니는
관객을 등진 채 소파에 누워 있고 아들은 쭈그리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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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젠 자자꾸나, 나는 지쳐 버렸다.
[아들] 저 소리를 두고 벌써 지치다뇨, 놈들을 진압 해야죠.
[어머니] 얘야, 내 머리칼을 봐, 잘 때가 되잖았니.
[아들] 저놈들, 또 모여들어 두런거리네.
[어머니] --- 난--- 지쳤어--- 혼자서해 봐--- 지켜 볼테니.
[아들] 그러세요, 야옹 소린 제가 내지요. 야옹, 야옹---
아들은 야옹 소리를 내는 만큼 천장에서 뛰는 쥐들은 더욱 분주해지고. 불안과 마주앉은 아
들은 더 큰 소리 공중에 풀어놓는다.
[아들] 야옹, 야옹, 야옹---
[어머니] 네 목소리 너무 말라 있구나.
[아들] 제가 꿈이 없는 건가요?
[어머니] 아니, 아직 네 가슴이 작아서 그런 거란다
[아들] (작은 가슴으로) 야옹, 야옹.
잠시 조용해지는 천정. 그러다 더 커진 천정 부스럭거림이 야옹 소리를 짓누른다.
[아들] 야옹, 야옹, 저, 저것들이 이제 달아나지도 않네.
[어머니] 찍소리 못하고 고분고분하던 것들인데---
[아들] 어머니, 우리 꽃들이 다 시들어요. 야옹, 야옹.
[어머니] 야옹 소리 필요 없다. 이것으로 저놈들의 정의가 입증된 셈이니까.
[아들] 쉿! 조용히 해요. 저놈들이 들으면 어쩔려고 그래요.
어머니의 그림자는 교수대 위에 대롱거리고, 아들은 자신 없는 야옹 소리를 길게 늘어뜨린
다.
[아들] 무서워라, 저 저 소리가 더욱 견고해지네, 야아아옹, 야아아옹---
발악하듯 외치는 고양이의 울부짓음을 짓누르며 군중의 환호 같은, 웅장한 음악 같은, 흡사
밀물같이 거역 할 수 없는,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자꾸 문을 두드린다.
잠시 침묵.
[어머니] 아, 왔다!
[아들] 야옹, 왔다!
여기서부터 모든 무대위의 인물은, 가끔씩 TV속의 개그맨이 그러하듯 슬로우 모우션으로
연기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환호, 손을 치켜들고 환영하듯 문으로 달려간다. 경찰 2명이 들
어오다가 달려오는 모자를 보고 반항하는 줄 착각, 놀라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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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선 자세로 또 한 명은 무릎 앉은 자세로 권총을 꺼내 쏜다, 딩구는 모자. 어머니는 즉사
한 듯 꼼짝 않고 아들은 허벅지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른다. 경찰1은 총을 겨눈 채 있고 경
찰2는 총을 겨누며 다가와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다. 이 때부터는 정상적인 속도로 연기한
다.
[아들] 어머니, 일어나세요, 마침내 우린 붙잡혔어요. (어머니를 흔들며 울부짓는다) 어머니
빨리 일나세요.
경찰 1,2 는 이들을 일으켜 끌고 간다.
[아들] 어머니 빨리 따라와요.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거예요, 어머니!
아들 끌려 가면서 암전.
[장] 4장
[홍대리] 휴지 없어.
[명성] 예?
[홍대리] 나두 기다리고 있거든
[명성] 휴지를 기다려요?
[홍대리] 그렇게 됐어. 김부장이 마지막으로 휴지를 가져가면서 금방 갖다 준다고 했는데 아
직 안오고 있어서.
[명성] 김부장님이요?
[홍대리] 응.
[명성] 포기하고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 보는게 빠르겠네요.
[홍대리] 그건 무슨 얘기야? 난 여기서 20분이나 기다렸는데.
[명성] 대리님도 참 회사 생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척 보면 아셔야지요.
[명성] 김부장님이 어디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입니까? 안 올걸요.
[홍대리] 설마, 결재가 늦어지는 모양 일테지. 사장님한테 결재 받으러 가야 한다고 했거든
[명성] 제 말은 김부장님이 고의로 안 온다는 것이 아니구요. 잊어버린다 얘깁니다. 김부 장
님 원래 그런 기질이 있잖아요. 주위에서 항상 떠받들어 놓으니까 남을 생각하는 걸 전혀
못하는 부잣집 외동아들 곤조. 20분이면 아마 결재 받는 건 이미 끝났을 텐데요.
[홍대리]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결재가 길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는 중간에 급한 전화
나 손님이 왔을리도 있고.
[명성] 아닙니다. 못 올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을 보냈을 수도 있잖아요.
[홍대리] 그럼 우린 여기 갇힌 거네.
[명성] 네. 그렇지요. 빌어먹을 김부장님 때문에 하여튼.
[홍대리] 좋은 생각없나?
[명성] 글쎄요. 정 없으면 휴지통이라도 뒤져봐야지요. 뭐.
[홍대리] 힘들걸. 김부장도 뒤지다가 실패했어.
[명성] 젠장. 이걸 어쩌지요?
[홍대리] 글세. 내 생각엔 휴지가 우리 손에 들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는 아무 방법
이 없을 것 같은데.
[명성] 기다린다. 휴지를 기다린다. 김부장님을 기다린다.
[홍대리] 최명성씨도 그냥 쉰다 생각하고 앉아서 기다려봐.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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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 그래선 안될 것 같은데요. 너무 무기력하잖아요.
[홍대리] 특별히 할 수 있는 방법도 딱힌 없지 않나.
[명성]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요?
[홍대리] 내가 말야 조금 전까지 복권을 긁고 있었는데 말야. 천 만원이 2개, 십 만원이 2개
걸렸었거든. 천 만원 붙으면 뭘할까?
[명성] 음--- 어떻게 한다. 전셋돈을 올려? 아니면 차를 한 대 뽑아? 아냐 전부 천원 짜 리
로 바꿔서 베겟 속을 만들어 넣고 베고 잠이나 자볼까?
[명성] (바지를 주섬주섬 벗는다)
[홍대리] 좋아. 그때 가서 생각하는 편이 훨씬 좋겠다 자---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알라님, 그리고 두루 여러 귀신 제위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힘도 없는 이 불초소생을 두루
살펴 주시옵고--- 믿씀니다
[명성] 대리님 전 팬티라도 빨아놔야 겠습니다 언제 휴지가 오더라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 것도 안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어쩐지 죄스럽네요 (문을 열고 나간다)
[홍대리] 하지만 피곤하지 않은가, 자 난 긁네. 일--- 천---
[명성] (수도를 켜보고) 와 이게 웬일이야. 뜨거운 물이 꽐꽐 나오네 와 짠돌이 들이 웬일
이야 대리님! 뜨거운 물이 나오네요! 허허허.
[홍대리] 일--- 천
바흐의 <눈뜨라 부르는 소리가 있어> 가 파이프 오르간 선율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면
서 조명이 어두워진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렸을까 다리를 저는 아들 등장 그는 껌을 씹고 있고 한아름의 물망초를
안고 있다
[아들] 어머니--- 제가 왔어요--- 이 번에--- 제가 있었던 데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
지--- 어머닌 아마 모르실 꺼예요--- (화병에 꽃을 꽂으며) 꽃밭이 있었거든요--- 세상에
--- 거기에 말예요. 거기에--- 눈부신 꽃밭이--- 저는 영원히 거기 있고 싶었어요, 제발,
거기 있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죠 하지만 어머니--- 저는 여기 있어요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어머니--- 도와주세요--- (소파에 앉아 조금씩 흐느껴 운다) 도와주세요.
아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그는 껌을 씹고 있어 기도는 중간중간 끊어지고 느려진다
그래서 아들의 모습은 심각해 보이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잠시 멈추고 무슨 생각을 하듯 하다가 '아버지'를 '어머니'로 바꾸어
[아들]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
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