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영의 복지세상⑮]
노인복지주택인가? 투기주택인가?
윤찬영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법의 정당성은 그것이 사회복지대상자의 권익에 봉사할 때 인정할 수 있다. 오히려 사회복지대상자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국가 또는 자본의 이익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반(反)복지법이라 할 수 있다.
국가복지에 대해 반대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민영화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일찍이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민간참여)의 숨은 뜻을 지적한 바 있지만(윤찬영의 복지세상②), 영리주체인 기업을 통한 민영화는 엄연히 사회복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복지법에는 이런 규정들이 버젓이 살아 있으며, 급기야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노인복지주택이라는 요상한 노인복지시설(?)이다.
현재 노인복지법 제31조는 노인복지시설을 노인주거복지시설, 노인의료복지시설, 노인여가복지시설, 재가노인복지시설,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5개로 분류하고, 법 제32조에서 다시 노인주거복지시설을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서 노인복지주택이라 함은 노인에게 주거시설을 분양 또는 임대하여 주거의 편의ㆍ생활지도ㆍ상담 및 안전관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다(노인복지법 제32조 제1항 제3호).
노인주거복지시설의 입소대상ㆍ입소절차ㆍ입소비용 및 분양ㆍ임대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가족부령으로 정하며(같은 조 제2항), 노인복지주택의 설치ㆍ관리 및 공급 등에 관하여 이 법에서 규정된 사항을 제외하고는 「주택법」의 관련규정을 준용한다(같은 조 제3항).
현실적으로 노인복지주택이란 쉽게 말해서 아파트와 같은 것인데, 임대 또는 분양자격을 단독취사 등 독립된 주거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60세 이상의 자(노인복지법 시행규칙 제14조 제1항 제2호)로 한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인전용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건설회사들이 노인복지주택을 분양하면서 사기 등 법적 다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광고 전단지에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노인복지주택”이라는 문구를 표기하고 있어 일반 분양 아파트처럼 오인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엇갈리고 있다. 어떤 판결에서는 노인복지법상 주택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여 입주자를 보호하고, 어떤 판결에서는 분양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건설회사를 옹호하기도 한다.
노인복지법의 규정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노인복지주택을 노인복지시설로 규정하면서도 분양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입소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할 때, 입소한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전국의 절반 이상의 국민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데, 아파트를 사회복지시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건설회사가 노인복지법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해도, 입소한 노인이 사망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노인의 자녀가 노인복지주택을 상속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면, 노인복지법과 동 시행규칙상 60세 미만의 자녀는 당해 노인복지주택을 소유할 수 없다. 그러나 상속을 막을 수 없다면, 자녀는 그 노인복지주택을 전매하여 이익을 챙기거나 임대하여 수익을 얻게 될 것이다. 더 나아 가 현실에서 벌어지듯이, 건설회사나 운영업자가 연령 미달의 사람들에게도 분양을 하게 되면 이것은 아파트 투기를 부채질하게 된다.
건설회사 역시 부지를 매입할 때부터 엄청난 혜택을 얻는다. 노인복지시설을 짓는 부지이기 때문에 일반 택지보다 1/5~1/6 정도 저렴하게 택지를 확보하여 일반 아파트와 같은 가격으로 분양할 수 있다. 각종 세제 혜택도 받는다.
노인복지법상 주택이면서도 일반 주택의 분양과 마찬가지로 공급할 수 있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는데, 이를 규율할 법 규정은 미비하다. 노인복지법, 주택법, 소비자보호법 등 어디에도 이를 규율하는 규정들이 없어 건설회사의 이윤에 봉사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설회사를 위한 법이다. 노인은 소비자인지, 보호대상자인지 불명확하다.
자본과 이윤의 혼이 사회복지법에 둥지를 틀고 오히려 정부로부터 혜택과 지원을 받으며 맘껏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복지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노인과 복지를 팔아 자본의 이윤과 부동산 투기꾼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법은 사회복지법이 아니다. 상도의에도 어긋난다. 소비자로서의 주권이든 노인복지대상자로서의 권리이든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익을 분명히 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출처 = 복지타임즈 200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