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매를 만나려
각황전에 오른다
마을에서 끌고 온
번뇌 집착 낡은 옷
화엄 법계
좁고 가파른 계단에
훌훌 벗어 던지고
각황전 석등 앞에
원통전 네 사자
희로애락 감로탑 앞에
알몸으로 선다
지난 겨울에도
나를 만나지 못한
게으른 사내
삼월이 다 가기 전에
붉은 꽃 곁에 선다
잠시 선재동자 되어
눈감고 붉은 향기를 본다
진리를 그대로 비추는구나
비로자나 부처여, 자연이여,
적멸(寂滅)에 이른
화엄사 적매(赤梅)여
노고단 눈보라 속에서
달마처럼,
팔을 잘라 파초 잎에 바친
혜가처럼
한겨울 용맹정진하더니
갈 봄 여름 없이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음보살처럼
수많은 가지와 잎새로
중생을 어루만지고 살피더니
그대여,
어리석은 시인이여
화엄사 적매에 취해
대웅전 부처님도 잊고
사라진 각황전 석등이며,
연기조사 어머님 모신
효대 가는 계단도 놓쳐도 좋다
나무 절집도
금강계단 진신사리탑도
묘법연화 원통전 천정 장엄도
모두 그림자일 뿐이리니
망형(忘形), 형상을 잊으라
각황전으로 벋은 가지,
깨달음을 사모하는
적매 용매 마음결 품고
산문을 나설 수 있다면
천년을 맑고 곱게
화엄삼매에 들 수만 있다면,
붉은 꽃 붉은 향기
흩날리지 않겠는가
화엄사 적매처럼
ㅡ 졸시, '친견, 화엄사 적매'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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